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전 (3/3)
한편, 한뫼도령과의 싸움에서 운무장군을 잃은 그 아버지 대보장군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잠이 오지를 않앗다. 싸움의 경위를 보면 내 아들이 힘이 모자라서 진것이아니라 운수가 나빠서 진 것이요, 목숨을 잃게 된것도 한뫼처럼 교활하고 기특하게 몰래 침입해서 장수초를 훔쳐오는 수단을 밟지 않고 정정당당히 매들을 물리치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던 결과였다. 힘을 제대로 겨루기로 하면 한뫼 같은 애숭이 상놈이 감히 당할 바가 아니엇다. 그런 용감하고 귀중한 아들을 잃은 것은 한뫼라는 악귀 같은 녀석의 출현 대문이지, 자신이나 운무에게 잘못이 있엇던 소치가 아니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아들의 원수는 갚아 주어야겠다고 대보 장군은 이를 달며 맹세하였다. 그는 대왕이 한뫼도령에게 승리의 관을 씌워주기는 했지마는 마지못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요, 그가 탐탐해서 한일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운무를 공주의 작으로 하자고 한 것은 다름아닌 대왕 자신의 뜻이엇었다. 운무의 죽음을 대왕도 크게 언짢아 하고, 무슨 핑계든지 명분이 서면 한뫼를 내쫓을 것이 분명한 것을 대보 장군은 알고있었다. 밤새 궁리를 한 끝에 배조 장군을 그럴법한 계락을 한가지 기막히게 생각해 냈다. 이튿날 그는 자기하고 그중 가까운 병부대신을 만나 그의 심중을 이야기하였다.
"미거한 자식놈이 싸움에 진 것을 가타부타 재론할 일은 아니지만, 애비된 심정에 너무도 억울하여 기가 막히오." 이에 병무댄신이 말하였다.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 용맹한 자제분이 교활한 저 필부놈에게 욕을 당한 생각을 하면 우리 무사 전체가 낯이 뜨거운 일입니다. 지난얘기는 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 간사스러운 젊은 놈을 없앨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병부대신의 말에 힘을 얻어 말하였다. "그얘기를 의논하려던 참입니다. 듣자하니 한뫼라는 애는 제아비의 뜻으로 다른곳에 정혼을 해놓은 자라고 합니다. 다른곳에 정혼을 한 필부가 저 존귀한 공주님으 농락하다니 이렇게 질서가 문란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에 병부대신이 신이나서 크게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그려. 그 사실을 구실로 다시한번 힘겨루기를 시키도록 대왕께 상주함이 어떻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목에 힘을 주어 말하였다. "내 생각이 바로 그생각입니다. 내게는 이미 아들이 없으니 병부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합시다. 이다음 어전회의 때 귀공은 한뫼가 다른곳에 정혼한데가 있다는 사실만 아뢰십시오. 그말이 떨어지면 대왕도 즉시 그와 다시 힘을 겨룰 젊은이를 지목하라 하실 것인즉, 그때 내가 귀공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뫼를 물리치고 귀공의 자제가 부마가 되도록 할 기회가 아닙니까?" 은밀히, 그리고 단단히 모의를 하고 그들은 다음날의 어전회의에 임석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병부대신이 업숙한 복소리로 대왕께 아뢰었다. "봉묏골 태수의 아들 한뫼는 엄연히 정혼한 규수가 잇다고 하옵니다. 그런자를 대왕전하의 부마로 삼음이 어찌 왕실을 크게 욕되게 하는일이 아니옵니까?" 대왕은 놀라며 물었다. "그런말은 처음듣소. 사실이 그러하오?" 대왕은 여러 신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어느 신하가 말하였다. "그런일이 분명히 있는 줄로 압니다." 이때 다른 신하가 정중히 말하였다. "얘기가 오고가기는 했으나 한뫼 당자는 분명히 거절한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일은 논의를 것이 못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대왕 스스로가 한뫼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는 참이라, 한뫼를 닥닥할 수 있는 명분있는 구실이 나온이상 그대로 묵살하고 싶은 마음은 조급도 없었다. "그런 일의 유무는 둘째로, 말이 오고간 것도 온당하다고 볼수가 없소. 다시 힘을 겨루도록 해서 승패를 가리게 한 뒤에 이긴자로 하여금 공주의 짝을 지어주도록 하겠소. 힘세고 덕있는 이를 누구든 천거하도록하오."
