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설명문 쓰기 -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까(2/4)
싱싱한 입말로 쓰고
지금가지 글의 내용을 정리해서 일곱가지로 나누어 적어 보였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몇 가지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이 학생이 아버지가 한 말이나 행동을 바로 그대로 적어 놓지는 않고 설명하듯이 써 놓았지만, 이 학생이, 아버지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 진다. 그리고 이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날마다 끊임없이 꾸지람을 하고 잔소리를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학생이 요즘에 와서 공부 성적이 떨어진 까닭은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렇게 아이를 괴롭히고 속을 밟아 놓는 말을 마구 하는데 어떻게 공부를 제대로 하겠는가? 이런 아버지 밑에서는 어떤 아이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학생이 지금까지 이 정도라도 견디어 왓다는 것이 내가 보기로는 참 놀랍다. 정말 장하고 훌룡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아버지는 인권을 짓밟는 말과 행동을 자식 앞에서 태연하게 한다. 그래서 이 학생이 아버지를 비판한 말은 모두 정확하다. 아빠의 말은 100% 틀렸어요 란 말이 조금도 기분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생각으로는 해결하는 길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다. 이 학생의 성적이 나빠진 까닭, 지금은 학교에 가는 것조차 끔찍하게 되고, 살아갈 의욕을 잃어 버리고 아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 잇는 것이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버지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생쯤 되면 이제는 아주 어린 아이와는 다르니까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제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 말씀은 무엇이든지 덮어놓고 따르니까 이렇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이 학생 혼자서는 어려운 것이다. 누가, 어느 어른이 도와주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학교 선생님이다. 그리고 그 밖에 친척 어른이나 이웃 어른, 아니면 이 편지로 도움을 요청받은 쪽지 의 아저씨가 학생편이 되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이렇게 힘들 때 부모님이 좀 도와주시면 거뜬히 해낼 수 있을텐데... 하고 제 능력을 믿고 있는 이런 훌룡한 학생을 도와주지 못하고 기를 죽이고 열등감만 갖게 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충고해서 깨닫게 하는 일은 둘레에 있는 어른들이 할 일이다. 다른 도 한가지 길은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다. 이 학생의 고민과 절망, 잘못된 아버지의 행동, 이 모든 문제는 대학 진학만이 오직 한 가지 살아가는 길이라고 복 있는 데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과연 대학 진학만이 학생들의 갈 길인가? 대학 진학이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고 목숨가지도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인가/ 인생의 황금기에 온갖 잡동사니를 암기하는 일로 시달리고, 벗들은 죄다 적으로 만들고, 그래도 안되어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런 살벌한 경쟁에 이기고 살아 남아도 대개는 몸과 마음이 다 병들어 있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래도 여전히 대학이요 대학만이 사람이 가야 할 단 하나 최상의 길인가? 나는 그렇게 안 본다.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뒤집혀진 관점이다. 대관절 대학을 나와서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취직을 못 해서, 대학원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고, 외국에 가서 또 무슨 학위를 따 와도 놀고 있기가 예사다. 내가 갈이고 이런 실업자들을 가장 많이 구제해 주는 곳이 온갖 과외공부를 시키는 학원이다. 이래서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책읽기 공부로 영어 공부로 시달리는 판이 되었다. 어느 초등 학교 1학년 아이는 과외를 열 다섯 군데나 다닌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와같이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다시 또 더 잘못된 교육의 씨를 뿌리고, 이래서 우리 아이들의 불행은 끝없이 되풀이되고ㅡ 역사의 비극은 끊어질 줄 모른다.
그런 말은 꿈 같은 이상론이다. 그래도 대학을 가야 사람 노릇을 한다. 그래도 또 이런 말을 한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 이렇게 되면 어떤 종교집단에서 보여주는 광신자들의 행태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른들이야 그와 같은 무더기 미친 증세에 빠지든지 말든지 젊은이들만은 제 정신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고등학생들은 부디 자기 목숨 자기가 지켜서 아끼고 살아가라고 부탁하고 싶다.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귀한가! 이 목숨을 오늘날에는 선생님도 부모조차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학은 고사하고 초등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훌룡한 일을 한 보기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나는 대학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할 사람이라면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의 학생들이 죽자 사자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거의 모두 취직 수단을 얻기 위해서다. 그 취직이란 것을 보장받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이 학생에게 더 자세한 말을 해줄 자리가 없기에 이만 쓰고, 부디 좀 자유스럽게, 자기 목숨과 삶을 귀하게 가꾸면서 살아가라고만 말하고 싶다. 끝으로 문장과 낱말에 대해 잠깐 적어 둔다.
이 글은 참으로 싱싱한 입말로 썼다. 하고 싶은 절실한 말을 그대로 쏟아 놓았기에 이런 좋은 글이 되었다. 그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잘 썼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기에 유식해 보이는 말이나 말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학생이, 성적이 떨어졌다고 부모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다만 두가지 잘못 쓴 말이 있다. 첫머리에 부쳤었는데 했었는데 라고 해서 과거형을 겹으로 쓴 것과, 좀 뒤쪽에 가서 땅바닥 쳐다보는 이라고 쓴 것이다. 발 밑에 있는 땅은 내려다보는 것이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이토록 싱싱한 말로 쓴 글에도 틀린 말이 나오는 까닭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이 벌써 입말까지도 잘못된 글의 영향을 받아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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