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21교시 - 꽃은 왜 피고 수탉은 왜 우는가 : 군더더기, 군살, 반복, 추상적 표현은 금물
1.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자기를 표현한다.
풀잎은 왜 얼굴을 항상 풋풋하고 싱싱하고 새파랗게 장식하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함빡 빨아들일 듯이 새빨간 장미는 왜 그 줄기나 잎사귀에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는 것일까. 뻐꾸기는 왜 뻐꾹 뻐꾹하며 울부짖고 수탉은 꼬끼오꼬끼오 하는 것이며, 꾀꼬리는 목청을 돋우어 울어 대는 것일까. 바둑이는 왜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떨다가도 낯선 사람을 보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는 것일까. 젊은 여자들은 왜 얼굴에다 파운데이션과 분을 바르고 입술 연지를 진하게 칠하는 것일까. 또 짧은 치마를 입고 몸을 모로 꼬면서 매혹적인 눈웃음을 칠까. 젊은 남자도 그렇다. 양복 속에다 흰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왜 그 위에다 멋들어진 넥타이를 골라 매려 애쓰는 것일까. 그리고 챙이 긴 모자에 반쯤 닳은 청바지를 걸치고 음악에 맞추어 온 몸을 흔들며 춤을 추어 댈까. 쪽빛으로 푸르른 바다는 왜 파도를 일으켜 모래톱과 갯바위를 두들기면서 철썩 철썩 소리를 낼까. 산줄기 들은 왜 파도치듯 기운차게 흘러가고, 별들은 밤마다 반짝거리며, 달은 밤을 밝히고, 해는 찬란한 빛살을 지상에 뿌려대는 걸까.
시인들은 왜 사랑의 시를 쓰며, 가수들은 사랑의 노래를 부를까. 빗방울은 왜 땅으로 떨어지고, 그 빗방울에 맞은 풀잎은 왜 통통 거리는 걸까.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옆자리 친구에게도 의사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을 하려고하면 가슴이 떨리고 얼굴부터 빨개지곤 했던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종이 쪽지에다 뜻을 적어 친구 앞에 내밀곤 했던 것이다. 가령 연필심이 부러졌으니 깎을 칼을 좀 빌려 달라고 할 때도. 친구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하고도 얼굴을 마주 대한 채, 말로써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에게 마저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는 밤새워 편지쓴느 버릇이 생겨났다. 그것을 통해 내 의사를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자처럼 의젓하게 잘 생긴 것은 잘생긴 대로, 나무늘보나 하이에나 처럼 못생긴 것은 못생긴 것대로, 그리고 그들이 하는 표현은 언뜻 거죽으로만 하지 않고, 자기의 온 생명을 통틀어서 하는 '총체적인 것'이다. 우리들 역시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거나 글을 써서 자신을 표현한다. 시나 소설, 논설문, 일기, 편지글, 기행문 등의 모든 것들이 바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이다. 그 표현이라는 것을 흔히 거죽만을 아름답고 예쁘게 색칠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진정한 표현이란 그 영혼과 육체 전체를 통틀어 드러내는 것이다. 글을 쓸때도 그렇다. 글의 문장이나 짜임새만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까지도 진실되게 드러내어야 한다.
2. 표현은 곧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
'글은 그 사람이다'
글에는 그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글을 통해 그것을 쓴 사람의 학색이나 인품, 아름다운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글은 곧 '그 인간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표현은 '오롯한 모양새(형상)가 되게 하는 것(형상화)'을 말한다. 오롯한 모양새라는 것은 '상상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상의 모양새'를 가리키는데, 이 오롯한 모양새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표현이다. 표현에는 주관적인 표현과 객관적인 표현이 있다. 주관적인 표현은 시적인 표현, 정서적인 표현을 말하며, 객관적인 표현은 소설적인 표현, 묘사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1) 창공을 움켜쥔 적이 있다.
창공도 별것이 아니다.
내 손아귀 속에서 펄럭펄럭 가슴 두근 거리고 있었다.
처마 구멍에 그물울 받치고 잡아 낸 참새 한 마리
그 참새와 한 구멍에 있다가 푸르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간 다른 참새는 어느 창공을 헤매고 있을까 -한숭원의 <새> 중에서
(2) 아기별 공주는 어구에 '꽃섬'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섬에 이르렀다.
(지금부터는 묘사적인 서술임) 꽃섬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게 그 섬은 황막하고 어수선했다. 살갗을 에는 듯한 바람이 눈보라와 함께 내달리고 있었다. 아득히 먼 바다에서 달려온 황소만큼 하거나 코뿔소만큼 파도들이 으르렁 거리면서 섬 가장자리의 갯바위를 들이 받고 있었다. 섬 여기저기에는 바지락의 껍질, 소라의 껍질, 우렁이 고동의 껍질, 고막 껍질, 은실 고동의 껍질 들과 갈매기의 바싹 마른 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떠밀려 온 비닐 봉지나 빈 병들이나 플라스틱 조각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입간판 주변에는 갈색으로 말라진 늙은 명아주풀, 비름풀, 며느리 밑씻개 덩굴, 육손이 덩굴, 노인들의 흰머리카락 같은 억새꽃 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었다. 예쁜 꽃은 한송이도 보이지 않았다.(묘사적인 진술 끝남) '꽃섬이라는 이름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꽃 한송이도 없는 섬에다가 꽃섬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다니......' 아기별 공주는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꽃섬이라는 입간판만 보고 그 섬에 들어선 것을 후회했다. 다른 섬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그때 어디서인가, "아기별 공주님!" 하는 모기의 잉잉거림 같은 가느다란 소리 한 오라기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누가 나를 부를까.' 아기별 공주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마른 늙은 풀들이 깊은 잠에 떨어진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속은 것이 화가 나서 바삐 걸어 나갔다. 아기별 공주의 귀에 다시 아까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별 공주님!" 아기별 공주는 발을 멈추고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갈매기 똥과 조개들의 시체 사이사이 마른 명아주 풀섶이나 억새 풀섶 속, 며느리밑씻개 풀섶 속...... 드디어 자기를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냈다. 그것은 어린 우렁이 고동이 벌린 입만큼 보랏빛의 갯메꽃 한 송이 였다. 그 꽃은 몸을 웅크린채 떨고 있었다. 그것은 억새 풀섶과 말라 비틀어진 며느리 밑씻개 풀섶 사이에 피어 있었다. '아니,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떻게 꽃을 피웠을까, 다른 풀들은 다 깊은 겨울잠 속에 빠져있는 이떄에......' 아기별 공주는 푸위에 얼부풀어 있는 갯메꽃에게로 달려가서 물었다.
