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2/4)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 타의가 아닌 자의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타의 자의 -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말이 다 문제가 된다. 타의 는 남의 뜻 이나 남의 생각 이라 해야 되고, 자의 는 제 뜻 이나 제생각 이라고 하면 된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는 했는데도 라고 써야 한다. 이 -도 불구하고 란 말이 아주 좋지 않은 글말이다. 입으로 하지 않는 괴상한 말을 유식하게 보인다고 글에다가 자꾸 써서 퍼뜨리는 것은 우리말을 죽이는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는 짓이다. 그런데도 하면 될 것을 외국글에 병든 학자나 문인들을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쓰는 병신 노릇을 우리 학생들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 이유
이 말은 까닭 이라고 써야 한다. 중국글자말 가운데도 홀소리를 셋이나 잇따라 내어야 하는 이런 괴상한 말을 우리말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소리내기가 힘들고 알아듣기가 거북한 중국글자말은 이 밖에도 의의 (뜻), 의외 (뜻밖), 의아스럽다 (이상스럽다) 따위 아주 많다.
- 농약을 하고
이것은 농약을 치고 나 농약을 뿌리고 라야 옳다.
- 육체에는 한계가 있는 법
육체에는 보다 몸은 하든지 사람의 몸뚱이는 이라고 쓰면 더 좋다.
- 가중하여
이것은 더하여 이다.
- 자신의 능력에 맞춰
이 글에서는 자신의 가 아니고 학생들의 라고 써야 된다.
- 하는 바램이다.
이것은 하고 바란다 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좋겠다 고 쓰든지.
- 이런 원인을 접어 두고
여기서는 원인을 보아 일들을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말이 된다.
- 살인적인 심야학습이
이것은 사람잡은 한밤중 공부가 라고 쓰면 된다. 여기도 -적 이 나왔다.
- 현행대로 하면
이것은 지금대로 하면 이라 쓰는 것이 좋다.
- 정상화되었으면
이 말의 짜임을 보면 정상 화 되었으면 이란 세 가지 말이 하나로 되어 있다. 정상 은 자로 란 말이다. 화 는 된다 는 듯을 지닌 중국 글자말인데, 그 다음에 또 되었으면 이란 말이 붙어 있으니 겹말이 되 셈이다. 그러니 화 와 되었으면 이 두 가지 말에서 한 가지만 써야 한다. 만약 화 를 쓴다면 -화하였으면 이라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글자말을 쓸 필요가 없으니 화 는 마땅히 없애야 한다. 그래서 이 정상화되었으면 은 바로 되었으면 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어른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요란한 중국글자말 문체로 된 글에는 무슨 -적 하는 말과, 무슨 -화된다 는 말이 아주 많은데, 중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어설픈 글말은 아주 사람의 몸을 망치는 병균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여 딱 잘라 거절해서 안쓰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화된다 의 보기를 더 들면 교육이 민주화되기를 자유화되는 교복의 문제 기독교가 토착화되기 위하여 .. 이렇게 수없이 쓰고 있다. 이런 말들은 모우 교육이 민주로 되기를 자유로 되는 교복의 문제 (또는 자유로와지는 교복의 문제 ) 기독교가 뿌리내리기 위하여 이렇게 써야 할 말들이다. 지금까지 다듬어 놓은 말을 대강 그대로 해서, 앞에서 든 글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본디 쓴 글과 견주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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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면 광주의 많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보충, 자율학습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학교의 보충수업 실태는 잘 모르지만, 우리학교 보충수업의 실태를 보면, 선생님들의 열성에 견주어 수강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겨우 따라가는 형편이다. 처음 출발이 남의 생각이 아니고 제 생각으로 했는데도 점점 학습 태도가 나빠지는 까닭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들(미경,정숙)이 함께 생각해 보면 첫째, 농촌의 특수성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가면 들에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어떤 남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농약을 치고 온다고 들었다. 사람의 몸뚱이는 한계가 있는 법, 피로가 겹친다. 이에 더하여 보충수업 한시간씩을 받으려니 정말 잠이 올 수밖에.. 의욕 상실증 환자 같다. 둘째로는, 능력별 보충수업이 아니라서 정숙이는 잘 따라가지만 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만약에 2학기에 보충수업을 한다고 하면 학생들의 능력에 맞춰 반을 편성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접어두고 보충수업 자체를 놓고 생각하면, 학교에서 하는 수업만 가지고도 대학을 들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업 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보충수업까지 괴롭히니 보충수업이 아니라 이중 짐지우기 수업 이다. 그래도 우리는 밤 10시까지 하는, 사람잡은 한 밤중 공부가 없으니 참 좋다. 하기야 농촌에서는 할 수도 없지만. 보충수업은 지금대로 하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하루빨리 바로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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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어이구, 이렇게 쉽게 쓰는 게 더 어렵겠는데 할 것 같다. 그렇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쉽고, 쉽게 쓰기가 도리어 어렵다. 이것이 거꾸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삶에서 배워야 하고, 유식한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에게,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 말이 말로 되어야 글도 되는 것이니까. 우리말 공부를 할 때는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잘못 쓰는 자기의 말버릇 가운데서 한두 가지 말부터 먼저 고쳐 나가도록 하면 된다. 그 한두 가지를 바로 잡아 놓으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생겨서 더 많은 말들을 더 쉽게 고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여남은 가지 말을 지적했지만, 그 가운데서 -을 통해서 비하여 -도 불구하고 -화된다 -적 이렇게 다섯가지 말이 가장 널리 잘못 쓰는 말이고, 이런 말부터 고쳐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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