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경전
해동 조선국 중묘조에 윤 총재라는 재상이 있으니 명은 현이라. 삼자를 두었으되 개개이 준걸이나, 필자지경의 자는 자산이니,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풍채가 준하니 윤공이 제자 중 편애하더라. 지경의 나이 십육 세에 과거를 보아 진사를 고등하니, 성명이 일세에 진동해서 두루 구혼함이 구름 모이듯 하되 허혼치 아니터니, 그 해 여름에 여역이 대치하여 낭재가 불안하거늘 윤공이 지경을 데리고 피접을 나더라. 사촌매부 최 참판의 전취 윤부인이 두 아들을 낳고 일찍죽으니, 또 후부인 이씨에게 일녀를 두었으니 이름은 연화요, 시년이 심삼이라. 용모의 고움은 장강에 비기고, 성정이 유함은 임사에 미칠지라, 부모가 극히 사랑하는 중 가르치 아니한 문앙과 배우지 아니한 여공이 세상에 무쌍이러라. 윤공이 최부에 이르니, 공이 소저를 명하여 나와 숙부에게 예로 뵈거늘 지경 형제 또한 남매지예로 볼 새, 지경이 추파를 들어 잠깐 보니 기인한 용모는 공산에 밝은 것을 새겼고, 자약한 쌍협은 홍백 모란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연연하고 정정한 태도는 진실로 세상에 없을 듯 하더라. 지경이 한번 보고 마음이 여광 여취하여 스스로 생각하되 효성같은 면목이 맑고 어질고 어여쁜 태도는 장강의 고운 눈이라도 이에 및지 못할 것이고, 이부인의 횐 얼이라도 여기 및지 못할 바이요, 비연의 너무 경신함과 태진의 너무 풍랭함으로도 어찌 족히 비기리오. 천고의 절색이라. 대장부 이런 옥안 화용이 아니면 일생이 어찌 쾌락하리오. 당당히 부모께 고하여 최씨에게 정혼하리라 하고 물러나와 모부인에게 왈, "최씨 여자는 짐짓 지경의 배필이라, 모친은 구혼하여 소자의 일생이 부부 쾌락함을 바라나이다." 부인이 또한 소저의 향명을 들었는지라, 윤공께 청하여최부에 통혼하니 최공이 내당에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리 부인이가로되, "지경이 풍채가 준수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소년진사함을 아름다이 여겼으나. 기상이 본대 활달하여 청루에 왕래한다 하오니 어찌 어린 딸을 경솔히 허혼하오리까." 공이 본래 부인의 뜻을 어기지 아니하는지라 다른 말로 칭탁하여 물리치니, 윤공이 가장 무안하여 하더라. 염질이 대단하여 지경이 중히 않는지라, 또 수일 안에 최 소저가 앓으니 두 집이 민망하여 구완하더니, 토혈하거늘 종들에 맡기고 양가에서 비접나니, 지경은 외헌에 있고 연화소저는 내당에 있더라. 병이 점점 나으며 윤생이 심심하여 거닐다가 내당에 들어가 소저를 찾아보고 반갑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병이 나음을 서로 치하하고 생이 눈을 들어보니, 사병 후 단장함이 없으나 더욱 아름답고 어여쁜 태도가 만 가지나 솟아나니, 생이 마음이 연하여 혹 바둑도 두며 혹 쌍육도 쳐 김심한 것을 위로하더니, 생이 짐짓 친밀히 하여 저의 거지를살피매 인사 처신이 어른이 믿지 못하더라.
