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포유류의 생활 리듬이 아니더라도 대자연의 사계를 생각해 보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대자연이 계속 다른 모습을 띠어 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자연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 지금은 그 다양한 요인 중 곤충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철마다 곤충도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배추흰나비가 팔랑팔랑 날개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름이 오면 매미가 짙은 나무 그늘에 숨어 맴맴 울어제낀다. 가을이 오면 낮에는 고추잠자리가 맴을 돌며 날아다니고, 밤마다 귀뚜라미의 고운 노래가 들려온다. 다양한 곤충이 계절을 바꾸어 가며 자연의 서정시를 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봄에 배추흰나비가 날고, 여름에 매미가 울고, 가을에 고추잠자리가 날고 귀뚜라미가 우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귀뚜라미는 어째서 봄이 아니라 가을에만 노래를 하는 것일까? 곤충들이 마치 언제 무대에 나서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연극 배우들처럼 꼭 제철에만 그 모습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곤충들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밤과 낮의 길이, 다시 말해 '해의 길이'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곤충들은 해의 길이를 읽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배추흰나비를 예로 들어 보자. 배추흰나비의 생활사를 살펴보면 계절에 따라 잠을 자는 세대도 있고 잠을 자지 않는 세대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을 자는 세대라는 것은 겨울을 번데기 꼬치 속에서 나는 것을 말하고, 잠을 자지 않는 세대라는 것은 번데기가 겨울을 나지 않고 곧바로 엄지벌레가 되는 것을 말한다. 번데기의 상태로 꼬치 속에서 겨울을 난 후, 봄이 되어 멋진 날개를 달고 나온 배추흰나비는 알을 낳는다. 그러면 그 알이 깨어나서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배추벌레)가 되어 자라난다. 그리고 이 애벌레가 자라나는 것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접어들어 해가 점점 길어질 때이다.
애벌레의 머릿속에는 '광주성 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광주성 시계가 하는 일은 해의 길이를 재는 것이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가진 광주성 시계는 초여름이어서 해가 길 때에는 즉시 한 세대를 더 살라고 명령한다. 이런 명령을 받아들인 배추벌레는 번데기 상태가 된 후에도 긴 잠에 빠지지 않고 곧바로 날개를 달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알을 낳는다. 이런 세대는 잠을 자지 않는 세대이고, 한 세대를 다시 반복하기 때문에 봄에 배추흰나비가 낳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자라나, 다시 나비가 되어 알을 낳는다. 이 새로운 세대의 나비가 낳은 알에서도 다시 애벌레가 깨어난다. 이 애벌레가 가진 광주성 시계도 해의 길이가 길 때에는 다시 한 세대를 반복하라고 명령한다. 이런 명령을 받은 애벌레가 변한 번데기는 긴 잠에 빠지지 않고 바로 나비가 되어 다시 알을 낳는다. 이런 일이 계속 되풀이된다. 그리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해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면 애벌레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광주성 시계는 해가 짧아졌다는 것을 알고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는 시기를 조금 늦춘다. 그래서 더 오래 먹이를 먹고, 몸 속에 영양분을 많이 저장하는 것이다. 이런 준비는 모두 번데기가 되어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번데기가 되어 겨울을 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왕귀뚜라미의 생활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왕귀뚜라미의 생활사를 알기 전에 우선 왕귀뚜라미가 어떤 곤충인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왕귀뚜라미는 귀뚜라미의 일종으로 몸의 길이가 2센티미터에서 2.6센티미터나 된다. 귀뚜라미 중에서 가장 커서 왕귀뚜라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몸은 갈색이고 밭이나 풀밭에서 살아간다. 왕귀뚜라미의 수컷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면서 우리들에게 흠씬 풍기는 가을의 정취를 전달해 준다. 그런데 사실 수컷의 노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짝짓기를 위해 암컷을 부르는 소리이고, 그 소리는 날개를 비벼서 낸다. 노래하는 수컷을 만나 짝짓기를 한 암컷 왕귀뚜라미는 흙 속에 알을 낳는다. 이렇게 알을 낳고는 수컷이나 암컷 모두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알은 흙 속 에서 겨울을 난다. 봄이 가고 초여름이 되면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난다. 애벌레는 계속 탈피를 반복하면서 자라나서 여름이 끝날 때쯤이면 엄지벌레가 된다. 이렇게 엄지벌레가 된 왕귀뚜라미는 다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그 알은 다시 이듬해 초여름이면 애벌레가 되고 여름이 끝날 때쯤 엄지벌레가 된다. 그리고 엄지벌레의 수컷은 다시 짝짓기를 위해 노래하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가을이 올 때마다 왕귀뚜라미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진딧물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여러분도 나무의 새순이나 꽃에 작은 벌레가 하나 가득 꼬물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벌레는 진딧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진딧물이라는 곤충이 갖는 생활사는 신비롭다. 진딧물의 엄지벌레는 봄부터 여름에 걸쳐 해가 긴 동안에는 알이 아니라 애벌레를 낳는다. 이 때 암컷 엄지벌레는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은 채 새끼를 낳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암컷의 새끼만을 낳는다는 것이다. 암컷 애벌레들은 자라나서 엄지벌레가 되면 다시 암컷 애벌레들을 낳는다. 이런 일이 여름까지 계속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오면서 해가 점점 더 짧아진다. 그러면 진딧물의 몸에 있는 광주성 시계가 명령을 내린다. 암컷과 수컷의 애벌레를 모두 낳으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을 받은 암컷 진딧물은 이번에는 암컷과 수컷의 애벌레를 동시에 낳는다. 암컷과 수컷 애벌레들은 성장해서 엄지벌레가 되어 짝짓기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짝짓기를 한 암컷이 낳는 새끼는 놀랍게도 애벌레가 아니라 알이다. 짝짓기를 한 암컷은 알을 흙 속에 낳는데, 이는 알이 따뜻한 흙 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도록 하려는 것이다. 흙 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은 진딧물의 알이 자라 애벌레가 되고 다시 엄지벌레가 되는 것이다. 진딧물의 생활사는 이렇게 계속 되풀이된다.
곤충들이 겨울을 보내는 방법은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왕귀뚜라미나 진딧물처럼 알로 겨울을 나는 것도 있고, 배추흰나비처럼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는 것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애벌레의 상태로 겨울을 나는 것도 있으며 엄지벌레 그 자체로 겨울을 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많은 곤충들이 깊은 잠에 빠져 겨울을 난다.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물론 여름에 깊은 잠에 빠지는 곤충도 있다. 곤충에게 있어서 이런 긴 잠은 겨울의 추위나 여름의 더위와 같은 계절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육 단계를 조절하기 위해서 오랜 진화를 통해 획득한 대단히 훌륭한 방법이다.
곤충은 깊은 잠을 자는 동안에는 호흡이라든가 다른 여러 활동에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사용한다. 그리고 많은 적이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몸을 숨긴 채 잠에 들어간다. 같은 종의 곤충은 해의 길이가 일정한 어느 하루를 택해 광주성 시계가 명령을 내리면 일정한 발육 상태에 달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잠에 들어간 후에는 모두 발육을 정지해 버리기 때문에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개체가 똑같은 발육 단계에 있게 된다. 그리고 어느 특별한 계절이 이들을 방문해서 잠을 깨우면, 다음 단계의 발육에 들어가는 것이다. 곤충이 연출하는 대자연의 사계는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