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감상문 쓰기 -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2/2)
친구의 죽음을 생각하며
다음은 지금부터 꼭 40년전에 쓴 글이다. 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슬픈 마음을 적어 놓은 이 글은 지금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무엇을 쓰든지 진정으로 쓴 글은 이와같이 오래오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머리로 재주로 쓴 글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없지만, 참말로 쓴 글의 목숨은 이래서 영원하다 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친구의 죽음 - 군복중학교 3학년 김종만
어느 날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오늘 진현이 초상친다는 말을 무심 중에 듣고 깜짝 놀랐다. 진현이가 죽었구나! 그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을 벌써부터 듣고 있었으나 이처럼 갑자기 그의 앞에 애통한 죽음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진현이는 아직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생과 설움 속에 자라났건만 꽃다운 이 소년기도 넘기지 못하고 이처럼 갑자기 영원히 오지 못할 황천의 길을 가고 만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슬프다. 나도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허무한 운명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과거 그와 한 학교에서 뛰놀고 학교에 오고 가던 그때가 어제 같건만, 이렇게도 애통한 죽음이 그의 일생을 끝마치게 한 것은 참으로 꿈 같은 일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할아버지 한 분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삼촌 밑에서 한때는 남다른 설움과 고통을 받으며 꾸준히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지난번 졸업식을 앞두고 교내에서 동무들끼리 추억장을 주고 받을 때, 나는 그가 써 달라는 추억장에 이렇게 써 주었다. 삼년 동안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공부 충실히 하였으며 예수 진심으로 믿었느냐? 부디 진실히 믿어 천당에 갈 때는 너 혼자 가지 말고 나도 좀 다리고 가 달라. 이렇게 장난삼아 써 준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내가 쓴 말대로 진현이는 천당으로 가 버렸다. 내가 쓴 그 추억장은 내 기억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연 천당에 가서 내가 써준 추억장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아아 진현이! 이제는 너를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이 다만 안타까운 마음만 품을 뿐이구나. 이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너와 더불어 한 교실에서 뛰놀던 여러 친구들도 너의 죽음을 서러워하고 다시는 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영원한 인생의 이별로서 슬퍼할 것이다. 죽음1 인간이란 것이 한 번 나서 한 번 죽기는 공통된 운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란 말 한 마디가 왜 이렇게도 섭섭한지. 더구나 꽃다운 소년기도 넘기지 못한 애석한 젊은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그는 오지 못할 황천 길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것을 생각하니 그저 기가 막힐뿐,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군북중학교 학생문집 (19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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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 깨끗한 말로 썼다. 어디 한 군데도 써서는 안되는 어려운 말이나 일본말투가 안 나온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이 쓴 글에 견주어 볼 때, 역시 그때는 자연이 그다지 오염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말도 오염이 덜 되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런데 꼭 한가지 잘못된 말이 있다. -었었다 라는 이중과거형을 쓴 것이다.
- 그는 오늘날가지 할아버지 한 분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삼촌 밑에서 한때는 남다른 설움과 고통을 받으며 꾸준히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이 글월은 그는 오늘날까지...왔었다. 로 되어 있는데, 왔다 고 하면 될 것을 왔엇다 란 괴상한 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다. 대관절 어째서 이런 말이 마치 갑자기 달라진 (돌연변이) 현상처럼 나타났는가? 이 글이 실려 있는 학생문집 을 죄다 훑어 봐도 다른 글에서는 이 었었다 (았었다)가 어디에도 안 나온다. 물론 이 말이 함안 군북지방의 사투리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함안뿐 아니라 경남 어디에서도, 경북이고 전라도고, 우리 나라 어디서고 이런 사투리는 없다. 이 학생이 었었다 를 쓰게 된 것은 말로 쓴 것이 아니라 글에서 이 말을 배워서 글로 쓴 것이다. 그럼 어떤 글에서 이 말을 배웠을까? 두 가지 글에서 이 글말을 배웠다고 본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설이나 동화나 수필, 그 밖에 문필가들이 써 놓은 온갖 글에서 이 -었었다 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책을 읽는 학생들이 이런 잘못된 글말을 저도 모르게 배워서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었었다 는 이광수의 소설에서부터 나온다. 그래도 일제시대에는 이 말을 안 쓰는 작가가 더러 있었고, 한 잡지에서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렸다면 그 가운데서 세편은 이 -었었다 란 말이 아주 안 나올 정도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이 말이 안 나오는 작품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어느 글에서고 아무런 까닭도 원칙도 없이 제멋대로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오는 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말이 아니니까 무슨 원칙이 있을 수도 없다.