대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부대신의 아드님이 용기로 보나 지혜로 보나 인망으로 보나 이나라 젊은이의 으뜸이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어의로 살피어 주소서." 임금은 여러 신하들을 두루 바라보며 말하였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 중의 한 신하가 대왕계 조용히 여쭈었다. "병부대신의 아드님이면 과연 모든 면에서 출중하옵니다." 병부대신의 아들이 운무 장군에 지지않을 만큼 힘이 세고 동작이 날쌔다는 소리를 그 누구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병부대신의 아들 큰내 장군과 한뫼도령을 마주 대전케 하는데 의견을 모앗다. "싸움하는 상대는 대신들의 뜻이 같으니 그리하도록 하려니와, 어떤 방법으로 싸움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대왕이 물었다. "맨처음 운무장군의 경우와 같이 두 젊은이로 하여금 하늘에서 맞붙어 다투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한 신하가 의견을 제시하자, 내부대신이 점잖고 공손히 해명하며 말하기 사직했다. "우리 국법에는 한번 치룬 싸움은 그 당자에게 되풀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되어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다른 방도로 싸우게 함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누구도 반대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부대신의 말이 옳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슨 새 종목을 내세우는 것이 다시 또 싸움을 하게 하는 행상에 맞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신에게 한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큰내 장군의 아버지 병부대신이 말하였다. 이에 대왕이 물었다. "어서 좋은 방법을 말해 보도록 하시오." 병부대신은 차분히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여쭈었다. "지금 우리 겨레는 산에 있는 힘센 짐승들에게 시달림을 받기도 하지만 속세에 사는 인간에게도 또한 그에 못지 않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사옵니다. 우리들의 조상에, 그들을 위해서 이런넓고 아름다운 산속을 모리고 그들의 집안에 들어가 닭이라고 이름까지 고쳐서 주기는 커녕 한층 더 우리들을 해치려고만 하옵니다. 그러나 워낙 몸집이 크고 꾀가 있으니, 우리들이 그들을 마주 응징하거나 보복을 가할 길을 없사옵니다. 그런데다가 그들은 '활'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우리들이 그 근처에 있기만 하면 화살로 쏘아 목숨을 앗아가고는 하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추석날, 인간들은 또 활을 메고 우리들을 사냥하러 출동하기로 되었다고 하옵니다. 저들이 사냥을 올라올 때 큰내 장군과 환뫼를 내세워 두 젊은이의 힘과 꾀를 겨루어 모게 할겸, 사람들의 행패를 막는 길도 찾아보게 함이 어떨까 마음이 듭니다." 말을 다듣고 난 대왕은 다시 물었다. "그런 방법만 있으면야 희한하지 않겠소? 무슨 방도로 그런 성과를 거두겠소?" "사람들이 사냥을 올라오는 길목에 두 젊은이를 미리 가있게 하옵니다. 다람쥐 한 마리 놓치지 않고 샅샅이 뒤지고 활을 쏘고 하며 올라오는 그들의 공격을 어떻게 하든지 모면해 보라고 하는일이옵니다. 불행히도 둘이 다 죽게 되는 위험과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만일에 살아남기만 하게 되면 공주 마마의 짝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요, 그 힘과 꾀를 우리 겨레가 전부 배우도록 한다면 우리 겨레 구언의 영웅으로 받들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대왕은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의견이오. 이번의 싸움을 계기로 우리 겨레가 인간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덜 당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당사자들의 무제뿐아니라 겨레를 위해서라도 죽음을 무릎쓰고 실천토록 해볼만한 일이오. 다른 대신들의 뜻은 어떠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어전회의에서 논의되고 정해진 얘기는 곧 널리 온나라 안에 퍼졌다. 