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낙타를 타고 온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의 모델, 성 니콜라스는 4세기 초 터키 남동쪽에 있던 고대 국가 리시아에서 태어났다. 니콜라스는 어릴 때부터 대단히 신앙심이 깊어 하느님을 존경하기 위해 자진해서 일주일에 두 번(수요일과 금요일)씩 단식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리시아 신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그의 인생을 오로지 하느님에게 바치고 갖가지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맨 처음 기적은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항해 도중에 사납게 굽이치는 파도를 두 팔을 벌려 진정시킨 것인데 그 기적으로 그는 선원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젊었을 때 니콜라스는 미라의 주교였다. 뛰어난 설득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그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선 존재로 로마의 지배자들에게는 괘씸한 존재였다. 이윽고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그는 폭군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명령으로 투옥되었다. 하지만 온갖 포악한 짓을 다 저지른 황제는 60세가 되자 시골로 돌아가 양배추를 심으며 살고 싶다고 하더니 갑자기 퇴위해 버렸다. 그것은 많은 로마인을 기쁘게 했고 하늘이 니콜라스를 돕는 것이었다. 새로운 황제 콘스탄티누스(나중에 스스로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니콜라스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었다. 325년,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소집된 제1회 니케아 종교회의에 중요 인물로서 참석했다. 그 후 342년 12월 6일에 죽은 니콜라스는 러시아, 그리스, 시칠리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어떤 어려움에 빠져도 니콜라스는 항상 다정함을 잃지 않고, 또한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이를 좋아했던 그의 다정함이, 그를 산타클로스로 만들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기록에는 니콜라스가 소년들의 후견인으로 일을 했다고 나와 있으며 나중에 아이들의 수호 성인도 된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는(그 이후에도)니콜라스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지만 산타클로스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몇백 년 전에 유럽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갖고 왔던 산타클로스를 봐도 그가 진짜 산타클로스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폭포 같은 하얀 수염이 있기는커녕,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가운같이 길다란 주교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머리에는 주교의 관, 손에는 비틀어진 주교 지팡이를 든 채 발이 빠르고 늘씬한 사슴이 끄는 비틀어짐 주교 지팡이를 든 채 발이 빠르고 늘씬한 사슴이 끄는 썰매가 아니라 느릿느릿한 낙타를 타고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가 찾아오는 날은 12월 24일인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라, 그의 제삿날인 12월 6일이었다. 그가 난롯가에 놓고 가는 선물도 오늘날과 비교하면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 즉 과일, 사탕, 나무나 점토로 만든 인형 등이었다. 하긴 산타클로스가 남기고 가는 오늘날의 선물이 과거보다 더 좋다고는 결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카톨릭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대신에 영국에서는 파더 크리스마스, 프랑스에서는 파파 노엘이라는 종교색이 없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어린이를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두 사람 모두 성 니콜라스와는 달리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성 니콜라스가 계속 살던 곳은 네덜란드였다. 미국에 최초로 이주해 온 네덜란드 사람들이 탄 뱃머리에는 선원의 수호 성인인 성 니콜라스의 상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들이 지금의 뉴욕을 중심으로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했을 때 최초로 세운 교회에도 성 니콜라스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네덜란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크리스마스의 관습은 미국에 맞는 형태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신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16세기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성 니콜라스가 오는 밤에는 나무 신발을 난로 옆에 두고 잤다. 나무 신발 속에는 성 니콜라스와 함께 선물을 날라다주는 낙타를 위해서, 짚을 가득 채워둔다. 그러면 니콜라스가 짚을 주어 고맙다는 인사로 선물을 양쪽 신발에 넣고 간다. 미국에서는 나무 신발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양말을 걸어 놓았고 그 양말 속에 채워둔 것은 짚 대신에 '기대감'이었다. 