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전
'인현왕후전'중, 왕후의 즉위로 파란곡절을 겪은 뒤 승하하는 대목까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후께서 즉위하신 뒤 두 분 전 대비마마를 효양하심에 하늘에 빼어난 효성과 상감을 받들어 궁안을 다스리심에 덕으로써 인도하여 유순하시고 정정하시며, 비빈 궁녀를 거느리시는 데 있어서도 은애가 병행하시어 선악과 친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사람을 아기고 사랑하는 화기가 봄동산 같으시어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니 대궐 안이 모두 성덕을 흠선하고 두 분 대비께서 극진히 애중하시어 국가의 복이라 축수하시고 상감께서도 공경 중대하시며 조야가 모두 흠복하더라. 이 때 궁인 장씨가 비로소 후궁에 참예하여 희빈을 봉하시니, 간교하고 민첩하여 임금 뜻을 잘 영합하니, 상감께서 극히 총애하시더니 무진년 정월에 상감 춘추가 삼십이 거의 되었건만 아직 왕자 없음은 근심하시는지라, 후 깊이 염려하사 조용히 상감께 아뢰어 어진 후궁을 뽑으시어 자손을 보심을 원하시나, 상감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더니 후가 날마다 힘서 권하여, 한 여자의 출산을 기다리노라고 막주한 종사를 가벼이 못할 것으로 간절히 아뢴, 정정한 덕과 유화한 말씀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분명하였다. 상감께서 감탄하시고 드디어 숙의 김씨를 뽑아 후궁에 두시니 후께서 예로 대접하시고 은혜로 거느리시니 덕학이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르지 아니하였다.
무진년 시월에 희빈 장씨 처음으로 왕자를 낳으니, 상감이 지나치게 사랑하심은 이를 것도 없고, 후도 크게 기뻐하시어 어루만져 사랑하심을 당신이 낳으신 친자식과 같이 하시니, 장씨 자기 분수를 지키고 있었더라면 영화가 가득할 것이로되 문득 참람한 뜻과 방자한 마음이 불 일어나듯 하니, 중궁의 성덕과 아름다운 자태가 일국에 솟아나고 인망이 다 돌아가고 있음을 시기하여, 가만히 남 몰래 제거하고 대위를 엄습하고자 하더니, 그 참소하기를, 새로 태어난 왕자를 숨을 막아 죽이려 한다느니, 희빈을 저주한다느니 하여 국모를 헐뜯고 모함하지 아니함이 없어, 간악한 후빈들을 힘을 합하게 하여 소문을 퍼뜨리고 자취를 드러내어 상감이 보시고 들으시게 하니, 예로부터 악인이 의롭지 않으나 돕는 자가 있다더니 과연 그러한가 보더라. 중궁을 간해하는 말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상감이 점점 의심하시게 되어 중궁을 아주 박대하시고, 장씨는 악한 교태로 천심을 영합하여 왕자를 방패삼아 권세가 대단하니 상감이 점점 장씨의 사랑에 빠지시어 능히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시니, 전날에 엄숙하고 광명하시던 성심이 아주 변하시어 어진 신하는 모두 물리치시고 간신을 반겨 쓰시니, 조정이 그윽히 의심하고 후께서는 깊이 근심하시어 장씨의 사람됨이 반드시 변괴를 낼 줄 아시나, 왕자의 당당한 상이 있는 고로 깊이 생각하시고 만행이 여기시어 사색을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갈수록 현숙한 덕과 정성스러운 마음씨를 드러내시되 상감의 마음은 더욱 멀어지시니 기사년 사월 이십 삼일 드디어 폐비의 전교가 나리니라. 