더욱 은애지정을 억제치 못할 제, 소저의 옥협에 향한이 흐르거늘 생이 부채를 들어 부치니 소저가 소왈, "수고로이 부치시니 감사하여이다." 생이 낭소 왈, "나는 윤생이오. 소저는 최공 여아시니 어찌 남매지의 있으리오. 한림 형제는 외가로 육촌이나 소저는 이부인 소생이니 남매지의 없나이다." 소저가 대왈, "어린 아해 촌수와 곡절을 모르고, 또한 부친이 가르치시기를 그러하나이다." 언파에 옥안에 숙여 들었던 사외를 놓거늘 생이 소왈, "거년에 소저께 구혼하니 허혼치 아니함은 무슨 주의 계시고, 내 비록 용렬하나 풍채와 재화는 소저께 지지 아니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니 남에게 부끄럽지 아니커늘, 거절하심은 어쩐 연고니이까. 알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머리를 숙이고 말을 아니하거늘 생이 가로되, "혼인은 인간 대사어들 어찌 속예를 하여 말을 아니하리오. 소저의 뜻은 어떠하시니이까. 우리 두 사람이 한 집에 있어 이 깊거늘, 어찌 심곡을 기이리이까." 소저가 양구에 가로되, "부모의 하시는 일에 내 어찌 알리이까." 생 이 소왈, "소저가 생을 그러다 하고 다른 데 구혼하시다가 천생이 나와 같으면 모르거니와, 만일 나와 같지 않으면 뉘우치나 및으랴. 실로 진정을 이르소서." 소저가 수괴하여 대답지 아니하고 일어나니, 생이 나수를 붙들 간청하니 소저가 할 일이 없어 나직이 대왈, "모친께오셔 군이 청루에 다닌다 하셔 허치 아니하시더이다." 생 이 소왈, "내 언제 청우에 가던고. 내 진사하였을 제 여러 창기 모이니 그 중하나 친한 게 있으나 버린 지 오래거늘 그 무슨 혐의 있으리오. 다만 소저의 뜻을 얻고자 하니, 소저가 유정하실진대 생이 소저를 위하여 신후경의 직금을 효칙 하리이다." 소저가 대왈, "왕교량은 음란한 계집이요, 신후경은 어리기 심하여 죽으니, 불효가 큰지라 군자의 이를 말 아니로소이다. 다만 첩이 군을 위하여 포숙의 신을 지키리이다." 생이 대열하여 소왈, "그럴진대 맹서하여 사생을 정하소서." 소저가 왈, "큰 신은 맹서를 아니한다 하고, 여자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어도, 군자는 여자를 위하여 죽으면 불가하니 부질없는 필적을 써 번거할 뿐이로소이다." 생 왈, "소저의 말씀이 옳소이다. 다만 소저의 지성을 믿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대왈, "후일에 혹 어떤 일이 있어 죽어도 오늘 말을 어찌 아니하리이까. 의심마소서." 생이 대열하여 차후로 경중함이 비할 데 없어 밤은 밖에서 자고 낮은 종일토록 모여 소일하더니 다시 앓는 이 없으매, 각각 집에 갈 생은 소저 떠남은 애연하더라. 소저가 하루는 윤생의 수말을 부모에 고왈, "저의 정성이 이 같고, 소저의 사병 후 두어 달 사람이 막역이라 윤가의 사람 되기를 원하나이다." 최공 부부가 대열왈, "만일 양정이 이러하면 어찌 물리치리오." 즉시 윤공을 보아 청혼하니, 윤공이 대회왈, "영애 나이 어리고 두 아해 사병을 지내었으니, 명년 춘으로 지내자." 언약하였더니 춘이월에 생이 정시장원을 하니 일시에 재명이 조정에 가득 하더라.
