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말로 써야 하나?
논술, 곧 주장하는 글은 어떤 말로 써야 하나 하는 것은 앞에서 충분히 말해 놓았다. 여기서는 신문에 잘 쓴 작품으로 뽑힌 학생들의 글을 가지고 좀 생각하고 싶다. 내가 만약 시장이 된다면 이란 논제가 있었는데, 이 논제에서 한문글자로 시장 이라 쓴 것 말고는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말이다. (왜 한글로 시장이라 쓰면 될 것을 한문글자를 고집해서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제목은 초등학생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같은 제목이라도 초등학생이 쓰는 것과 고등학생이 쓰는 것은 많이 다르다. 초등학생이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시장이 된다면 .. 하고 쓸때에는 현실보다도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에서 마치 동화속의 살미이 된 기분으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은 그럴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고 생각해서 시장이 할 일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제목으로 쓰게 되면 초등학생보다 고등학생이 더 어렵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최우수작에 뽑힌 글이다.
내가 만일 시장이 된다면 - 전주 전일고 최강
예로부터 전주는 맛과 멋의 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한때 후백제의 수도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도시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화가 잊혀진 지 오래이다. 해방 전에는 전국 6대 도시에 들었지만 산업화 이후 정부의 불평등한 정책으로 이제 전국 14대 도시 안팎 수준이다. 이러한 때에 내가 전주시장이 될 경우 전주의 발전을 위한 공약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시의 경제 능력이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전주지역의 경제적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겠다. 이제까지 산업 시설의 미비나 정부 정책에서의 소외로 전주는 경제력이 매우 약하다. 따라서 정부 예산의 확대 편성과 각종 기업과 공장 유치를 적극 추진하겠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수려한 자연 환경과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을 활용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시켜 관광 수입을 증진시키겠다. 다음으로 전주는 지방이기에 다른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삶의 질이 낮다. 따라서 전주를 멋과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만들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전주 대사습 놀이나 풍남제 등의 문화행사를 활성화시키겠다. 또한 시립예술단을 구성하여 예술 관련 행사를 적극 유치하겠다. 즉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문화 정책의 역점을 두겠다. 마지막으로 서해안 시대를 맞아 전주를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로 만들겠다. 즉 전주를 국제 도시의 위상을 지니도록 각종 부대 시설 및 휴식지, 편익 시설의 건설을 추진하겠다. 또한 계획중인 호남 고속 전철의 전주 통과를 관철시킬 것이며 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 도시의 교통 상황을 개선하여 국제 도시로서 손색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전주는 지금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때에 내가 전주 시장이 된다면 경제력 향상, 문화 도시 조성, 서해안 시대 대비라는 공약을 실천해 과거의 번영을 되찾을 뿐 아니라 국제 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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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제의 유의사항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 했고, 때마침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선거하는 날을 앞둔 터라,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저마다 선거 공약을 광고하고 있었기에 이런 논술 제목을 내어준 것은 아주 알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글을 보면 글쓴이가 있는 전주시의 행정을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주장을 학생으로서는 아주 놀랄 만큼 잘 해 놓았다. 그런데 문장에서 쓴 말을 살피면 그다지 바람직스럽게 되어 있지 않다. 역시 이것은 학생의 몸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고 어른들의 글말이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글은 모두 여섯 문단으로 짜여 있는데, 서론이라 할 첫째 문단에서는 말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행정을 어떻게 하겠다고 한 둘째 문단부터는 어른들이 사회문제나 행정 문제를 글로 쓸 때 늘 쓰고 있는 한자말체의 말로만 되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해 놓은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은 결국 이런 행정 공약이란 것이 진정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시장 후보자들이 다투어 발표해 놓은 것들을 보고 그것을 가려내어 썼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생으로서는 이 이상으로 할 수 없다. 이래서 논술고사의 근본 문제를 여기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글에서 좀 어수선하게 되어 있는 말이나, 어른들의 글말이 되어 있는 말들을 대강 들어 보겠다.
전주의 발전을 위한 공약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공약을 말하고자)
직결되는 (바로 이어지는)
산업 시설의 미비나 정부 정책에서의 소외로 (시설이 모자라거나 정부 정책에서 따돌려져)
기업과 공장 유치를 적극 추진하겠다. (공장을 적극 끌어 오겠다.)
수려한 (아름다운,빼어나게 아름다운)
문화 유적을 활용해 (살려)
관광 산업을 활성화시켜 관광 수입을 증진시키겠다. (활발하게 해서 - 올리겠다)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대도시에 대면 문화가 뒤떨어져)
풍남제 등의 문화 행사를 활성화시키겠다. (풍남제와 같은 문화 행사를 활발하게 하도록 하겠다. 더욱 풍성한 시민의 잔치가 되도록 하겠다.)
적극 유치하겠다. (끌어들이겠다.)
