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에서 파랑새가 나오더니
조선조 시대에 훌륭한 정승이 여러 분 있었으나, 초기에는 황희, 후기에는 약현대신 김재찬을 꼽아, 황금으로 양쪽 마구리를 장식했다고들 한다. 그 황희 정승은 청렴하기로 이름났고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인데, 특히 공사를 엄격히 구별한 그의 처신은 높이 꼽을 만하다. 하루는 방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정경부인이 곁에 와 상의 하는 것이다.
“저녁거리가 없는데 어떡하죠?”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이라는데, 일국의 영의정댁에 끼닛거리가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감은 천천히 눈길을 돌리면서 조용히 일렀다.
“그런 것도 정승에게 상의하여야 하오?”
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들의 철부지 어린 것들이 무릎에 올라 앉고, 오줌을 싸도 괘념치 않았으며, 여자 하인들이 서로 싸우다 달려와서
“대감마님! 아무개년이 이리저리 하길래 쇤네가 저리이리 했는데 쇤네 말이 맞습죠?”
“오냐! 네 말이 맞다.”
이번엔 상대편 되는 애가 달려와
“대감마님! 아무개년이 글쎄 요러요러한 짓을 했길래, 쇤네가 이러이러하게 나무랐는데 쇤네 말이 맞습죠?”
“오냐 오냐, 네 말이 맞다.”
마침 다니러 와서 곁에 앉았던 처남되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아이, 형님도! 이년은 이리하였고 저년은 저리하여 잘잘못이 뻔한데, 아무거나 다 옳다시니 그런 처사가 어디 있어요?”
“그래 그래, 자네 말도 옳으이.”
그가 나랏일을 이 모양으로 처리했다면 큰일날 일이겠지만 그게 아니다. 하루는 아침에 사진할 양으로 사모관대를 갖추고 의자에 앉아 평교자가 마련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 부인이 무슨 일인가 그 방엘 들어서다가 놀라서 멈칫 하고 섰다. 그 전신에 넘쳐흐르는 위엄에 그만 눌려 버린 것이다. 대감은 빙긋이 웃으며
“지금에야 우리 마누라 - 높은 분이 자기 부인을 부르는 호칭, 젊은 사람이 어른 앞에서 이런 말을 쓰는 건 큰 잘못이다 - 가 정승을 알아보는군!”
사를 떠나 오직 정도만을 걸어, 수십년 조정에서 지내온 그에게는 유한 가운데도 허튼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가 높은 연세로도 조정의 수반으로 세종대왕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을 때, 김종서가 그 아랫자리에 있었다. (황정승은 문종 2년 91세로 작고하였고, 김종서는 그보다 27세나 연하다.) 그런데 툭하면 그를 불러세우고 호되게 나무라는 것이다. 꾸짖어도 보통으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조정의 체통을 내세워 그 결과로 파생될 앞으로의 일까지를 쳐들어서 장황하게 나무라기를 자주 하여서, 약간 후배되는 허조가 옆에 있다가 넌지시 간하였다.
“젊은 사람치고는 일을 차분하게 잘 처리해, 지금 조정에 그만한 인재가 없는데, 같은 일을 놓고도 툭하면 김종서만 불러서 꾸짖으시니 그 저의를 모르겠소이다.”
“그만한 인물이기에 나무라는 것이오. 다음 세대에, 우리 지위에 서서 큰일을 처리할 인물은 그 밖에 없기 때문에 옥성시키려고 그러는 것이죠.”
그 뒤 김종서는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함경도 지방을 개척하는 함길도절제사의 중책을 맡았는데, 그 자신도 대왕의 지우에 감격하여
“내가 있더라도 위로 성군을 받들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감격하였고, 세종대왕도 그를 보내고
“내가 있다 하더라도 김종서 같은 인재를 얻지 못하였더라면, 이번 일은 생의도 못했을 것이다.”고 그를 신임하였으니 가위 수어지교라고 할만한 일이다. 그무렵 어느날 아침 일이다. 황희 정승이 소세를 마치고 머리를 매만지다가 부인이 들어서니까,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부인! 이건 부인만 알고 있지, 누구에게도 입밖에 내지 마오.” 라고 미리 소금을 뿌리고는 이렇게 잇는다.
“글쎄 낯을 씻는데 왼쪽 귀에서 요만한 파랑새가 나오며, 펄펄펄 저기께로 날아가지 뭐요. 보도 듣도 못하던 기이한 일이라 무슨 징존지? 부디 아무에게도...”
그런지 대엿새 뒤 일이다. 황정승이 대왕을 가까이 모셔 앉았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경의 귀에서 파랑새가 나와서 날아갔다는 얘기가 들리니 무슨 소리요?”
황정승은 부복하며
“다른 일이 아니오라, 닷새 전 아무날 아침 세수를 마치고 나서, 절대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토를 달아 신의 노처에게 부러 말한 것이옵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신신당부했건만, 그것이 온 장안을 돌고 돌아 상감마마께까지 도달하였지 않았습니까?“
다시 이마를 방바닥에 조아리며
“지금 김종서가 국가의 전병력을 거느리고 함길도 경영에 나서고 있사온데, `만약에 그에게 흑심이라도 있는 날이면...` 하는 말이 은밀히 돌고 있사옵니다마는 신의 목을 걸고 보증하옵니다. 김종서는 만의 하나 그럴 인물이 아니옵니다.:
대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늙은 대신을 안아 일으키며 울먹였다.
“알았소, 알았소. 경의 그 성충을 누가 당한단 말이오.”
성군도 승하하시고 노정승도 세상을 떠난 뒤, 나라안의 신망을 온몸에 받던 김종서는 혁신세력의 기습을 받아 허무하게 세상을 마쳤다. 그것도 이 나라의 운이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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