종실 희안군이 즉시 와 구혼하거늘, 최가에 정혼하였으므로 허 치 아니하다. 차설 귀인 박씨 일자녀 있으니, 왕손은 복성군이요, 장녀 영희 옹주는 홍상에게 하가하고 차녀 연성 옹주의 시년이 십사세라. 희안군이 구혼하여 허치 아니함을 노하여 즉시 상께 주왈, "신방장원 윤지경이 시년이 십칠 세에 취처 아니 하였사오니 연성 옹주와 결친하옵소서." 아뢰니 상이 신청하시다. 어시에 윤공이 최공을 보고 첨전 계화로 성례함을 청하니 생이 불승 회열하여, 백양을 휘동하여 최부에 이르러 전안할 새, 흘연 상명이 급하시니 생이 길석에 이르러서 합주를 파하고 즉시 승명하여 귈하에 나아가니, 상이 인견왈, "연성 옹주로써 경에게 허혼하노라." 지경이 복지 주왈, "신이 의외에 이 같은 하교를 듣사오니, 천은이 지중하오나 신이 참판 최흥일의 여자를 취하여 행례를 파하고 승폐하여 이르렀나이다." 희안군이 계하에 있다가 상께 눈주어 가로되, "비록 납폐 전안을 하였으나 합궁 전이오니 이제 간택하오나, 상명을 승순함이 신자의 직분이오니, 제가 거역 하지는 못하오리이다." 상이 노색활, "너를 사랑하여 부마를 정하거늘, 어찌 사양하여 칭탁하느뇨." 지경이 돈수왈, "어찌 감히 최녀로 성례함이 없사오면 초방은택을 어찌 사양 하리이까." 상이 대로하사 가로되, "네 불과 소년장원하여 세상에 화세코자 하여 옹주인 줄을 염이 여김이라, 가장 범람하도다." 지경이 돈수왈, "신이 어찌 또 감히 기망하여 아뢰리이까. 사람마다 초방은택을 원하옵거든 어찌 염이 여기 오며, 신의 나이 어리오되 조정 명사의 무리 연석에 모였사오니 불러 물으소서." 상이 변색왈, "합쿵 전은 남이라, 옛 증참이 있으니, 성묘조에 경애 공주를 길례하고 합궁 못하여서 죽으니 파혼하고 부마위를 거두시니, 왕가에도 불행하던 바이라, 네 위엄이 성묘에 더하냐." 지경 이 대왈, "신은 그와 다르나이다. 그때 공주 기세하시고, 신은 최씨 살아있사오니 신이 부마 되오면 최씨 청춘 과부 되오리디니, 전하의 관인하신 덕택으로 신하의 인륜을 차마 어찌 끊으시리이까." 회안군이 주왈, "빙채를 거두고 최녀를 다른 데로 보내면 어찌 홀로 늙으리오." 지경이 노왈, "자기가 당초에 소관에게 구혼하다가 최가에 정한고로 허치 아니하였더니, 일로 혐의를 이어 전하께 천거하여 폐군 아부한 죄를 면니 못하라로다. 신하의 자식이 많거늘 고이한 소인의 간사 불계를 깨닫지 못하시니 전하의 불명이로 소이다. 상이 대노왈, "희한군은 과인의 동생이니 네게 작은 임금이라, 내 앞에서 욕하고 날을 혼폐한 임금으로 능모하니 자식 못 가르친 죄로 네 아비를 죄주리라." 지경이 소왈, "전하 중흥 십구 년에, 일월 같사온 성덕이 심산 궁곡에 미쳤거늘, 유독 소신에게 불명하시고 무거하신 정사가 이러하니 죽어도 항복치 아니하리이다." 상이 더욱 노하사 왈, "내 윤지경을 못 제어하리오. 군부를 욕한 죄로 금부에 나수하고, 또 윤 현을 가두고 길례날을 받아 놓고, 최 흥일은 빙채를 도로 주라." 하니 윤 지경 부자가 나옥하여 원정하되, "신의 자식이 망녕되이 상의를 불복하와 범죄 이렇듯 하오니 부자를 함께 죽이셔도 마땅하옵거니와, 최홍일의 딸은 지경의 아내요, 신의 며느리오니, 전하의 성덕으로써 신자의 인륜을 잇게 하시면 최녀 비록 미세한 여자이오나 천은을 감축하와 화산의 풀을 맺어 성덕을 갚사올 것이오. 신의 부자 진충 육력하리니 북원성상은 익히 헤아리옵소서. 고문 대가에 재랑을 간택하오셔 만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답왈, "내 아는 바이어늘, 경의 부자가 한결같이 가망하느뇨. 인간 대사육 연고가 있어 퇴혼하는 일이 왕왕 있나니 최녀를 재랑을 택하여 맡기게 하고 지경의 방자함을 가르치라." 하니 윤공이 하릴없어 하더라. 양사 합계 왈, "신등이 듣사오니 윤지경이 최흥일의 사위로 부르나이다. 혼인이란 것은 왕법의 위엄이나가, 양가가 상의할 것이어늘, 윤 현의 부자를 가두시며 퇴채하라 하신 하교 옳지 아니 하나이다." 상이 양사를 파직하시니 옥당이 차주 왈, "혼인은 길사이오니 신랑과 사장을 가두심이 크게 옳지 아니하여 이다." 이에 상이 놓으라 하시고, 하교하사 길일을 정하라 하시니 수십 일이 격하였는지라. 지경이 불승 분원하나, 하릴없어 하더라.
