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1 - 살아있는 말은 어디서 오는가
일하는 삶에서 글감을 얻고
글쓰기는 무엇을 쓰나 하는 문제와 어떻게 쓰나 하는 문제로 크게 나눌 수있다. 또 글에 담긴 글쓴이의 생활 태도며 생각의 문제와 표현의 문제로 나눌 수도 있다. 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팝콘'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전문이다. 이 글에서 글쓰기의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팝콘 - 강석
1학년 겨울방학 때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학동안에 고생을 해 보겠다고 집을 나선 나는 이미 정해 놓은 목적지인 부산을 향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도착해 보니 해가 질 때쯤이다. 전에 한 번 친구들과 와본 적이 있었던 나는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남포동으로 갔다. 한 달 동안 지낼 데를 찾던 중 '아르바이트생 구함' 이란 쪽지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사람이 꽤 많이 오가는 길목의 분식점이었다. 이때부터의 부산생활의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음식을 나르고 배달하는 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배달한 음식을 사람들이 먹는다는 게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점심때가 되면 잊지 않고 오는 아주 예쁜 누나가 눈에 띄었다. 빨간 파카에 청바지를 입고 비비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귀여울 정도였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연필 스케치의 단발머리에 눈이 아주 큰 소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누나가 올 때면 시킨 음식을 가져다 주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예쁜 소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다는 건 때론 나에게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떤 때는 그 누나가 오면 물 주전자를 엎지르기도 하고 걸리지도 않던 탁자에 걸린다던가 하는 하지 않던 실수를 할 때도 있었다.
그 며칠 후에 주방에 있는 아줌마로부터 그 누나가 멀지 않은 곳에서 팝콘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는 그쪽으로 가는 배달은 대부분 내가 갔고, 가끔 부산에 있는 친구가 오면 함께 팝콘을 사 먹기도 했다. 그 누나는 대학생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돈 벌면 부자가 되겠다고 하더군. 밤늦게 자고 아침이라 하기엔 늦고 점심때라 하기엔 이른 때에 일어나면 하루가 알게 모르게 지나가더니, 어느덧 한 달이 되어 이젠 친근해진 부산생활을 청산해야 한 아쉬움이 되었다. 분식점 문을 나선 후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지하 상가를 거닐고 태종대에 가서 앞 바다를 바라다보니 나를 덮고 있는 모든 것이 씻겨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 누나에게 갔다. 여전히 빨간 파카를 입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만 두었냐고 하면서 볼 수 없겠다고 하더군. 나는 선물이라며 작은 인형과 책 한 권을 주었다. 누나는 줄 게 없다면서 대신 팝콘을 정성스럽게 두 봉지 싸 주었다. 누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향한 기차를 탔다. 이것이 나의 첫 객지 생활 이야기이다. 가끔 빨간 파카에 청바지를 입은 소녀를 보면 그때 그 거리에서 팝콘을 팔던 예쁜 누나를 생각하게 한다.
'영등포상고 2학년 8반 학급문집 '타오르는 영산강'에서'
이글은 아마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게 되리라 생각한다. 방안에 앉아 허황한 공상을 한 이야기가 아니고, 어른들이 흔히 쓰는 어떤 생각이나 주장을 흉내낸 것도 아니다. 자기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자기 말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적었으니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한 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이어 놓았다. 그래서 마치 옛날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글이 그 정도로 읽히는 까닭이 이런 문장의 특이함에 있다고 본다. 한 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말한 것은 소설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고, 좀더 재밌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까닭은 글을 쓰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간 때문이다. 그것은 단락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단락이 없이 이야기를 끌어갔다는 것은 어떤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이 그려 보여주지 않고 설명만 해버렸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좋은 체험이라면 몇가지 이야기의 장면을 나누어서 그 장면들을 좀 자세히 그려 보이면 얼마나 좋겠나. 장면과 장면을 차례로 이어 놓으면 꽉 짜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이란 별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해서 씌어진다. 도 굳이 소설을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겪은 일을 재미있게 읽히는 글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얼거리를 잡아서 몇 가지 장면을 자세하게 그려 보이면 저절로 이 글은 앞에서 써 놓은 것보다 더 길어질 것이다. 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 아마도 처음 쓴 분량의 배는 되겠지. 그렇게 써야 이 글에서 나타내고 싶었던 글쓴이의 느낌이나 생각이 제대로 나타나리라 본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떻게 쓰나 하는 표현의 문제였다. 다음은 이 글이 무엇을 썼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다. 사실은 어떤 글을 두고 논평할 때는 문장표현보다 그 글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를 먼저 따지고 평가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글에서는 표현 문제가 우선 더 드러나 보이기에 먼저 말했던 것이다.
