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동산(Vishnyovy Sad:1904) - 체호프
해설
러시아의 문호 체호프가 사망하기 1년 전에 탈고한 4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극작가 체호프로서는 마지막 작품인 만큼 심오한 인생 관조의 눈 날카로운 현실분석과 천재적인 두뇌로 특징 되는 극작 수법 마디마디의 배역을 표현하는 묘사의 기도 등 그의 예술을 구성하는 온갖 요소가 원숙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만년에 이르러 모스크바 예술좌의 여배우 크닛벨과 결혼함으로써 관계가 깊어지게 된 모스크바 예술좌 배우들의 간청에 의하여 병 중에도 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초연은 1905년 1월 17일 작가의 명명일을 택하여 모스크바 예술좌에서 열었다. 주연은 그의 아내이며 예술좌인 배우인 올가 크닛벨이었다. 그 무대에서 작가는 축사를 받았다. 이날은 막간에 화려한 축제를 열어 병을 앓는 체호프는 권고에 못 이겨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대로 비장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성대한 식장 여러 축사와 연설 그 사이에 할쑥한 체호프가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앉으시오. 앉으시오...안톤 파블로비치를 앉게 하시오!" 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 모든 사람의 머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는 것이었다. 과연 체호프는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7월 독일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이 성대한 축제는 사실상 체호프의 세상에 대한 고별식이 되었다.
"벚꽃 동산"은 그 집필에서 완성까지 전례없이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을 상연하는 데도 무대 감독 및 배우들과의 사이에 맹렬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병든 몸으로 마음이 약해져 있던 작가는 이러한 충돌을 견디어 낼 수가 없어서 희곡을 극장에 내 줄 때에는 3천 루블에 사가서 맘대로 해 달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규에도 상연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후 10년 동안 처음 작가가 요구한 3천 루블의 10배인 3만 루블 이상을 작가 측에 가져 왔다고 한다. 작품은 어떤 고장 제일의 명소라고 하는 벚꽃 동산을 배경으로 19세기 말엽 농노 해방에 따르는 귀족 계급이 대두되기 시작한 시대의 움직임을 평범한 일상 생활을 매개로 뚜렷이 부각해 놓은 것이다. 벚나무로 유명한 주택지는 소유자인 미망인 라네프스카야의 인정 많고 돈을 아낄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몇 겹으로 저당 잡혀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귀족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계속하여 땅은 이전의 농노였던 자본가 로파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어 벚나무는 도끼에 찍혀 넘어진다.
극의 형식은 이른바 정극 또는 기분극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독창적인 수법을 쓰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세상 이야기 단편적인 철학적 추상론 내용 없는 익살 거의 무의미해 보이는 감탄사만으로 극이 진행되어 충격적이고 결정적인 효과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해 모호한 분위기에서 생활의 실상이 상징적으로 떠오르게 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주의의 예술이며 훌륭한 음악의 기능을 지니는 상징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약전
체호프는 1860년 1월 17일 흑해에 면한 남러시아의 항구 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조부는 돈으로 자유를 산 농노였고 아버지는 이미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항구에서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교육받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네 아들에게는 힘닿는 대로 교육을 받게 하였다. 소년 시절에는 가정이 몹시 가난하였으므로 체호프는 이 곳의 하층 사회 소상인 농부 뱃사람들 틈에서 지냈다. 교육은 그 지방의 중학교에서 받고 그 후 온 집안이 모스크바로 나와 그는 1879년에 의과 대학에 입학하였다. 1881년의 대기근과 그에 이은 1892년의 콜레라가 만연할 때에는 자진하여 이들의 구제 운동에 힘썼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에게 세상의 실상을 파악하고 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갈 때 왜 의과를 선택하였던가는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 선택이 나중에 그의 문학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 그의 문학 활동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19세기부터 익명으로 단편적인 소품을 신문잡지에 발표하여 그 고료로 가계를 도우면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과로와 영양 부족으로 건강을 헤쳐 그의 죽음을 빠르게 하였다고 한다. 