상 왈, "지경의 죄 중 하나 길일 전에 관면이 있으리라." 하시고 응교를 제수하시니, 지경이 하릴없어 입공하더라. 하루는 최부에 이르니 최공 부부 서로 볼 새, 부인은 누수 여우하고, 공도 역시 슬퍼 탄식왈, "상명이 퇴채하라 하시니 여아는 심규에 늙기를 정하고 또한 내 어른 재상으로서 군명을 위월하리오." 생이 애연왈, "그러면 서로 얼굴이나 보사이다." 공이 왈, "불가하나 네 아내이니 잠깐 보고 가라." 인파에 소저를 부르니 소저가 승명하여 전당에 이르러 부인 곁에 앉아 수괴함을 띠어 사색이 태연하여 아는 듯 모르는 듯 하고 아리따운 태도가 달같아 반가운 정이 유동하고, 어진 태도와 약한 기질을 대하매 마음이 깨어지는 듯 하니, 공의 부부가 더욱 슬퍼하더라.돌아가기를 잊고 앉았으니 공이 여아를 들여보내고 생의 손을 밖으로 나와 십 분 개유하니 생이 부득이 돌아와 병이 되어 식음을 폐하더니, 길일이 다달아 할례할 새 옹주의 자색이 전혀 없고 포독 불인함이 외모에 나타나는지라, 생이 더욱 불쾌하며 띠를 끄르지 아니하고 밤을 새우고 명조에 궐하여 문안 상이 소왈, "네 죄 크게 통한하더니 이제 자식이 되니 가장 어예쁘다." 즉시 부마와 관교를 주시니 웃고 꿇어 받자와 계하 사은하고, 귀인을 보니 극히 교만파고 포독하니, 더욱 모골이 송연하더라. 박 귀인이 부마의 미려한 풍채를 사랑하고 더욱 기꺼워하더라. 부마가 집에 돌아와 대문에 들며 하인을 명하여 교자를 산산히 깨치고 들어와 소맷속으로 부터 부마의 관교를 내어 땅에 던지니, 윤공이 대책왈, "이 어인 일이뇨. 임금이 주신 교지를 업수이 여김이 어찌 이렇듯 불공한다." 하고, 또 개유하더라, 부마가 삼년 죽었던 부인을 만나 떠날 줄 알리오. 비복을 당부하여 왈, "내 한림 형제와 양가 부모를 다 피하고 왔으니, 종이 오거든 미리 일러 나를 피하게 하라." 하더라, 이러구러 여러 날이 되니 윤공은 매양 알기를, 심사나 사나와 천계산 나라 원당에 가던 것이란, 또 게 갔는가 찾지 아니코, 옹주는 본대 불화한 사이라 거취를 모르니 찾지 아니코, 상이 여러 날 불참함을 괴이 여기사 찾으시니 그제야 찾기를 시작하여, 친우의 집과 천계산 절에 가 보되 종적이 없으니, 괴이하여 찾아가 돌아와 본즉, 부마의 타던 말이 있거늘, 최씨 있는 곳에 갔는가 의심하여 가 보되 숨었으매 보지 못하고 게도 아니간 줄 알아 두루 찾아도 찾지 못한 지 수십 일이라. 조정이 다 알기를 심회 사나와 미쳐 달아났는가 의심하고 상이 진경하사 종야 번뇌하시더니, 윤공이 오히려 의심하여 영리한 사환을 시켜 부지 불각에 들이닥쳐 보라 하니, 과연 최씨 침실에 있는지라 이대로 상전에 고하고 대죄하니 상이 어여뻐서 웃으시고, 환관 김송환을 불러 수죄하고 부르라 하시니, 이 때는 유월이라. 지경이 중당에 있어 죽피 연석을 깔고 수안석을 베고 최씨를 곁에 앉히고 발 벗고 당판 책을 보더니 시비 들어와 중사왔음을 고하니, 부마가 최씨를 곁에 앉힌 채 두고 들어오라 하니 송환이 들어와 중계에 서니, 부마가 안석에 머리를 들어보다가 왈, "네 어찌 온다." 송환끼 대왈, "부마를 잃은 지 이십 일이라, 천심이 지성하자 수라를 폐하고 지내시더니, 오늘이야 이곳에 숨어 계심을 알으시고 천노가 진발하사, 송환으로 부르라 하시나이다." 부마가 일어나지 않고 이르되, "주상이 가장 부지런하시고 부질없도다. 신하 제 아내 데리고 있는 것을 꺼려 잡으려 보내시니 조정에 애처하는 관원이 몇이나 잡혀 들어왔느냐." 송환이 어이없이 소왈, "부마 옹주 박대하고 최 부인에 혹하여 문안 불참하신 지 일월이 당근하고, 또 그저께 박 귀인 생신이어늘, 그 사위로서 불참함을 문죄하려 하시더이다." 지경이 벌떡 일어앉아 소리질러 가로되, "혼군이 요첩에게 혹하여 소인과 합세하여 흥계 깊이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현신 충랑을 살해하 천하 박색 괴물의 첩딸을 위하여 나를 괴롭게 보채느냐. 간특한 첩의 생일이 무슨 대사라 그리 구속히 구시더니, 그저 신하를 부르시면 가려니와 박 귀인 생일 불참죄와 옹주 박대한다 부르시면 끌어도 아니 가리라." 웃고 가로되, "내 아내 고우냐." 최씨를 안고 단순을 접하고 운으떠 벌떡 누워 책을 맑은 음성으로 읽다갸 왈, "부인아, 김 영웅 주찬먹이라." 송환이 어이없어 중계에 앉아 최씨를 보니 절묘하게 고우니, 가로되, "저렇거든 어이 옹주와 화락하리오." 하며 중심에 못내 차탄하더라. 주찬을 먹고 하직 왈, "들어가 무엇이라 아뢰오리까." 부마가 왈, "내 하던 말을 일일지 고하라" 기지개하며 발을 문지방에 얹어 소왈. "열황소 끌어도 못 가리로다."이적에 남 곤 심 정이 조광조이 군빈등 삼십여 인을 모해하랴 홍상 복성군과 모계하여 박씨가 후원 나뭇잎에 꿀로 글을 쓰되 이 군빈 등이 모반한다 썼으니 꿀 먹는 버러지 꿀을 다 갈아 먹으니, 글자가 완연한지라 장녀 따서 박씨주어 상께 보이니 상이 놀라시고 귀인과 복성군 홍상이 안으로 혼동하고 밖으로 남 곤 심 정이 고변하니 조광조 등 삽인은 내어 버히니, 원민한 줄을 참담이 여기나 역불체하여 구치 못하고 불승 통한 하더니, 짐짓 흥계를 이름이라. 송환이 돌아와 일일이 고하고 최씨의 절색을 같이 고하니, 윤공이 이전에 있다가 바삐 섬에 내려 연관대좌하고, 상은 대노하사 내유사 별파진 다섯과 대전별감 다섯과 김송환이 영거하여 잡아오라 하시니, 송환이 엄지를 받자와 즉시 최부에 가니 지경이 약불 동념하여 집에 가서 관대를 갖다 입을 새, 최씨로 관복을 잡히고 팔을 궤어 송환을 돌아다보며 소왈.
