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1/2)
논술은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 주장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논술하는 글을 쓰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 자기 의견이 없는데 쓴다는 것은 거짓이고,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의견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디서 어떻게 자기 의견을 얻을 수 있는가? 자기 의견은 누구한테 좀 달라고 해서 머리를 숙여 얻어 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견은 누구든지 저마다 자기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 난 없어. 의견이 없는데...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겠지. 이렇게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은 삶이 없는 사람이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방안에서 시험 공부만 하는 사람, 책만 읽는 사람은 삶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견을 가질 필요가 없고, 따라서 자기 의견을 가질 수 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세상 일에 부딪혀 보고 일을 해본 사람은 세상 일에 대해, 자연에 대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품고 있으며, 그래서 그 의견을 남에게 주장하고 싶어한다. 주장하는 글, 곧 논술하는 글은 이렇게 해서 삶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글을 세 편 들어 놓았는데, 이 글들이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쓴(논술한) 글이 되어 있는지, 다시 말하면 삶에서 우러난 참된 주장으로 되어 있는지 알아 보자.
보기글-1
문명의 혜택에 지배당하지 말자 (고2)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발명등으로 만들어진 것, 또는 발견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 인간의 능력이 발휘되고 또 여러 가지가 창조되어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나쁜 일에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지지만 그로 인해 나태해지며 나쁜 범죄에 사용하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전문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그것을 악용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서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나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과학문명 기술은 잘 활용하면 일상행활에 큰 기여를 하지만, 손도 대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고, 기계에만 의지하여 그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과학의 발달에 따라 그것의 이기를 누릴 자유가 있으나 그것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좋은 것이 과하면 해로운 것이 된다는 옛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엄연히 인간의 몫은 남는 법이다. 옛날을 고집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잘 이용하면서 우리들 인간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소외의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91.6. 어느 신문에 실렸던 글)
보기글 - 2
교육개혁안 부작용, 고3년생 벼랑 몰아(고3)
5.31교육개혁안을 보고 고등하교 3년생으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 첫째, 고3년생의 위기감에 대해서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3년생은 대학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벼랑에 서 있다. 선생님들도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심심찮게 위협조 로 말씀하신다. 만약 이번에 낙방했다고 하자. 내년엔 본고사가 폐지되므로 일년 공부한 것이 다 헛수고가 된다. 더군다나 수능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고 교과서까지 바뀌니 대학을 가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둘째, 종합내신제 문제다. 이 제도는 선생님 한 분이 50명이 넘는 학급 학생 개개인을 평가한다는 것인데, 무리하다고 본다. 셋째, 봉사활동을 평가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학생들이 맘놓고 봉사할 때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일부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걱정된다. 넷째, 출석부만 부르고 헤어지는 특별활동 시간을 평가한다니 정말 우습다. (95.6.7. 어느 신문에서)
보기글 - 3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자(중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 종교들은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우위를 가릴 수 없다. 또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네만이 최고라며 남의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는 종교가 있다. 나는 부활절날에 내 동생이 계산중학교 스카우트 선서식을 한다기에 준석이, 태욱이와 함께 계산중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회 전도사 네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중 두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 파마머리 남자와 젊고 긴 생머리 여자였다.
학생, 종교가 뭔가?
불교인데요.
왜 믿나?
저희 가족이 모두 믿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기독교를 믿게. 그래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고 죄를 씻을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모든 죄인들이 죄를 짊어지고 가셨어.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 증거로 돌아가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어.
그걸 어떻게 믿죠?
사람들이 봤어.
불교에서는 부처 믿어도 극락 간다고 하던데요.
그건 거짓말이야.
진짜예요.
우리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를 함께 하자.
싫어요.
왜?
난 불교니까요.
