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20교시 음악을 향해 날아가는 글과 이야기 하는 글
- 글쓰는 묘미 알면 누구나 시와 소설도 쓸 수 있다.
1. '문예'란 '문어'와 비슷한 어떤 것 아닐까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였다. 입학을 하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금요일의 6교시 수업시간...... 선생님께서는 들어오시자 마자 출석부를 교탁위에 내려놓으시더니, 칠판에사 축구반 배구반 농구반 정구반 원예반 문예반 서예반 미술반 합창반, 하고 줄줄이 써 내려가셨다 그러고는 그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셨다. 매주 금요일 마다 5교시 수업이 끝난 다음, 자기 마음에 맞는 반을 찾아가 두 시간 동안 취미 활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특별활동' 이었다. 그런데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서 그랬는지, 그 전까지 특별활동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어느반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달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시간이 다 끝나갈 때 까지도 반을 전하지 못한 채 막막해 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문예반으로 가자"
문예반이라니? 나는 친구의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 보았다. 사실 나는 '문예'라는 것이 무얼 뜻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문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문어를 문예라고도 하는 것일까. 나는 어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부들이 바다에서 잡아다가 말려가지고 시장에 내다 팔곤 하는 '문어'에 대해서만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방황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친구들을 따라 문예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 일주일이 꼬박 흐른후, 나는 맨 처음으로 특별활동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문예반 지돌르 맡으신 선생님께서는 먼저 '문예'라는 말의 뜻을 설명해 주셨다. 그때 나는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문예는 '문학예술'의 줄인 말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 속에는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따위의 장르가 들어있다고 했다.
2. 초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동화를 고등학교 때에야 읽었다.
그런데 그 멋모르고 들어갔던 문예반 이후 내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해 초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소공자>,<암굴왕>,<철가면>,<십오소년 표류기> 따위의 동화책들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을 그 책들을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읽었다는 이야기 이다., 그러니 나의 책 읽기가 얼마나 늦은 것이었는지 쉬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책들을 읽고 깜짝 놀랐다. "아하, 이렇게도 아름답고 슬픈 세계가 있었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디 세상에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 그리고 학생들이 즐겨읽는 월간잡지 <학원>만 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만난 문학의 세계는 마치 꿈속과 같은 별천지와 다름이 없었다.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신기한 새 세상'이었다. 늦게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땐가 부터 나는 동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느라고 밤을 하얗게 밝히곤 했다. 달콤한 과자를 맛보고 난 아이가 밥을 먹으려 하지 않고 단 과자만을 찾듯이, 나는 다른 공부는 제쳐두고 시집과, 소설책 ,동화책 들을 읽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3. '문학'과 '문학 아닌것'의 차이
그런데 나를 그렇게 매료시킨 '문학'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시와 소설의 문장 차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문학과 문학 아닌 것 은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펴 보도록 하자.
진달래는 진달랫과의 낙엽 활엽 관목, 산간 양지에 나며, 높이는 2-3미터 정도 됨, 잎은 어긋남 봄에 엷은 분홍색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 끝의 곁눈에서 1개씩 나오는데, 그것이 2-5개가 모여 달림 꽃은 아이들이 따먹음. 한국, 일본, 만주, 중국 북부, 몽고 북부, 우수리 등지에 분포함
이것은 진달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국어 사전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은 우리의 현실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글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진 것일 뿐,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나 아픔, 고통, 절망, 행복 따위를 담아내는 '문학'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즉 '문학 아닌 글'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글들은 주로 '바깥 세계'에 대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체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어떤 사실을 설명하고 논증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에비해 문학은 그 글을 쓴느 사람이 가슴속의 세계로 나아간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것은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라는 시이다. 우리에게 현실적인 정보를 주지 않을뿐더러, 객관적인 설명이나 논증도 하지 않는다. 즉 실생활에 보탬이 되는 글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한 편의 시로서, 그것을 지은 사람의 아픈 감정(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한스러운 정서)을 진실되고 아름답게 그려 보이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진달래 꽃>처럼 가슴속으로 아련히 밀려드는 정서를 음악적인 가락에 실어 담아 내기도 하고, <심청전>이나 <춘향전>처럼 특수한 재미와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있을법한 이야기를 상상하여 그럴듯하게 꾸며 내기도 한다.
4. 소설의 문장이란
그렇다면 소설과 시의 문장은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을까?
잠을 자면 눈썹에 서케가 서리처럼 허옇게 슨다는 음력 정월 열나흘날 초저녁 이었다. 진메 잔등의 검은 솔 숲 위로, 올 볏짚(철 이르게 익은 벼의 짚)으로 엮은 샛노란 맷돌 방석 같은 달이 솟았다. 안마당에 절진 했던(가득 찼던) 어둠이 구정물 통에 맹물을 퍼 넣듯 묽어 졌다. 달을 보는 순간 얼굴이 달떡같이 둥글납작한 달식이가 생각났다. - 한승원의 <혜신의 늪> 중에서
이것은 소설의 문장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생각의 단위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문장의 연결 방식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루어 지고 있다. 어떤 사물(달)을 표현하기 위하여 비유(올볏짚으로 엮은 샛노란 맷돌같은 방석)를 동원하고 있다. 또 문장고 문장 사이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질서가 놓여 있다. 가령 '달'이 진메 잔등의 검은 솔 숲 뒤로 떠오르자 '얼굴이 달떡 같은 달식이가 생각났다'는게 그것이다. 한마디로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인물들이 나오고, 시간과 장소가 나오고, 사건이 있고, 지은이의 사상과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 지은이의 마음에 따라 슬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소설 문장에서는 음악적인 가락(리듬) 따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의 문장은 대개 '대화' 와 '지문' 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는 등장인물이 한 말을 독자가 직접 듣도록 따옴표를 써서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대화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모습은 당연히 문장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뒤에 숨어있게 마련이다. 반면에 지문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문은 인물들이 지껄인 대화를 보충해 주기도 하고, 그런일이 벌어지게 된 상황이나 사건의 모양 진행과정 등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지문에는 대개 묘사적인 것과 설명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나는 그 새끼무당이 어디엘 갔느냐고 윤월 무당에게 물었다.
