"보바리 부인"은 플로베르가 1852년부터 1856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시골 풍속"이라는 부제로 출판되었었다. "보바리 부인"이 출판된 이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플로베르와 출판사의 편집자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의 초판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었다. 출판사는 "보바리 부인" 출판 후에 반드시 물의가 있을 것을 예상하여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간단히 요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도덕 관념은 이 소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 문학사상 획기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법정 투쟁은 플로베르의 승리로 마감했고 그 이듬해인 1857년에 원본이 햇빛을 보았으며 플로베르는 일약일류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보바리 부인"은 평범한 시골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생활과 환경을 정밀하게 표현한 것으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사실주의 운동의 기치가 된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로맨틱한 영혼에 대한 동경과 그녀를 둘러싼 지극히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파멸을 묘사함으로써 꿈과 현실의 차이가 빚어 내는 환멸 그리고 그 환멸 속에서 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비극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현실이 꿈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꿈이 현실과 너무 먼 곳에 있을 때 인간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을 통해서 플로베스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자신의 꿈에 충실했을 때 맞게 되는 현실적인 파멸을 경고하려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파멸을 맞게 되더라고 꿈을 꾸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그려 낸 것인가? 진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초라하며 비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에 대해 의미 심장하게 언급한 말을 기억해보자.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작가 약전
플로베르는 1820년 루앙 시립 병원 외과 부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같은 해에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도 탄생했으며, 또한 그도 의사의 아들이라는 점은 일치된다) 병원에서의 견문이 작가 수업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며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의사 샤를의 이야기도 병원 생활에서 얻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는 예술에 몸을 바쳐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플로베르의 문학상의 위치는 사실주의의 완성자라는 점에 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빅토르 위고를 숭배했으며 열 살 전후에 이미 몇 편의 희곡을 써서 친구들을 모아 놓고 연극을 했다. 문학 방면에는 조숙했으나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특히 수학을 못하여 저능아가 아닌가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위고를 숭배하면서도 위고의 낭만주의와는 반대되는 사실주의의 주창자가 된 것이다. "우리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는 단 하나의 정확한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에 맞는 표현에는 하나의 형용사밖에 없다" 라고 한 말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플로베르에게는 문학이란 곧 문장이고 표현이었던 것이다. "가두 마차의 말이 그에 잇따른 또 그에 앞선 그 외의 오십 필의 말과 어느 점이 다른가를 단 한 마디로 말해 주게" 그의 제자 모파상에게 한 말이다. 어디까지나 현실을 정확하며 적합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는 의미이다. 작품으로 "성 앙투안의 유혹", "살람보", "감정 교육", "브봘과 페규세" 등이있다.
줄거리
프랑스의 북부 토스트란 시골에서 사는 샤를 보바리는 병원 개업을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혼인을 서둘렀다. 샤를은 사랑하는 여성이 없었으므로 마흔 다섯 살이나 된데다 얼굴도 밉기까지 했지만 상당한 지참금 때문에 구혼 경쟁이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샤를은 결혼을 하게 되면 행복한 생활을 기대했다. 좀더 자유롭고 윤택하게 지내게 되기를... 그러나 그의 첫째 부인인 엘로이즈 뒤뷔크 부인은 주장이 심하고 사사건건 샤를의 생활을 간섭했다. 그의 부인은 몹시 질투가 심했다. 샤를에게 오는 편지를 먼저 뜯어 보고 그의 뒤를 살피고 여자 환자가 있을 때면 문 뒤에서 진찰실을 엿듣곤 했다. 그런데다 무척 신경질적이어서 샤를은 아내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밤중에 베르토라는 시골 농가의 골절 환자가 왕진을 청해 왔다. 토스트에서 베르토까지는 육십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환자인 루올 씨는 이 고을의 꽤 부유한 지주였다. 홀로 된 루올 씨에게는 엠마라는 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치료를 시작한 지 사십여 일 후에는 거의 완치가되다시피해서 환자 자신은 물론이요. 이웃 사람들끼리 샤를을 훌륭한 의사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샤를은 사람들의 호평을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이 집 처녀에 대한 면목이 서는 점에서는 다행으로 여겼다. 치료 기간 중에 그는 매주 한 번씩 규칙적으로 환자를 찾아보았으며 그 외에도 마치 우연히 들른 듯이 자주 그 집을 들락거렸다. 그것은 물론 엠마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어느덧 이 베르토로 말을 모는 일이 다시 없는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엠마는 유르싀를린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 여러 가지 교양을 쌓은 꿈이 많은 엠마는 생기가 넘치고 투명하리 만큼 살결이 뽀얀 아가씨였다. 반가이 맞아 주고 상냥한 말씨로 환송해 주는 엠마에게서 샤를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샤를은 루올 노인이 완치된 후에도 이 집에 자주 들렀다. 그러나 샤를은 부인의 심한 잔소리가 귀찮아서 엠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그럴수록 만정은 가슴 속에서 불타올랐다. 샤를의 부모는 가끔 아들과 며느리를 보러 왔다. 그러나 번번히 며느리와 싸우고 돌아갔다. 재산이 많다고 하여 구혼 경쟁들을 했지만 실은 엘로이즈의 재산이란 것도 소문과는 달랐다. 결혼 전에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난 일로이즈는 점점 더 밉게만 보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또 시부모와 충돌이 생긴 지 얼마 후에 엘로이즈는 별안간 각혈을 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샤를이 상처를 한데 대한 동정에서인지 환자의 수가 늘어갔다. 샤를은 베르토에도 마음대로 다니기 시작했다. 막연하면서도 새로운 행복을 꿈꾸면서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빛이 떠올랐다. 더욱더 젊어지는 것만 같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희망을 다짐하면서...