좌승지 이이만이 불가함을 간하니, 상감께서 크게 노하시어 승지 이이만은 파직하시고, 수찬 이만원이 또 간하니 상감께선 더욱 노하시어 멀리 귀양 보내라 하시니, 이렇듯 대신 중신 사십여 인을 먼 고을로 정배하시고 또 비망기를 나리시니 간신의 간사한 말이 상감의 뜻을 영합하고 후궁의 간사한 기운이 상감의 총명을 가리우니, 양과 같이 선량한 충신의 간언이 무슨 효험이 있으리오. 이 때 응교 벼슬에 잇는 박태보 여러 동지들과 합소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폐비의 불가함을 간했다가 잡혀 들어가니 상감이 어좌에 앉으시어 소리지르사 응교더러 말씀하시기를, "내, 네놈을 자식처럼 어여삐 여긴 지 오래거든 이제 나를 배반하고 간악한 부인을 위하여 무슨 뜻을 받아 간특 흉악한 노릇을 하는고?" 응교 엎드려 아뢰기를, "전하, 어이 이런 말씀을 차마 하시나이까? 군신 부자 일체라 하오니 아비 성품이 과하여 애매한 어미를 내치고자 하면 자식이 어이 살고 싶은 뜻이 있사오리까? 이제 전하께서 연고 없이 무고한 처사를 하오셔 곤위 장차 편안하지 못하게 되오니 의신이 망극하와 오늘날 죽사옴을 정하와 상소를 드리오니 어찌 전하를 반대하올 뜻이 있사오리까? 중궁을 위하온 일이 정히 전하를 위하온 일이오니 전하를 모셔온 중궁이 아니시니이까?" 상감께서 더욱 노하시어 이르시기를, "급히 결박하라. 이놈아, 네 갈수록 나를 욕하는도다. 내 너를 형문 치려니와 압슬과 화형기구를 차리어라." 하시고 되게 매질하시니, 대궐 안에서 매질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여 향교동까지 들리었다. 피가 낭자하게 튀기고 살이 헤지되 응교는 앓는 소리 한 번도 아니하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낯도 변하지 않으니 마치 헛것을 치는 것 같았다. 부동한 자를 대라 거듭거듭 이르시되 끝내 대지 아니하고 홀로 맡아 충절로써 간하니, 상감께서는 더욱 노하시어 압슬 기구를 차려 압슬을 하고, 큰 나무에 거구로 매달고 온 몸을 지지니 살이 다 녹아 온전한 데가 없고 검기가 숯덩이 같고 힘줄이 오그라져 보기에도 참혹했으니 어찌 살기를 바랄소냐.
이와 같이 하여 많은 충신들의 충간도 무릅쓰고 기어니 중궁을 내치게 되니 온 백성 차탄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때 후께서 부원군 장례 후 지나치게 애통하시어 옥체 불편하시더니, 좌우에 모시는 상궁이 이 말씀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바삐 들어와 후께 아뢰니 후께서는 안색도 변하지 않으신 채 트게 탄식하여 이르시기를, " 이 또한 하늘이 주시는 재앙이로다. 누구를 원망하리요. 그대들은 모두 명을 받들어 거행하도록 하라." 하시고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셨다. 명안 공주 이 변을 들으시고 크게 놀라 후께 비옵고 오열비탄하여 옷을 잡고 흐느껴 우시며 능히 말씀을 이루지 못하니, 후께서 탄식하고 위로하여 말씀하시되, "화와 복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나의 복이 없고 천한 탓인즉 다만 어명대로 받들어 모실 따름이라. 