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1/2)
화설, 아조 인조조 때에, 전라도 남원 부사 이등이 한 아들을 두었으니 이름은 령이라. 연광이 십육에 관옥의 기상과 두목지 풍채와 이 백의 문장을 겸하였으니, 칭찬 않는 이 없더라. 책방에 있어 신성지여에 학문을 힘쓰더니, 때는 방춘화류 호시절이라. 초목군생지물에 개유이자락하여, 너구리 넛손자 보고, 두꺼비 순산하고 면산의 불탄 잔디 밤비에 속잎 나고 진처사 옲문은 초록장 드리운 듯, 뒷동산 녹음중의 꾀꼬리 환우이라. 소년 과부 새벽달 봇짐 봇짐 쌀 때러라. 춘흥을 못 이기어 화류차로 방자 불러 분부하되, "내 고을 구령처가 어디어디 좋은고." 방자 여짜오되, "관동 팔경과 해주 매월당, 진주 촉석루, 평양 봉부벽루, 성천 강건루, 황주 월파쌍성 호이라 하오되 절승한 경개는 남원 광한루 경치를 따를 길 없삽기로 팔도에 유명하와 일컫기를 소강남이라 하나이다." 이도령 말이, "만일 네 말 같을진데 제일 강산이로다. 아모커나 광한루 구경차 포진거행하라."하고 방자놈 앞세우고 탄탄대로로 마음심자 갈지자로 세류 춘풍에 명맥의 걸음으로 뒷동뒷동 걸어 광한루에 다달아 뒤짐지고 배회하며 방자 불러 하는 말이, "악양루 봉황대 풍광과 황학루 고소대 경치가 이에서 더할소냐." 방자놈 속여 여짜오되, "경개 이렇기로 일기 청명하면 운무 잦아지고 종종 신선이 내려와 노나이다." 도령 왈, "그럴시 분명하다." 이 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 추천자로 위복 단장 치레할 새, 아리따운 고운 양자 팔자 청산을 춘색으로 반분대 다스리고, 호치 단순은 삼색도화미개종이 하룻밤 찬 이슬에 반만 핀 형상이요, 흑운 같은 허튼 머리반달 같은 화룡유 솰솰 흘리빗겨 전판 같이 넓게 땋아 자저 항라 너른 댕기 맵시 있게 들였구나. 맥저포, 깨끼적삼, 보라내단, 속저고리, 물명주, 고장바지, 맥방수화주, 너른 바지, 광월사 곁막이 난봉 항라 대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 입고, 대단낭자 삼승 버선 자지 향직 수당혜를 날출자로 제법 신고, 앞에는 민적절 뒤에 금봉채 손에 옥지환귀에 일기탄이요, 노리개 더욱 좋다. 이궁전 대방전 인물향 산호가지, 밀화 불수, 금사오리, 옥장도를 오색당사 끈을 꿰어 양국대장 병부 차듯 남북병사 동개 차듯 휘늘어지게 차고 만첩청산으로 기엄 둥실 올라가며 꽃도 주루룩 훑어다가 맑고 맑은 구곡수에 풍덩 띠워도 보며 두 손으로 시내에 조약돌도 덥썩 쥐어다가 양유간에 훨훨 던져 꾀꼬리도 날려보니 근들아니 경일소냐. 흥에 겨워 점저 올라가서 장장 채긴 그넷줄을 섬섬옥수로 이리저리 갈라 쥐고 몸을 날려 올라 한 번 굴러 앞줄이 높고 두 번 굴러 뒷줄이 높아 공중에 소굿쳐 백능 버선 두 발길로 작작 도화 늘어진 가지 툭툭차니, 날리나니 낙화로다. 뒤에 지른 금봉채가 반석상에 떨어져 쩡그렁 쩡그렁 하는 소리 근들 아니 경일소냐. 한창 이리 노릴 적에, 도령이 배회 고면하여 산천도 구경하며 잊은 글귀를 생각다가 문득 녹음간 어떤 일 미인이 추천하는 양보고 심신이 황홀하여 급히 방자 불러 묻는 말이,