추석날, 인간의 두목과 그 무리가 활을 메고 사능로 올라오게되면, 두젊은이가 산중턱 가까이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무슨 수를 쓰든지 그들이 통과한 뒤에 살아서 되돌아 오기로 하는일이 었다. 포고가 내리자 백성들은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다시 또 싸우게 하는 처사에도 놀랐지마는 구름처럼 몰려올라 오는 사냥군들의 발길을 벗어나 보라는 내용에 더욱 놀랐다. 이때까지 그 얼마나 많은 꿩들이 인간의 포위를 벗어나 보려하다가 아깝게 죽어갔는지 수를 헤아릴수 없는 일이다. 백성들보다도 더욱 놀란 것은 역시 공주와 한뫼도령 당사자들이었다. 잔디밭에서 오손도손 장래를 설계하고 있다가, 그들은 니포고의 소식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까닭으로 또다시 힘겨루기를 하라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되지도 않을 말이어요. 낭군과 저를 기어이 떼어 좋으려고 억지로 꾸며낸 모한이어요." 공주는 안타까움과 조기를 이기지 못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함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진작 세상을 떠났어냐 옳았을 것을 또 살아나서 이런 욕된 걱정을 기쳐드립니다." 한뫼도령도 절망과 분노섞인 말을 쏟아 놓았다.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공자님이 언제 어느 규수와 약혼을 한일이 있으며, 백번 그런일이 있었기로 제 남편되는 데에 부슨부족이 있다는 말이어요? 아바마마께 직접 아뢰겠어요." 이에, 한뫼도령이 말하였다. "아무 말씀도 마십이오. 번연히 근거없는 일을 결정지으신 이상, 웬만한 말쓴을 귀담아 들으실 법이나 합니까? 저를 공주님에게서 뗴어놓고야 말겠다는 뜻의 소치입니다. 어명을 순순히 받들어 천운이 있어서 다시 살길이 솟기를 마라느니만 같지 못합니다." 한뫼도령의 한탄을 듣고 공주의 마음은 무너지는듯했다.
즉시 어마마마를 찾아 문후한 뒤에 이번의 처사의 부당함을 아뢰며 그 포고를 다시 거두어 들이도록 간곡히 호소하였다. 딸의 간청을 듣고, 왕후는 다시 또 대왕을 만나 뜻을 전하기는 했으나 왕비의 힘으로써 굽어질 대왕의 심사도 아니었고, 일단 널리 선포한 포고를 지금 뒤집어 놓을수도 없는 딱한 일이었다. 추석날이 되자 요전번의 장소에 또다시 임원들과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한낮에 인간세산의 두목과 그 무리들이 용마루 골짜기의 어귀에 이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알고 있었다. 그날 해가 지기 까지 사람들은 용마루 골짜기를 샅샅이 뒤져 꿩이고 산짐승이고 닥치는대로 잡아가기로 한 것이다. 한뫼도령과 큰내 장군은 세 마리의 엄정한 심판원과 함께 일찌감치 용마루 골짜기 꼬대기에 이르렀다. 심판원의 지시에 따라 해가 돋을 무렵쯤해서 두 젊은 장끼는 하늘 높이 몸을 날려 골짜기의 중턱 사람들이 치닿는 바로 역로의 절반쯤의 지점에 몸을 내렸다. 갑자기 아래 쪽에서 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요란스럽게 골짜기 위를 치달아 기어 올라오는 모습이 심판원들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각각 흩어져서 울타리 형태로 열을 지어 소리치며 올라오고, 우두머리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들은 활에 살을 재이고 그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노루가 뛰어 달아나다가 별안간 날아드는 화살에 맞아 뒹구는 것이 몇번이고 숨어서 보는 두장끼의 눈에 똑똑히 띄었다. 두 장끼다 몸을 담고 있는 풀숲과 바위 틈세에서 차차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가워졌다.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과 긴장이 두 젊은이뿐 아니라 심판원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큰내 장군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 옆에 있는 풀포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만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을 만븜 안전하고 두터운 풀속이라고 큰내 장군은 생각하였다. 사람의 걸음으로 쉰 발쯤 앞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풀을 더듬고 나무를 툭툭치며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사람의 옷모양과 얼굴모습이 나무와 풀사이로 뚜렷이 어른거렸다.