누구를 원망하리요마는 공주 이렇듯 동정하시니 은혜 잊을 길이 없소이다." 공주 그 덕망을 새삼 탄복하며, 차마 놓지 못하여 후를 붙들고 눈물이 비오듯 하니 무수한 궁녀가 다 울고 차마 떠나지 못하더니, 이튿날 감찰 상궁이 상명을 받자와 침전에 이르러 궁중께 내리신 전교를 아뢰니, 후 천연히 일어나서 예복을 벗고 관잠을 끄르시고 중계를 내려오셔 전교를 듣잡고 즉시 대내를 떠나 본가로 나오실 새 궁중이 통곡하여 곡성이 낭자하더라. 이 때 선비 오십여 명이 요금문 앞에 대령하였고, 백여 명은 구파문 앞에 엎디어 상소를 드리고 소리쳐 울더니, 후의 출궁하심을 보고 깜짝 놀라 미처 신도 신지 못한 채 버선발로 따라와 모여 일시에 크게 소리내 우니, 천지가 진동하고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을 막고 통곡하여 각종 상인들은 저자를 파하고 서러워하니 수심 띤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하늘의 해도 빛을 잃은 것 같았다. 후 본가로 나오시니 부부인이 마주 나오시어 붙들고 통곡하시니, 후도 부원군 옛자취를 느끼사 애원 통곡하시고 이윽고 부부인께 고하여 이르시되, "죄인의 몸으로 친족을 보는 것이 옳지 못할 것이니 나가소서." 전하시니 부인과 다른 이들도 통곡하여 마지못해 나가신 후, 당일로 명하사 안팎 문들을 모두 봉쇄하고 본가 비복들은 한 사람도 두지 않으시고 다만 궁녀만 두시며 정당은 폐하시고 아래채에서 거처하시었다. 집은 크고 사람은 적어 각 방이 다 비어 휘휘 고적한데 찬과 벽을 바르지 않으시고 넓은 동산과 집에 풀을 매지 않으니, 키 한 길만큼 자라 인적이 끊겼으니 귀신 날고, 저물면 예사 사람과 같이 다니니 궁인이 움직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더니, 하루는 난데없는 큰 개 한 마리가 들어오니 거동이 추한지라 궁인들이 쫓으되 또 들어오고 다시 쫓으되 또 들어오니 후께서 이르시기를, "그 개 출처 없이 들어와 쫓아도 가지 않으니 고이한지라. 내버려 두어 그 하는 양을 보라." 하시니, 궁인들이 밥을 먹이며 두었더니 십여 일 뒤 새끼 셋을 낳으니 가장 크고 모진지라. 이 후는 날이 저물어 망령의 도깨비의 자취 있으면 네 마리의 개가 함께 짖으니 잡귀 급히 물러나가 종적을 감추니 그로 이하여 집안이 편안한지라, 무지한 짐승도 도움이 있거든 하물며 신민이 잊으랴만 후 폐출하신 뒤로 조정에선 기뻐하는 소인이 많으니 도리어 금수만 못하리로다.
이 때에 상감께서 민후를 폐출하시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여 궁중의 조하를 받게 하니, 궁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러워하고 장씨의 처사를 분하게 생각하되 조정에 어진 사람이 없으니 누가 감히 말을 할 것인가. 