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국어 공부, 어떻게 해 왔나(2/2)
다음은 중학국어 책이다.
- 이렇게 사람이면 누구나 언어는 사용한다. 비록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다를지라도, 누구나 언어로써 의사 소통을 한다. 우리는 언어로 새 소식을 듣고 알리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 우리는 언어로 다투기도 하고 화도 낸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조상의 많은 업적을 이어받을 수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더 깊고 많은 지식을 아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힘의 원천은 언어이다. (중학 국어 1-2)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아주 단순하여 누구든지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보통으로 지껄이는 쉬운 말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데, 이 글은 공연히 한자말을 써서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 나오는 말 가운데서 일곱 번이나 나오는 언어 란 말은 모두 말 이라 고쳐쓰는 것이 좋다. 언어를 사용한다 고 한 것도 말을 한다 고 하면 그만이다. 이 글을 쉬운 말로 고쳐 다시 써 보자.
- 이렇게 사람이면 누구나 말을 한다. 비록 하는 말이 서로 다르더라도, 누구나 말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말로 새 소식을 듣고 알리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 우리는 말로 다투기도 하고 화도 낸다. 우리는 말과 그 말을 적은 글 때문에 조상의 많은 업적을 이어받을 수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더 깊고 많은 지식을 쌓아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힘의 원천은 말이다.
한자말은 아니지만 다를지라도 -로써 따위 말은 글에서만 써온 말이니 살아 있는 입말로 고쳐 쓰는 것이 좋다. 이런 우리말로 된 글말도 요란한 한자말로 된 문장에 잘 섞여 쓰인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날마다 언어를 사용하여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매우 적다. (같은 책)
이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날마다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말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다 이렇게 쓸 것이다. 여기 한문글자를 묶음표 안에 적어 놓았는데, 한문글자가 있어야 이런 말을 알 수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한문글자 없이 이런말을 읽도록 해 놓았고, 더구나 사용한다 는 말은 초등학교 1학년 책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한문글자를 배운다면 아주 한문책으로 시간도 따로 정해서 배우는 것이 옳다. 이렇게 우리말을 우리 글로 적는데까지 쓸데없이 한문글자를 끼워 놓으니, 이래서 우리말은 안 쓰고 한자말만 쓰게 된다. 말과 글이 어지러워지고 병드는 근원이 여기에 있다.
-올바른 발음 생활. (같은 책, 글제목)
일하는 생활 이라든가 공부하는 생활 이라면 말이 된다. 밥 먹고 놀기만 하는 생활 해도 말이 된다. 그런데 말하는 생활 하면 좀 이상하다. 이런 말은 실제로 쓰이지 않는다. 머리로 말을 만들어 내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에서나 나올 것 같은 말이다. 이런 말을 쓰니까 말이 어려워지고 글이 어려워진다. 말글살이 란 말도 언어 생활 을 바꿔 놓은 말이고, 이런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까닭이 이렇다. 올바른 발음 생활을 해야 한다 고 할것이 아니다 올바른 발음을 해야 한다. 든지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올바르게 발음해야 한다 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말살이가 잘못되었다 는 말이면 글을 잘못 쓰고 있다 든지, 글을 잘못 읽고있다 든지 해야 할 말이다.
- 우리가 미래를 밝게 긍정적으로 보고, 보다 밝은 미래를 얻고자 노력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한결 더 희망적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미래를 성취하자. (같은 책)
우리말로 앞날 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교과서에서 이렇게 미래 를 쓰도록 가르치니까 신문이고 잡지고 광고문이고 모조리 미래 라고 쓴다. 이 글을 쉬운 우리말로 고쳐 써 보자.
- 우리가 앞날을 밝게 긍정해서 보고, 더욱 밝은 앞날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앞날은 한결 더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앞날을 이뤄내자.
- 신라어는 본래 오늘의 경주 지방에서 사용되던 언어였는데, 이 지방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세하게 됨에 따라, 그 언어도 점차로 그 세력을 뻗쳐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이 언어는 마침내 우리 민족 전체의 언어가 된 것이다.
- 우리 나라의 언어 통일은 이탈리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에 있어서도, 그 남쪽에 치우쳐 있는 오늘의 로마 지방이 정치적으로 세력이 커지고 문화적으로 우월해짐에 따라. 그 언어가 이웃 언어들에 영향을 끼쳐 그것들을 소멸시키고,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언어, 즉 라틴어가 되었던 것이다.(중학 국어 3-2 )
이 글도 여러 가지로 잘못된 말이 많은데, 깨끗한 우리말로 다듬어서 다시 써 본다.
- 신라말은 본래 오늘의 경주 지방에서 쓰던 말이었는데, 이 지방이 정치로나 문화로 우세하게 됨에 따라, 그 말도 차츰 그 세력을 뻗쳐 나간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이 말은 마침내 우리 겨레 전체의 말이 된 것이다.
- 우리 나라의 말 통일은 이탈리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에서도, 그 남쪽에 치우쳐 있는 오늘의 로마 지방이 정치로 세력이 커지고 문화로 우월해짐에 따라, 그 말이 이웃 말들에 영향을 끼쳐 그것들을 없애고,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말, 곧 라틴어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나온 글 몇 군데를 살펴 보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학생들이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해 왔는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쉬운 우리말은 버리고 어려운 남의 나라 글자말을 배운다고 머리를 썩혀온 것이 국어 공부였던 것이다. 국어 공부가 제 나라 말을 버리는 공부가 되어 있다니, 이것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엄연한 사실은 지금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고, 우리 모두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말을 장송하는 행진이라 볼 수밖에 없다. 요즘 일간신문마다 나오는 대학입시준비 국어 논술 문제를 보면 대개는 별 것 아닌 내용인데 말만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런 문제에 시달려야 하는 학생들이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으니 바보 같은 어른들이 어렵게 써 놓은 글은 무슨 글이든지 모조리 쉬운 우리말로 바꿔서 읽는 슬기를 지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디 학생들만은 글을 어렵게 쓰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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