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벌판 다 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 역설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한 심충의 바다에 도달하기 전에, 우선 기구, 간난, 칠전팔도의 괴로움의 협곡을 수없이 경과함을 요함이 무론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나 구도적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한 학습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된다. 비근한 일례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인 애로는 적으니, 학생 제군은 나의 소년 시절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려다가 철야, 종일 베껴서 읽었고, 한문은 워낙 무사 독학, 수학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 50년 전 일이다. 영어를 독학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이란 고언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만 자꾸 염독하였으나, 종시 '의자현'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에 들어가 보통 학교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 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에게 그 말뜻을 설명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이다 삼인칭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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