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로 작가가 45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지식인 청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해부하여 그 당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합리주의 공리주의 허무주의에 날카로운 비판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불후의 명작이며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865년으로 언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쪼들리는 생활을 했으며 이 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에 아내와 형이 죽었고 그 때까지 형과 함께 경영하던 잡지사가 형의 죽음으로 실패하자 사업을 하면서 지게 된 모든 빚을 그가 짊어지게 되었다. 또한 형의 유가족의 생활까지 도맡게 되었다.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고심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발표된 당시 진보적 청년들에게 조국의 급진적인 개혁 운동을 조소하고 앞에 나선 젊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모독하고 헐뜯은 작품이라고 하여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것은 작품의 인물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유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을 풍자했으며 라즈미힌이란 인물의 입을 빌어 사회주의의 기계주의적인 합리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추상적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간성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허무주의 또는 초인간주의와 하느님의 진리와의 투쟁에 대한 해답으로 "죄와 벌"을 내놓은 것이다. 대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학자금이 떨어지고 거의 기아 지경에 빠졌다. 그는 작은 하숙 집의 지저분한 구석 방에 처박혀 있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두뇌는 공상적인 이론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다가 마침내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기존의 도덕 및 법률에 복종할 의무를 가졌으나 선택된 비범한 사람은 법률을 무시해도 되는 권리를 가졌고 창조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파괴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없이 새로운 인류의 도덕은 수립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이론으로 자기 자신을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는 무가치한 전당포 노파의 돈을 훔쳐 가치 있는 자신이 쓰는 것이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노파를 살해한 순간부터 그의 내부에서는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과 정의라는 양심이 의지와 대항하여 그의 내면 세계에서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그를 정신 착란 상태에 던지고 그의 마음을 고독하게 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불안과 공포에 찬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으나 끈질기게 의심하는 경찰에게는 대담하고 교만한 태도로 대하는 등 극단적인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순결한 영혼을 가진 매춘부 소냐의 영향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을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의 범행을 고백하여 자신을 법의 손에 넘기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영혼이 가장 깊은 곳까지 정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형지의 죄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덕이 어떠한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범의 심리와 인간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치밀한 심리 분석과 연극의 대사를 읽는 듯한 대화의 맛은 물론 싱싱하게 살아 있는 등장 인물의 완성된 성격 묘사 그러한 것을 에워싼 작가의 위대한 정서는 천재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치밀한 심리 분석과 묘사의 긴장감은 이 작품의 생명이다. 이 작품이 심리학계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던 것도 당연하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의 한 사람이며 깊은 사상성과 문학의 현대화의 의미에서 으뜸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빈민 병원의 관사에서 태어났다. 원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성은 나라에 공을 세운 것에 의해 '도스토예프스키'영지와 더불어 성을 수여 받은 러시아의 귀족의 성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말경부터 가세가 기울어져 도스토예프스키가 출생하였을 당시에는 형편없이 몰락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귀족이라기보다 오히려 잡계급의 처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출생부터 빈민의 비참한 생활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었다. 1848년(27세)에 무미 건조한 군대 생활에 진력이 나 사표를 제출하고 극도의 빈곤과 싸우면서 처녀작 발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듬해 봄에 동창 그레고로비치의 소개로 시인 네클라소프가 편찬하는 문집에 첫 작품을 게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평계의 권위자인 벨린스키를 경탄시킨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발표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는 누추한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편집자인 시인이 읽어 줄지는 몹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깊이 잠들고 있는 새벽 네 시경, 네클라소프와 그리고로비치가 찾아와서 방문을 두들겼다. 두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은 진리를 계시하였소. 당신은 예술가로서 그 진리를 부여받은 것이오. 그 재능을 소중히 다루어 언제까지나 진리에 대해서 충실히 한다면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오" 두 사람은 그 날 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되어 밤을 새워가며 다 읽었다. 그들은 서로 울고 있었다. 흥분을 참지 못한 이 유명한 시인 네클라소프는 작가를 만나서 그 감상을 전하기 위해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무명의 천재를 방문했던 것이다. 