엠마는 실상 샤를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어쨌든 이 남자가 자기를 찾아 주는 유인한 이성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랑이라든가 정열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려올 때 엠마는 무언지 모를 감미로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샤를은 대단히 결심을 하고서 베르토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엠마를 대하자 또 청혼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엠마가 없는 틈을 타서 루올 씨에게 말을 꺼냈다.
"루올 씨 저..."
과거를 가진 남자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루올 노인은 곧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챘다.
"알았소 나로선 이 이상 바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애의 생각을 물어 보기로 하지요"
엠마는 얼떨떨했다. 그야말로 무언지도 몰랐다. 결국 구혼은 수락되었다. 다만 샤를의 상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아주 성대했다. 그 지방 풍속에 따라 갖출 것을 다 갖추었고 별다른 불만이 없이 신혼 여행도 했다. 그리고 토스트에 정착했다. 엠마는 샤를의 후처로서 보바리 부인이 된 것이다. 시골 병원의 생활은 한결같이 단조롭기만 했다. 엠마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에 뒤이어 이내 환멸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두 사람의 생활이 친밀해질수록 구 내면은 점점 남편에게서 멀어져 갔다. 샤를이 하는 얘기는 결혼 전처럼 감격을 주지도 않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화제들 뿐이었다. 그는 헤엄을 칠 줄도 물랐고 검술도 총술도 모르며 승마에도 연극에도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내라는 것은 무엇이나 다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나 다 뛰어나야 하며 여자를 불 속으로 끌어들일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엠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샤를은 이런 점을 구비하지 못한 남편이었다. 샤를은 엠마가 샤를에게 염증을 내는 줄도 모르고 그는 아내가 행복해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이 움직임이 없는 평온함 둔한 단조로움 그리고 자기가 사내에게 준 행복을 생각하면서 샤를을 원망하였다. 엠마는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황혼이 깃든 창가에 기대 서서 한없는 꿈을 쫓으며 공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수녀원 시절이 새삼스럽게 그립기도 했다. 무능하고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일생을 따분한 시골 구석에서 보내야 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우울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후작댁에 초대되어 화려한 무도회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 밤은 보바리 부인에게 추억을 남겨 주었다. 많은 신사 숙녀들 틈에 끼어도 엠마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용모의 아름다움에서나 화술에서나 몸매며 춤에 있어서도 의젓한 숙녀였다. 무엇보다도 엠마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 삶들은 지금쯤 호화 찬란한 파리에서 사교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텐데 자기는 이렇듯 보잘것없는 시골에서 세월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청춘도 아름다움도 이대로 시골 구석에서 한낱 풀잎처럼 시들고 말리라고 생각할 때 엠마는 한없이 초조해졌다. 무미 건조한 생활과 초라한 자기 모습에 점점 더 싫증이 났다. 엠마는 토스트가 싫어서 환경을 바꿔 보려고 남편에게 졸라 반년 전에 용빌르라베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 이 곳은 루앙 시에서 8마일 떨어져 있고 조그만 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며 왼편은 초원 오른편에는 밭이 쭉 뻗어 있었다. 풀밭 가장자리를 흐르는 물은 목장의 빛깔과 밭의 색깔을 하나의 흰 줄로 구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풍경은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정원과 정적에 익숙해 온 엠마는 좀더 인간적인 자극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어려서부터 시와 소설을 많이 읽고 음악과 그림을 좋아한 엠마에게 샤를과의 결혼 생활은 다만 우울한 마음을 길러 줄 따름이었다. 밤낮으로 환자나 대하고 의학 서적이나 뒤적거리는 무능하고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일생을 이 마을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울적해졌다.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엠마 앞에 나타난 사내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레옹이었다. 이 마을에서 엠마에게 자극을 주는 유일한 존재는 공증인의 서기로 있는 레옹 뿐이었다. 레옹은 그의 직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문학이나 음악에 이해가 있었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보바리 부인은 이 청년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레옹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면서도 수줍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여자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이런 일을 자기가 먼저 얘기하리 만큼 경솔하지는 않았다. 