이 글을 쓴 학생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학 동안에 고생을 해 보겠다고 혼자 부산에 가서 한 달 동안 분식점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했다. 참 좋은 생활태도다. 방학동안에 산에 올라간다든지, 바닷가에 가서 지낸다든지, 무전여행이란 것을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온갖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인데 이 학생은 아주 별나게, 고생을 해 보겠다고 큰 도시에 가서 노동생활을 한 것이다. 노동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에 나오는 낭만 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정말 고생 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한데, 그러면서 그 고생을 해 보겠다고 나서서 또 실제로 그런 생활을 아주 잘 견디어 내었다. 견디어 낸 정도가 아니라 음식을 나르고 배달하는 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배달한 음식을 사람들이 먹는다는게 즐거웠다 고 할 정도로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보람있게 여기고 기뻐했다. 이것은 참으로 사람다운 건강한 태도다. 요즘같이 입신출세를 위한 점수따기 공부에 모두가 빠져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생각도 감정도 병들고 행동은 더구나 잘못되어 있기가 예사인 청소년 가운데 이런 학생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학생은 이런 삶의 태도를 어디서 배웠을까? 부모님이 부산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했지만 아마도 부모님한테서 평소에 이런 삶을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어보면 이 학생의 심성이 참 착해 보인다. 마음이 착하지 않고는 이렇게 살 수 없고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이런 착한 심성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기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 학생의 부모님은 일하기를 즐기면서 살아가시는 분들이라 여겨진다. 글은 이렇게 해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된다. 보고 듣고 일한 것, 실제로 몸으로 겪은 삶 속에서 나와야 생명이 있는 글이 된다. 방안에 않아서 책만 보고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학생이고 소설가고 시인이고 다 그렇다. 소설가는 방안에서 글만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소설가들이 쓴 작품은 재미있게 읽히는 문학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그렇다. 그래서 지금 우리 나라의 문학작품들은 말장난으로 타락했다. 나는 우리 문학이란 것이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가장 큰 근원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글쓰기로 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어른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린이와 학생들만은 삶을 정직하게 쓰면서 스스로 삶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좋은 글이 씌어진다. 그러니까 글쓰기에서는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어떤 생각을 배워서 쓰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 팝콘 을 쓴 학생도 책 속에 빠져 있었다면 이런 글은 못 썼을 것이다. 모든 창조의 근원은 삶이요 현실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한 달 동안 분식점에서 일을 했는데, 그렇게 일한 것이 제대로 안 나타나 있다. 분식점이라도 여러 가지 음식이 있다. 어떤 음식을 나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처음 그런 곳에서 일을 했다면 여러 가지 어려웠던 일, 실패했던 일, 힘들었던 일도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이야기는 아주 없다. 물론 이 이야기는 팝콘을 파는 그 누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분식점에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밝은 면만을 썼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모처럼 고생을 하러 갔는데, 그렇게 고생을 한 이야기는 안 쓰고 텔레비젼에라도 나올 것 같은 즐거운 이야기만 썼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의 재미가 깊은 감동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글이란 무엇이든지 보기 좋은 것, 듣기 좋은 것을 써야 버젓한 글이 된다고 알고 있다면 글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팝콘 을 쓴 학생이 또 한편의 글 - 분식점에서 일한 이야기를 쓰게 되기를 바란다. 음식을 나르면서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했던 이야기 뿐 아니라 고달팠던 일들, 속상했던 일들, 힘들었던 일들을 사실 그대로 자세하게 쓴다면 아마도 팝콘 보다 더 훌룡한 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다시 문장표현으로 돌아가, 좀더 뚜렷하게 몇 가지를 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앞에서 자기가 겪었던 일을 자기 말로 썼다고 했는데, 보기를 들면 나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돈 벌면 부자가 되겠다고 하더군 나를 보더니 그만 두었냐고 하면서 볼 수 없겠다고 하더군 이렇게 글월의 끝을 하더군 으로 맺어 실제로 말을 하는 것같이 쓴 것을 들 수 있다. 또 밤늦게 자고 아침이라 하기엔 늦고 점심때라 하기엔 이른 때에 일어나면 하루가 알게 모르게 지나가더니, 어느덧 한 달이 되어... 라고 쓴 대문이나 분식점 문을 나선 후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지하상가를 거닐고 태종대에 가서 앞 바다를 바라다보니 나를 덮고 있는 모든 것이 씻겨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고 쓴 대문들은 많은 사연이 들어 있는 말을 아주 요령있게 줄여서 쓰거나 자기 감정을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썼다고 본다. 그런데 좀더 글을 다듬어야 할 대문도 여럿 보인다. 두세 군데 지적해 보겠다.
- 이때부터의 부산생활의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아주 어수선한 말이 되었다. 더구나 이때부터의 부산생활의 라 하여 의 가 잇달아 나오는 것은 우리말 법에도 없는 이상한 말이라 하겠다. 이 구절은 이때부터 부산의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쓰든지, 아니면 이때부터 객지인 부산생활이 시작되었다 고 쓰면 될 것이다.
-예쁜 소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다는 건 때론 나에게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 말이 되었다고 본다. 때론..될 수도 있었다 고 했으니, 그렇다면 그 예쁜 소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도 때론 즐거운 일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쁜 소녀의 먹는 모습 은 예쁜 소녀가 먹는 모습 이라고 써야 우리말 법에 맞다. 또 있는다는 건 도 잘못된 말이다. 그래서 이 대문을 글쓴이가 잘 다듬어서 썼다면 아마도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 예쁜 소녀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었다.
-부산을 향해 부산행 차를 탔다.
이 말은 부산으로 가는 차를 탔다. 고 쓰는 것이 좋겠다. 어른이고 아이고 향한다 를 많이 쓰는데, 될 수 있는대로 안 쓰는 것이 좋다. 마지막에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향한 기차를 탔다. 도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고 쓰면 된다. 학교를 향해 갔다. 고 하는 것도 학교로 갔다 고 하면 그만이고 더 깨끗한 우리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지적하고 넘어가자.
-가끔 빨간 파카에 청바지를 입은 소녀를 보면...생각하게 한다.
이 글에서 생각하게 한다 는 생각하게 된다 고 써야 말이 제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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