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감상문 쓰기 -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웃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다음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글이다. 이번에는 낱말이나 말법도 보아야 하겠지만 글의 내용을 더 많이 생각해 보자.
라면 한 그릇의 사색
정해진 밤 자습을 마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집에 와서 혼자 라면을 끓여서 마시다시피 먹고 있는데, 창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다보니 술이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는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동네 사람들도 몇 끼어든 것 같다. 나로서는 감히 해볼 엄두도 안 나는 욕이 동네를 울리고 있다. 그런 속에서 스프를 두 개 넣어 걸쭉한 라면과 걸쭉한 그 소란을 음미하여 본다.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인가? 아닐 게다. 그런 보통 사람일 게다. 파라리 넥타이 매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이나 생명에는 관심도 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나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가? 신사답지 못하게 욕을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인다. 국민에게 발포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군인이었던 정치인도 더 나쁜 사람이다. 저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여러 사람이 듣도록 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가? 아니다. 우리들은 어떤가? 눈도 깜짝 않고 남의 마음을 도려낼 만한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있다. 그것도 더 배운 놈일수록 남 공격하는 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얼굴 빛은 물론 맥박이나 혈압의 변화도 없다. 그나마 저들은 흥분해 있고 이성이 잠시 비켜난 상태 아닌가? 그럼 저들이 우리보다 착한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 같을 게다. 그럼 왜 저들은 나쁘게 보이고 우리들은 그렇지 않은가? 왜 대통령이 전쟁 터뜨리면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가? 돈 많고 많이 배운 놈일수록 포장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저들은 못 배우고 돈 없다는 이유로 자기의 나쁜 점을 그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불이익이 아니고 정당한 거다. 나쁜 것 나쁘게 평가받지 않는 게 부당한 거다. 그럼 나나 더 배운 놈이나 돈 많은 놈이 부당한 것이네? 그렇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당해질 수 있지? 모르겠다. 어쨌건 플러스 마이너스로 볼 때 우리는 마이너스고 저들은 제로에 가까우니 저들에게 항상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진 놈 배운 놈은 마이너스 벗어나기만 해도 대단한 인물이 된다. 그만큼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울수록 더러워지기 쉽고 깨끗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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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꽤 주의해서 읽어야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게 될 것 같다. 그만큼 남다른 생각이 나타나 있고, 글월마다 뜻이 차 있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는데, 밖에서 고함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아저씨의 아주머니가 `지거리를 하면서 싸우고 있고, 마을 사람도 몇이 끼어들어 있다. 여기서 글쓴이는 그 이상자세히 그 싸움의 속사정과 모습을 살피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겠지만, 흔히 일어나는 이웃 사람들의 싸움이라 도 그런 것이겠지 하고 그 이상 관심을 안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흔히 일어나는 사람들의 싸움에 대해서 오늘은 뭔가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내가 먹는 라면과 함께 곰곰이 되씹어 보자고 해서 생각을 적은 것이 이런 감상문이 되었다. 이 글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 보나. 저 듣기 거북한 욕지거리, 교양이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 토해내는 고함소리, 누구나 저 사람들을 욕할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나쁘기로 말하면 저들을 욕하는 점잖은 사람들, 신사 숙년들, 무엇을 배웠다는 이들이 훨씬 나쁘다.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할뿐이지만, 교양을 갖추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점잖게 논리를 세워서 상대편을 아주 크게 해치는 말을 한다. 그뿐 아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사람의 목숨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전쟁까지 일으켜 사람을 무더기로 죽인다. 그런데 어째서 골목에서 욕설을 하면서 싸우는 저들을 나쁘게 보이고, 돈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게 보이는가? 그것은 포장을 잘 하기 때문 이다. 곧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싸우면서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들한테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면, 돈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고 한 사람들은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 대강 이런 생각이다.
이 글을 쓴 학생은 자기도 배운 놈 편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들이 우리보다 착한가? 하고 스스로 묻는 말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고했고, 다 같을 게다 는 대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라고 한 말에는 돈 많이 가진 사람이나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까지 들어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언제나 땀흘려 일하면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식하고 거칠어서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볼 때 플러스도 아니도 마이너스도 아닌 제로 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저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진 놈, 배운 놈은 마이너스 벗어나기만 해도 대단한 놈이 된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해서 조리있게 쓴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일과 삶을 보는 관점이 뚜렷하고, 그래서 아주 확신을 가지고 쓴 글이다. 글쓴이의 이런 주관과 신념은 어떤 책에 씌어 있는 이론을 읽어서 머리 속에 넣어 놓은 것으로 풀어 낸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만큼 자기 것으로 된 말로, 확신에 찬 말로 썼다.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글쓴이의 깊은 이해와 따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이 이런 생각을 쓸 수는 없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서 이만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느낌과 생각을 쓴 것이 자세하고 정확하며, 그래서 그것이 결코 어떤 감정에 치우치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매우 온당하게 나타나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것 또한 글쓴이가 가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심정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쯤 하고, 낱말과 문장에 대해서 말해 본다.
- 라면 한 그릇의 사색
좀 멋을 부린 제목이다. 이런 멋이란 알고 보면 흉내다. 차 한잔의 사상 꼴로 쓴 것이다. 이렇게 쓰더라도 늘 입에서 나오는 낱말을 쓰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사색 을 생각 으로 바꾸어 보라. 흉내가 아니고 제법 제 생각같이 느껴질 것이다.
- 내다보니 술에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는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여기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에 핏대 세우는 싸움이다 고 하는 말이 괴상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말법이 아니다. 우리말법일 수 없는 것은, 이런 말이 우리 입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곧 깨달을 수 있다. 하도 외국글 따라 외국말법을 그대로 옮겨 써놓은 글을 많이 읽게 되니 자기가 쓰는 글도 그만 이렇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하나? 말하는 대로 쓰면 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운다 고 말이다.