원래 네덜란드어로 성 니콜라스는 '신트 니콜라스'이고, 그것이 신세계에 와서 신타클로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어가 뉴암스테르담에서 그 세력을 잃자, 신타클로스는 영어화하여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오늘날의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사슴이 끄는 썰매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생긴 것이 많다. 그 대부분을 만들어낸 것이 뉴욕의 신학자 무어 박사의 시였다.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박사는 182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크리스마스 전야"라는 시를 썼다. 만일 이 시를 그의 친구가 박사 몰래 신문사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그것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채 무어 박사의 서재에 조용히 파묻혀 있었을 것이다. 신문과 잡지들이 번갈아가며 이 시를 실었다. 곧 이 시에 묘사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아 갔다. 하지만 권위 있는 학자였던 무어 박사는 동시를 쓴 사실이 밝혀지면 명성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 시의 작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1838년에 겨우 그가 썼다고 인정했을 무렵에는, 이미 전국의 어린이가 이 시를 보지 않고도 줄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산타클로스가 뚱뚱하게 된 것도 미국에서의 일이었다. 모델인 성 니콜라스는 늘씬하고 키가 큰 고상한 주교였다. 그 고상한 이미지가 유럽에서는 몇 세기 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빨간 볼에 통통하게 살찐 산타클로스는, 19세기의 만화가 토머스 나스트가 만들어 냈다. 나스트는 1863년부터 1886년까지 "하퍼스 윙클리"지에 크리스마스의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20년 동안 계속된 이 나스트의 그림에 의해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산타클로스는 점차 오늘날과 같은 친숙한 모습으로, 이미 무어 박사가 쓴 불후의 명작에 나오는 땅딸막하고 작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통통하게 살찌고 수염을 기른 당당한 체격의 산타클로스로 변해 갔다. 나스트는 이 잡지에, 산타클로스가 장난감을 만드는 모습과 어린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모습, 또는 어린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의 목록을 읽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고, 산타클로스의 생애도 소개했다. 나스트가 그린 산타클로스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정한 산타클로스의 모습으로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슴 루돌프는 미국의 한 백화점에서 탄생했다.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 '빨간 코 사슴'은 백화점이 배부한 소책자에 쓰였던 시였다. 1939년, 시카고의 백화점 몽고메리 워드는 산타클로스를 소재로 어른이나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얘기를 광고지에 싣고자 기획하고 있었다. 당시 몽고메리 워드의 카피라이터였던 로버트 메이는, 산타클로스에 관한 시를 짓고 그에 맞는 삽화를 그려 소책자로 만들고 다음해까지 놔두었다가 다시 읽고 싶을 만한 것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메이는 시의 주인공으로 산타클로스를 돕는 빨간 코 사슴을 생각해 내고 '로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친구인 화가 덴버 길렌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길렌은 동물원에 나가 몇 시간에 걸쳐 사슴의 갖가지 동작을 스케치했다. 몽고메리 워드의 중역들은 길렌의 기발한 그림이나 메이의 시는 마음에 들었지만, 사슴의 이름이 로로라는 것에는 반대였다. 로로 다음으로 레지날드가 후보에 올랐지만 이것도 어딘지 좀 어색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귀여운 이름이 올랐지만, 결국 메이의 네 살배기 딸이 제일 좋아하는 루돌프로 타결을 보았다. 1939년 크리스마스가 되자 루돌프가 그려져 있는 소책자 240만 부가 미국의 모든 지역에 배부되었다. 루돌프 소책자는 1947년까지 부정기로 찍어 배부되고 있었다. 그해 메이의 친구 조니 막스가 이 시에 곡을 붙였다. 그런데 노래는 만들었지만 가수가 결정되지 않았다. '빨간 코 사슴'은 가수들에게 계속 거절당한 끝에 1949년 겨우 진 오토리에 의해 녹음되었다. 오토리의 레코드는 예상 밖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히트 퍼레이드'의 톱에 올랐다. 그후 300종류 이상의 '빨간 코 사슴'이 녹음되고 800만 장을 넘는 레코드가 팔렸다. 진 오토리의 오리지널 레코드는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1위인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팔려나간다. 이윽고 루돌프는 텔레비전 만화에도 등장하고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각국에서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각 나라의 전설이 덧붙여지고,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성 니콜라스 전설에 다시 이 빨간 코 사슴 루돌프가 더해졌던 것이다. 이미 사회학자가 말했듯이 빨간 코 사슴은 20세기가 되어 산타클로스 전설에 덧붙여진 유일한 요소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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