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오후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에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2m 높이의 백선엽 동상이 한국전쟁 전투 현장인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졌다. 국가보훈부 예산 1억 5천만 원, 경상북도 예산 1억 원을 포함해 총 5억이 투입된 이 동상은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동상 제막식 및 3주기 추모식 당일인 5일 아침에 배포된 보훈부 보도자료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준비한 제막식과 추모식의 규모는 상당하다. 보훈부는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은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 백선엽 장군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추진위원회 관계관, 이종섭 국방부장관 및 육군참모총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한편 보훈부는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주관하는 추모식에도 "이종섭 국방부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역대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유관 기관 및 보훈단체 관계관, 장병, 지역 주민,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장군? 그는 추앙할만한 인물인가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 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백선엽은 국가보훈부가 이승만과 더불어 중점적으로 띄우는 인물이다. 보훈부는 대표적인 역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대표적인 전쟁영웅으로 백선엽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례로, 작년 7월 8일에는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2주기를 지냈다. 금년 1월 27일자 보훈처 보도자료에 따르면, 박민식 처장은 이날 대통령 앞에서 "보훈의 가치를 담은 국가 상징 공간을 적극 조성할 계획"이라며 "올해 백선엽 장군 동상을 시작으로 의미 있는 상징 시설물을 설치"하겠다는 업무 계획을 보고했다. 박 처장은 지난 5월 22일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는 "대한민국을 지킨 장군"으로 백선엽을 높이 평가했다.
백선엽을 대한민국 시대의 대표적 명장으로 띄우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가 성공하면, 백선엽은 을지문덕·양만춘·장보고·강감찬·최영·김종서·이순신·권율·김좌진·홍범도 등과 더불어 한민족 명장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은 장래에 학생들이 을지문덕·양만춘·강감찬 등을 공부하듯이 백선엽을 공부하게 될 수도 있다. 구축함 을지문덕함이나 잠수함 홍범도함처럼 백선엽함이 한반도 해역을 운항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위의 역대 명장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한민족을 침략하는 외세에 부역하지 않았다. 을지문덕은 친(親)수나라파가 아니었고, 강감찬은 친요나라파가 아니었다. 양만춘은 친당나라파가 아니었고, 장보고는 친당나라파나 친왜국파가 아니었다. 최영은 친왜구파도 친홍건적파도 아니었고, 김종서는 친여진족파도 친왜구파도 아니었다. 이순신·권율·김좌진·홍범도는 친일파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와 결탁한 것도 아니고 한민족을 침략하는 외국군과 결탁했다면, 이들이 오랫동안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무결점 명장들이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5년 전까지 일본군 2중대인 만주국군의 장교였다. 만주국군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김석범이 1987년에 펴낸 <만주국군지>는 "1938년 부대 창설 후 1945년 8월 부대 해산 시까지 간도특설대에 입대한 사병 수는 2100명이었고, 동 부대에 근무한 한인 군관은 다음과 같다"라며 백선엽 세 글자를 언급했다.
한국인이 외국 군대에 입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백선엽은 한국을 점령한 일본군의 2중대에서 장교로 활약했다. 만주군 출신 장교가 정리한 <만주국군지>에서 거명될 정도로 만주군에서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간도특설대에서 수행한 임무는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인 독립투사 토벌이었다. 그는 1993년 일본에서 펴낸 <대게릴라전, 아메리카는 왜 졌는가>에서 "우리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의 토벌 작전이 "이이제이를 앞세운 일본의 책략"에 기인한 결과라고 인정했다. 간도특설대의 주된 토벌 대상이 중국인이었다면, 이이제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인 토벌이 주 임무였기에 이런 표현이 은연중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 문구는 '우리가 추격했던 게릴라는 주로 조선인이었다'로 수정돼야 마땅하다. 조선인 토벌을 완전히 감출 수도 없고,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으므로 '추격 대상에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는 식으로 완곡히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간도특설대 근무 당시,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그는 위 책에서 1943년 2월에 간도특설대로 배치된 일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처음으로 게릴라를 봤고, 토벌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간도특설대가 상대한 대상은 항일부대였다. 그는 항일 독립군을 보고 '게릴라'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게릴라를 보면서 '토벌'에 대해 알게 됐다. 무심코 사용한 단어들로 보이지만, 1920년생인 그가 20대 초반에 한국 독립운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노출하는 단어 선택이다.
그는 자신이 독립운동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았다. 위 회고록에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장군'으로 추앙될 만한 인물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문구다.
백선엽처럼 살라고 국민들에게 권장하는 격
▲ 2013년 8월 경기도 파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미군 야전상의를 입은 뒤 경례하는 백선엽 ⓒ 연합뉴스
지난 5월 1일 보훈부는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백선엽의 영상이 송출되는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보도자료는 백선엽이 미국의 추천으로 10대 영웅에 선정됐음을 강조했다.
바로 그 미국이 '추천'한 부패 군인의 대표적 인물이 백선엽이었다. 2010년 3월호 <신동아> 기사 '1962년 미 대사관 기밀 문건'에 소개된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관 참사관의 1962년 8월 17일자 비밀 보고서에 백선엽이 "부패에 연루되어 있다"라는 기술이 담겨 있었다.
하비브는 훗날 국무부차관이 되고 레이건 행정부의 중동 특사가 됐다. 그가 백선엽의 부정부패 수준을 낮게 평가했다면, 딘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보내는 비밀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넣지 않았을 것이다.
제막식에 관한 5일 자 보훈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의 기념사에 미래세대에 관한 언급이 들어 있다. 이 기념사는 백선엽의 생을 칭송하면서 그의 동상이 모셔진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안보 교육 장소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밝힌다. 독립운동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 의혹이 있는 백선엽을 자라나는 세대의 귀감으로 삼겠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전쟁영웅 선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한 찰스 틸리(1929~2008) 전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전쟁을 통해 국가가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국가 형성 및 유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듯이, 전쟁영웅도 국민들의 의식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단순히 외국 군대에 근무한 것도 아니고, 한국을 침략한 일본군의 2중대에 근무했다. 거기서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한국 독립군을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사람을 대한민국 최고 명장으로 떠받들게 되면 대한민국은 온통 엉망이 되고 만다. 이는 백선엽처럼 살라고 국민들에게 권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전 시대 명장들인 을지문덕·양만춘·장보고·강감찬·최영·김종서·이순신·권율·김좌진·홍범도 등이 백선엽을 대한민국 시대의 최고 명장으로 격상시키는 상황을 본다면, '한민족 명장'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역대 명장들을 숭앙하면서 백선엽을 함께 숭앙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