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날개나 파피루스 또는 야자 잎 등으로 만든 부채들은 장식품이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실용품이다. 부채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5000년 전 똑같은 시기에 별도로 탄생했다. 한쪽은 중국인으로 부채를 예술로까지 승화시켰고 또 한쪽인 이집트인들은 계급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집트의 수많은 문헌이나 그림들은, 부유한 사람의 '부채를 든' 하인이나 파라오를 위해 '왕의 부채를 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얗거나 검은 피부를 가진 노예들이 주인에게 시원한 바람을 안겨 주기 위해 커다란 잎이나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거대한 부채를 끊임없이 펄럭여댔다. 그런가 하면 부채가 땅에 드리우면 그림자 영역은 평민들이 침범해서는 안 되었다. 열대에 가까운 이집트에서 '그림자'나 '산들바람'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무형재산이었으며, 부채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노예의 노력으로 고귀한 사람들을 마치 옷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중국의 부채는 좀더 민주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부채의 디자인이나 장식도 더욱 다양하고 종류가 많았다. 비단벌레 색의 공작 날개 외에 '칸막이식' 부채도만들었다. 실크 소재를 대나무 틀에 붙이고 옻칠을 한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6세기에 칸막이 부채가 일본으로 도입되었으나 일본인들은 이것을 독창적으로 개발해 접는 부채인 접부채를 만들었다. 일본의 접부채는 빳빳한 비단천을 막대기 상태의 골조에 붙이고 순서대로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부채는 소재나 색상, 디자인 등에 따라 이름도 다르며 사용 목적도 달랐다. 예를 들어 여성용으로는 무용, 궁정, 다도용 부채가 있고 남성용으로는 승마, 전투용 부채가 있다. 10세기에 일본인은 접부채를 중국에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이 일본식 디자인을 고쳤다. 골조에 붙여진 빳빳한 비단을 떼어낸 뒤에 골조만 대나무나 상아의 블래이드(칼날 상태의 평평한 것)로 바꾸어 끝에 달린 리본으로 블래이드를 연결하고 역시 접는 식의 부채를 만들었던 것이다. 15세기가 되자 동양과 교역을 하던 유럽 상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여러 가지 장식용 부채를 가지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 단연 인기가 있었던 것은 복잡한 모양을 조각한 상아의 블래이드를 흰색 또는 빨간색 리본으로 연결한 '블리즈'라는 부채였다.
부채가 한여름을 연상시킨다면, 장갑은 추운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장갑은 추위나 중노동으로부터 손을 지키고 싶다는 소원 때문에 태어났다. 북유럽 지방에서 발견된 많은 장갑 중에는 동물 가죽으로 만들고 팔꿈치까지 덮는 '봉지형 장갑'이 있는데 이 장갑은 적어도1만년도 더 된 것이다. 지중해 연안의 온습 지역에 살고 있던 고대인들은 집을 세우거나 밭일을 할 때 장갑을 사용했다. 이들 가운데 기원전 1500년 무렵 이집트인들이 처음으로 장갑을 장신구로 사용했다. 시타카멘 왕의 묘지 안에서 겹친 천에 싸인 부드러운 린넬 장갑과 염색한 실로 짠 장갑 한 쪽을 고고학자가 발견했다. 장갑 끝의 실 모양으로 보아 이 장갑은 손목에 묶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다섯 손가락이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손 모습을 한 장갑이 지금부터 적어도 3500년 전에는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의 따스함과는 관계없이 모든 주요 문명은 장갑을 장식용과 노동용으로 모두 만들어 왔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의 매우 정교한 장식용 모피 장갑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와 정원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의 손을 가시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장갑이 하고 있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 손을 덮는 것을 'glof'(손바닥)라고 부른 것은 앵글로색슨인이다. 여기서 'glove'(장갑)라는 말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