다음 또 하나는 어이없게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 교과서로 이 괴상한 말법을 배운 것이다. 그때 나는 이 학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철없게도 최현배 선생의 우리 말본 을 신이 나서 가르쳤는데, 바로 그 책에 이 었었다 가 나온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한글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우리말과 글의체계를 세우는 일에도 큰 업적을 남긴 분이지만, 우리말 움직씨(동사)의 때매김(시제)을 영문법의 틀에다가 억지로 맞추어 놓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었었다 -었었었다 따위를 쓰도록 한 것이다. 해방 후 온 나라의 학교에서 문법 교과서로 가장 많이 쓴 것이 우리 말본 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배우고 가르친 사람들이 글을 쓸 때면 문법에 맞는 글, 유식해 보이는 글이 되게 하려고 -었었다 를 자랑삼아 쓰고, 심지어 말을 할 때도 가끔 지껄여 보고 싶어하는 풍조가 되어버린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군북중학교는 우리나라에서 표준말을 쓴다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상도 시골의 학교이기에 많은 학생들의 글을 모아 놓은 문집에도 이렇게 겨우 한 학생이, 그것도 단 한 번 -었었다 를 썼을 만큼 아니, 그보다 차라리 우연히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알맞을 정도로 글말의 공해를 적게 입은 것이다. 이 -었었다 는 최현배 선생보다 앞서서 우리 글을 연구한 주시경 선생의 문법책에서부터 나온다. 일제시대 문인들의 작품에 이 -었었다 가 나온 것도 우리 한글학자들의 잘못된 문법책에서 영향을 받아 그 모양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한글학자들의 잘못은 말 을 떠난 글 의 질서에 매달리고, 그 질서 속에 빠져버린 데 있엇다. 말을 떠난 글의 질서는 남의 것이다. 중국 것이고, 일본 것이고, 미국 것이고 서양 것이다. 이 밖에 바로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 말을 쓰게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근본을 다지면 -었었다 란 말을 지어낸 한글학자들의 잘못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앞에서, 이 글 친구의 죽음 이 입말로 쓴 것이 아니라 글말로 썼다고 했는데, 그것을 좀 설명해야 되겠다. 이 글이 들어 있는 학생 문집은 모두 123쪽으로 되어 있고, 이 책에 실려 있는 학생들의 글은 모두 입말로 씌어 있다. 이 친구의 죽음 바로 앞과 뒤에 있는 글들만 보더라도 아침을 일찍 먹고 지게를 걸머지고 나무를 하러 간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데 어쩐지 눈물이 흐르고... 오늘부터 기다리던 하복을 입게 되었다. 이런 말들로 시작되어 있고, 어느 글이고 다 이와같이 보통 우리가 하는 말로 씌어 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죽음 만은 좀 다르다.
- 어느 날 초등 학교 학생으로부터 오늘 진현이 초상친다는 말을 무심중에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처음 시작한 글월도 말을 하는 것처럼 쓴 것 같지만, 말과 다른데가 있다. 학생으로부터 이것은 입으로 하지 않는 말이고 글에서만 쓰는 말이다. 입으로 하는 말대로 쓴다면 마땅히 학생한테서 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그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말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으나 이처럼 갑자기 그의 앞에 애통한 죽음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여기 나오는 대이름씨(대명사) 그 도 실제 입말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다. 신음하고 도 입으로는 앓고 라고 말하고, 듣고 있었으나 도 입으로 말할 때는 듣고 있었지만 이라 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알았으랴! 도 알았겠는가! 라고 해야 살아 있는 말이 된다. 이 밖에도 입말로는 쓰지 않는 말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자라났건만 - 자라나지만
황천의 길 - 저승길
과거 - 지난날 (과거는 입말로 어쩌다가 쓰인다)
어제 같건만 - 어제 같은데
학원의 길을 밟아 왔었다 - 학교를 다녔다
하였으며 - 하였고, 했고
과연 - 정말
너와 더불어 - 너와 함께, 너와 같이
애석한 - 아까운