네클라소프는 '새로운 고골리가 나타났다'라고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추천한 대 비평가 벨린스키는 처음에는 '요즘에는 우후죽순 같이 새로운 고골리들이 튀어나온다니까' 하고 말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작품을 읽은 다음 격찬하며 "그 사람을 데리고 오시오!"라고 외쳤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널리 소개하였다. 그의 처녀작은 압도적인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다투어 그를 자신들의 모임에끌어갔다. 무명의 청년은 일약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서 첫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급속한 성공은 얼마 못가 그에게 압도적인 찬사를 뿌린 사람의 배반으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벨린스키 일파와 그는 전혀 융합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벨린스키는 그에게 실망을 표시하였다. 그 후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다. 1848년 당시 파리에 일어난 1월 혁명 이래 공상적 사회주의가 유럽 전체에 풍미할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연구 단체가 여러 개 조직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트라셰프스키 학회'였다. 이것은 페트라셰프스키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저서를 연구하고 러시아의 사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푸리에주의의 정치 사상 연구 단체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도 가입하고 있었다. 당시의 니콜라이 1세의 전제 정치는 이것을 사상적인 음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 결사로 간주하고 벨린스키 주위에 가까이 있던 30여 명 의 젊은 자유 사상가들을 체포하였는데 그도 그의 형제와 함께 붙들려 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귀족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8개월 간 감옥에 갇혀 있다. 공개 심문을 받은 후 수 명의 청년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49년 12월 공공 광장의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공포와 싸우면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눈에 문득 멀리 바라보이는 교회당의 금빛 십자가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어쩐지 거룩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군중이 떠들썩하더니 황제의 특사에 의하여 사형을 사면한다는 사면장을 휴대한 전언자가 달려왔다.
사형은 취소되고 대신 4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 받게 되었다. 사형 집행의 경험은 후에 "백치"의 주인공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 후 3일 후 쇠사슬에 묶여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로글리스크의 노역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4년이라는 긴 세월을 흉폭한 살인수의 넋과 사귀며 괴로운 노역에 종사하며 무서운 고독감과 절망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 겨우 허용된 한 권의 성경을 벗삼아 지냈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고관의 도움을 받아 군인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186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지 7년만에 "죄와 벌"을 발표하였고 명성을 다시 되찾았으며 이듬해에는 안나 그리고예브나와 재혼하여 다시 외국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교활한 출판업자와 계약하여 기한까지 신작 소설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의 저작권 전부를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되었는데 이 기간 안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용한 속기사였다. 그는 4년의 세월을 독일 이탈리아 등의 객지에서 이 성실한 위안자의 따뜻한 사랑 속에 행복한 생활을 보내면서 불후의 명작 "백치" 및 "악령"과 "영원한 반려"를 발표하였다. 그는 1875년에 "미성년"을 그리고 1879-80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발표하였다. "미성년"은 영혼과 육체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해 파멸한 벨시로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영원한 여성인 소피아를 대립시켜 인간성의 근원적인 문제 즉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과의 대립 상극을 원숙기에 도달한 그의 예술적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이며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예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이 천재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인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해답을 준 걸작이었는데 제2부를 구상만으로 그치고 인류의 고뇌를 예술화한 그는 사망하였다. 1880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의 동상 제막식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연설은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 축전은 오히려 그 자신의 천재 찬미를 위하여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명한 연설은 그가 행한 최후의 연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애와 신에 대한 반항과 문제 제기였으며 인간성의 해부와 서술은 고금을 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그는 슬라브주의에 속하는데 그의 작품은 주로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서구의 문명을 존중한 작가인데 반하여 그는 러시아 사람의 민족성을 깊이 사랑했으며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슬라브의 혼 그대로를 보여 준 작가였다. 그는 종교의 힘이 엄격하였던 중세기를 거쳐 근대 문명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복잡해진 러시아의 혼을 그대로 새겨 놓은 슬라브를 그려 냈다. 끝없이 깊은 넋으로 끝없이 깊은 민족 전체의 마음을 그려낸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호 톨스토이와 아주 대비되는 작가이다. 톨스토이가 외적 현실이나 생활의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실을 확증한데 반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생활과 현실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암흑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형상화했다. 크로포토킨, 로맹 롤랑 등이 톨스토이를 옹호하는 데 반하여 니체, 앙드레지드 등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단연 톨스토이를 능가하는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신을 잃은 인류의 실존적 혼돈의 문제에 절실한 빛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인 작가라는 것만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줄거리
