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의 연구에서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동물이 무엇이냐고 하면, 누구나 초파리라고 답할 것이다. 초파리는 오랫동안 유전학의 연구 재료로 사용되었고, 유전학의 발전에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한데 이 초파리라는 동물은 생물 시계의 연구 재료로도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생물 시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피텐도릭은 이 초파리를 이용해서 생물 시계의 구조를 해명하고 있다.
야외에서 사는 초파리는 새벽녘에만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엄지벌레가 되어 나온다. 이렇게 번데기의 허물을 벗는 일을 엄지벌레가 날개를 달고 나온다고 하여 깃 우, 될 화해서, 우화라고 한다. 피텐도릭은 실험실 안에서 초파리의 우화 현상에 대한 실험을 했다. 우화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평생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에도 생물 시계가 관련되어 있을까? 그는 우선 초파리를 배양하는 실험실 내부에 12시간 동안은 조명을 밝게 비추고 12시간은 조명을 꺼서 어둡게 했다. 이런 일을 매일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초파리의 번데기는 조명이 들어오자마자 우화했다. 초파리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새벽에 우화를 한 것이다. 초파리에게 있어서 우화는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이므로 우화에 대한 실험은 한 마리의 초파리만 가지고서는 할 수가 없다.
초파리의 우화를 실험하려면 수천 마리의 발육 단계가 다른 번데기를 한 곳에 모아놓고, 시간 차를 두고 우화해 나오는 엄지벌레의 수를 세는 식의 실험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고, 또 정확한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조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곳에서 번데기의 우화를 실험해서 불을 켜자마자 우화한다는 결과를 얻은 피텐도릭은 이제 다른 실험을 하기로 했다. 이는 함께 있었지만 아직 우화하지 않은 다른 번데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여러분도 이제는 어떤 실험을 했을지를 눈치 챘을 수도 있다. 이 새로운 실험을 위해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던 인공적인 밤과 낮의 환경을 계속되는 밤이라는 환경으로 바꾸었다. 조명을 항상 꺼 두었던 것이다. 번데기에게 있어서는 계속되던 밤과 낮이 갑자기 기나긴 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실험 결과는 다시 한 번 놀라움을 던져 주었다. 초파리의 번데기들은 이제까지 많은 수의 초파리가 우화한 시간과 약 24시간의 간격을 나타내면서 집중적으로 우화해 나왔다. 밤과 낮의 변화를 경험한 번데기들은 밤과 낮이 사라진 후에도 같은 주기의 리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일생에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우화라는 현상도 서커디언 리듬을 가진 생물 시계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텐도릭은 새로운 실험을 해 보았다. 인공적인 밤과 낮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곳에서 살던 한 무리의 번데기가 들어있는 용기에 보통의 공기 대신 질소 기체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질소 기체를 집어넣는 시간은 1시간에서 24시간까지로 다양하게 조절했다. 그런 뒤 번데기가 들어 있던 용기를 보통 공기로 다시 바꿔 넣었다. 그리고는 조명을 끄고 계속 어둡게 해 두었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피텐도릭은 우화하는 초파리의 수가 집중되는 시각은 질소 가스에 들어 있었던 시간만큼 건너뛴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계속 약 24시간을 주기로 우화가 집중되는 시간이 되풀이되었다. 이 조그만 동물, 초파리의 몸 속에 들어 있는 생물 시계는 질소 가스에 의해 잠시 멈추어졌던 것이다. 마치 건전지로 가는 탁상 시계가 건전지를 빼면 정지하고 건전지를 끼우면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질소 가스에 들어 있던 시간 만큼 생물 시계가 딱 멈춰 있다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온도가 20도로 유지되는 경우, 초파리가 번데기의 상태로 지내는 시간은 약 10일이라고 한다. 한데 실험 결과를 보면 초파리의 시계는 약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파리 번데기의 몸에 있는 시계는 하루 중 꼭 한 번, 특별한 시각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 번데기 껍질 속에서 엄지벌레의 몸으로 되어 나올 준비가 갖춰진 개체만이 우화를 하는 것이다. 그 시간까지 우화할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다른 개체들은 시계가 다시 그 시간을 가르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우화를 하기 위한 '좁은 문'은 하루에 1번 4 ~ 5시간 동안만 열리고, 그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닫혀 버린다. 그 좁은 문이 열리면 번데기 껍질 속에서 그 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엄지벌레들이 날개를 달고 그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초파리가 꼭 새벽이라는 시간대를 골라 우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계에 있어서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습도가 높은 시간이다. 초파리는 이렇게 가장 습도가 높은 시간에 우화를 한다.
습도가 높은 시간에 우화를 하는 이유는 우화 직후 초파리가 가진 약하고 얇은 날개의 건조를 방지하려 함일 것이다. 습도가 높아 얇은 날개가 촉촉히 젖어야만 바싹 말라 바스라지는 일이 없을 테니까. 초파리가 우화하는 시간을 선택하는 서커디언 시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습도이지만, 실제로 주기를 맞추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습도가 아니라 빛이다. 이런 현상은 4장에서 쥐며느리를 이야기할 때도 다룬 바가 있다. 쥐며느리가 행동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습도였지만 쥐며느리도 어두운 곳에서 습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초파리의 우화가 새벽에만 집중되는 현상은 생물 시계가 가진 불가사의이지만, 대단히 합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계에서 맨 처음 햇살이 비쳐오기 시작하는 새벽녘은 언제나 가장 습도가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