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5장 생물 시계의 작용
생물의 리듬과 약물의 효과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24시간 리듬은 본질적으로는 모두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생물 시계에 의해 지배되는 서커디언 리듬이다. 독일의 아쇼프라는 과학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서커디언 리듬을 실험하기로 마음먹고 건강한 대학생 중에서 실험에 응할 지원자를 선발했다. 대학생 지원자는 모두 50명이었다. 아쇼프는 이 50명의 대학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완벽한 방음 장치가 된 지하실에 격리시켰다. 그리고 며칠 동안 이 대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대학생들이 들어간 지하실 방에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시계를 비롯해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5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실험한 결과, 사람도 일정한 서커디언 리듬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물 시계가 보이는 주기는 하루보다 조금 길어서 약 25시간 정도였다. 실험에 들어간 대학생들은 25시간을 주기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25시간을 주기로 되풀이되는 것은 잠들고 깨어나는 리듬만이 아니었다. 잠들고 깨어나는 데 따라 진행되는 체온의 변화, 그리고 소변 속에 포함된 전해질이나 호르몬의 양 등, 대략 하루를 주기로 반복되는 행동의 리듬이 모두 25시간을 주기로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가진 25시간을 주기로 자유 진행하는 생물 시계의 주기가 바깥 세상의 밤과 낮에 맞추어 24시간으로 조절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실험의 결과, 사람이나 쥐의 정상적인 개체에 있어서는 체온, 맥박을 비롯해서 소변이란 혈액의 성분 등과 같은 여러 가지가 24시간을 주기로 변화한다는 점이 알려졌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간대도 분명해졌다. 그런데 24시간을 주기로 변화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활동의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자극이나 약물에 대한 감수성 역시 하루 24시간의 리듬을 갖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는 의학이나 약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양한 호르몬제와 의약품의 경우, 잘못된 방법으로 투약했을 때 인체의 정상적인 리듬을 파괴해 버린다는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생소하지만 앞으로는 '시간 약리학'이라는 의학의 분야가 점차 중요하게 대두될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자극에 대한 감수성의 리듬과 약물 투여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쥐의 독성 실험을 예로 들어 보겠다.
과학자들은 실험용 쥐를 몇 무리로 나누어 독소에 대한 감수성이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실험해 보았다. 서로 다른 무리의 쥐에게 하루 중의 서로 다른 시간에 독소를 주입하는 실험이었다. 이때 사용한 독소는 대장균에서 뽑은 것으로서, 이 독소를 똑같은 양만큼 시간을 달리해서 주사해 보았다. 그러자 어느 시기에 독소를 주사한 생쥐들은 무려 85%에 달하는 사망률을 보인 데 반해, 다른 시기에 독소를 주사한 생쥐의 무리는 약 5%의 사망률만을 보였다. 사망률이 가장 높을 때와 낮을 때 사이에는 무려 80%나 되는 커다란 차이가 나타났던 것이다. 실험용 쥐들이 시간에 따라 독소에 대해 보이는 감수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곧 이어 다른 실험에 착수했다. 제암제에 대한 감수성을 실험했던 것이다. 여러분 중에는 제암제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암제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제암제는 보통 항암제라고 불리는 것으로, 암이나 백혈병 같은 악성 종양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약품을 말한다. 제암제가 하는 역할은 암세포의 분열, 증식을 막고 암세포를 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제암제는 암에 대해 효과를 보이지만 특유한 독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번 실험에서는 쥐가 제암제 ara.c에 대해 나타내는 감수성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물론 여기서의 감수성이란 제암제의 독성에 대한 감수성으로, 감수성을 나타내는 쥐는 죽게 된다.
실험은 대장균의 독성을 조사할 때와 마찬가지로 몇 무리로 나눈 쥐들에게 서로 다른 시기에 제암제를 주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실험의 결과는 제암제의 독성에 대한 쥐의 감수성도 24시간을 주기로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변화의 폭은 대장균의 독성 실험에서처럼 상당히 컸다. 과학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해서 더욱 다양한 실험을 해 보았다. 그리고 쥐의 약물에 대한 감수성과 그 약품에서 얻어지는 효과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결론은, 약물에 따라서 하루 중 그 약물의 독성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과 가장 커다란 약효를 보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 속에는 신경의 작용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있다. 히스타민은 동물의 조직 안에 널리 존재하는 화학 물질로서 평소에는 불활성 상태에 있다. 하지만 상처가 나거나 특별한 물질이 몸 속으로 들어오면 활성을 일으켜서 혈관의 확장을 일으킨다. 이런 일은 인체에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일으킨다. 이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품을 항히스타민제라고 한다. 항히스타민제는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유발하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줄여 주는 물질로서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의 치료에 이용된다. 가래가 끓고 기침이 나면서 기관지에 경련이 일어나는 병인 천식이나, 두드러기 등을 치료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감기약 중에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하는 경우, 저녁 7시에 투여하는 것보다는 아침 7시에 투여하는 쪽의 약효 지속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진다고 한다.
시간에 따라 약물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리듬은 쥐나 사람과 같은 포유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곤충의 경우에도 역시 감수성의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피레트린이라는 살충 성분에 대해서 집파리와 바퀴가 나타내는 감수성을 예로 들어보자. 피레트린은 말린 제충국꽃에서 채취되는 것으로서 노란색을 띤 찰지고 끈끈한 기름상의 물질인데, 곤충의 몸에 닿으면 독성을 일으킨다. 한데 이 피레트린의 독성에 대해 집파리나 바퀴가 나타내는 감수성은 매일 늦은 오후에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피레트린으로 바퀴나 파리를 잡으려면 오후에 약을 놓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약물에 대한 감수성의 변화는 동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식물도 약물에 대한 감수성을 나타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세 종류의 제초제에 대한 식물의 감수성을 조사해 보았다.
실험 대상이 된 식물은 목화의 새싹이었다. 제초제란 잡초를 없애는 농약을 말한다. 제초제는 잡초를 없애는 데 사용되지만, 농작물에 스며들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제초제는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잡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식물의 어린 싹이 자라는 것까지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목화의 어린 싹도 제초제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실험 결과, 목화의 어린 싹이 모든 제초제에 대해 나타내는 감수성도 하루를 주기로 변화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농민이 제초제를 뿌릴 때, 만일 그 제초제가 오후에 가장 감수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한낮에 뿌려야만 가장 커다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충제에 대한 집파리나 바퀴의 감수성이 주기적으로 변화한다거나 제초제에 대한 식물의 감수성이 하루를 주기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감수성의 리듬을 잘 알면, 살충제나 제초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