그럼 나중에라도 잘 생각해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전도사는 갔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만약 그 전도사 말대로 교회 믿으면 천국 가고 다른 종교 믿으면 지옥 간다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위인들은 모두 지옥 갔을 게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도사는 하나님을 하나밖에 없는 유일신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들은 믿는 신들이 틀린다. 물론 사이비 종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신들은 훌룡하신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처럼 다른 종교의 신앙들을 무시하면서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말을 해서는 될까?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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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편의 글을 차례로 살펴보자. 보기글1은 문명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어있지만, 한편 사람이 만들어 낸 문명의 기구들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거나 죄를 저지르게 한다든지 해서 나쁘게 쓰이게도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문명의 기구들을 쓰는 것은 좋은데 너무 거기에 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사람이 할 일을 해야 된다고 했다. 말이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대강 하려고 한 말은 그렇다. 이것은 대체로 옳은 의견이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바로 이런 의견을 가지게 된 까닭, 삶 속에서 이 문제를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고 주장하게 된 까닭을 이야기로 보여 주어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참 그렇지! 하고 함께 느끼게 되겠는데, 그것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까닭은, 이 글에 나타난 생각이 삶 속에서 우러난 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서, 또는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얻은, 머리속에 넣어 놓은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참된 주장하는 글 (논술)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입학시험 준비로 온 나라 아이들에게 죽자사자 쓰게 하는 글이 죄다 이런 아무 맛도 없는 글, 재미없는 글로 되어 있다.
다음은 보기글2를 보자. 이 글은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교육개혁안에 대해서 쓴 글이다. 그 안에 대해서는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그 밖에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 가지로 적지 않게 논평이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은 당장 올해 입학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이 쓴 것으로, 고3학생만이 빠져 있는 어려움과 개혁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그 어떤 학자도 교육자도 학부모도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고3학생만이 그 고달픈 시험 전쟁의 나날에서 몸으로 느끼고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문제를 말해 놓았다. 신문의 독자투고란이라는 좁은 자리에 실리다 보니 글이 좀 깎여 나간 듯하지만, 아무튼 이 글은 어른들이 가르쳐 준 지식이나 책을 읽어서 얻어낸 남의 의견이 아닌 것만은 누가 읽어도 환할 것이다. 이 보기글2는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원인을 어떤 생활 속에 있었던 이야기로 자세히 써 보이지 않고, 다만 첫머리 글 속에서 간단하게 한마디로 교육개혁안을 보고 라고만 했다. 이 글은 이 것으로 충분하다. 그 까닭은, 이 교육개혁안 을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듣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떠올린 생각이나 가지게 된 의견이 아니고, 여러 날을 부모나 같은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생각하고 걱정해온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또 그 교육개혁안이란 것도 옮겨 쓸 쑤가 없고, 쓸 필요도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보기글3은 많이 다르다. 이 글은 다른 종교를 헐뜯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렇게 주장한 말은 마지막에 가서 몇 줄을 썼을뿐이고, 그 앞의 글 전체가 어느 날 길에서 교회 전도사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글은 어떤 사건을 쓴 서사문이 아니고 의견을 담아 놓은 글이라 할 밖에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는 마지막에 쓴 그 의견과 주장을 위해서 내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논술이라고 해서 끝에 나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터 써 놓은 글만으로 적었다고 해 보라. 이렇게 되면 이 글은 이 학생이 그 삶에서 얻어 낸 절실한 자기 의견이라고 볼 사람이 없을 것이고, 흔히 어른들이 종교 문제가 나왔을 대 말하게 되는 말이라 생각하거나,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옮겨 쓴 말이라 볼 것이다. 이래서 논술이란 글은 이론만을 늘어 놓은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기글1은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2,3과 같은 글, 더구나 3처럼 어떤 의견을 주장하게 된 근거를 마치 서사문을 쓰듯이 정확한 이야기로 써 보이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이 세편의 글이 어떤 말로 나타났는가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보기글1은 삶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 씌어 있는 글도 잘못 쓰는 어른들의 글말로 요란스럽게 되어 있다. 책으로 익힌 지식을 적게 되니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말이나 우리말로 다듬어 써야 할 말을 대강 적으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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