"우리 옥인으로 더불어 이십 사일을 동처하였으니 자식이 생겼을지라, 내 이제 잡혀서 죽어도 후사는 이르리니 내 신주를 옹주에게 맡기지 말라." 하고 목혜신고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 최씨가 감고 있는 염주꾸리를 앗아 소매에 넣고 잡혀 들어가, 상이 노하사 여성질왈 "임금을 욕하고 왕녀를 능모 천대함이 태심하여, 군부를 속여 도망한 놈은 쓸데없으니 끌어내어 죽이라." 하니 지경이 즉시 옷을 벗을 새 소매에게 꾸리를 내어 대전별감을 주며 왈, "집에 있을 제 아내 염주꾸리를 감아 주더니 소매에 넣고 들어왔으니, 네 마땅이 내 집에 가 전하라." 상이 이 거동을 보고 잠깐 웃으시니 세자가 또한 대소하더라. 상이 가라사되, "네 나를 수욕하더라 하니 그 어인 일고, 바로 고하라." 지경 이 계고왈, "실로 고하리이다. 수욕은 아니옵고 바른말하였나이다." 상 왈, "충양을 살해하고 소인을 사랑한다 하니, 누구는 소인이며, 누는 충양이며, 요첩을 혹하여 혼군이라 하더라 하니 그 어인 말고, 바로 이르라. 딸을 못 낳았다 하더라 하니 누구는 못 낳고 누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대 왈, "거년 사화제 죽은 조광조 등은 충양군자요, 남 곤 심정 박빈홍 명화 등은 소인입니다." 상 왕, "조광조 역적 한다 하니 죽였거든, 네 어찌 역드는가." 지경이 대 왈, "전하께서 역적하는 기미를 보시이니까, 타일에 뉘우치시리니 그 대신의 영달을 알으시리이다." 상 왈, "심 정 남 곤 을 무슨 일로 소인이라 하는가." 지경이 대 왈, "권을 다하고 재주를 꺼려 군자를 잡아 구하여 사화를 짓고, 전하께서 구태여 그리 쫓지 못하시어늘, 심 정 군법상서를 지어 차의 문덕을 기리니 그 당한 계고라, 어찌 소인이 아니리까. 남 곤, 심 정, 흥명화 등이 있다가 밖으로 달아나더라." 상이 묵연 양구에 왈. "나를 어찌 혼군이라 하느뇨." 지경이 대왈, "군자와 소인을 분간치 못하시니 어찌 밝으시다 하리니까." 상이 우문 왈, "요첩에게 고혹함은 무슨 일고." 지경이 왈, "박 귀인이 전하께 후궁 옆에서 전총함을 들어 동렬을 투기하여 잡고, 중전이 자존하시거늘 항형하여 촉범하여 교만히 아들을 가르쳐 대신을 체결하여 사통하고, 조정의 정사를 간여하여 사화를 참여하니 어이 요첩이 아니리이까." 상 왈, "뉘 이르거늘 이리 자세히 아는가." 부마가 대왈, "신이 지식 항렬에 있사오니, 자유로 귈내 출입이 잦아 일동일정은 목도하오니, 어이 모르리이까." 상이 무연하시더니, 우문 왈, "딸을 어찌 하여 나를 못 낳고 누구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소왈, "공주와 다른 옹주는 어떠한지 모르오나 신이 자연 사 년을 두고 보오니, 전하의 성은을 입사와 의식이 퐁족하옵거늘, 연고 없이 부리는 종과 성내는 매질이 잦사오니 성행이 사납고 어린 처녀 출가하여 구가에 오매 보는 이 다 애처롭사올 것이로되 신을 만나온 지 수개월이 못하와 동침 아니한다 하고 날마다 싸우자하오니 염치 무쌍하옵고, 얼굴이 곱지 아니하오니 더럽더이다. 