한숨을 쉬면서 마음 속에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말만 하는 것이었다. 매력이 넘치는 레옹의 얼굴을 볼 때 부인은 항상 불안한 초조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레옹 역시 엠마의 재능과 미모에 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옹은 사랑의 비밀을 끝내 털어놓지 않고 파리로 유학의 길을 떠나버렸다. 레옹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부인의 가슴은 마치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그이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내가 좀더 대담하게 모든 것을 고백하지 못했던가' 보바리 부인은 창문을 열고 서서 마차로 떠나간 레옹의 뒤를 쫓기나 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먹장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강한 바람이 포플러 나무를 뒤흔들고 지나가더니 이어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빗발이 나뭇잎을 때리고 지나간 후 금방 해가 다시 났다. 모래 위의 물웅덩이에는 아카시아 꽃이 떠 있었다. '이제는 가고 없는 레옹!' 부인은 물끄러미 아카시아 꽃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날 저녁 우연히 약제사 오메가 와서 레옹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런 촌에 있을 때와는 달리 레옹도 아마 금방 파리가 좋아질 것입니다. 술집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가장 무도회에서 샴페인과 파리 여인에게 정신을 잃고 말겠지요"
이 말을 들으니 보바리 부인은 마치 손 안의 구슬을 놓친 듯 후회했다. 나는 하나의 행복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샤를의 평범하고 권태로운 얼굴을 보니 한결 더 우울해졌다. 결혼 전 일을 돌이켜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를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변덕으로 싫어지게 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이외에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결혼 당시는 엠마도 신부답게 가구를 여러 가지로 꾸며서 기분을 전환시켜 보기도 하고 커튼의 무늬를 궁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반 년쯤 지나서부터는 왜 이처럼 무능하고 둔하고 따분한 사내와 결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일 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어떠한 남편을 만나게 됐을까 하고 여러 가지 타입의 남자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 샤를의 품에서 빠져 나갈 결심도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불만을 참고 억제하는 것이 지나쳤든지 히스테리 증상이 생겼다. 샤를은 그래도 의사로서 꽤 성공한 편이었고 생활에 어떤 곤란도 받지 않을 만큼 무척 바빴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가 아무런 불만이 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한없이 외로웠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매력을 느낀 레옹도 멀리 파리로 가버리지 않았는가!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닳아빠진 구두처럼 점점 주름이 늘어갈 뿐이다. 부인은 이러한 허전함을 걷잡을 수 없었다. 계집애를 낳았으나 어머니로서의 애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 곧 남에게 맡겨 버렸다. 결혼은 사랑의 형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엠마의 경우는 결혼이 무덤과도 같이 쓸쓸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빗이나 반지 목도리 따위를 어루만지기도 하며 하얗게 드러난 팔과 어깨에 사랑스러운 키스를 하곤 했으나 일단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 엠마에게는 그런 애무조차도 도리어 불쾌하게느껴지기까지 했다. 사랑이라든가 정열 감동 등 소설 따위에서 즐겨 읽은 아름다운 말들이 현실에 있어서는 이다지도 비참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자기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슬픔을 가져오는 원인일까 생각하면서 보바리 부인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고요한 저녁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새삼스러웠다. 창에 비치는 어스름한 빛이 물결치듯 조용히 가라앉는 저녁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들은 자기의 생활 자체와도 같이 꼼짝도 않고 캄캄한 바다에 빠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때 시계는 째깍째깍 그저 반복일 뿐인 시간을 새기고 있다. 자기 마음은 헝클어졌는데 주위의 만물은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한가 하고 놀라운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 때 요즘 집에 돌아와 있는 두 살 난 딸 베르트가 아장아장 걸어와서 '마마' 하고 앞치마에 매달렸다. 보바리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매정스럽게밀어냈다. 자기의 귀중한 공상을 무너뜨린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어린애는 더욱 어머니 무릎에 매달렸다.
"귀찮다는 데도!"