- 그런 속에서 스프를 두 개 넣어 걸쭉한 라면과, 걸쭉한 그 소란을 음미하여 본다.
글재주를 잘 부려 놓은 대문이다. ..라면을 먹으면서 시끄러운 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고 할 것을 이렇게 멋을 부려 썼는데, 그다지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말재주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차를 마실 경우에야 이야기를 하면서 마실 수도 있고 무엇을 골똘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가 고파 라면을 마시다시피 마구 먹으면서 무슨 바깥의 사람 소시를 그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치는 크게 허물하지 않겠다. 다만 이 이상의 말재주를 부릴 생각은 말아야 하고, 말재주를 즐기는 버릇을 조심해야 하고, 이런 말재주보다 차라리 소박하게, 보통 우리가 누구나 입으로 하는 말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글이라는 것만은 알아 두어야 한다. 또 위의 글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음미하여 본다 만은 맛보기로 한다 고 쓰는 것이 좋겠다.
- 신사답지 못하게 욕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신사 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로 상류 사회의 남자 란 뜻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쓸 말은 아니다. 점잖지 못하게... 이렇게 쓰면 우리말이 되는 것이다.
- 국민에게 발포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여기에 쓴 거리끼지 않는 은 좀 맞지 않은 말이다. 서슴지 않는 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 그래도 저들은 상스러운 욕을 여러 사람이 듣도록 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글월에 나오는 함으로써 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것은 글에서만 나오는 말이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 해서 로 쓰면 될 것이다. 입으로 하는 말을 써야 글이 살아난다.
-그것도 배운 놈일수록 남 공격하는 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논리적, 합리적, 비교적.. 이렇게 무슨 -적 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말은 일본글을 따라서 쓰는 꼴이니 안 쓰는 것이 좋다. 도대체 논리적 이란 무슨 말인가? 논리가 잘 서 있다는 말인가?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인가? 겨우 조금만 서 있다는 것인가? 논리가 잘 서 있다는 말이라면 논리가 서 있고 하면 될 것이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 그렇게 써야 할 것이다. 무슨 -적 이란 말은 말뜻을 흐리게 하는 좋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 그럼 저들은 못 배우고 돈 없다는 이유로 자기의 나쁜 점을 그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불이익을 짊어지고 있나?
여기 나오는 이유 란 말은 까닭 이란 말로 바꿔서 쓰는 것이 좋다. 돈 없다는 이유로 를 돈이 없기 때문에 라고 써도 되겠지. 그리고 평가받아야 를 값매겨져야 로 쓸 수는 없는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불이익 도 손해 라 하는 것이 좋다.
중국글자말 앞에 불 자를 써서 본디 말에 반대되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 많고, 이런 말이 편리하다고 해서 자꾸 쓰지만, 우리말을 죽이는 결과가 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고 우리말을 살려 쓰는 것이 옳다.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할 불- 자 붙은 말을 다음에 들어본다.
불가하다 - 옳지 못하다
불가분의 - 뗄 수 없는
불가사의하다 - 이상야릇하다
불가해하다 - 알 수 없다
불경기 - 세월없다
불계승 - 안 세고 이김
불과하다 - 지나지 않다
불가능하다 - 할 수 없다
불가불 - 마땅히
불가피하다 - 피할 수 없다
불결하다 - 깨끗하지 못하다
불경제하다 - 헤프다
불공평하다 - 고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런데도
불굴의 - 굽힐 줄 모르는
불귀객 - 못 돌아올 사람
불균일한 - 고르지 않은
불균형 - 고르지 못함
불량 - 나쁨
불로소득 - 힘 안 들인 벌이
불리하다 - 이롭지 못하다
불만족하다 - 만족스럽지 않다
불매운동 - 안사기 운동
불면증 - 잠 안 오는 병
불멸 - 안 없어짐
불명예 - 명예롭지 못함
불모지 - 풀 안 나는 땅. 메마른 땅
불무하다 - 없지 않다
불문 - 묻지 않음
불문가지 - 물을 것 없음. 뻔함
불미스러운 - 좋지 않은
불변하다 - 변함없다
불복 - 복종 않음
불비 - 못 갖춤
불비점 - 못 갖춘 점. 덜된 점
불사약 - 안 죽는 약
불사조 - 안 죽는 새
불사한다 - 사양 않는다
불손하다 - 버릇없다
불순물 - 잡것
불식 - 씻음
불시에 - 갑자기
불안감 - 불안한 느낌
불야성 - 등불천지
불요불급하다 - 급하지 않다
불요하다 - 쓸데없다
불우 이웃 - 가엾은 이웃
불응한다 - 따르지 않는다
불원간 - 머지않아
불의 - 뜻밖
불충분하다 - 넉넉지 않다
불충실하다 - 충실하지 않다
불취학 - 학교 들지 못함
불치병 - 못 고칠 병
불침번 - 안 자는 당번
불쾌감 - 언짢은 느낌
불통 - 막힘
불퇴진의 - 안 물러설. 끄덕없는
불투명색 - 흐릿한 빛
불투명하다 - 흐릿하다
불편부당 - 공평함. 치우치지 않음
불평분자 - 불평꾼
불필요 - 필요없음
불허 - 허락않음. 허가않음
불황 - 세월없음
불후 - 안 썩음
불후의 - 안 썩는. 길이 생생한
이렇게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중국글자의 해독을 입고 있는가를 알 수있다. 중국글자말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우리말을 살릴 수 없다. 끝으로, 이 글은 마지막에 라면을 다 먹은 이야기를 한마디 덧붙였더라면 자연스런 형식을 더 낫게 갖추었을 것임을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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