"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 방자 대답하되, "어디 무엇이 뵈나이까." 도령 왈, "아따, 저 건너 뵈는 것이 부엇인고. 선녀 하강하였는가 보다." 방자놈 대답보소. "방장, 봉래, 영주, 삼신산 아니어든 선녀 어이 이 곳에 있으리까." "그러면 무엇인고. 금이냐?" "금성여수라 하오니 여수 아니어든 금이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옥이냐?" "옥출곤강이라 하오니 곤강이 아니어든 옥이 있으리까." "그러면 해당화냐?" "명사십리 아니어든 해당화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귀신이냐?" "북방산 아니어든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도령이 역정내어 왈, "그러면 무었이냐?" 방자 그제야 여짜오되, "다른 것이 아니오라,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로소이다." 도령 말이, "얼싸 좋을 씨고, 제 본이 창녀면 한 번 구경 못할소냐. 방자야 네가 불러오라." 방자놈의 거동 보소. 입 쪽쪽 고라진 허리 참나무들 웃동 찍고 아래 잘라 거꾸로 집고 탄탄대로로 진 데 마른 데 헤지 않고 우당퉁탕 걸어가서 헐덕이며 눈 위에 손을 들어, "춘향아. 춘향아." 방자 대답하되, "큰일 났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재촉하니 춘향이 하는 말이, "이 몹쓸 아이야. 사람을 그다지 놀래느냐. 내 추천을 하든지 그네를 뛰든지 대수랴. 춘향이니 사향이니 침향이니 강진향이니 너더러 도련님께 일러바치랏더냐." 방자놈 말이, "추천인지 그넨지 은근한 곳에서 너구 나구 할 것이지, 광한루 가까운 요런 똑바라진 등성마루에 매고 뛰라더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산천 경개 구경코자 광한루 올랐다가, 녹음중 추천하는 네 거동 사래 혀 보고, 성화같이 불러오라 분부 지엄하니 아니가던 못하리라. 네 만일 갔으면, 우리 도련님이 신궁둥이라, 네 향리로운 말로 초친 무렵을 만든 후에 네 항라 속것가래를 슬쩍궁 빼다가 돌돌 말아 네 왼편 볼기짝에 붙였으면 남원 것이 다 네 것이 될 것이니 그 아니 좋을쏘나." 춘향이 하릴없이 삼단같이 허튼 머리 제 색으로 집어꽂고 난봉항라 대단치마 섬섬옥수로 거두쳐 맵시 있게 빗어 안고, 방자놈 따라 행심 일경 빗긴 길로 백모래 마당 금자라 기듯,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의 걸음으로, 행뚱행뚱 바삐 걸어 계하에 이르러 문안을 아뢰니, 도령이 눔꼴이 다 틀리고 정신이 표탕하여 두 다리를 잔뜩 꼬고 서서 하는 말이, "방자야, 네 하정이란 말이 되는 말이냐. 바삐 오르게 하라." 춘향이 마지 못하여 당상에 올라 예필좌정후, 도령이 문왈, "네 나이 몇이며 이름이 무엇인다." 춘형이 아리따운 소리로 요짜오되, "소녀의 나이 이팔이요, 이름은 춘향이로소이다." 도령이 웃으며 왈, "네 이팔이 십육이 나의 사사십유과 정 동갑이라, 어찌 반갑지 아니리오, 이름 춘향이라 하니 네 형용이 이름과 같도다. 절묘하고 어여쁘다. 매화월미에 두루미도 같고, 썩은 나무에 앉은 부엉이도 같고, 줄에 앉은 초록 제비로다." 하고 또 묻되, "네 생일 이 어늬 땐고." 춘향이 여짜오되, "소녀의 생일은 하사월 초파일 자시로소이다." 도령이 웃고 왈, "사월이라 하니 날과 동년 동월이니 천장배필이어니와 다만 일시가 틀리니 그것이 한이로다." 하고, 앞에 앉히고 어루는 형상은 홍문연 잔치의 번쾌가 항우를 미워보아 두발이 상지하고 목자진열하여 큰칼빼어 검무하는 형상이요, 구룡소 늙은 용이 벽해를 오르고 여의주 어루는 형상이요, 만첩천산 백액호가 큰 개 잡아 앞에 놓고 흥을 겨워 어루는 형상이라. 좌불안석하여 이른 말이,
