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의 '아주 야한' 영화 "겨울 여자"는 한 인텔리 여성의 분방한 성생활을 다루어 한국사회 및 영화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당장 비디오 가게로 달려가 "겨울여자"를 빌려서 보라. 그 야하다고 소문난 영화는 영상은 물론 내용도 안방극장 TV드라마보다 점잖다. 그만큼 성이 개방된 또는 노골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우리네 순진한 요조숙녀들은 남자에게 손목 한 번 잡힌 것 때문에 그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었고, 남자와 같은 이불 속에서 잠만 자도 임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도 물레방앗간은 남녀의 밀회 장소로 애용되었고, 불교행사인 탑돌이도 남녀가 합법적으로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장소로 환영받았다. 그렇다면 성을 자극하는 환경들로 둘러싸인 20세기 말의 젊은이들에게 성은 어떤 것인가? 그들의 큰언니들만 해도 혼전 순결은 가장 고결한 가치였다. 처녀막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미혼여성들은 밤거리를 나다니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친구와 밤새 얘기를 나누기 위해 외박을 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결혼 시장에서 하자 있는 상품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첫날밤'의 신화는 천연기념물로 퇴락하고 있다. 몸은 어른이고 결혼은 5년 또는 10년 후인 지금의 젊은이들은 보수적인 어른들의 도통 변할 줄 모르는 낡고 늙은 잣대를 거부한다. 기존의 순결 이데올로기나 도덕은 기성세대의 몫으로 돌린다. 인간 삶의 절실한 문제이자 필수인 섹스에 대한 그들의 사고와 태도는 공개적이고 적극적이며 저돌적이기까지 하다. 자기 감정이나 성적 욕구를 당당한 언어로 표현하고 실행한다. 자신이 원하고 책임질 수만 있다면, 당당히 요구하고 또 받아들인다. 몰래 엿보는 저급한 성적 욕망으로 묶어두지 않는다. 성을 공유한 사람이면 영원히 인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생각이다. 순간에 충실하고, 감정에 충실한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그들도 자기 여자만은 혼전 순결을 지키기를 원하는 남자, 성을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잡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방종과 무책임을 가져오기도 한다. 쉬쉬해온 성의 급작스러운 드러냄으로 인하 부작용이다. 올바른 성관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신념 등은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금기시해 왔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성풍속을 문란과 타락이라고 비난하는 기성세대에게 그들은 항변한다. 적어도 자기들은,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성을 상품화하고 산업화하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은 갖고 있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