신의 조강 지처 최씨는 성정이 부드럽고 인자하고 신이 어려서부터 아는 터라 어른의 안전과 남편의 앞에서 절대로 성내고 높은 소리하옵는 상을 보지 못하였사옵고, 신을 만난 지 사 년에 옹주로 하여 신세 참담하거늘 어른의 지위대로 웅변하여 슬기로움이 남자에 지나오니 비록 천위지엄하오나 제 얻은 남편을 옹주가 앗았으니 서러을 듯 하되, 신을 보면 개유하여 옹주 후대하기를 권하고 삼 년을 죽은 체하여 신을 거절하오니 그 신세 괴로움과 설움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로되, 늙은 어버이께 수색을 뵈지 않으니 효성이 높음이요, 제 부마가 천은을 입사와 부자가 관면이 있아오니 조업이 없고 청렴하기 과도하며, 여러 자식에 가장 군립하여 어렵사오나 신을 대하여 한 번도 얻고자 하는 빛이 없사오니 마음이 은공 청렴함이요, 얼굴이 극히 고우키 신이 어찌 사랑하지 아니하리이까. 옹주는 당초에 주신 부부 전설은 이르지 말고 삼십 소신의 녹이 있삽고 삼전에서 주시는 것이 많사와 적곡적보하고, 앉아서 날마다 문안에 또 주소서 하오니 무렴한 욕심이 있삽고, 신이 비록 사정이 중치 못하오나 대하여 공경하오니 일신이 안한하여 반석 같거늘 매양 서사운 사설로 전하의 마음을 혼동하오니 불효를 면치 못하오리라, 일로 탁량하오매 전하는 최일홍만치 딸을 못 낳아 계시니이다. 이제야 약 한 말씀 다 아룃사오니 어서 죽여지이다."
이때 윤공이 곁에 엎드렸더니, 지경의 대답을 듣고 입을 막지 못하고 마음이 침상에 앉았는 듯 하더라, 상 왈, "저리 미운 놈을 죽이지 못하니 내 딸 낳은 죄로다." 박씨 중사로 전어 왈, "윤 부마가 날과 무슬 원수관대 이전부터 죽고 남지 못할 죄로 진달하더니 또 오늘 이런 말을 들으니 다른 말은 이르도 말고 심정승 남 판서와 동시하여 조광조를 죽인 듯이 되어 가니, 뜻을 자세히 물어 알고자 하나이다." 지경이 소왈, "정 나와 겨루고자 하다가는 속을 것으니 잠자코 계시소서, 왕래하던 편지 두 장이 있고 군사관이 살아있으니 가장 어려을 것이니, 여러 말씀말으소서 하여라. 더운 뜰에 오래 앉았으니 목이 마르오니 얼음차나 주소서." 박씨가 가장 밉게 여겨, 또 전어 왈 "왕녀를 박대하고 최녀의 화락하여 군부를 경멸하니 부마의 일은 옳을까. 귀양이나 보내어 개과하게 하소서." 상 왈, "너를 죽일 것이로되 옹주를 보아 사하나니, 충청도 대흥 땅에 정배하나니 회과하게 하고, 최녀는 광망한 지아비를 미혹케 하여 옹주 박대하는 죄로 함흥으로 정배하노라." 부마가 사죄하고 나오니, 윤공이 나와 지경을 대책하고 치죄하려 하니 지경 왈, "부친이 어찌 소자의 뜻을 모르시나이까, 불과 수년이 못 되어 대환이 날 것이니, 소자가 끝내 박씨를 노엽게 하여 정배를 자원함에 부자가 경종코자 함이로소이다." 공이 부마의 등을 어루만져 왈, "네 팔자라 일찍 가르쳐 바가 없거늘 지혜 이 같이 과인하고 강렬함이 이 같으니 내 자식 두었다 하리오다." 하더라. 염춘에 세자의 침전 밖에 쥐를 죽여 방법하거는 상과 궁중이 다 놀라더니 세자의 병환이 계셔 달포 미령하사 백약이 무효하니, 상이 의심하사 이인 남사교를 명하사 귈내를 망기하라 하시니, 동궁 편 부엌벽을 보고 운이 사납다 하거늘, 벽을 헐고 보니 목인과 인골을 많이 묻었으되, 연월 박힌 글씨 박씨 복성군 홍상 등의 글씨라. 상이 대노하사 즉시 국문하시니 박씨 일차에 승복하니, 목잘라 죽이고 홍상은 장하여 죽이고, 복성과 홍상의 처와 옹주는 다 귀양 보내었더니, 또 소계하여 사사하고 거평위 옹주는 어미 연좌로 밀양땅에 귀양보내다. 상이 세자를 대하여 차탄 왈 "윤지경은 소년이나 기특함이 장 견의 범 잡음과 두 목의 위풍과 장 탕의 몸 보전하는 계책을 두었으니, 어찌 기특지 아니하오." 