"너를 부른 뜻은 다름 아니니, 나도 서울서 삼월춘풍화류시와 구황국시에 화조월석 빈 날 없이 주사청루에 만준향은을 진취하고 절대가인 결연하여 청가묘무로 세월을 소견하였거니와, 금일 너를 보매 세간 인물이 아니로다. 정신이 황홀하여 불승탕전이라. 탁문군의 거문고에 월로승 맺어 두고 백년가약을 세세생생이 누릴까 부름이라." 하니, 춘향이 이 말 듣고 아미 숙이고 여짜오되, "소녀의 몸이 비록 창가여자오나 마음은 북극천문에 턱을 걸어 남의 별실이 되지 말자 맹세하였사오니 도련님 분부가 이러하시나 이는 봉행치 못하리로소이다." 도령 왈, "육례는 비록 갖추지 못하나 혼인은 착실한 혼인이 될 것이니 잡말 말고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만일 허락한 후 사또께옵서 필경 갈리시면 도련님은 올라가고 관대가에 성취하 금슬지락으로 세월을 보낼 적에 날 같은 천첩이야 생각할까. 속절없는 이내 일신 개밥에 도토리 되리니, 아무리 하여도 이 말씀 시행치 못할소이다." 도령이 만단 개유하여 이르되, "만일 불행하여 사또께서 경직으로 올라가실 터이면 너를 설마 버리고 갈소냐. 우리 대부인은 삿갓가마에 모실지라도 너는 쌍경자에 달려갈 것이니 염려말라. 양반이 일구 이언은 아니리니 바삐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그러하실진대 먹의 찌는 삭는 일이 없삽고, 관가는 종문권시행이라 하오니, 혹 실신지폐 있은즉 후일 상고차로 불망기하여 주소서." 도령이 희부자승하여 화전을 펼치고, 요연에 먹을 갈아 황모필에 흠썩 묻혀 일필휘지하였으되, "모년모일 춘향전 불망기라. 우불망기단은 우연히 산천 구경코자 광한루에 올랐다가 천생배필을 만나니 불승탕정이라, 백년가약을 밎기로 상약하되 일후 만약 배약한는 폐 있거든 이차문기로 고관 변정사라." 하였더라. 춘향이 받아 이리접고 저리 접쳐 금낭에 넣은 수에 또 여짜오되, "무족지언이 비천리라 하오니, 만일 이말이 누설하여 사또께서 알으시면 소녀는 속절없이 죽을 터이오니 부디 삼가소서." 도령이 웃고 왈, "사또 소시에도 시큰둥하사 주사청루에 다녀계신지 모르거니와 각접 통지기 방에 방귓내를 무수히 맡으러 다녀 계신지라, 이런 일 안다손 관계하랴, 부디 염려말라." 하고 이렇듯 담소하다가, 춘향더러 묻되, "네 집이 어디뇨." 춘향이 옥수를 번 듯 들어 대답하되, "이 산 너머 저 산 너머 한 모퉁이 지나가면 죽림심처 돌아 들어 벽오동 섰는 것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도령이 춘향을 홀연 보낸수에 책방으로 돌아와 정신이 산란하여 진정할 길 없는지라, 마지 못하여서 책을 보려고 펼쳐 놓은즉, 글자마다 춘향이요, 글귀마다 춘향이라. 한 자가 두 자되고 한 줄이 두 줄이 되어 모두 춘향이라. 이렇듯 성화하여 이 책 저책 대문대문 읽어 보니, "하늘천 따지 감을현 누루황."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취귀하니." "천황씨는 이목덕으로 왕하여 세기섭제하여 무위이화하니 이십삼대라." "초명진대부 위사 조직 한건하여 위제후하다." "원형리정은 천도지상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지강이니라."