삶의 질 향상에 (질을 높이는 일에)
역점을 두겠다. (힘을 모으겠다)
전주를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전주가 중심이 되는 일을 하는)
위상을 지니도록 (모습을 지니도록)
각종 부대 시설 및 휴식처, 편익 시설의 건설을 추진하겠다. (여러 가지 딸린 설비와 쉼터, 편리하고 유익한 시설)
교통상황을 개선하여 (사정을 고쳐)
기로에 서 있다. (갈림길에 서 있다)
조성 (만들기)
노력을 경주하겠다.(힘쓰겠다)
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시민들 앞에서 하는 말은 쉬울수록 좋다. 더구나 고등학생이 행정가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지금까지 어른들이 해 온 말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바로 학생들이 하는 말로, 책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일상의 말로 하고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 어른이고 아이고 무슨 말 무슨 글이든지 어려운 말로 쓰고 있는 것은 모조리 가짜고 속임수라고 보면 틀림 없다.
아이들이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은 어른들이 그런 말을 억지로 쓰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을 어른들의 글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바로 문제를 낸 글에서 어려운 말로 지시하기 때문이다. 신문에 나온 논술 연습 문제가 거의 모두 어려운 말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앞에서 들어 놓은 많은 보기로도 알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지난번 대학입시에서 실제로 나왔던 문제를 두어 두어 가지 들어 보기로 한다.
예시문
소비와 경쟁은 흔히 현대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일컬어진다. 소비는 개인의 물질적,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체제를 지탱해 주는 삶의 중요한 양식이다. 국가간, 계층간의 심한 소득격차에 의해서 삶의 질과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소비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현세인들은 거의 어떤 세대보다 풍요로운 소비 위주의 삶을 향유하고 있다. 한편 경쟁의 원칙은 오늘날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거나 기존의 사회조직을 바꾸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우리가 습득한 경험이나 지식의 수명은 계속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과거의 험이나 지식에 의해서 설명하기 곤란한 불확실하고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작성요령
1. 위의 예시문을 참조하고, 다음을 논제로 삼아 논술문을 작성하시오.
논제 :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건강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2. 아래의 두 논점을 균형있게 관련지어 논술하시오.
논점1 : 소비사회의 문제
논점2 : 경제사회의 문제
유의사항
논제의 성명을 쓰지 말 것
글의 길이는 빈 칸을 포함하여 1,200자 안팎이 되게 할 것.
예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지 말 것.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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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제를 설명한 글에서 고등학생들이 그 뜻을 모르는 낱말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이 알고 있는 말로 적어 놓았다고 해서 잘 되었다고 볼 수 없다. 글을 쓰도록 지시하는 글은, 글을 쓰게 되는 학생들이 보통 입으로 하는 말로, 그런 말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될 수 있는대로 늘상 입으로 지껄이는 쉬운 말로 쓰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여 글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또 낱말 하나하나는 그 뜻을 알지만, 글말이 많이 들어 있으면 글 전체의 뜻을 제대로 잡기가 힘든다. 설혹 애써서 전체의 듯을 잡았다고 해도 이제부터 써야 할 글을 또 그 모양의 글말로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니, 이래서도 못 쓰게 되고, 쓴다고 해도 남의 글 흉내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위의 문제에서 밑줄을 친 말들이, 좀더 쉽거나 깨끗한 우리말로 바꾸어 써야 할 글말이다. 예시문 과 논제 만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다음에 다시 써 본다. 밑줄 친 말만 다듬지 않고 다른 말도 더러 고쳤다.
예시문
소비와 경쟁은 흔히 현대사회의 큰 특징이라고 한다. 소비는 사람마다 가진 물질과 정신의 욕구를 채워줄 뿐 아니라, 시장경제의 틀을 지탱해 주는 삶의 중요한 방식(모습)이다. 나라 사이, 계급층 사이에 소득의 차이가 아주 심해서 삶의 바탕과 기본되는 권리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지난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온갖 물건들을 사 쓰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난날의 어떤 세대보다 넉넉하게 써 없애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편 경쟁은 오늘날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서 퍼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경쟁의 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워 얻거나 이미 있는 사회조직을 바꾸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갑자기 달라져 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배워 얻은 경험이나 지식의 수명은 자꾸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지난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확실하지 않은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논제 : 매우 급하게 바뀌어져 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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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조금 나아진 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음 또 하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공간적으로는 물론 시간적으로도 고립되어 형성될 수 없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평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보다 나은 미래를 구상하면서 현재를 살아 간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이러한 유기적 연결성을 논의의 축으로 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야 할 일을 제시하라.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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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제는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몇 번이나 읽게 되는데, 결국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왜 이렇게 요란한 말을 늘어놓았는가. 밑줄을 친 것이 일본말법이거나 쉽게 써야 할 말들이지만 그것만 고쳐서는 안되고 글 전체를 새로 써 보았다. 다음에 고쳐 쓴 글과 견주오 보고 글이 얼마나 달이 느껴지는지, 그런데 글뜻이 달라진데가 있는지 살펴보라.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지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지난날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에 불려줄 더 나은 앞날의 이러한 긴밀한 연결을 생각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말해 보라.
앞에 적어 놓은 원문에 대면 많이 짧아졌고, 아주 쉽게 읽히는 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것도 대부분 아무 쓸데도 없는 말이다. 꼭 해야 할 말은 마지막에 나오는 말 오늘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적어 보라 하는 것 뿐이다. 다른 말들은 그것을 그렇게 이상한 말로 늘어놓은 것이다. 만약 이 논제를 내가 쓰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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