그윽히 원분과 눈물을 머금고 조하를 마치니 희빈의 아비를 옥산 부원군으로 봉하고, 빈의 오라비 장희재를 훈련 대장을 시키시니 백성들이 모두 한심하게 여기고 기강이 흩어져 팔도의 인심이 산란하여 별의별 소문이 다도니, 대개 예로부터 어진 임금이라도 한 번은 참소의 말을 귀담아 듣기 쉬운 법이거니와, 숙종 대왕과 같은 문무를 겸전하신 어진 임금으로도 장씨에게 이대도록 하사 국가의 체면을 손상하심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듬해 경오년에 장씨의 생자로서 왕세자를 책봉하시니 장씨 양양하여 병약무인한, 이러므로 발악을 일삼아 비빈을 절제하며 궁녀를 엄형하고 포악한 말과 교만한 행실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한편, 궁중에 기강이 없어지고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 장희재 욕심이 많고 포악하여 팔도에서 재물을 긁어들이나 아무도 말할이가 없었다. 이렇듯 삼사 년이 지나니 천운이 순환하여 홍진비래에 고진감래라, 구름이 점점 걷힘에 태양이 다시 밝아오니 성총이 깨달음이 계셔 민후의 억울하심을 알고 정씨의 간악함을 깨치시어 의심이 가득하시니 대하시는 기색이 전과 다르시고, 서인들이 후의 삼촌 숙질을 다 처벌하시라고 날마다 아뢰기를 수년에 이르렀으되, 상감께서 끝내 허락치 않으시니 이럼으로 민씨 일문이 보존이 되었던 것이다. 장씨 상의를 스치고 크게 두려워, 오라비 희재로 더불어 꾀하여 갑술년 무옥을 다시 일으켜 무술이를 죽이고 폐비에게 사약을 하려고 하니 상감께서 짐짓 그 하는 양을 보시고 궁중 기색을 살피사 망연히 간사한 장씨의 흉모를 깨달으시어 즉일로 조정을 살피시어, 비위만 맞추는 신하들을 다 물리치시고 예 신하를 불러 쓰실 새 갑술년 사월 초구일에 비망기를 나리시어 폐하신 중궁의 무죄하심을 밝히시고, 별궁으로 모시게 하라 하시어 어찰을 나리사 상궁 별감과 중사를 보내시매 후께서 이르시기를, "죄인이 어찌 외인을 인접하여 감히 어찰을 받으리오." 하시고 문을 열지 않으시더니, 연 삼일을 갖가지로 청하니 후 다시 이르시기를, "죄인이 천은을 입어 일명이 살았은즉 이 집이 죄인의 뼈를 감출 곳이라, 어찌 국명을 받자오며 번화히 사람을 인접하리오. 사명이 여러 번 나리시니 더욱 불안하여이다," 굳게 사양하시고 예물을 받지 않으시니 상감께서 엄지를 민부에게 내리시고, 대신이며 중신들이 문 밖에 청대하고 어찰을 하루에도 사오 차례씩 내리시니 후께서 마지못해 예복을 입으시고 입대하실 새 사람들이 대로를 덮어 칠보단장한 궁녀 벌여 섰고, 각국문 대장이 어림군 수천을 거느려 호위하고 대신과 백관이 시위하여 천기 화창하여 입궐하시니 예의 규모 존중하여 향취 웅비하고 광채 찬란하여 혜풍이 일고 상운이 피어나니 장안 백성이 영락하여 굿보는 이 길을 메워 한편 즐기고 한편 옛일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니 도리어 가례하실 때보다 더 하고, 가마에 흰 보 덮고 나오실 때 궁인과 선비 통곡하고 따라가던 일을 생각하고 어찌 오늘날이 있을 줄 알았으리오. 이는 전혀 민후의 원려와 덕망으로 본디 덕을 깊이 쓰시고 고초 중 자신의 처신을 아름답게 하사 하늘이 감동하심이라, 여러 부인네들 기쁘고 한편 슬퍼 혹 울고 혹 웃더란다. 상감께서 몹시 반기시나 옛일을 생각하시고 감창하심을 이기자 못하사 용안에 눈물이 떨어져 용포 소매를 적시니, 좌우 일시에 눈물을 흘려 감히 우러러 뵈옵지 못하였다.