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역장유이리오국호잇가." "관관저구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왈약계고제요한대." "건은 원코 형코 이코 정하니라." 하다가 하는 말이, "이 글을 못 읽겠도다. 글자가 다 뒤보이는 구나. 하늘 천자 큰대되고, 사략이 노략이 되고, 시전이 선전되고, 서전이 딴전되고, 통감이 곶감되고, 논어가 붕어되고, 맹자가 탱자되고, 주역이 누역이 되어, 뵈는 것이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년대한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년지수에 햇빛같이 보고지고, 무월동방에 불현 듯이 보고지고, 통인, 방자, 군노, 사령, 별감, 좌수, 약정, 풍현, 급창이 거진 다 춘향으로 뵈고, 왼집안이 다 춘향이라, 이를 어찌하잔 말고. 보고지고 잠깐 보고지고." 라며, 전전반측하여 소리나는 줄 깨닫지 못할 즈음에, "네 바삐 책방에 가서 도련님더러 글은 아니 읽고 무엇을 보고 지고 하는고 자세히 알아오라." 하고 연하여 보고 지고 하다가, 방자 불러 묻는 말이, "해가 얼마나 갔는고." 방자 하늘을 가리켜 왈, "이제야 백일이 도천중하였나이다." 도령이 심중 자탄왈, "어제는 저 날이 뒷덜미를 치던지, 그리 수이 가더니, 오늘은 뒤를 결박하였는지 어이 그리 더디 가는고. 날이 용심도 불량하다." 이윽고 방자 석반을 올리거늘 도령이 한는 말이, "밥인지 무엇인지 해가 얼마나 남았느뇨." 방자 여쭈오되, "일락함지하고 월출동령하나이다." 도령이 동헌 퇴등하기를 기다려 몸을 숨겨 가만히 성을 넘어 방자놈 따라 감돌아 풀돌아 훨쩍 돌아들어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라.
이 때 춘향이 만뢰구석한데 사창을 반개하고 벽오동 거문고에 새줄 얹어 무릎 위에 놓고 대엿날 곡조를 자탄자가하여 당지덩 둥둥지 덩동당슬 이렇듯 노닐 적에, 방자 문에서 춘향 어미를 부르니, 춘향 어미 나와 본즉, 책방 도련님이어는 가장 놀라는 체하며 이른 말이, "이 어인 일이오. 사사또께서 알으시면 우리 모녀 다 죽을 것이니 돌아가라." 하거늘, 이도령 하는 말이, "관계치 아니하니 바삐 들어가자." 한 대, 춘향어미 위뭉주머니라 속으로 딴 마음먹고, "잠깐 다녀가라." 하고, 이도령 앞세우고 들어갈 제, 춘향의 집을 살펴보니 사면팔작 입구자로 고주대문 안 사랑에 안팎주문 줄행랑이 즐비하고, 층층벽창 처헌 다락이며, 대청 육간, 안방, 삼간, 건너방 이간, 차방 방간, 부겨한간, 내의 분합 물림퇴에 구울 도리 선자 추녀 대접받침 분명하다. 완자창 가로닫이 국화새김 제법이다. 부엌 삼간, 과사간, 마구 삼간 근검하다. 백릉화 도매에 청릉화 띠를 띄고, 각장 장판 소란 반자 당유지 굽도리 제격이라. 서화부벽 입춘서는 만고재사 솜씨로다. 동벽에는 진처사 도연맹이 팽택려 마다하고 추강에 배를 띄워 청풍명월에 흘리 저어 삼양으로 향하는 경을 그렸고, 서벽에는 삼국풍진 요란시에 한 종실 유현덕이 적토마 바삐 몰아 남양초당 풍설중에 와룡 선생보려하고 지성으로 가는 형상을 그렸고, 남벽에는 강태공이 선팔십 궁곤하 위수변에 갈 삿갓 숙여 쓰고 줄 없는 낚시를 드리우고 주문와 기다리는 경을 그렸고, 북벽에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 진이 춘풍 것교상에 팔선녀 만나 육환장을 백운각에 흩던지고 합장배럐하는 경을 그렸고, 해학반도십장생을 횡축으로 붙여두고, 부엌 문에 열오정제팔신이요, 고앙문에 취지묵궁 용지불갈이요, 방문 위에 부모 천년수 자손만세영이요, 대문에는 울지경덕 진숙보를 도화서에 마쳤든가. 