부인은 재차 팔꿈치로 아이를 떠밀었다. 저만치 옷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아이가 쓰러졌다. 자지러질 듯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부인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이 어린 것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보바리 부인은 베르트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가다간 내 생활이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의 탓인지 알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몸서리칠 만큼 단조로운 생활에도 더러는 뜻하지 않은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즉 이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공진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지사가 몸소 참석하고 표창 받을 농부들이 가족을 데리고 모여들었다. 보바리 부인은 최근에 알게 된 로돌프라는 지주와 함께 이 모임에 참석했다. 로돌프는 유세트 장의 주인으로 아직 독신이었다. 1년 수입이 일만오천 프랑이나 된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인데 그의 머슴이 진찰을 받으러 온 일이 있어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인과도 서로 알고 지내게 됐다. 호색가인 로돌프는 보바리 부인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미 욕심이 생겼다. 마음 속 깊이 찌르고드는 그 여자의 눈매 하얀 살결과 표정이 풍부한 얼굴 첫눈에 반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로돌프는 오늘의 공진회가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보바리 부인을 청해서 같이 온 것이다. 엠마는 이 날 따라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엷은 색깔의 리본이 달린 보닛 밑으로 햇빛을 받아 새하얀 얼굴이 또렷하게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길다란 눈썹에 가리운 크고 푸른 눈동자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드러낸 살결은 구슬이 굴러 떨어질 듯 매끈했다. 보바리 부인은 이 곳에 오는 도중 들국화를 꺾으면서 로돌프에게 말했다.
"참 둘국화가 곱네요. 마을 처녀들은 이걸로 사랑을 점칠 수 있대요"
균형이 잡힌 몸매에 장부답게 생긴 로둘프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여자를 상대해 온 만큼 보바리 부인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부인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 가를 곧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부인을 위해서 점을 쳐볼까요?"
"아녀요. 그런데 로돌프 씨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시죠?"
"글쎄요. 그러나 만일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면 정말 온 정열을 기울여서 사랑하고 싶은 것만은 사실이죠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사막을 걷는 거나 마찬가질 겝니다"
한 자리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 틈에 끼었을 때 로돌프의 차림새는 한결 더 멋이 있었다. 그는 지금 서른 네 살의 한창 나이에 굵직한 줄무늬의 바지를 입어 더욱 젊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구두에는 풀잎이 비치리 만큼 반들반들하게 니스 칠이 되어 있었다. 조끼는 회색 무늬가 들어 있고 저고리 소매에는 주름 장식이 잡혀 있어 농부들 틈에 끼어 있는 그의 모습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참사관이 일어서서 군중에게 극히 형식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로돌프는 부인 곁에 다가가서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판에 박은 듯하고 생명이 없는 저따위 맥빠진 말은 진저리가 나잖아요? 진실하고 위대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과 정열만이 인생의 보람이요. 인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영웅적인 행위와 그 감격스러움 시와 음악과 예술 그러한 것의 바탕이 되는 사랑과 정열!"
보바리 부인은 귀밑까지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얼마쯤은 세상의 이목과 도덕에 따라서 살아가야죠"
"아닙니다. 부인 도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저 바보 같은 친구들이 떠들어대는 체면상의 도덕 또 하나는 사랑 속에 꽃 피는 영원한 도덕입니다. 이 세상에서 매력을 지닌 도덕은 참다운 용기를 지닌 특출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높은 의미의 도덕입니다"
말쑥하게 가다듬은 로돌프의 머리에서 풍기는 포마드 냄새가 그의 야릇한 체취와 함께 보바리 부인을 자극하고 황홀한 유혹을 느끼게까지 했다. 그 후 여섯 주일이 지난 어느 날 로돌프가 보바리 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서 사랑을 이루려면 여자에게 적당한 자극을 준 후에 얼마 동안 간격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저녁 무렵이어서 유리창에는 차츰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보바리 부인은 홀로 있었다. 로돌프가 객실에 들어서자 보바리 부인의 안색은 본인이 느낄 만큼 달라졌다. 이러한 얼굴빛과 태도를 보고 로돌프는 자기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첫인사를 받고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일이 있었고 몸이 불편하고 해서 이렇게..."
"몹시 편찮으셨어요?"
그녀는 놀란 듯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몸살이 좀... 찾아 뵙기가 두려워서"
"왜요?"