하시고, 즉시 사하여 부르실 새 부마위는 거두시고 승지 제수하사 부르시고, 최씨를 다 놓으시다. 대간이 다시 계하여 홍명화 등을 버히고 적몰하다. 지경이 돌아와 복지하여 사은하고 울며 왈, "신이 전하의 슬하 되온 지 칠 년에 신이 충성이 업사와 상전에 득죄하여 슬하를 떠났삽더니 천은이 망극하와 다시 용전에 뫼시오나, 박씨 죽삽고 옹주가 귀양갔다오니 국가 불행과 신의 반자지정의 단절하오니, 인정에 슬픔을 금치 못하리로소이다." 하며 묵연에 눈물이 흐르니, 상이 또한 슬퍼 손을 잡으시고 유체하시더라. 지경이 주왈, "옹주가 홍계에 참여 아니하였사오면 신이 사람을 불러 물으리이까." 상이 탄왈, "네 아내는 실로 참여함이 없던가 싶으니, 물으나 무슨 협의 있으리오." 하시더라. 지경이 집에 와 부모를 반기고 옹주궁을 보니 집이 황량하며 약간 궁인들이 지키고 있으니 심히 처량한지라 부마가 불쌍히 여겨 노비를 엄칙하여 지키게 하고 인마를 차려 질자를 보내어 최씨를 데려오니 반갑고 기쁘기는 이르도 말고 아자가 이미 컸으니 더 반지고, 구고가 이제야 신부와 손아를 보고 사랑함이 측량 없고 그 화란 중 일호도 그룻함이 없으니 더욱 기특히 여기고, 흉변을 지경이 지혜로 벗어나니 부모 형제는 이르도 말고 일가가 무사하니 그 재덕을 칭찬 아니하는 이 없더라. 지경이 옹주께 편지하여 묻기를 극진히 하고,
하루는 상께 주왈, "박씨 비록 죄 중이오나 국은 후는 그렇지 아니하오니 신설 하오시면 마땅하올 듯 하오이다." 상이 불열하시니, 또 다시 주왈, "정굉필은 은사함이 마땅하오이다." 상이 조광조 신설온 허치 아니하시고 정굉필은 사하시고, 다시 정승하이시니 받지 아니하다. 지경이 이십 사 세에 동부승지 하였더니, 상이 유명하사 붕어하시고, 세조가 즉위하시니 시호는 인종이라 초상을 마치시고 지경을 보시며 유체하사 왈, "옹주는 과인의 골육 동거라 경이 데려다가 전과 같이 말고 중대하여 살면 내 죽어도 한이 없노라." 지경 이 울고 사례왈, "오늘 하교를 간폐에 새겨 잊지 아니하오리다." 하고 즉시 인마를 보내여 옹주를 데려오니, 옹주가 돌아와 보매 부왕이 마저 없으시고 의지 없으니 더욱 서러워함이 가히 없어 따라 죽고자 하더니, 상이 불러 보시고 붙들어 통곡왈, "이제는 전과 다르니 위 높음을 가세말고 가부를 공경하고 구고를 효성으로 섬기고 동렬을 사랑하여 조심하여 살라." 하시고, 주시는 것이 부항 때보다도 배나 더하더라. 옹주가 집에 오니 부마가 조상하고 은근함이 극진하니, 옹주가 감격히 여기는 중 최씨 옹주 대접을 극진히 공경하여 친동기 화목함 같이, 옹주 출입에 일어나 맞으니 부마가 "이는 너무 과하도다." 최씨 답왈, "옹주는 비록 어미 죄 있사오나 양선제의 탁고하신 말씀이며, 옹주는 왕녀요, 주상이 상공에 탁고하신 말씀이 간절히 슬프고 우리 부부 생존함이 선왕 성덕이시니 더욱 공경하나이다." 하니 그 지현을 탄복하여 더욱 개정하더라. 지경이 대사간이러니, 상소하여 남 정 등이 직관에 멀둥하여 꿀로 글시 사화 지은 말을 떨고, 사이에 의논하던 편지 두 장을 첩부하여 아뢰니, 상이 남 곤, 심 정 등은 국문하여 처결 안치하시고 조광조 신원은 듣지 아니하시는 선왕이 아니 계시기 허치 아니하시다. 하루는 윤공이 제 자부를 앞에 거느리고 기뻐하며 이르되. "석일 네 최부의 단순을 접하고 꾸리 감아 주며 좋은 서답하여 주더니 노부 보는 데는 아니하고 중사 있는데는 어찌하였느뇨. 이 또 하여 웃게 하여라." 부마가 소이대왈, "이 다 소자의 변화 계교이나이다. 