졸업하자 의학사의 칭호를 얻었으나 개업하지 않고 1년 동안 어느 병원에 의사로서 근무하고 문학에 정진하기 위해 다시 의사 노릇을 하지 않았다. 후에 시골에 칩거할 무렵 병에 시달리고 있는 농민들을 보기가 딱해서 봐 준 일은 있다. 1885년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수도의 문학자들과 사귀게 되어 많은 자극을 받았으며 특히 노작가 그리고로비치로부터 재능의 낭비를 충고한 격려의 편지를 받고 겨우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하게 되었다. 1888년에 단편집 "황혼에"로 푸슈킨 상을 탔다. 1892년에 그는 그의 건강을 몹시 상하게 한 사할린 여행을 하였다. 그 당시는 횡단 철도 개통 전이라 마차와 썰매 외에는 교통편이 없는 시베리아를 거쳐 황량한 지방을 2개월 간 여행하면서 그 곳의 감옥 제도와 죄수들의 생활을 조사하였다. 그 후 배로 인도양을 거쳐 귀국하였는데 "사할린 기행", "유형지에서", "구세유프" 등이 이 여행 체험에서 얻은 것이다. 1892년에는 모스크바 부근의 세르푸호프군에 조그마한 영지를 얻어 창작생활에 들어갔으며 농민들과의 사이에도 따듯한 관계가 맺어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체호프는 그 당시 불치의 병이었던 폐결핵이 발병하여 남쪽 크리미아의 얄타 해변가로 옮겼다. 건강이 좋을 때 한해서 그의 희곡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모스크바 예술좌를 방문하였다. 1898년의 '드레퓌스'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의 재능의 최초의 발견자였던 스볼린과의 우의를 끊었다. 1900년 학사원의 명예 회원으로 추천받게 되었으나 친구 고리키가 회원 명부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을 알자 즉시 사절장을 보내어 탈퇴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1904년 병세가 악화되어 독일의 요양지 바덴베르로 옮겼는데 한 달 후인 7월 2일 마흔네 살의 장년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체호프의 작품은 무려 300편이 넘는다. 장편 소설이 특징인 러시아 문학계에서 체호프는 거의 유일한 단편 작가이며 단편의 형식과 취재에서 이룬 그의 공적은 그에게 '러시아의 모파상'이라는 칭호를 받게 했다. 극작에서 새로운 수법인 기분극의 창출은 세계 문학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투르게네프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체호프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톨스토이는 '보옥같이 순수한 러시아인의 작가'로서 사랑하였고 "이 진주 같은 작품을 보라. 나는 마침내 그를 따를 수 없다"고 절찬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작가들 사이에도 찾기 힘든 아름답고 정다운 것이었다. 체호프의 초기 작품은 순수한 웃음을 노린 경쾌한 소품과 사회 풍자적인 색채가 짙은 우울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이 소품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었는데 체호프는 당시의 유명 작품의 관습에 따라 하급 관리 상인 교사 배우 화가 등 도시의 소시민충에 속하는 인물을 경쾌한 필치로 희화함으로써 작가의 천재적인 재능을 여지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둘째 계열에 속하는 것은 독특한 유머에다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른바 '체호프의 우수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그들 작품 대부분의 비굴한 소시민적 근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권력층에 대한 신랄한 항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특히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러나 체호프는 이같이 안일한 예수와 유머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19세기 말엽 농노 해방의 뒤를 이어 계속된 정쟁으로 인하여 러시아의 지식 계급은 염세주의로 흐르고 사회 전체는 태만과 암흑 속에 허덕이게 되었을 때 그의 칼날같이 예민한 직감력은 사회의 온갖 부정 부패 허의 모독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약 천 편의 소설 1막 물 6편 극작 5편이 있으나 주요한 것으로는 "맛없는 이야기", "아내", "결투", "이바노프", "귀여운 여인", "세 자매", "6호 병실", "바냐 아저씨", "갈매기", "기념제", "곰", "벚꽃 동산" 등이다.
줄거리
-제1막-
'아이들의 방'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두나샤와 로파힌이 5년만에 파리에서 돌아오는 여지주 라네프스카야 부인을 기다리고 있다. 먼동이 틀 무렵이다. 5월이라 아직 공기는 차가우나 벚꽃 동산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다. 멀리 기차가 닿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후 집에 마차가 두 대 닿는다. 라네프스카야와 딸 아냐 그리고 이들을 마중 나갔던 부인의 친오빠인 가예프부인의 양녀로 이 집의 가정을 맡고 있는 빌랴 그리고 이 집에 70년 동안이나 일하고 있는 머슴 필즈 등이 들어온다. 부인은 울고 있다.
"내 아이들의 방, 귀엽고 예쁜 아이들의 방... 나는 조그마할 때 이 방에서 잤지...(울면서) 지금도 꼭 난 어린아이 같아..."
