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소설보다 영화로 더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기억할 것이다. 얄미우리만치 당차고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남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무시해 버리는 그 시대의 신세대였다. 남녀의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인 파티장에 가기 위해, 스칼렛은 유모의 도움을 받아 코르셋으로 허리를 있는 대로 졸라맸다. 그렇게 졸라맨 그녀의 허리는 남자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 클라크 케이블의 두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가늘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위에 사람 다섯은 들어갈 만한 폭 넓은 드레스로 몸을 감쌌다. 인상 깊은 것은 그 다음 장면이다. 가슴이 깊이 파이고 어깨에 프릴이 많이 달린 그 드레스. 그녀는 어깨를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고 기를 쓴다. 정숙한 여성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는 유모의 애원 섞인 핀잔도 무시한 채 말이다. 파티장에서 그녀는 뭇남성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여성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그녀의 후손들은 배꼽을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팬티보다 5센티미터쯤 더 내려오는 핫팬티와 함께.
1960년대 초 영국 마리퀸트가 '어머니와 같은 옷입기'를 거부한다는 선언을 한 이후 지구촌에는 미니 선풍이 불어닥쳤다. 곧 프랑스의 한 디자이너는 '옷으로부터의 해방'을 내걸고 노브라를 제안했다. 거리에는 슬립처럼 어깨를 가느다란 끈으로 처리한 '슬립형 미니' 원피스나 등을 과감히 드러낸 배꼽티에 슬리퍼를 신은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깨나 가슴 부분을 파거나, 속옷 패션, 앞 단추를 몇 개 푸는 식의 노출 면적 확대는 머지 않아 투명 소재를 통해 가슴을 엿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런 노출 패션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는 신발이다. 슬리퍼 등 뒤축이 없는 여름용 신발 못지 않게 발목이나 무릎까지 올라오는 워커 부츠 같은 겨울 신발이 각광받고 있다. 그야말로 계절 파괴이다. 노출 패션이 성숙하고 세련된 여성미를 표출하려는 욕망과 관계 있다면, 베이비돌(baby doll) 스타일은 귀엽고 천진난만한 소녀의 느낌을 표현한다. 여성들의 두 가지 욕망이 옷차림에 교차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섹시함과 여성스러운 느낌을 최대한 살린 노출 패션 스타일과는 달리 베이비돌 룩은 소녀다운 건강한 이미지와 인형 같은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목의 선을 깊이 파내고 아기자기한 단추나 레이스, 프릴 외에는 장식을 거의 하지 않는 미니 원피스 차림의 한껏 어려 보이는 소녀들이 배꼽을 드러낸 섹시한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얼룩무늬 군복의 밀리터리 룩, 엉덩이에 살짝 걸친 바지가 신발까지 덮는 힙본 룩, 속옷도 겉옷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언더웨어 패션, 가슴이 팽팽하게 드러나는 글래머룩 등 다양한 패션이 눈을 즐겁게 또는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햇빛에 눈을 보호하던 선글라스는 여성들의 머리띠 대용으로 쓰이고 있으며, 갖가지 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세계화에 발맞추는 것인가. 미인의 상징이던 하얀 피부는 한물가고 건강미 넘치는 구리빛 피부가 그 자리를 대신해 선탠 전문점이 성업하고 있다. 강아지도 패션 소품으로 만드는 감성, 표현하지 않는 감각은 감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신감에는 개성과 자기 만족, 모방, 유행에 대한 부화뇌동이 뒤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