"모르시겠습니까?"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차근히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로돌프는 말을 이어서
"엠마"
"어머나 그렇게 부르시다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그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찾아 뵙기가 두려웠던 것도 모두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가슴에 넘쳐 흘러 불쑥 한 마디 튀어나온 당신의 이름 그 이름을 왜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까? 보바리 부인... 이것이라면 누구든지 당신을 부르는 것이죠... 더욱이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 딴 사람의 성입니다. 딴 사람의..."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저는 오직 절망뿐입니다. 아니 실례했군요! 작별하겠습니다...안녕히...저는 멀리 떠나가겠습니다. 당신이 두 번 다시 저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먼 곳으로...그런데도...오늘이란 이 날이 ...어떤 힘으로 하여금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줄달음치게 했을까요? 사람이 하늘과 싸울 수 없는 것처럼 천사의 미소에는 대항할 수 없는 것처럼 이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녀는 황홀해서 넋을 잃은 사람처럼 로돌프의 속삭임의 열기에 의해서 달아올랐다.
"그러나 비록 오늘 방문을 안했어도 비록 만나뵙지 못했다 해도 저는 항상 당신 곁에서 당신을 감싸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저는 잠자리를 걷어 차고 이 곳까지 왔었죠. 당신의 집을 달빛에 비친 지붕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창가에서 흔들거리는 정원수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비치는 램프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당신은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곳에 그렇게 가까이 또 그렇게 멀리 불쌍한 사나이가 있었던 것을..."
"오, 당신은 참으로 좋은 분 그런 생각까지 하실 줄은..."
부인은 숨을 내쉬며 간신히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것뿐입니다. 의심은 안하시겠죠? 말씀해 주세요! 단 한 마디라도 사랑을 의심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로돌프는 의자에서 차츰차츰 밑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때 부엌 쪽에서 신발 소리가 나며 하녀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로돌프는 시치미를 떼고 일어났다. 다음 날 말에 탄 보바리 부인과 로돌프의 모습이 마을 밖 숲에 나타났다. 어젯밤 샤를이 부인의 몸이 약하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을 때 로돌프는 승마를 하는 것이 건강에 가장 적당하니 생각이 있으면 집에 있는 말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였다 남편 샤를은 좋아하면서 아내를 대신하여 감사해 하고부탁했다. 그리고 오늘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이처럼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꽃이 만발한 들을 지나니 빽빽이 우거진 울창한 나무 숲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렸다. 로돌프는 말을 잡아맸다. 그녀는 오솔길 사이의 이끼 낀 곳을 걸어갔다. 스커트 자락을 치켜 잡기는 했으나 너무 긴 탓으로 걷기가 불편했다. 로돌프는 그 뒤를 따라가며 양말 신은 그녀의 흰 다리의 윤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어디를 가는 거에요? 이젠 그만 가요. 지쳤어요"
돌아다보며 물었다. 로돌프는 아무 대답도 없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 곳에는 노목을 잘라 눕힌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은 자빠져 있는 나무 기둥에 걸터 앉았다. 로돌프는 자기의 사랑을 그녀가 놀라지 않게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흩어진 톱밥들을 발 끝으로 걷어차며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이제 하나로 되지 않았습니까?"
로돌프는 단정적으로 물었다.
"아녜요. 잘 아시면서 그건 안 될 말씀이에요"
그녀는 일어서서 돌아가려 했다. 로돌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잠시 황홀한 눈매로 사나이를 바라보던 부인은 갑자기
"아아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말은 어디 있어요? 돌아가요"
로돌프는 화난 듯이 당황한 몸짓을 하였다. 그리고 이상한 미소를 띄우며 양팔을 활짝 벌리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더듬거렸다.
"어머 무서워요. 그러지 마세요. 자 이제 돌아가요"
"하는 수 없죠"
그는 야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평상시와 같은 은근하고 부드럽고 서먹서먹한 태도를 취했다. 그녀는 그제야 안심하고 그에게 팔을 걸치며 돌아가려 했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저의 사랑을 믿지 않으십니까? 제발 제 말을"
그는 팔을 벌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두 사람의 말은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연못가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연못 수면에는 풀들이 파랗게 떠 있었다. 시들은 수련이 동심초 사이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풀을 밟는 두 사람의 발소리에 개구리가 뛰어서 숨어버렸다.
"제가 나빴어요.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다니 아무래도 제가 좀 돈 것이 아닌지 몰라요"
"왜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아 로돌프 씨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그녀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말하였다. 스커트 자락이 로돌프의 옷에 감겼다. 그녀는 풀밭에 반드시 누워 하얀 턱을 뒤로 젖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신없이 흐느끼면서 오들오들 몸을 떨고 있었다. 초저녁 어둠이 사방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심장이 또다시 뛰고 뜨거운 피가 온 몸을 감도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그들은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말을 탄 그녀의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날씬한 상반신을 똑바로 하고 한쪽 다리는 갈기 위에 얹었다. 저녁 노을에 비친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