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쓴 시를 몇 편 보면서 생각하기로 한다. 다음은 어느 학교 문예반에서 나온 문집 가운데 실려 있는, 여고 1학년생의 시다.
친구
새벽 별보다 더 청량한
너의 눈은
시원한 시냇물보다 더 맑은
너의 음성은
넓은 대지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어느덧
다소곳이 앉아 슬픔을
머금고
장미빛 붉은 여운만을 남긴 채
소리없이 자꾸만 자꾸만 멀어진다.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 시는 친구의 모습을 잔뜩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라는 느낌은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아니고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구나 하는 느낌이다. 이래서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시가 아니다.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썼다고 했는데, 우선 이 작품에 나온 한자말이나 잘못 쓴 말부터 살펴보자.
- 청량한
입으로 소리내었을 때, 울림이 좋은 말이다.그러나 무슨 말인가? 귀로 들었을 때 쉽게 알 수 있는 말,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더구나 이런 내용을 쓴 시라면 글에서만 나오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밝은 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셋째줄에 맑은 이 나와 있다. 이 셋째줄의 맑은 은 음성 곧 목소리를 말한 것이니 고운 하면 될 것이다.
- 음성
이 말도 목소리 라 하면 된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쓰는 말이 가장 깨긋한 우리말이고, 시가 될 수 있는 좋은 말이다.
- 대지
이것은 땅 이라 써야 한다. 땅을 대지 라고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남의 나라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고, 겉멋 부리고 허세 피우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대지 는 우리말이 아니다. 만약에 땅 이라 쓰면 뭔가 보잘것 없고 빈약해 보이는 말 같고 대지라 하면 그럴싸해 보이고 시가 될 것 같은 말로 느껴진다면, 그런 사람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잘라 말하고 싶다.
- 넓은 땅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이게 무슨 말인가? 얼굴이 땅에 떨쳐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떨쳐진 (떨친다)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잘못 쓴 것이다.
- 여운
이 말은 울림 이라 하면 그만이다.
-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것은 말이 틀렸다. 꽃잎 은 떨기 라 하지 않는다. 한 떨기 라 했다면 꽃처럼 이라고 써야지. 이렇게 엉뚱한 말을 쓴 것도 말을 말로서만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우선 한 차례 말을 우리 것으로 깨끗이 다듬어 놓고 (말을 잘못 써서 무슨 말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이 그래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그러면 훨씬 쉽게 읽힐 것이다. 그런데 낱말만 다듬어 놓았다고 해서 이 시가 썩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낱말과 낱말들이 모여서 이뤄진 문장이 원체 공중에 둥 떠 있는 말이 되어 있기때문이다. 흔히 쓰는 투의 말로, 개념으로 된 말로 씌어 있는 것이다.
- 새벽 별보다 더 맑은 눈
시냇물보다 더 고운 목소리
이런 것은 유행하는 노래말이지 시가 될 말은 아니다. 이런 말을 또 괜히 어려운 한자말이나 글말로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그 바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말의 속임수가 될 뿐이지. 여기에다 틀린 말을 써 놓은 것이며, 이 모든 말의 허방이 뿌리도 향기도 없는 종이꽃을 손으로 만들려고 한 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친구든지 무엇이든지 대상을 아름답게만 그려야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게만 그리려고 할 때 도리어 그것은 거짓이 되기 예사다. 사실을 정직하게, 또렷하게 잡아 보여야 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