7월 초의 무섭게 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젊은 사나이가 C골목의 어느 셋방에서 나와 방향없이 K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운좋게 계단에서 하숙집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을 모면했다. 그의 방은 높은 5층의 다락방인데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벽장 같았다. 주인 여자는 그의 아래층에 살고 있었으므로 거리에 나갈 때는 항상 계단 쪽으로 열려 있는 주인집의 부엌 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젊은 사나이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으레 병적인 불안을 느꼈으며 그런 기분에 휘말리는 것이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되어 상을 찌푸리곤 하였다. 하숙비가 상당히 밀려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은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인데 얼마 전부터 그는 우울증에 잠겨 불안스러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 안에 틀어박혀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하고 만나는 것을 피해 왔던 것이다. 그는 가난해서 꼼짝 못할 지경에 처해 있었으나 그것도 요즘에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꼭 해야만 할 일감도 그는 내던져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하숙집주인 여자 따위가 자기에 대하여 어떠한 일을 생각해 낼지라도 겁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단 위에서 붙잡혀 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저분한 헛소리나 귀찮은 독촉이나 넋두리를 대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고양이처럼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와 몰래 슬쩍 달아나는 편이 나왔던 것이다. 거리에 나와 보니 자신이 빚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였다는 데 어이가 없었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생각했다. '어떠한 일이든 실행하려고 생각하면서 이런 하찮은 일에 겁을 먹다니! 흥 그렇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는데도 그저 겁 많은 탓으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건 확실한 논리이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새로운 독자적인 말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좀 말이 많다. 말만 떠벌리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이건 내가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저 방 속을 뒹굴면서...꿈같은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 떠버리 노릇을 배워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무얼하려고 걷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진심에서 나온 생각일까? 천만에 천만에 진심에서라니! 그저 공상으로 혼자 좋아하고 있는 것뿐이다. 장난이다! 진짜 장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이라스콜리니코프는 무엇하러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그가 중얼거리던 '그 짓'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달 전쯤에 그는 고리 대금업과 전당포를 하는 한 노파를 알게 되었다. 노파 아료나 이바노브나는 어떤 대학 교수의 미망인으로 백치인 누이 동생 리자베타를 부리면서 심술 사나운 욕심으로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짓을 공상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 공상은 몸서리치도록 잔인한 것이었으나 퍽 유혹적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그 짓을 해도 괜찮다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오히려 조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그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실행함에 있어서 전혀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그 계획의 장소인 노파의 집을 탐색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가지고 나왔다.
"무엇하러 왔지?"
"저당잡힐 걸 가져 왔어요"
"하지만 지난 번 것이 벌써 기한을 넘겼어 어제로 꼭 한 달이야"
"그럼 한 달 동안 이자를 드리지요. 조금만 더 참아 주세요"
"하지만 기다리건 팔아치우건 내 마음대로야"
"아무튼 이 은시계로 좀 많이 쳐 주십시오"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것만 들고 온담 요전에도 당신에게 반지에 두 장이나 내줬지 그것도 보석상에 가면 새 것을 한 장 반이면 살 수 있단 말이야"
"한 4루블쯤 빌려 주세요. 꼭 찾아가겠어요. 아버지의 유품이거든요. 곧 집에서 돈을 부칠 것이라니까요"
"1루블 반이야. 이자는 미리 제하고"
"1루블 반이라구요! 어림도 없어요"
"좋을 대로 하시지"
노파는 시계를 도로 내밀었다. 그는 약이 올라서 그대로 돌아서려 하였으나 다른 데라곤 갈 데도 없고 여기 온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마음을 돌렸다. 무뚝뚝하게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노파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으며 커튼 쪽으로 가서 장롱을 열고 돈을 꺼냈다. 그는 온 신경을 귀로 집중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노파가 돌아왔다. 지난 달의 이자와 요번의 이자를 미리 제하여 그가 받은 돈을 겨우 1루블 15카레치카에 불과했다. 그는 돈을 받은 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주저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료나 이바노브나, 곧 다른 물건을 가져 오려는데... 은으로 만든...훌륭한... 담배갑인데요..."
"그건 그 때 얘기하지"
"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 참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든지 혼자 계시는 것 같군요. 누이 동생은 어디 나갔나요?"
"내 동생에게 볼 일이 있나?"
"아니오. 별로... 그저 한 번 물어 본 것 뿐입니다. 그걸 할머닌 그렇게 말씀하시긴...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료나 이바노브나!"