기골이 느티나무처럼 장대하고 감발감은 짚신 발이 바윗장처럼 육중하고 억세다. 저 발길에 밟히든지 채이든지 또는 휘두르는 작대기에 얻어맞든지 하면 몸이 흙가루처럼 으스러져 버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살아남을 길이란 단한 가지밖에 없다고 큰내 장군은 생각했다. 저 발길이 내몸에 닿지 않느 곳으로 지나가 주는 일이엇다. 제발 저쪽으로 비켜 가소서하고 큰내 장군은산싱령에게 빌엇다.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엇다. 두발중의 하나가 바로 코앞에 놓이더니 또 한 발이 버쩍 들려 올라갔다. 올라간 신발이 아무래도 다른 자리에내려질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머리통을 으스러져라 하고 밟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였다. 아얏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크게 큰내 장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는 그대로 있을수 없는 것을 큰내 장군은 그 순간 개달았다. 이대로 죽을 바에는 설사 또 다른 죽음의 기다린다 해도 달아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푸드득..." 있는 힘을 다모아서 큰내 장군은 날개를 크게 뒤흔들었다. 그곳을 빠져나온 몸이 화살처럼 가벼운 무게로 허공에 떠오는 것을 느꼈다. 저 무서운 발자국을 빠져 나왓으니 이제는 살았다 하는 생각이 솟아 올랐다. 살앗다는 생각을 채 끝맺기도 전에 큰내 장군은 난데 없이 솟는 화살의 휭하는 소리를 바로 귓전에서 듣는 순간이었다. "앗!" 별안간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남아잇는 한쪽 날개를 움직여 몸을 지탱하려고 해도 자꾸 허공에서 맴남 돌며 앞으로 는 조금도 나가지 못했다. 큰내 장군은 이를 악물며 앞쪽을 향해 몸을 내밀었으나 몸은 꽂혀잇는 화살과 함께 자꾸 맴돌녀 가라앉을 뿐이었다. 땅에 떨어졌을 째는 한쪽 날개를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졌고 그보다도 와아 하고 들려오던 사람들의 환호성까지 자꾸 먼곳으로 멀어져 가기만 하였다.
"아따, 그놈 크기도 해라."
하는 젊은 몰잇군의 목소리를 큰내 장군은 마지막으로 들었다. 큰내 장군의 죽음을 멀지 않은곳에서 지켜보던 한뫼도령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도 저런 신세가 될 것을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몰잇군들의 포위망을 살아서 벗어날 길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할수 없는 일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했다. 나는 기어이 공주와 인연이 없는 몸이니 몰잇군들의 작대기에 맞거나 발에 밟혀죽는 것이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은 처음부터 떡갈나무 포기 속에 몸을 도사리고 안증ㄴ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쪽으로는 자그마치 두 사람의 몰잇군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노루와 산돼지는 꽤 튀어나오는데 꿩이 별로 보이지 않으니 웬일일까?" 큰 소리로 외치며 한 사라미 작대기로 언저리의 풀숲을 툭 쳤다. "꿩들도 요새는 약아져서 사람이 어른거리는 줄 알면 진작 멀지감치 달아나 버리고 말거든!" 또한사람이 대꾸를 하며 성큼 바윗돌 위로 기어올랐다. 쉰걸음쯤 사이를 두고 두 몰잇꾼이 자꾸 한뫼도령이 있는 나무포기 가까이로 다가왔다. 저아래 멀찌감치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이제는 뚜렷이 드러나 보였고, 옮겨 놓는 걸음새 한발, 한발이 파도처럼 억센힘으로 마구 밀려닥쳐왔다. 가슴이 떨리며 온몸에서 땀이 마구 흐르는 것을 한뫼도령은 몸으로 느낄수 있엇다. 눈 앞에 있는 몰잇군의 한발이 번쩍 머리위로 치솟아 올라가자 한뫼도령은 저도 모르게 날개에 힘을 주었다. 이 발자국에 밟혀서 죽느니, 한 날개라도 날아보다가 요행 죽지 않고 사는길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순간 한뫼도령은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꾸짖었다. 몸을 뛰쳐나가다가 그대로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져 버린큰내 장군의 죽음을 바로 조금전에 보지 않았느냐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몸이 이 나무포기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수백 명의 눈동자와 수백개의 화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올것이 분명하였다. 