춘도문전증부귀는 문 위에 가로 붙었구나. 뒷동산에 산정 짓고, 앞 연못에 연당을 지어 두고 숙석으로 면을 맞춰 층층쭉을 무였구나. 쌍쌍 비오리징경이며, 대접같은 금붕어는 물계위 둥실 떠서 이리로 출렁 저리로 꿈틀 노는구나. 삼층화계 살펴보니 동편에 배설백, 서에 백학영, 남에 호학령, 북편에 금사오죽, 가운데 황학령이며, 노송반송 월사계 왜철쭉, 진달래, 석류, 들쭉, 종려, 모란, 작약, 치자, 동백, 춘계동매, 분도, 포도, 어여쁘다. 연산홍 이름 봏다.백일홍, 이름좋다.백일홍, 인물일새가 붕선화, 키 크다. 파초잎 향기롭다. 산국화 늘어졌다. 원추리 당명황의 양귀비를 여기저기 심었구나. 집물 치레볼짝시면 위금 돌미장 좋은 머리, 장 자개함롱 반다지 왜경대 가께수리 계자 다리 옷걸이며 철책 퇴침 벼구, 집피 행담 쌍봉 그린 빗접 고비 용두머리 장목비며 청동 화로 전대야, 유경 촛대 광명두리, 요강, 타구, 재떨이, 쌍상이 벌여놓고 이층 찬장 삼층탁자, 괴목 뒤주, 반닫이며 당화기, 서산사발, 동래 기병 실굽달이, 용중항은 분원봉사하든가. 춘향의 거동 보소. 계하 바삐 내려 옥수를 덥썩 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정후 대객에 초인사는 당수복, 현수복의 부산죽 서천작 소상반죽 양칠간줒 각죽 칠죽 서산용죽 백간죽이 수수하다.
이름좋은 금산초며 장광 좋은 직산초며, 수수하다. 영월치며, 향기롭다. 성천처요. 불 잘 타는 남의 초요, 빛이 좋은 상관초며, 서초 양초 장절초며 숭숭 썰은 풋담배를 너울지게 붙였고나. 방치레 살펴보니 호피방장 걷어치고 대병 중병 소병풍에 소상팔경 호렵도며, 곽분양의 행락도며, 왕희지 노정연과 모란초충 백자동과 배란송죽 곡병이며, 돌돌 말아 봉족자며 문갑위에 산호 필통 사방탁자 어항이요, 국기판 시계판과 자명종을 걸었으며, 금농과 앵무새며 천하지도 붙여두고, 거뭉고, 양금, 생황, 단소, 개약고를 곁들여 놓고 양금, 비취침에 자줏빛 천이 더욱 좋다. 춘향이 주찬을 갖추어 은근히 드리니 갖은 음식 풍성하다. 팔모접시 대모반에 강화 닭 두메 꿩에 대양푼에 갈비찜, 소 양에 제육초, 두귀 발쑥 송편이며, 먹기 좋은 화전이며 송기떡의 웃기로다. 봉산 참베 양주 밤과 남양 연시, 보은 대추봉, 전목 염통산적, 양 볶이 죽순 나물, 씀바귀를 곁들여 놓고 청포도 혹 포도, 머루, 다래 유자, 감자, 능금, 석류, 참외, 수박, 개암, 비자, 춘당 매당, 오화당, 초장, 겨자, 생청, 흑청 틈틈이 괴어 놓고, 각색 술병 놓았으되, 꽃 그린 왜화병, 벽해수상 거북병, 몸거위병, 이적선의 포도주, 진처사의 국화주, 마고 선여의 천일주, 과하주, 산중처사 송엽주며, 일년주 백화주 감고 감흥로, 죽력고, 계당주, 황소주, 과하주, 청주, 모주, 막걸리, 모두 합해 혼돈주를 노자작, 앵무배에 가득 찰찰 가뜩 부어 도련님께 권할 적에, "물로초로 술을 밎어 만년잔에 가득 부어 잡수시오. 이 술 한잔 잡수시면 하오리다. 남산수를 제것 두고 목 먹으면, 왕장군의 고자로다. 인생 한 몸 돌아가면 뉘라 한잔 먹자하리. 살았을 제 이리 노세." 도령이 술에 반취하여 춘향더러 갖은 소리를 다하여 흥을 돋우라 하니 연하여 부르되, "군불견황하지수천상래한다. 도해명명불부회를 우불견 고당명경비백발하다. 조여청사모성설을 인생득의수진환이라.