라스콜리니코프는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아아 참! 더러운 생각이다! 정말 나는... 그것은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할까! 무엇보다도... 이 추잡하고 더러운 생각이 아아 싫다! 정말 싫다! 나는 온통 한 달 동안이나..."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맥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하였다. 이 술집은 지저분했고 손님들도 후즐근하게 보였다. 그들 속에서 50세쯤 보이는 늙고 초라한 관리인 듯한 사나이가 미친 듯이 그러나 빛나는 눈초리로 머리칼을 쥐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나이는 라스콜리니프를 보자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마르메라도프라는 사람으로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던 관리였으나 술 때문에 몇 차례나 지위를 잃었음에 또 다시 술에 빠져 버리고 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 우습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한 말투로 라스콜리니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침대에 꼬꾸라져 있었습죠. 지독하게 곤드레가 되어서 말이지요...그 때 문득 딸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소냐는 순진하고 얌전한 애에요. 목소리도 퍽이나 부드럽죠... 머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좀 파리하지만 품위가 있지요... 그 애가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겠소. '어머니 내가 꼭 그런 일을 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라고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다알리아 프란츠오브나라는 악독한 포주 노파가 내 처를 통해 벌써 서너 번이나 유혹해 왔기 때문이죠. 그러자 '그게 어떻단 말이냐' 하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코웃음 치며 대답하지 않겠소. '무엇이 그리 소중히 모셔 둘 물건이냐? 무슨 큰 보배도 아니겠고'라고요. 하지만 아내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병은 나빠지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울고불고하니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기분이 되어 마구 쏘아붙인 말이지요. 화풀이로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지요... 원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성질이 그래서 아이들이 비록 배가 고파서 울어도 곧 때려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날 다섯 시가 넘자 소네치카(소냐의 애정)는 일어나서 목도리를 감고 모자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가더니 여덟 시 넘어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 그대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곁으로 가서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아무말 없이 1루블 짜리 은화를 서른 개 올려 놓지 않겠소? 그리고 말 한 마디 않고 집 안의 커다란 초록빛 목도리를 들고 그것은 식구들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목도리지요. 그것으로 머리를 푹 뒤집어 쓰고 벽쪽을 향해 몸을 돌려 침대에 쓰러져 버리지 않겠소. 가냘픈 어깨하고 조그마한 몸이 언제까지나 떨고 있을 뿐...그런데 나는 그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누워 있었지요... 술에 취해 있어도 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젊은 선생님 얼마 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마찬가지로 말 한 마디 없이 소냐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밤새 그 아이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그 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좀처럼 일어서려고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두 사람은 그대로 같이 잠이 들어버렸지요. 껴안은 채 말이지요... 둘이서... 둘이서... 그래요... 그런데도 나는 곤드레가 되어 누워 있었다오"
그의 부인인 카테리나는 귀족의 자녀가 다니는 여학교를 나왔으며 지체 있는 집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병으로 병약해져 언제나 기침을 콜록이며 신경질적이며 남편을 증오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여인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마르메라도프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미칠 듯한 마음으로 한 푼이라도 가져오기를 기대하며 마르메라도프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양말을 팔다 못해 딸이 매춘을 해서 번 돈으로 값싼 술을 마시면서 그날그날을 술 없이는 못 사는 것이었다. 소냐는 전처가 낳은 딸인데 순진하고 온순한 처녀였다. 그러나 이제는 황색 감찰을 가진 매춘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는 괴로워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묵묵히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이 가엾은 주정뱅이를 위로하며 친히 부축하여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르메라도프가 사는 집은 페테르부르크 지저분한 뒷골목에 있었다. 커다란 건물의 내부는 어둠침침했고 4층 구석에 통로로 되어 있는 형편 없는 방이었다. 카테리나는 문턱에 무릎을 꿇은 남편의 모양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아아! 돌아왔군! 짐승! 짐승! 돈은 어디 있어요! 호주머니를 뒤집어 봐요. 어머나 옷도 달라졌어! 그 옷은 어떻게 했어요? 돈은 어디 있어요? 어서 말해요! 돈은 어디다 두었을까? 아아 또 들이마셨나 봐! 상자 속에 은화가 열둘이나 남아 있었는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분에 못 이겨 남편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방 안으로 끌어 넣었다. 마르메라도프는 온순하게 아내가 끄는 대로 제 무릎 걸음을 걸어 아내의 힘을 덜 들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