귀신같은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일단 들키는 날이면 살아 남지 못할것이 뻔하다. 몰잇군의 발자국은 지금 내머리위에 있지마는 운수가 좋아 내몸집 위에 내려지지만 않으면 살수가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일단 지나간 걸음을 다시 되돌아서는 일은 없다. 한발자국이나 면하게 되면 살길이 있는 것이다. 화살에 꿰뚫려 죽느니, 이 몰잇군의 발밑에 밟혀 죽으리라 하고 한뫼도령은 굳게 결심하였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으며 한뫼도령은 운명의 순간을 기다렸다. "앗!" 한뫼도령은 절망의 부르짖음 소리를 내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와 잔등은 밟히지 않았으나 꼬리 끝으 밟혔기 때문이엇다. "푸우!" 아찔하는 순간이 지나가자 한뫼도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몰잇군의 뒷모습이 저꼭대기 까마득한 산봉우리 옆을 휘돌때에야 한뫼도령은 몸을 움직였다. 몰잇군의 발에 밟혔던 꼬리가 뽑혀질 뽄했는지 깃밑둥이 몹시 괴롭게 아팠다. 높직한 소나무 맨꼭대기 가지에 올라가 둘레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저 꼭대기에 심판원들만이 눈에 띄었다. 이쪽을 지켜보는 심판원들의 눈에 놀라는 빛과 승리는 네 것이라는 선언이 넘쳐잇엇다. 한뫼도령은 공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사람들은 이미 고개를 넘어간지 오래되었다. 한뫼도령의 옆으로 온 심판원은 한뫼의 목에 그의 목을 휘감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뽑혀질 뻔한 꼬리털의 모양을 살피며 마지막까지 유지한 그 끈질긴 침착성에 새삼스럽게 탄복하였다.
"우선 꼬리 깃부터 바로 잡도록 해라."
그중의 하나가 후루룩 날아 올라가서 연하게 자라나는 약초잎을 뜯어다가 꼬리가 빠지려고 하는 자리에 문대었다. 상처가 시원해지며 아픈 기운이 가시었졌다.
"어서 갑시다. 이 꿈 같은 승리를 알려드립시다."
심판원들과 한뫼도령은 위세좋게 몸을 날리어 대왕과 관중들이 모두 기라리고 있는 그 잔디밭으로 되돌아갔다. 군중들의 환성은 요전 장수초를 뜯어올때보다도 더 우렁찼다. 아무도 두 용사가 제대로 살아서 돌아올 줄은 기대하지 않고 잇엇기 때문이었다.
"아뢰옵니다. 두 용사 중에서 큰내 장군은 불행히도 인간들의 잔학한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고 모뚱이마저 끌려 갔사오며, 한뫼는 침착성과 지혜를 끝까지 발휘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감히 손발을 대지 못하게 하고 돌아왔나이다. 오늘의 싸움은 한뫼도령이 승리했음을 선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원중의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이에 대왕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감탄과 기쁨을 말하면서 대견해서 크게 말하였다.
"기특하도다. 심판원의 결과 보고를 받고 이에 한뫼가 승리했음을 널리 선포한다. 기특한 일이로다." "황공하옵니다."
전례대신이 씌워주는 승리의 관을 받아 쓰며 한뫼도령은 몇번 이고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주는 기쁨과 감격을 누르지 못해서 주위의 눈총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울기만 했다.
"싸움의 과정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음을 알린다. 우리의 용감한 한뫼가 어떻게 해서 저 포악하고 무지한 인간들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엇는가를 들어보기로 하자!"
대왕이 말하자 한뫼도령은 정중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겨레들은 누구나 적이 가까이 올 때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하늘 높이 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옛날 산짐승들이 못살게 굴어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날기 시작한 것이 그대로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제는 덮어놓고 날아 올라가는 것이 도리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솔개나 보라매뿐 아니라 인간들은 활을쏘아 서 날고 잇는 우리들을 마구 죽이기 때문입니다. 소신은 이 점을 생각하고 최후까지 마음을 가다듬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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