황천 길 - 저승길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 인생이 허무한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와같이 보통 우리가 입으로는 하지 않는 말들이 때로는 이름씨(명사)로, 때로는 움직씨(동사)의 씨끝(어미)으로, 때로는 어찌시(부사)나 토씨(조사)로 여기 저기 섞여 있어서 글 전체의 분위기라 할까, 질서 같은 것이 입으로 하는 말과는 조금 다르게 되어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 글의 내용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 사람의 죽음을 얘기하는 자리가 되자니까 여느 때는 농담을 하면서 지내던 친구였는데도 저절로 마음이 굳어지고 엄숙한 심정이 되어 이런 글말투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었었다 란 잘못된 말도 이런 글말의 분위기가 되다보니 갑자기 한 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고 보면 글말에도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써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글로 쓸 수 있는 말은 다시 또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중국글자말(한자말)이다. 앞에서 들어 놓은 글에 나오는 황천 과거 과연 애석 같은 말이 여기에 든다. 이런 말들은 입으로 더러 쓰게도 되었지만 어디까지만 글에서 생겨난 말이다. 다음은 옛말이 되어버려서 우리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글로서는 그대로 쓰고 있는 말이 있다. 앞에서 들어 놓은 말에서 -건만 -으며 -으랴 따위로 된 움직씨(동사)의 씨끝(어미)들과, -로부터 라는 토가 이런 말이다. 세번째는, 역시 옛말이지만 한문을 새겨 읽을 때 나오는 말을 그대로 글에서 쓰고 있는 말인데, 앞에서 든 글에서는 더불어 와 바 가 있었다. 이 밖에도 한문새김말은 하여금 이른바 -으로써 따위로 많이 있다. 이 세 가지 글말들은 오랫동안 우리가 읽어온 글 속에서 글말로 이어져 왔기에 우리 것으로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런 말들을 우리 것이 아니라든지 벌써 죽어버린 말이라 하여 아주 물리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나날의 생활에서 살아 있는 입말로 쓰지 않거나 쓰지 않아도 될 말이니 글을 쓰는 경우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이런 말을 안 쓰거나 쓰더라도 적게 쓰는 것이 좋겠다. 입으로 하는 깨끗한 우리말을 써야 글도 살아나는 것이다.
다음에, 써서 안되는 글말은 앞에서 말해 놓은 -었었다 란 말 밖에도 아주 많은데, 대강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아주 어려운 중국글자말이다. 조우, 해후, 호우, 하자(흠), 방불, 서식, 종용, 독백, 포효, 미지수.. 얼마든지 있다. 둘째, 말하기도 힘들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중국글자말이다. 오자, 오수, 오지, 수수, 유가, 주가, 고자, 기로, 끽연, 만끽, 가시화, 의의, 의외, 화훼, 회화, 박차, 미소, 미아, 유아, 발발.. 신문이나 잡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싹 쓸어 내버려야 할 말들이다. 셋째, 우리말이 있는데 공연히 쓰는 말이다. 돌연, 돌입, 붕괴, 비래, 작물,제초, 상호, 조기, 기호, 관건, 주방, 석권, 계곡, 도서(섬), 냉수, 여명, 초원, 수면, 휴식을 취한다.. 깨끗한 우리말을 아내고 안방에 들어와 앉아 주인 노릇을 하는 이런 엉뚱한 한자말이 얼마나 많은가! 넷째, 우리말의 얼개를 아주 망가뜨려 놓는 말이다. 구조를 파괴하는 말이라고 하면 더 잘 알아 들을지 모르겠다. 나의 집, 나의 어머니, 우리의 갈 길.. 이렇게 의 를 아무데나 쓰는 경우라든가,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에로(의), -로의, -으로부터의... 이런 따위로 쓰는 말인데, 거의 모두 괴상하게 되어 있는 토로서, 일본말을 따라 쓴다고 이 꼴이 되었다. 다섯째, 아주 일본글을 그대로 쓰는 말이다. 입장, 입구, 역할, 수순, 수속, 취급, 수취인, 인상, 인하, 매입, 매도, 민초, 승부사, 보다(어찌씨 = 부사로 쓰는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이런 말들 가운데는 벌써 입말로 널리 쓰고 있는 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널리 쓰고 있더라도 이런 말은 일본의 글말이니 언젠가는 꼭 없애야 한다. 여섯째, 서양말이다. 가이드, 오픈, 이미지, 쇼핑, 조깅, 레크리에이션, 캘린더, 조크, 스케줄, 해프닝..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말들이다. 일곱째,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만들어서 퍼뜨리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보기를 들면 먹을거리 란 우리말을 안 쓰고 공연히 먹거리 란 말을 써서 우리말을 어지럽게 하는 따위다. 책을 읽거리 라 하고 옷을 입거리 라 하니 참 어이가 없다. 이것이 다 책에 갇히고 글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하는 꼴이다. 말은 우리 것이다. 그런데 글은 중국에서 오고 일본에서 오고 서양에서 왔다는 것을 꿈에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