이 때 희빈이 오래 위를 차지하여 천만 세나 누릴 줄로 알았다가 홀연히 상감께서 뜻밖에 변하여 폐후를 모셔들이고 복위하심을 듣고, 청천벽력이 일신을 분쇄하는 듯 놀랍고 앙앙 분통함이 흉즁에 일천 잔나비 뛰노니,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녀에게 전하여 말하되, "내 오히려 곧 위에 있거늘 폐비 민씨 어찌 문안을 아니하리오. 크게 실례하여 방자함이 심하도다." 궁녀 이 말을 아뢰니 후께서 어이없어 못 들으신 듯 사기 태연하시고 안색이 정정하사 답언이 없으시더니, 이 때 상감 후로 더불어 나란히 앉아 계시다가 후의 기색을 살피시고 지난날이 다 맹랑하여 스스로 혼임함을 부끄럽게 여기시고 장씨의 방자함을 통한하사, 즉시 외전에 나오사 그 날로 전지하셔 여양 부원군을 복관작하시고, 후의 삼촌 좌의정 벽동 귀양지에서 죽은 고로 벼슬을 추정하시고, 그 자손에 옛 벼슬을 조시고 새 벼슬을 높이시며, 장씨 아비는 삭탈 관직하시고 빈의 옥책을 깨치시고, 장휘재를 제주도로 귀양 보내라 하시고, 내시에게 전교하사 빈을 작은 집으로 내려오게 하시고 바삐 나리라 하니, 장씨 대오하여 크게 꾸짖어 말하되, "내 만민이 어미요, 세자 있거늘 어찌 너희가 무례히 굴리오. 내 기어이 폐비의 절을 받고 말리라." 악득을 이기지 못해 세자를 난타하니, 상감께서 들으시고 친히 납시니, 바야흐로 장씨의 밥상을 받았다가 상감을 뵈옵고 독약이 표동하여 얼굴이 푸르락붉으락 하여 말하기를, "하루라도 내 위에 있거늘 폐비 문안을 아니 하며, 내 무슨 죄로 하당에 나리라 하시나이까?" 상감께서 진노하사 이르시기를, "어찌 감히 문안을 받으며 또 어찌 이 자리를 길게 주리리오." 장씨 문득 밥상을 박차고 발악하여 말하되, "세자가 있으니 내 어찌 이 자리를 못 가지리오. 나려도 부디 민씨의 절을 받고 나리리다." 수라상이 산산이 헤쳐 방안에 흩어지니 상감께서 대노하시어, "빨리 장씨를 끌어내리라." 하시니, 궁중이 다 상감의 뜻을 알고 황황히 달려들어 장씨를 끌어 업고 총총히 단에 내려 소당으로 가니 장씨 발악하여 중궁전을 욕함을 마지않으니, 상감께서 즉시 내치시고 싶으되, 세자의 낯을 보아 내버려두시니라. 장시 외람히 곤위에 있어 일국의 존경을 받고 상감의 총애를 받다가 졸지에 폐출하여 희빈으로 나리니 앙앙 분노하고 중궁을 원망하니 불순한 언사 포악하고 화를 이기지 못하여 세자를 볼 적마다 무수히 난타하여 마침내 골병이 드니, 상감께서 대노하사 세자를 영숙궁에 가지 못하게 하시고 정전에 놀게 하시나 후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고로 희빈을 생각지 않으시었다. 장씨 오매로 교아 절치하여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요사스런 무녀와 흉악한 술사를 얻어 주야로 모의하여 영숙궁 서편에 신당을 배설하고 각색 비단으로 흉악한 귀신을 만들어 앉히고 후의 성씨 생월 생시를 써서 축사를 만들어 걸고 궁녀에게 화살을 주어 하루에 세 번식 쏘아 종이가 헤지면 비단으로 염습하여 중전 신체라 하고 못 가에 묻고, 또 다시 화상을 걸고 쏘아 이리 한 지 삼 년이 되나, 후의 신상이 반석 같으시니 더욱 앙앙하더니, 희재의 첩 숙정과 의논하여 흉한 해골을 얻어들여 오색 비단으로 귀신을 만들어 밤중에 정궁 북쪽 섬돌 아래 가만히 묻고 채단으로 중전의 옷을 일습을 지어서 해골을 가루로 만들어 솜을 뿌려 가지고 거짓 공손한 체하고 중전께 드리며, 날마다 신당 축원과 요술 방정이 천만가지로 그칠 적이 없었으니, 예로부터 사불 범정이요, 요불승덕이라 하였으되 액운 불행한 때를 당하여 요얼이 침노하니 중전께서는 경진년 중추부터 홀연히 옥체 편찮으시어 각별히 극중 하심도 없고, 때로 한열이 왕래하고 밤중이면 골절을 진통하시다가는 명석 같은 때도 있고 진퇴무상하신 것이었다.