"웬일이냐? 너는 겨울잠도 안 자니?"
갯메꽃이 말했다.
"저마저 자 버리면 이섬을 꽃섬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곹 이 섬을 황막한 '조개들의 시체섬' 이나 '갈매기의 똥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게 되는 이유인 거에요" - 한승원의 <별아기 바다꿈>중에서
윗글 (1)과 (2)는 설명을 통하지 않고 대상의 어떤 모양새를 가슴속에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 (1)은 지은이의 주관적인 경험과 정서를 통해 대상의 모양새를 그려 주고 있고, (2)는 객관적인 사실을 눈에 보이듯 하게 그려주고 있다. (1)은 주관적인 표현을 하고 있고 (2)는 객관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의 결말 부분에는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대상의 표현 이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좋은 옷을 입기도 하고, 얼굴에 화장을 하기도 하고, 머리 손질을 하기도 한다. 글쓰기의 표현(대상의 모양새를 오롯하게 드러내기-형상화)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욱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그 구성은 물론 글의 내용에 대한 읽는이의 반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3. 올바른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글은 문장에서 시작하여 문장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문장을 올바르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문장을 쓸 때 유념해 두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 첫째, 정확한 뭉장을 써야 한다. 정확한 문장이란 문법에 맞는 문장을 가리킨다.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을 쓰려면 조사, 어미등의 형태와 구실을 똑바로 알고 써야 하며,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 높임법, 문장 성분의 적절한 생략 등동 어법에 맞게 사용하여야 한다.
. 다음에는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계시겠습니다.(있겠습니다)
둘째, 필요한 단어를 꼭 필요한 만큼만 써야 한다. 그래야만 글을 쓰는 사람도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고, 읽는 사람도 글의 핵심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주어 앞이나 서술어 앞에 수식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 수식어 자체의 비중이 커져서 문장의 뜻이 오모해 질 뿐 아니라 알맹이 없는 공허한 글이 되기 쉽다.
. 잿빛 콘크리트와 기름낀 안개에 시들어 가는 가로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들은, 서울을 떠나 여행을 갔다.
셋째, 같은 말을 여러번 되풀이 하는 것을 삼간다. 의미가 비슷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면 글이 지루하고 단조로워 지며 진부한 느낌을 주게 된다. 따라서 글쓴이가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여 의도적으로 반복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일한 단어나 어구, 조사, 어미등은 되풀이 해서 사용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 누가 우리에게 갖고 싶은 것들을 물어 오면 말문이 막히는데. 그 것은 갖고싶은 것이 너무 많기도 하고, 또는 갖고 싶은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
. 나는 매우 행복하다.
위의 예문을 통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이럴때는 무엇 때문에 어떻게 행복한지를 분명히 밝혀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오랜만에 친구 순영이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고 행복감에 흠뻑 젖어 들었다."라고 한다면 그 의미가 한층 더 명료해지지 않을까.
다섯째, 누구나 다 아는 상투적인 표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어떤 표현들은 너무나 많이 사용되어서 읽는이를 싫증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개성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냇물에 비친 산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저 황금 들녘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4. 많이 읽고 많이 쓰라.
이밖에도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너무나 많이 들어와서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다 알고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아무리 많이 알고 있으면 무엇하랴. 실천하지 않는 생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글은 오로지 실천을 통해서만이 그 효과를 드러낸다. 그런데 왜 남의 글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남의 글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지식 체계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극을 받아 내 글의 발전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이것저것 다 맛본 다음에 나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이 쓰라고 하는 이유는? 생각해 보라, 아무리 남의 글을 많이 읽고, 또 지식의 체계가 높아서 어떤 글에 대해서 잘되고 못됨을 평할 수 있다고 해도, 자기가 직접 써 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뜻을 조금도 글로써 나타낼 수가 없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과 느낌을 휘돌아도 그것이 손끝을 타고 흘러내리지 않는다면 무슨 수용이 있으랴, 자꾸자꾸 써 보는 것, 그보다 좋은 글쓰기 훈련은 더 이상 없다.
생각해 봅시다.
1.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를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 글쓰기에서는 그것을 '표현'이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느깜, 정서, 경험 따위를 글로 표현해 내는데 있어, 늘 그 밑바닥에 잔잔히 흐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두 음절로 말해 보자.
2. '글은 그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다 글을 통해 그것을 쓴 사람의 학식이나 인품,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글은 문장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은 곧 문장을 잘 써야 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런뜻에서 문장을 쓸 때, 유의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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