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1/2)
서울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1학년(아마도 남녀공학만인 듯) 학생들이 교실에서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제목은 나의 길 이다. 쓰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해 주었는지 모르지만, 김소월의 시 길 을 읽혔다. 그 시간에 써 낸 글 31편을 모두 읽을 기회가 있었기에 여기 그중에 몇 편을 아무거나 뽑아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무거나 뽑는 까닭은, 다 읽고 난 다음에 어떤 점에서든지 유달리 특색이 있다든지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글이 없다고 느꼈지 때문이다.
1
난 어렸을 때, 길이란 보도블럭, 아스팔트, 시골길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길이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학교라는 울 안에 갇혀있다가 막상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나쁜 길로 빠져 사회에 악이 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여검사, 우리 여검사 라고 부르시곤 했다. 그땐 여검사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래, 난 여검사가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적성을 살려 그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아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짓는다.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허황된 꿈만 가득 품은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다. 나의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먼 훗날 10년, 20년,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 지금 나의 길에 대한 선택에 대해 후회 없는 나의 길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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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선생님이 어떤 내용을 쓰라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의 길 이란 제목으로 쓴다면 다음 세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모두를 써야 할 것이다.
1.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자라난)길.
2. 지금 걷고 있는 길. (지금 살고 있는 나날)
3. 앞으로 갈 길.(살아갈 앞날 이야기)
다시 말하면 자기가 걸어온 길이나 걷고 있는 길이나 가야 할 길을 쓰면 된다. 자기 삶을 쓰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하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쓰고, 그 다음에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해서 지금의 심경을 쓰면서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이라고 하여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대문에서는 자기가 할 말을 썼다. 그런데 첫머리 여러 줄 쓴 것은 쓸데 없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먼 훗날... 어쩌고 한 말도 공연히 말을 너절하게 만들어 썼다.
-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 짓는다
이런 말은 보통 입으로 하는 말로 쓰는 것이 좋다. 지금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장래가 결정된다 이렇게 말이다.
-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대문에 나오는 나에게 있어 도 일본말법으로 된 글말이다. 있어 는 없애고 나에게 만 써야 우리말이 된다.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글은 나날이 지껄이는 쉬운 우리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한 글말이 나오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게 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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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소월은 시에서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젊은 사람들은... 이 시기에 들어선 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도 요즈음 그 삶의 가로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내가 가야할 길을 찾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지만, 뚜렷이 내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연히 보이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생각에도 회의가 된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일 수도 있지만.어떤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인지, 또 어떤 길로 나아갈지.. 참 무서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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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소월의 시 또는 나의 길 이란 말을 해설해 놓은 듯한 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쓴 것도 뚜렷한 말이 되지 못하고 막연한 말만 늘어놓았다. 따라서 맨 끝에 참 무거운 고민이다 고 했지만 그다지 절실한 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이란 말은 공연히 꾸며놓은 말이다. 지워 없애는 것이 좋겠다. 자기 이야기나 써야 할 글에 쓸데없는 말을 적으려 하니까 이런 말재주를 부리게도 되는 것이다.
- 삶의 기로에서
이것은 삶의 갈림길에서 나 살아가는 갈림길에서 라고 써야 하겠다.
-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이런 말은 좀더 정리해서 쉬운 입말로 쓰면 이렇게 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뚜렷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나는 모두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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