라네프스카야는 주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족도 아닌 어느 변호사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빚을 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재간도 없는 주정뱅이었다. 남편이 죽자 부인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마침내 그 사람과 함께 하게되었다. 그러나 마치 천벌처럼 그녀가 사랑하던 갓난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부인은 이 강물을 보고 싶지 않아 외국으로 멀리 떠났다. 그녀의 애인도 뒤를 따랐다. 애인이 병을 앓게 되었다. 부인은 멜트나의 부근에 별장을 장만하여 그를 간호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빚에 쪼들려 별장을 팔아 파리로 갔다. 애인은 딴 여자와 눈이 맞아 그녀를 버렸다. 부인은 자살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불현 듯 고향과 딸 아냐가 그리워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고향은 지금은 황폐하여 이미 옛날과 같은 목가적 생활은 찾을 수 없었다. 유서 깊은 벚꽃 동산은 저당 잡혀 있었으며 여름에 경매를 당하게 되어 있었다. 부인이나 그의 오빠인 가예프는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어린아이나 다름 없었고 어떻게 할 바를 몰랐으며 그 동안 무슨 수가 생겨서 파산에서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로파힌은 이 부근의 상인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사람이었다. 그는 라네프스카야 부인 영지에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자주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이 저택에 찾아와서 부인에게 귀여움 받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인께서는 외국에서 5년 동안이나 살다 오셨으니 이제 어떻게 변했을까? 참 좋은 분이었지 언젠가 아버지한테 뺨을 얻어 맞고 코피를 흘리고 있었지 그 때 부인은 나를 이 '아이들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얼굴을 닦아 주었어 '울지 말아요. 작은 농부님 장가 갈 때까진 나을 테니까'하고 말했지...작은 농부... 사실 우리 아버지는 농부였어 나는 지금 하얀 조끼를 입고 노란 구두를 신고 있지만 돼지코를 치켜 들고 신사들 속에 한몫 낀 것뿐이고 ... 돈이야 가지고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농사꾼은 농사꾼이야... 책을 읽어보았지만 무슨 소린지도 알 수 없어 잠이 들어 버렸지..."
로파힌은 파산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부인과 가예프에게 그들의 경제 상태를 설명하고 대책을 일러 준다.
"아시다시피 댁의 벚꽃 동산은 저당 잡혀 팔리게 되었습니다. 8월 22일이 경매할 날이지요.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안심하고 편히 쉬세요. 빠져 나갈 길은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댁의 영지는 도시에서 25리밖에 안 떨어졌고 변두리에는 철도가 지나고 있지요. 만약 이 벚꽃 동산과 강가의 토지를 별장용으로 쪼개서 세를 내게 되면 그 임대료는 문제 없이 들어오게 됩니다... 물론 낡아빠진 이 집이나 케케묵은 벚꽃 숲은 헐고 베어 내야 합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재산을 모은 로파힌의 계산으로는 벚꽃 동산에서 2년에 한 번밖에 안 열리는 벚꽃 열매는 사갈 사람도 없고 돈벌이도 안 되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인과 가예프에게는 로파힌의 제안이 바보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도내에서 으뜸가는 자랑거리요. 백과 사전에까지 이름이 실려 있는 이 벚꽃 동산을 없애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들은 벚꽃 동산 없는 자기들의 생활을 생각할 수도 없어요. 로파힌은 그 후로도 기회만 있으면 여러 가지로 납득시키려고 했으나 자기들의 집을 헐어 별장지로 내 주고 벚꽃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믿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라네프스카야는 재산이 없어 로파힌에게 용돈을 빌려 쓰는 형편인 지금도 길 가는 거지에게 금화를 던져 주었으며 가난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가진 돈을 빌려 주는 버릇을 어쩌지 못했다. 가예프는 얼음 사탕을 빠는 것과 당구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항상 쓸데없는 농담만 하고 있는 호인에 불과했다.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는 바랴는 항상 허리춤에 쇠뭉치를 차고 말없이 싸다니며 집안을 보살피고 있었다. 가정 교사로 와 있는 프랑스 여자는 재미있는 복화술로 사람들을 웃겼다. 파리에서 제법 멋쟁이가 된 머슴 아샤는 두나샤와 희롱하고 있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침체한 공기 속에 명랑하고 활발한 소녀 아냐는 예전에 부인이 잃은 어린아이의 가정 교사로 이 집에 기식하고 있는 만년 대학생 트로피모프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들은 모든 과거를 깨끗이 버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씩씩한 꿈을 꾸고 있었다. 로파힌이 되풀이 주장하는 제안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라네프스카야 가예프는 여전히 무슨 좋은 수가 생겨서 빠져 나갈 구멍이 있으려니 믿고 있다. 늙은 백모가 죽으면 유산이라도 받을지 모른다는 등 꿈 같은 일만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무위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제2막-
마침내 경매의 날은 왔다. 이 날 집에서는 무도회가 열린다.
