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머리말
이 책은 청소년들이 정직한 자기표현을 하는 글쓰기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려고 쓴 것이다. 정직한 자기 표현의 글쓰기' 라고 한 까닭은 이렇다. 지금 우리 나라 어른들이 쓰는 글만 쓰고, 어른들이 좋아할 것 같은 글만 쓰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어른들이 쓰는 동시를 흉내내고, 독서감상문을 억지로 써내고, 불조심,저축..따위 글을 써내는 데 시달리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시인들의 시를 읽어서 그 흉내를 내고, 소설의 한 토막을 교과서로 읽어서 소설 쓰는 흉내를 내고, 수필을 읽어서 또 수필 쓰는 흉내를 낸다. 흉내를 낸다기보다 내도록 훈련을 받고, 강요당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이래서 아이들이 어른들에 끌려 다니기만 하고, 조종당하기만 하고, 어른들의 도구 노릇만 하면서 어른이 된다.(어른이 되어서 다시 또 그 다음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길들인다.)
정직한 자기 표현이란 것을 도무지 할 줄 오르는 가엾은 아이들! 흉내만 내고, 시키는 대로만 하고, 주는 것만 받아서 되뇌는 점수따기 기계들! 제 마음, 제 정신, 자기 말, 자기 것은 도무지 가질 줄 모르도록 되어 있는 허수아비 인생들! 나는 결코 부풀려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수많은 학생들이 써놓았다는 글이 어디 얼마나 있는가? 살아 있는 글이 어디 몇편이나 있는가? 어쩌다가 나오는 학급문집에 실려있는 글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으로 비참하다. 왜 우리 학생들이 이 모양으로 되었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자기 표현으로 자라난다. 자기 표현으로 슬기가 생겨나고, 재능이 피어난다. 자기 표현이 제대도 안될 때, 자기표현을 할 수 없게 될 때 사람은 병들고 죽게도 된다. 자기 표현의 가장 좋은 수단이 글쓰기다. 그런데 흉내내기는 자기 표현이 아니다. 말재주와 글장난도 자기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참된 자기 표현을 가로막는 병들고 비뚤어진 글짓기다. 이래서 이 책은 청소년 학생들에게 참된 자기를 표현하는 길을 보여주려고 했다. 자기를 찾고, 자기 말을 찾고, 자기 삶을 찾아 그것을 스스로 키워가는 글쓰기, 이것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글쓰기다.
모두 3부로 나누었는데, 1부는 여러 가지 글의 갈래에 다른 글쓰기의 방법과, 글쓰기와 문학의 관계를 밝혔다. 여기서는 각 절마다 두 편 정도씩 학생들의 글을 보기로 들어, 그 글을 중심으로 해서 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말했다. 2부는 시에 대한 이야기다. 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를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도록 쉽게 쓰면서, 지금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우리말과 삶이란 관점에서 시를 환히 비춰 보도록 했다. 3부에서는 국어 교과서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가르치고 어떤 글을 쓰게 하였는가를 살펴 보았고, 또한 대학 입시 공부로 하는 논술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다루었다.
이 책을 읽는 여러 청소년 학생들이 글을 보는 참된 눈을 뜨게 되고, 그래서 글쓰기로 그 표현을 즐기게 된다면, 반세기 동안 꽉 막혔던 물꼬가 확 트이는 새 역사가 시작될 수도 있겠기에, 어린애같이 가슴 두근거리며 그날을 기다리고 싶다.
1995년 9월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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