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쥐며느리와 노래기
여러분도 쥐며느리라는 벌레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쥐며느리는 갑각류 쥐며느리과의 동물로서 몸의 길이는 1센티미터 정도로 작은 편이다. 몸은 납작하고 타원형으로 생겼는데 몸의 대부분은 7마디로 된 가슴이 차지하고 6마디로 된 배는 작다. 그리고 꼬리 끝에는 1쌍의 붓끝 모양의 꼬리마디가 있다. 몸의 색은 짙은 회색빛이 도는 갈색이다. 이들은 썩은 나무나 마루 밑처럼 축축한 곳에 사는 데 전세계 어느 곳에나 분포한다. 쥐며느리의 행동에서도 역시 서커디언 리듬이 나타나고 있다.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는 밤에 밖으로 돌아다니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쥐며느리가 보이는 리듬이 빛의 리듬에 대해서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쥐며느리가 행동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빛보다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일 것이다. 쥐며느리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어두운 장소를 찾을 때까지 이리저리 활발하게 움직여 다닌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장소를 발견하면 겨우 안심했다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쥐며느리는 빛을 피해 달아나는 성질은 분명하게 나타내지만, 눅눅한 공기나 축축한 장소를 찾아가려는 성질은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따라서 습도와는 무관하게 마구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밝은 곳에서도 공기 중에서 습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쥐며느리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속도를 점차 늦춘다. 그리고 결국은 방향을 바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게 된다.
그렇다면 쥐며느리는 빛을 피하려는 성질과 눅눅한 곳을 찾아가려는 성질 중 어느 것이 더 큰 것일까? 어두운 곳과 밝은 곳에서 각기 실험을 해 보았다. 실험 결과는 어두운 곳에서는 쥐며느리의 습도에 대한 반응이 약해지고, 밤에는 더욱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밝은 곳에서는 습도에 대한 반응이 비교적 강했다. 결국 쥐며느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우선적인 요소는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습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같은 실험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습도가 낮을 수록, 즉 건조할수록 습도에 대한 반응이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위험할 정도로 건조한 곳에서는 습도에 대한 반응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빛으로부터 도망치는 동작도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어두운 장소에 오래 놓아 두었을수록 빨랐으며, 건조한 공기 중일수록 빨랐다. 동작의 활발한 정도는 외부의 조건에 대해 민감할수록 더욱 커졌던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는 쥐며느리가 야행성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쥐며느리는 밝은 낮에는 습도에 대한 반응이 강해지기 때문에 축축한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지만 밤이 되어 습도에 대한 반응이 약해지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야행성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쥐며느리가 주행성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습도에 민감하지 않다고 해서 낮 동안 숨어 있던 컴컴한 장소가 아주 건조해 졌을 때, 몸이 바싹말라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꼼짝 않고 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쥐며느리는 아주 건조한 곳에서는 빛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쥐며느리는 이런 성질 때문에 이리저리 밝은 곳을 찾아다니고, 마침내 축축한 장소를 만나면 다시금 빛을 피하는 성질을 나타내게 된다. 이렇게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막에서 사는 쥐며느리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온대 지방의 쥐며느리와 비슷한 서커디언 리듬을 갖고 있고, 습기에 대한 반응도 거의 비슷하다. 사막에 사는 쥐며느리는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고온 건조한 조건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해 왔던 것이다.
쥐며느리는 습기가 많이 포함된 공기 속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다. 하지만 건조한 공기나 고온에 견디는 능력에는 종류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또 건조한 장소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의 길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동물은 종류에 따라 야행성의 정도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실험을 통해 이런 야행성의 차이는 수분의 손실을 견디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증명되었다. 또 다른 실험을 통해,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야행성이 억제된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이는 바람이 부는 날에는 공기의 흐름이 많아지고, 따라서 동물의 몸을 감싸고 있는 습한 공기가 이리저리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의 정도와 밤에 움직이는 쥐며느리의 숫자가 보이는 상관 관계는 기온이 어느 정도 이상일 때에만 나타났다.
이제는 노래기 이야기를 해 보자. 노래기는 절지동물 배각류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노래기의 몸은 원통형으로 길고, 발이 상당히 많다. 노래기를 살짝 건드리면 몸이 둥글게 말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 몸의 옆쪽에서는 고약한 노린내가 풍긴다. 그래서 노래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예전에 초가집이 많았을 때에는 지붕 속에 노래기가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한데 이 노래기는 쥐며느리와 비슷한 행동을 나타낸다. 햇빛을 싫어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숨어사는 것이다. 노래기 역시 건조한 공기에서는 수분을 빼앗기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데 어떤 노래기는 처음 얼마 동안은 건조한 장소 쪽으로 움직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습한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어느 과학자는 습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노래기의 활동을 실험해 보았다 한다. 그랬더니 노래기는 습도가 높을수록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고, 움직이는 거리도 길었다.
노래기는 아주 분명한 24시간 리듬을 갖고 있다. 낮에는 돌이나 나무 껍질, 낙엽 밑 등의 어둡고 축축하고 안전한 곳에 숨어 있지만, 서커디언 리듬을 알려주는 시계가 밤이 되었음을 알리면 밖으로 나와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열대 지방에서 사는 노래기의 경우, 행동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의 변화가 아니라 기온의 높낮이라고 한다. 이들 열대 지방 노래기의 행동에 있어서 빛의 효과는 극히 작은데, 이는 열대우림 속의 컴컴한 환경 조건 속에서 빛의 변화는 그리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기에 있어서도 쥐며느리와 마찬가지로 습도가 가장 중요한 환경 조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노래기는 습한 장소를 바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조한 곳을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다가 찾아간다. 이렇게 아무 쓸모도 없이 보이는 기묘한 행동은 자신의 서식지를 멀리 떠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놀라우리만치 효과적이다.
그러나 집단이 분산되어 새로운 서식지를 만들어 가려는 경우에는 이런 습성이 불편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때로는 노래기의 대부대가, 지네나 쥐며느리를 데리고 이동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간혹 철로 선로를 횡단하다가 기차에 받쳐 죽은 노래기가 얼마나 큰 무리였던지, 기관차가 그대로 달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기차를 세우고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레일에 모래를 뿌리고 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때는 노래기의 큰 부대가 목장을 침입하여 가축이 놀라서 풀을 먹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또 목장의 일을 보던 목부들은 우물에 노래기가 가득 빠져 죽는 바람에 노래기의 몸에서 나는 노린내 때문에 구역질을 하는 등 고생을 하기도 한다. 노래기의 대부대 이동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또 그 범위도 극히 좁은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이동이 노래기의 분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래기의 지역 이동을 막는 장치, 즉 건조한 곳을 마구 돌아다니다가 습한 곳을 찾아가는 성질은 기온이 떨어지고 습도가 높아지는 밤일수록 약화된다. 따라서 대부대는 밤에만 이리저리 옮겨다님으로써 노래기의 선천적이고 생리적인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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