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4. 고대엔 남성들도 화장을 했다.
고대엔 남성들도 립스틱을 발랐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겠지만 그것을 유지하려면 약간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남녀 미국인들이 단지 아름답게 보이려는 이유만으로 미용실이나 이발소, 화장품 회사에 내는 돈은 연간 50억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화장이나 그 밖의 멋내기는 별로 놀랄 일도 걱정할 일도 아니다. 적어도 이미 8000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일이니까 말이다. 얼굴이나 몸을 장식하고, 향료를 뿌리고, 파우더를 바르고, 머리를 염색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종교나 전투 의식의 일부로 시작되었는데 그 역사는 아주 오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6000년 전에 얼굴이나 눈에 화장을 하기 위해 안료를 잘게 깨거나 섞을 때 썼던 팔레트를 발굴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4000년에 이미 미용실이나 향료 제조 공장이 번성했고 메이크업 기술도 매우 발달하여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에 사랑받던 아이섀도는 그린, 립스틱은 블루 블랙, 볼연지는 빨강이었다. 그리고 상류층 여성들은 손가락이나 발을 주황색인 헨나(부처꽃과의 식물) 염료로 염색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당시는 가슴을 드러내는 시대였기 때문에 가슴의 혈관을 푸른 색 안료로 뚜렷하게 그렸고 유두는 금색으로 칠했다. 이집트의 남성들도 여성들 못지 않게 화장을 좋아했다. 이승에서뿐만 아니라 저승에서까지도. 그들은 죽으면 저승에서 사용할 엄청난 양의 화장품을 함께 매장했던 것이다. 1920년대에 기원전 1350년 무렵의 이집트 왕인 투탄카멘의 묘지를 발굴했을 때 스킨크림, 립스틱, 볼연지가 든 작은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고 무척 향기가 좋았다.
사실 기독교 시대까지 기록에 남은 모든 문명을 보면 그리스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파우더나 향료, 안료로 열심히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특히 눈은 몸의 어느 부분보다 마음 속의 감정을 잘 나타내므로 특히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던 것 같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4000년에 이미 얼굴 메이크업의 최대 포인트로서 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은 골작석 가루나 청록색의 동광석으로 만든 녹색 아이섀도를 즐겨 칠했는데 눈꺼풀의 위아래와 양쪽을 진하게 발랐다. 또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눈썹이나 속눈썹을 진하게 하려고 코르라는 검은 페이스트(paste)를 사용했다. 이것은 안티몬의 가루, 소성 아몬드, 검은색 산화동, 자토로 반죽해서 작은 설화 석고 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침으로 적셔서 상아나 나무 또는 금속제의, 현재의 눈썹 펜슬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스틱에 발라 눈화장에 사용했다. 코르가 들어 있는 항아리들은 현재도 많이 남아 있다. 상류 이집트인들은 남녀 모두 사상 최초로 눈 주위를 반짝거리게 하는 아이글리터를 붙였다. 풍뎅이의 딱딱한 황금빛 날개를 유발에 넣고 거칠게 짓이겨 공작석 아이섀도에 섞어서 썼던 것이다. 이집트 여성들 대부분은 눈썹을 밀어내고, 나중에 그리스의 고급 창녀들이 한 것처럼 눈썹을 붙였다. 진짜든 가짜든 코 위에서 양쪽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은 코르를 사용하여 본래 떨어져 있는 눈썹을 하나로 이었다.
눈화장은 헤브루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메이크업이었다. 이 습관은 기원전 850년경, 아하브 왕의 왕비인 예제벨에 의해 이스라엘에 소개되었다. 시든의 공주였던 예제벨은 당시 문화나 패션의 중심지인 페니키아의 습관을 따르고 있었다. 성경도 그녀의 화장에 대해 쓰고 있다. "예후가 이즈르엘에 이르자 예제벨은 소식을 듣고 눈화장을 하고..."("열왕기" 하 9장 30절) 예제벨은 진한 화장을 하고 궁전의 높은 창문에서 자신의 아들과 왕좌를 다투는 예후를 나무랐다. 하지만 예후의 명령을 받은 자신의 하인에 의해 창문에서 떨어지고 만다. 예제벨은 평민의 권리를 냉혹하게 무시했고 헤브루의 예언자인 엘리야와 엘리샤를 공공연히 모욕했기 때문에 악녀의 전형이라는 평판을 받게 되었다. 예제벨은 몇 세기에 걸쳐 화장품에 나쁜 이미지를 남겼다.
이집트의 메이크업 기술을 흉내내 바로 실천한 로마인과 달리 그리스인은 맨얼굴을 좋아했다. 기원전 12세기 도리스인의 침입이 시작된 시대부터 기원전 700년 무렵까지, 하루가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나는 그리스인들에게 몸을 장식하는 따위의 퇴폐적인 쾌락에 소비할 시간은 없었다. 그 뒤 사회가 안정되어 기원전 5세기에는 황금시대라는 번영을 맞이했으나 남자다움과 무풍류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리스 사회에서 발전한 것은 학문과 육상 경기였고 치장하지 않는 남성이야말로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에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조금씩 들어온 화장술이 고급 창녀들에 의해 정착했다. 고급 창녀들은 돈이 많고 생활이 풍요로워 진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멋드러지게 묶었으며 몸에 향료를 발랐다. 또 입냄새를 없애려고 입 안에 방향액이나 방향유를 넣고 혀로 굴리다가 삼키지 않고 적당한 때 뱉어냄으로써 좋은 냄새를 풍겼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구취 방지제인 셈이었다. 또 그리스의 고급 창녀들에게서는 흑발보다 금발을 좋아하는 금발 선호사상이 처음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금발은 순결과 사회적 지위가 높음, 성적 매력을 뜻했기 때문에 창녀들은 노란 꽃잎이나 화분에 칼륨을 섞고 사과 향을 첨가한 포마드로 머리색을 금색에 가깝게 만들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전혀 대조적으로 남성이나 여성 모두 화장품을 무척 많이 사용했다. 동방의 원정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은 인도의 향료나 화장품, 금발용 황색 가루나 꽃가루, 금가루를 가지고 왔다. 아예 몸에 붙이고 오는 병사들도 많았다. 또 로마 여성들의 화장대에는 현대의 화장품에 버금가는 모든 것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1세기의 풍자 시인인 마르티알리스는 사랑하는 연인인 가라의 지나친 화장을 비난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가라, 당신이 집에 있을 때 당신의 머리는 머리를 빗어주는 하녀의 손 밑에 놓여 있구려. 밤이 되면 틀니를 뽑아 놓고 수백 가지의 화장품 상자 안에서 잠이 들지. 당신의 얼굴조차 당신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아.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상자에서 꺼내 붙인 가짜 눈썹 밑으로 남자에게 눈길을 보내는구려."
로마인들의 화장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에 근거하여 어원 연구가들은 오랫동안 '화장품'을 뜻하는 'cosmetic'이라는 말이 줄리어스 시저가 지배했던 로마 제국의 유명한 화장품 상인인 코스미스(Cosmis)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어왔으나, 아주 최근에 '장식에 시간을 들이는'이르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Kosmetikos'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