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마녀에게 두 어린이가 기지를 발휘해 골탕을 먹인다는 이 이야기는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쓴 동화다. 그림 형제는 1807년경 독일의 카셀 근처에서 마을 사람이나 농사꾼들에게 들은 민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모두 156편의 이야기를 수집했는데, 대부분 "신데렐라"나 "장화를 신은 고양이" 등과 같이 샤를르 페로가 쓴 이야기들과 종류가 같은 것들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도르트헨이라는 처녀가 그림 형제에게 들려준 이야기로 그 처녀는 나중에 빌헬름의 아내가 된다. 이 옛날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독일의 작곡가 엥겔베르트 핸퍼딩크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오페라를 작곡하고 1893년 뮌헨에서 최초로 상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페라는 모든 후속 개작판이 그런 것처럼 이 전래 민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 다시 말해 짐승에게 잡아먹히게 하려고 부모가 일부러 자식들을 숲속에 버리는 장면을 생략하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의 구전 민화만을 통해 알려진 것은 아니고, 17세기에 벌써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프랑스 이야기에서는 집이 아무렇게나 지은 싸구려가 아니라 금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또 집에 소녀를 가두는 것은 덩치가 큰 남자로 나중에 소녀가 그 거한을 그가 피우고 있는 불 속으로 던져 넣는다. 물론 이 이야기를 후세에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것은 그림 형제이다.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잔학 행위가 있은 뒤부터 이 이야기가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뒤 뮌헨에서 대규모 아동 도서 전시회가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헨젤과 그레텔"은 적을 불태우는 짓을 칭찬하고 있다면서 항의했다. 한편 야콥 그림과 빌렐름 그림 형제가 구전 민화를 수집하기 위해 독일의 카셀에 머물고 있었던 것 때문에 두 개의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빌헬름이 자신에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해준 여성과 결혼하고, 빌헬름이 누이동생인 로테가 그림 형제에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를 해준 하센부르크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것이다. 미의 개화와 쇠퇴, 그리고 여성의 경쟁 의식이라는 요소를 교묘하게 도입해서 불후의 동화를 쓴 것은 그림 형제가 처음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동화를 처음 쓴 사람은 그림 형제가 아니다.
"5일 이야기" 속에는 일곱 살 된 아름다운 소녀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소녀의 이름은 리자이며, 빗을 머리카락에 집어넣는 순간 의식을 잃고 만다. 유리관에 안치된 소녀는(백설공주도 같다.)성장을 계속하여(이것도 백설공주와 같다. 그리고 백설공주도 버려졌을 때는 일곱 살이었다)하루하루 아름다움을 더해 간다. 그런데 친척 여자가 리자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여 죽여야겠다고 마음먹는다(질투심 많은 여왕이 백설공주를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여자가 관을 열고 리자의 머리칼을 잡아 끌어낼 때 빗이 떨어져나가고 아름다운 리자가 다시 살아난다. 바질레의 이 이야기가 문자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백설공주 타입의 옛날 이야기일 것이다. 200년 뒤 "눈꽃"(snow drop;그림 형제가 붙인 백설공주 'snow white'의 이름)을 쓴 형제가 이탈리아의 민화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1938년 월트 디즈니가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로 스크린에 등장시킨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판이다.
그림의 이야기를 초기에 번역한 사람들 대부분이 잔혹한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여왕이 백설공주를 살해하고 그 증거로 공주의 심장을 성으로 가져오라고 명령하는 대목이다. 디즈니는 이 부분은 본래대로 다시 살리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일부 생략하기로 했다. 생략된 곳은 그림판에서 사냥꾼이 가지고 돌아온 심장을 백설공주의 것(실제는 사슴의 심장)이라고 믿은 여왕이 소금에 절여서 먹어치우는 대목이다. 그림의 이야기는 여왕의 패배로 끝난다. 불로 새빨갛게 달군 쇠구두가 신겨지고, 고통으로 반미치광이 상태가 된 여왕은 죽을 때까지 춤을 계속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