"제 언니들 굿하는데 따라갔지. 저도 살아살라면을 굿을 배워야 할것이 아니여?"
오래지 않아서 그 새끼무당이 굿판에서 돌아와 가지고 윤월이 무당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 드려라. 내 삼촌이 되는 어른이시다. 아주 훌륭한 글을 많이 쓰는 어른이시다."
새끼무당은 윤월이 무당의 어린시절 그 얼굴 그 자태를 빼다가 박아 놓은 것이었다. 윤월이 무당보다 약간 더 호리호리하고 목이 길고 얼굴이 갸름한 것이 다다르면 다를 듯 싶었다.
- 한승원의 <새끼무당>중에서
이 문장의 지문들이 '설명적'인 것이라면, 다음의 것은 '묘사적' 인 것이다. 한여름의무더위를 무더위를 표현하고 있다. '덥다'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숨막히는 더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묘사의 힘 때문이다.
불덩이 같은 햇볕이 내리쬐었다. 담 위로 올라간 호박덩굴 잎사귀 들은 뜨거운 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처져 있었다. 삽살개가 그 호박 잎사귀 같은 혀를 내놓고 헐떡리며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 쓰러지듯이 누웠다. 그는 선풍기 바람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선풍기 바람마저 뜨거웠다. 등과 겨드랑이에는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땀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5. 시의 문장이란
불이 켜진다.
밤이면 집집마다.
불이 켜진다.
멀리 가까이
우는 듯 속삭이는 듯
불이 켜진다.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하는 이들의
우는 듯 속삭이는 듯
불이 켜진다.
- 김춘수의 <밤이면>
이 글은 밤이면 불이 켜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문장의 연결은 행갈이(줄을 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의 문장을 살펴보면, 시간적인 순서 또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질서를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머릿속에 하나씩 떠오르는 연상 작용(이미지)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 밤에 불이 켜지는 모습에서 '울음가 속삭임'을 연상하고, 다시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 시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에서는 다른 장르의 글에서는 찾기 어려운 음악적인 가락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노래를 부를 떄와 같이 말에 가락이 실려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시에 쓰인 말의 가락을 '운율'이라 한다. 운문과 산문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이 운율이다. 운율을 느낄 수 글을 운문이라 하고, 운율을 느낄 수 없는 글을 산문이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운율이 담겨이쓴ㄴ 말로 압축해서 나타낸 글이라 할 수 있다. 참,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행갈이만 한다고 해서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쾌적한 자연이 있습니다.
편리한 생활이 있습니다.
자연과 가족이 되고
이웃과 따스한 정을 나누는
즐거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풍요한 행복의 약속을
'태양열 주택'에서 이루십시오
이것은 태양열 주택의 좋은점을 선전 하고 있는 광고 문안이다. 여느 시 못지않게 행갈이를 했지만, 이 글은 실용적인 가치를 전달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뿐 결코 시로서의 모습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6. 갈매기와 구제불능
그러면 이번에는 독자들이 보내 온 글들 중에서<갈매기>라는 시와 <구제 불능>이라는 콘트를 차례로 감상해 보자.
(1) 끝없이
출렁거리는
바다 위
푸른 창공에서
노닐고 있는
너
너를 보니
부럽기 그지 없구나
푸름의 속에
하얀 네가 끼여
한결 멋이 더해졌구나
내 마음속의 창공에서
놀아보지 않으련
너의 자유를
한 순간이나마
느껴 보고 싶구나
(2) 개학후 보름이 지나면 학업 성취도 평가 시험을 보게 된다. 그 시험을 조금이라도 잘 보려면 미리 공부를 해야 했다. 서점에 가서 아무 문제집이나 하나 골라 사 가지고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맨 뒤의 답안지를 북 찢어내고 열심히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신기하게도 내가 푼 답들은 거의 백 퍼센트 답안지의 그것과 동일했다. 문제들이 어쩐지 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자신 만만해 졌다. '내가 그동안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아직도 공부한 내용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이러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머리가 아주 좋고 공부 잘 하는 만능 천재인 듯 싶었다. 웬만큼 공부를 했다 싶어 펜 뚜껑을 닫고 문제집을 덮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 내 눈앞에서 선명하게 들어온 '1' 이라는 숫자! 아, 이때껏 내가 푼 것은 1학년용 문제집이었다. 하늘에선 우르릉 꽝 하는 날벼락이 떨어지고, 머릿속엔 온통 1 이라는 숫자만 가득 차 있었다. 엄마께 '문제집이 너무 쉬운 것 같다'고 오랜만에 잘난체를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잠시후면 나에게 날아올 엄마의 무섭고 차가운 꾸중의 말이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이어 내가 그동안 아껴 모은 황금 같은 용돈들이 하나하나 서점으로 날아가는 애처러온 광경이 눈앞에 펼쳐 졌다. 이후 나는 자칭 만능 천재에서 '구제불능'의 아이로 불리게 되었다. '아, 신이시여. 언젠가는 꼭 나에게서 구제 불능이라는 닭의 머리 같고 어처구니 없고 흉측스럽고 망측스러운 이름을 떼어 주시옵소서'
생각해 봅시다.
1.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말해 보자.
2. 시와 소설의 문장은 언뜻 보기만 해도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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