또 하라시면 어렵지 아나하여이다." 최 부인이 언파에 옥면에 흥광이 취집하여 일어나니 공이 옥수를 잡고 옥빈을 어루만지며 가뢰되, "어렇듯 다름답거든 어찌 아자를 책하리오." 하니 만좌가 다 칭찬하더라. 조정과 벗들이 기롱하여 이르되, "꾸리 감는데 시간이 어디 있으리." 하더라, 차회라. 상이 집상하시기 과도하사 상후 중하시니, 부마가 깨어 들어가니, 상이 손을 잡고 울며 왈, "짐짓 충신이로다. 내 아마도 살지 못하겠으니, 경원군이 덕이 있으니 입후하고 네 안으로 정사를 도우라. 옹주를 화락하니 내 죽어도 한이 없으리로다. 또 조광조 신원을 여러 번 간하되 허치 아니했더니, 신원하게 하라. 친이 쓸 길 없으니 네 쓰라." 우왈. "경원대군을 도와 모후의 선왕 후궁 대접하기를 극진히 가르치라. 네 매양 정굉필의 업적을 성묘에 배양할 사람이라 하더니 내 장저에 있을 제 사적을 기록하였더니, 이제 생각하나 부족함이 없으니 경이 알아 사후에 성묘에 더하라." 우왈, "경의 처 최씨 가장 어질어 내 누이를 극진히 대접한다 하니, 크게 기특한지라. 상을 주나니 무명과 옷을 주어 그 현덕을 표하노라." 써 내관을 맡기시니 지경이 이렇듯 상후가 평복지 못하심을 알고, 훙격이 막혀 눈물이 만연하니 상이 거들떠보시고 한숨지어 돌아 누우시더라.
삼 일 만에 승하시니 지경의 설움이 부모상에 감치하니해 초상을 마치고 상께 품하여 조광조 등 신원 관작하고, 정굉필, 이언적을 사후에 배성묘하게 하다. 지경이 청렴하고 어진 덕이 일국을 기울이니, 상이 중대하시고 기리는 소리 진동하더라. 지경이 거가체 부모께 효도와 형제 우애 비길 데가 없으니, 운공이 치사하고 들어 매양 이르되, "내 아들 두었다 하리로다." 자랑하며 너무 혹처하여 살할까 두려워하더라. 옹주가 최씨를 감격하여 지극히 조심하고 존고의 내림이 없이 받드니 조금하여 옹주의 어짐이 최씨에 지지 아닌지라, 부모가 그 정사를 장히 여겨 진중 후대하니 인묘의 간절히 의탁함이요 또 충성이 지극함이더라. 하루는 부마가 술 먹고 옹주의 무릎 베고 강개히 노더니 사형이 들어와 소왈, "자산아 옹주를 저만치 대접할 것을 그대도록 매몰하여 군상께 죄를 얻었는다." 부마가 소이대왈, "남자가 이렇게 매몰하리이까. 그때는 박씨의 준 배요 이제 중대함은 양선왕의 부탁함이로소이다." 차형이 소왈, "네 진사하였을 계 성천 여기 녹운선을 대하여 청산 녹수로 언약하였더니, 내 어제 대궐에서 나오다가 만나니 경선 공주 시녀로 있노라 하고, 네 말을 묻고 울며 가로되, 그 영감이 옹주로 꾸기시기 감히 다시 와 뵈옵지 못하고 수절하여 있삽더니 서울 온 지 해포 되었으되 찾지 아니하시니 무심한 것은 남하고 서러워 우니, 네 불러 보고 다시 옛정을 이음이 어떠하뇨." 부마가 왈, "만물이 변하여 청산 녹수인들 아니 변하리이까. 가중에 꽃같은 부인을 두고 삼십대 재상이 처녀 첩을 두리니까. 생각하면 녹운선이 절통하떠이다. 소제 최씨께 순히 입장할 것을 녹운선이 마장이 되어 칠 년을 꾸겼나이다." 하니 서로 웃더라. 최 부인에게 삼자 이녀요, 옹주에게 이자 이녀더라, 명 묘 중년에 지경이 좌의정 하였더니 명묘 후사 없이 승하시니 여의정 이출경이 원인대신 신중업 등으로 잠저에 선묘 대왕을 맞아와 복귀하고, 부부 삼 인이 종고 화락으로 험 없이 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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