궁중이 크게 근심하시고 상감께서 깊이 염려하사 치료하심을 극진히 하시되, 조금도 효험이 없고 겨울을 지내고 다음해 봄이 되니 후의 백설 같은 기상이 많이 손색 되시니, 상감께서 전일에 마음 상한 것이 고질이 되심인가 하시어 더욱 뉘우치시고 슬퍼하시며, 한편 후의 기상이 너무 맑고 빼어나시니 행여 단명하실까 염려하사 마음이 편하지 못하시니 후께서 불안하시어 매양 아픈 것을 굳이 감추시고 나타내지를 않으시더라. 후께서 장씨가 드린 옷을 입지는 않으시나 집안에 두고 있는 지라, 요얼이 밖으로 침노하고 또 방안에 살기가 성하니, 이 해 오월부터 병환이 중하게 되시어 옥체를 가누지 못하시니 상감께서 크게 근심하사 약청을 배설하고 지성으로 치료하되 추호도 효험이 없고 점점 더하시니 이는 신상으로 솟아나신 병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낮이면 맑은 정신으로 들으셨다가도 밤마다 더욱 중하시어 헛소리를 무수히 하시니 증세 고이하나 그 연유를 알지 못하더니 칠월에 병중 더하여 명이 조석에 달려 있는지라, 궁중이 진동하고 슬프기 그지없어 천신께 빌며 사찰에서 재를 올리되 세자께서 친히 임하시니 이토록 정성이 아니 미친 곳이 없으나 병환은 더욱 중해질 뿐이었다. 상감께서는 침식을 폐하시고 근심하사 용안이 초췌하시니, 후 미령하신 경황 중에도 몹시 염려하사 도리어 상감을 위로하시더라. 후 스스로 회춘하지 못할 둘 아시고 의원을 물리치고 좌우 호탕하던 시녀를 돌아보아 이르시기를, "내 이제 살지 못하리니 너희 지성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너희들은 내 삼년상 후 각각 돌아가 부모 동생을 보고 인륜을 갖추어 살다가 타일에 지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자." 좌우 천만 뜻밖의 하교를 듣고 망극하여 일시에 낯을 가리고 체읍하니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어 능히 대답을 못하더라. 후께서 명하사, 전각을 소세하며 향을 피우고 궁인에게 붙들려 세수를 정히 하시고, 양치질을 하시고 새 옷과 새 금침을 갈아입으시고 궁녀를 시켜 상감을 청하시니, 상감께서 들어오시며 후께서 의상을 정돈하시고 좌우로 붙들려 앉아 계시매 궁인들이 다 망극하여 슬퍼 마지않더라. 상감께서 당황하사 후 곁에 가까이 다가앉으시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문득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신이 곤 위에 있어 성상 은혜로 영복이 극진하오니 한하올 바 없사오나, 다만 슬하에 혈육이 없이 그림자 외롭고 성상의 큰 은혜를 만분지일도 갚지 못하고 오히려 천심을 손상케 하고 오늘날 영결을 짓사오니, 구천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오니,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박명한 신을 생각지 마시고 길이 평안하소서." 상감께서 크게 설위하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느뇨." 말씀을 이루지 못하사 용포 소매를 적시니, 후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길게 한숨지며 말씀하시기를, "성상은 옥체는 보중하사 돌아가는 첩심을 평안하게 하시고 만민의 폐를 덜으소서." 세자와 왕자를 어루만지시고 후궁과 비빈을 나오라 하사 가로되, "내 명운이 불행하여 육 년 고초를 겪고 다시 성은이 망극하사 곤 위에 올라 세자 왕자와 더불어 조용히 여생을 마칠까 하였더니 오늘날 돌아가니 어찌 박명하지 않으리오. 그대들은 나의 박명함을 본받지 말고 성상을 모셔 만수무강하라." 하시며 겨우 팔 세 되신 연잉군의 손을 잡고 이르시기를, "이 애 영특하여 내 극히 사랑하였더니 장성함을 보지 못하니 한이로다."하시고 비빈을 물러가게 하시고, 오라버님 내외와 조카 내 사촌을 안견하사 오열 비창하심을 금하지 못하시니, 민공 등이 엎드려 슬피 물며 말을 못하는지라. 삼감께서 이 거동을 보시고 가슴이 미어지고 꺾어지는 듯 차마 보지 못하시더라. 좌우 미음을 올리니 상감께서 친히 받아 눈물을 머금고 권하시니 후께서 크게 탄식하며 두어 번 받아 마시고, 상감께서 친히 부축하여 베개를 바로 우이시니, 이윽고 창경궁 경춘전에서 엄연 승하하시니 때는 팔월 십사일 사시요, 복위하신 지 팔 년이요, 춘추 삼십 오 세이셨다. 궁중에 곡성이 진동하여 귀신이 우는 듯, 궁녀 서로 머리를 맞대어 망망히 따르고자 하니, 하물며 상감께서랴. 손으로 난간을 두드리시며 하늘을 우러러 방성통곡하시니 용안에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하사 용포가 물을 부은 것 같이 젖었으니 궁중이 차마 우러러 뵈옵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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