막사금준공대월하소." "노세, 젊어 보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이 일장춘몽이니 아니놀구." 도령이 술을 진취토록 먹은 후에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며 왼가지로 힐난할 제, 이미 삼횡두전야오경이라. 춘향이 민망히 여겨, "이미 월락야심하였으니, 그만저만 자사이다." 도령이 좋다하고 먼저 벗기를 서로 힐난할제, 도령 왈, "아무리 취중이나 그저 자기 무미하니 글자타령 하여 보자." 하고는 세잔 경작 먹은 후에 글자를 모이되,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자 비점이요, 우리둘이 마주 섰으니 좋을 호자 비점이요, 백년가약하였으니 즐길 낙자 비점이요ㅏ 야반무인 사람 없으니 벗을 탈자 비졈이요, 한 베개 둘이 베니 누울와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몸되니 안을 포자 관주요, 두 입이 마주 닿니 법중여자 관주요, 네 아래 굽어 보고 내 아래 굽어보니 웃음 소자 관주로다. 남대문이 개구멍이요, 인경이 매방울루이요,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푼이요, 하늘이 돈짝 같고 딸이 맴돈다."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춘향더러 이른 말이, "인연이 지중하여 우리 둘이 만났으니 인자 타령 하여 보자." 하고 모았으되, "임하하증견일인, 월명고루유미인, 금일번성송고인, 비입궁중불견인, 양류청청 도수인, 불견 낙교인, 푸설야귀인, 귀인, 천인, 노인, 소인, 통인으로 인연하여 양인이 혼인하매 너의 대부인이 증인되니 즐겁기도 그지없다." 춘향이 여짜오되, "도련님은 인자를 달았으니 소녀는 연자를 달아 보리이다." "우락중분비백년, 호기장구오륙년, 인노증무갱소년, 상빈명조우일년, 함양유협다소년, 경세우경년, 천년, 만년, 우연히 결연하여 백년이 정년이라." 하니 도령 왈, "양인이 다정하니 천만세를 기약이라. 나는 죽어 새가 되고 난봉, 공작원양, 비위, 두견, 접동 다 버리고 청조라 하는 새가 되고, 너는 죽어 물이 되되 황하수, 폭포수, 구곡수 다 버리고 음양수란 물이 되어 주야장천 물에 떠서 둥실둥실 놀자꾸나. 너는 죽어 회양 금성 들어 가서 오리목 되고, 나는 삼사월 칡덩굴이 되어 밑에서 끝까지 끝에서 밑까지 나무 끝끝들이 휘휘친친 감겨 있어 일생 풀리지 말자꾸나."