"예전에 이 댁의 무도회에서는 대장이나 남작이나 해군의 사령관들이 와서 춤추었건만 이제는 우체국원이니, 역장이니 하는 사람이나 모시러 가야한다. 그런 사람들도 선 뜻 나와 주지 않으려 하니... 원 제기랄"
하인 필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예프는 경매장에 가 있다. 라네프스카야는 경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절망적인 불안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가예프와 로파힌이 들어온다. 가예프는 경매의 결과를 이야기할 기운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로파힌 누가 샀나요?"
"제가 샀습니다. ...여러분 좀 참아 주시오. 저는 머리가 멍멍해서 말을 못하겠군요... 경매장에 가 보니 벌써 데리가노프 녀석이 버티고 있지 않아요? 가예프는 1만 5천 루블밖엔 안 가지고 계셨는데 데리가노프는 처음부터 3만을 걸었지요. 이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저는 4만을 걸었지요. 그랬더니 저쪽에서 4만5천으로 올리기에 저는 5만 5천으로 올렸지요. 저쪽이 5천씩 올려가고 저는 1만씩 올려가서 결국 9만 루블로 낙찰 됐지요. 벚꽃 동산은 내 것이오! 내 것이오! 꿈이 아닐까? 벚꽃 동산이 내 것이 되다니! 여러분께서는 저를 술이 취하거나 돌았다고 웃으시는 모양인데 웃지 마시오. 항상 얻어 맞기만 하고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봉사놈이 세계에서 다시 없는 아름다운 영지를 샀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살이를 하면서 감히 부엌에도 못들어 가던 이 농노가 영지를 산 것이오. 여보게! 악대를 불러 실컷 떠들어 주게 로파힌이 벚꽃 동산에 도끼를 대면 나무들이 땅바닥에 텅텅 쓰러진단 말이야! 얼마 안 가서 여기에 별장이 죽 들어서고 우리 손자들과 증손자들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겠지... 자 악대들 어서 불고 치게!"
부인은 의자에 몸을 떨어트리고 울고 있다. 로파힌은 나무라듯이 말한다.
"마님 왜 저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이젠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눈물을 흘리며) 아아 이런 일들이 빨리 끝나 버렸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불행한 생활이 어서 끝나 버렸으면!"
아냐가 와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위로한다.
"엄마 엄마 듣고 계세요? 소중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엄마 난 괜찮아요.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젠 없어졌어요. 하지만 엄마 울지 말아요. 엄마의 생활은 아직 남아 있지 않아요? 엄마의 고운 마음씨도 남아 있지 않아요. 자 가요. 나와 함께 가요. 여기서 나가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뜰을 만들어요. 엄마도 그걸 보면 알게 될 거에요. 깊은 기쁨이 마치 서산에 기우는 해처럼 엄마의 마음에 스며들 거에요. 그러면 엄마도 웃을 거에요! 자 가요. 엄마!"
-제3막-
제1막과 같은 무대다. 그러나 이제 커튼도 없고 가구들은 쓰레기처럼 구석에 쌓여 있다. 사람들은 쓸쓸히 정든 집을 떠나간다. 벌써 가을이다. 부인은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지난 날의 애인을 찾아 파리로 가게 되었다. 아냐는 페테르부르크의 여학교로 트로피모프는 대학으로 떠난다. 바랴는 딴 집의 가정부로 옮긴다. 가예프는 월급쟁이로 은행에 취직하여 읍으로 나간다. 농부들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울지는 않고 있으나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말도 못하는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지갑에 들었던 돈을 모두 털어 그들에게 나눠 준다. 가예프가 나무라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들 뿔뿔이 이 집을 나가자 부인과 가예프만 남는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운다.
"아아, 내 아름답고 정다운 벚꽃 동산!... 내 생활, 내 청춘, 내 행복 안녕!(아냐가 밖에서 즐거운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이벽과 유리창을 봐야지! 이 방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즐겨 거닐던 곳이야..."
아냐의 재촉하는 소리가 또 들린다. 그들이 나가자 무대는 공허해진다. 사방의 문짝에 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는 고요해진다. 이 고요 가운데 벚꽃나무를 베어 내는 도끼 소리가 적막하게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병이 나서 병원에 보냈던 늙은 머슴 필즈가 나타난다. 그는 비틀 걸음으로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돌려 본다.
"쇠가 잠겼구나 다 가버렸나 보다...(의자에 걸터앉는다) 나를 잊어 버렸나 보지... 아무래도 괜찮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뭐...(무엇인지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중얼거린다) 아아 한 평생이 다 갔구나 살아 있는지 모르게 끝났구나...(눕는다) 잠깐 눕기로 하자... 필즈야 너는 이젠 다됐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제기랄 못난 녀석아!"(누운 채로 꼼짝 않는다)
멀리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가야금 줄이 끊어지는 듯한 슬픈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꺼져간다. 고요 다만 멀리 벚꽃 동산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만이 울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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