이렇듯 즐기다가 날이 새면 몸을 빼어 돌아오고 어두우면 천방지방 날아 가서 자취 없이 다니기를 여러 날이 되었더니, 이 때 남원부사 선치함을 성상이 들으시고 승품으로 호조판서를 제수하시고 패초하시는 문첨이 내려오니, 부사 택일발행할새, 도령을 불러 이르되, "너는 내행을 모시고 먼저 올라 가라." 하니 도령이 이 말 들으매 낙담상혼하여 목이 메어 겨우 대답하고 내아에 들어가 치행 제구를 차리는 체하거고, 바로 춘향의 집으로 가니, 춘향이 바삐 나와 도령의 손을 잡고 목이 메어 울며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 "이 일이 어인 일고. 이 설움을 어찌 할고, 이제는 이멸이 절로 될지라. 이별이야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 볼 임이로다. 이별마다 슬프다 하되, 살아 생이별은 생초목에 불이로다.초생 이별이야 이별이 원수로다. 남북에 군신 이별, 역로에 형제 이별, 만리에 처자 이별, 이별이 다 슬프지만 우리같이 슬픈 이별 또 어디 있을손가. 답답한 이 술픔을 어이 하리." 도령이 두 소매로 낯을 씻고 훌쩍 훌쩍 울며 하는 말이, "울지 마라. 네 울음 소리에 구곡간장 다 놋는다. 울지 마라. 우지 될라. 평생에 원하기를 너는 죽어 꽃이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 삼촌이 다 진토론 떠나 살지 말겠더니 인간에 일이 많고, 노물이 시기하여 금일 이별을 당하나 설마 장이별이 될소냐." 춘향 울며 왈, "도련님 올라가시면 나이 일신 그 아니 가련하오. 늘 바라고 살잔 말고 하지일과 동지야에 이 시름을 어이 하잔 말고. 날 죽이고 올라가오." 도령 왈, "사또께서 호조판서를 맡으시고 이 고을 풍헌이나 하시더면 이 이별이 없을 것을, 내게는 이런 원수가 없다마는, 울지마라 우리연분은 청송녹죽 같아서 무너지고 끊어질 즐 없을 지니, 설마 후일 상봉하여 그리던 회포를 못 펴 볼까." 애련지심을 서려 담고 마지못하여 이별할새, 눈물을 금치 못하는지라. 도령이 금낭을 열고 면경을 주며 왈, "장부의 어엿한 마음 이 면경과 같아서 변치 아니리라." 춘향이 답왈, "도련님이 이제 가면 언제나 오려시오. 절로 죽은 고목 꽃 피거든 오려시오.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땅땅 치고 꼬끼요 울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의 물 밀어 배 둥둥 뜨거든 오려시오." 하며, 옥지환 벗어 내어 도련님 주며 왈, "계집의 높은 절개는 이 옥지환과 같을 지라. 천만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하리까." 도령이 노래를 지어주니 하였으되, "조이 있거라. 조이 다녀오마. 간들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잠깨어 옆에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춘향이 받아 보고 화답하되, "간다고 슬퍼하오. 보내는 내 한도 있소. 산첩첩 수중중한데 평한히 가오. 가다가 긴 한숨 나거든 낸 줄 아오." 하였더라. 십리 밖에 나와 전송할새, 춘향이 여짜오되, "떠나는 회포는 측량 없거니와 부디 학업이나 힘써 입신양명하여 부모께 영화 뵈고 나도 수이 찾으시오. 머리 위에 손 얹고 기다리이다." 도령이 답 왈, "그런 말이야 어찌 형언하리. 부디 신을 지키어 오기를 고대하라." 하고, 마지못하여 말에 올라 서울을 향할새, 돌아보고 돌아보니 한 산 넘어 오 리 되고 한 물 건너 십 리 되매, 춘향의 형용이 묘연한지라. 할 수 없이 장우단탄을 벗을 삼아 올라가니라. 춘향이 눈물을 씻고 북천을 바라보니 임이 떨어졌는지라. 하필 하릴 없이 집에 돌아와 의복단장 전폐하고 분벽사창 귿이 닫고 무정 세월을 시름 속에 보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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