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 신선 이야기 - 민경환
6. 한당선생님의 안배
다시 찾아간 도장은 사람들이 발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대구, 광주 할 것 없이 석문호흡을 배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신심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워낙에 내성적인 성격인지라(지금 동료사범들이나 회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혀를 차며 비웃는다. 그만큼 수련을 통해 성격이 바뀌었다는 반증이리라) 처음 보는 이에게 말을 못 붙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답답하고 짜증스러워 도장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도로 집에 가서 월요일날 올까? 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청월 사범이 나를 알아보았다. 청월은 기초호흡법을 가르쳐 준다며 나를 뒤로 끌고 갔다. 임맥상에 위치한 석문혈을 취혈해서 동그랗게 오린 조그만 파스를 붙여 주는데(그 당시에는 반창고인줄 알았다), 파스를 붙이자 가만히 있어도 그 자리가 느껴져서 의식을 집중하기가 쉬웠다.
"자, 여기 단전파스가 붙어 있는 곳에 손가락을 짚으세요. 훨씬 의식 집중하기가 쉽지요? 다른 한 손은 윗배에다 올려 놓으세요. 숨을 들이마실 때, 윗배가 나오게 되면 안 되니까 그 손으로 감시를 하라는 겁니다. 많이 나오면 조금씩 힘을 줘서 안 나오게 하면서 하세요. 호흡은 조식호흡입니다. 가늘고 길게, 고르게 호흡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한 번 호흡을 해보세요."
처음 하는 아랫배 호흡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아랫배는 위아래로 들어갔다 나왔다 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수련을 어떻게 해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련이 끝나고 회원들이 도장 여기저기에 모여 간식을 먹으며 정겹게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어디에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머리 속이 윙윙거리며 다들 낯설기만 해서 혼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시선을 천장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너무나도 답답했고 마치 내가 있어서는 안 될 자리라는 생각에 계획대로 도장에서 밤을 샌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서 수련이 끝나서 집에 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만이 간절했던 것이다.
"회원들하고 말씀들 나눠보세요. 저야 도장사범이니까, 좋은 이야기밖에 안 하지만, 직접 수련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이 수련이 어떤 수련인지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을 거예요."
혼자 앉아 있는 내가 측은했던지 청월사범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청월 이외에는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나 또한 남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말이 그렇게 실감날 수 없었다. 갑자기 신세가 처량해져서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갑 안을 보니 집까지 갈 택시비는 나올 것 같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수련실을 나왔을 때이다. 처음 상담을 했던 거실에 여러 회원들이 둘러 앉아서 한당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대구 회원분들의 수련점검을 하고 계셨었다). 지나가기에도 힘든 공간이라 옆으로 돌아 나가려고 하는데, 한당 선생님이 말을 건네셨다.
"가시려구요?" "예... 그냥..." "이제 행사 있는데, 참가하고 가시지요." "아니... 그냥." "청월, 칠판 준비해라. 듣고 가세요." "아... 예..."
지방회원 수련 때마다 회원들을 상대로 공개강연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직접 참가하라는 데에는 별 수가 없었다. 공개강연 때, 무슨 말씀을 주로 하실까? 사실 그 즈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은 전생이나 사후세계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세상이 음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이 현실을 떠난 반대의 세계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동자와 선녀를 통해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만났던 터라,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것은 내겐 의문이 아니고 당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관심 있는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사후세계에 관련된 여러 서적을 탐색해 보아도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이런 책들 속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만 무성할 뿐이었다. 왜, 어째서 존재하는지,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원리를 꿰뚫는 책은 한 권도 없어서 더 이상 읽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행사인지 모르지만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칠판을 향해 둘러앉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러분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시죠?" "네." "오늘은 사후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설명을 해드리기에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니 여러분들께서 궁금하신 걸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질문을 하세요."
어려운 자리여서 인지, 다들 머뭇머뭇하다가 이내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에서 지은 죄는 저승에서 어떻게 처벌을 받게 되는지요?" "지상세계와 거의 비슷합니다. 천상의 문명을 지상에서 본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지상과 천상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지상에 3D현상이라는 게 있죠? 더러운 일, 위험한 일, 힘든 일 등은 안하려고 해서 이러한 현상을 3D현상이라고 부른다죠? 이처럼 벌이란 자신이 싫어하는 일들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를 잘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연옥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셔야 됩니다. 연옥이란 지옥보다 조금 나은 곳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더러운 일, 위험한 일, 힘든 일을 시키는 곳이 바로 연옥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자가 죄만 짓고 살다가 죽었다면 당연히 심판을 받게 되겠지요. 나쁜 짓을 많이 했으므로 그 죄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고생을 좀 해야겠다는 판결이 내리면 이 부자를 외딴 별로 보내게 됩니다. 거기엔 저승사자들이 있고 벌받는 영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선 하루 종일 일만 시킵니다. 지상에서는 노동을 하더라도 힘이 들면 쉬기도 하고 새참, 막걸리 등도 먹어가며 하게 되지만 그곳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한마디로 쉴새 없이 일을 시키는 것이죠. 그 힘든 정도를 느끼는 것은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와 똑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벌을 받을 사람이 싫어했던 것, 벌을 받을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벌로써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어차피, 지상에 없는 일들은 제가 설명 드려도 모르실테니 말입니다. 그곳의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에서 싫어했던 음식만 골라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 편식하지 마세요.(웃음)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본인이 싫어하는 것들로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부부가 사후에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경우에 따라 틀립니다. 반드시 만난다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살아 있을 때 여자는 착한 일을 해서 천국으로 가고 남자는 죄가 많아 지옥으로 간다면 두사람은 만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만약, 지상에서의 부인과 저승에서도 만나서 함께 살고 싶다면 오천도계까지 올라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오천도계는 고향별로서 곧 천국입니다. 이곳은 자유왕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별로 놀러 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다른 별로 놀러 가서 텐트 치고 캠핑도 하고 합니다. 알아두십시오. 백 년 잘 살겠다고 아등바등 살면 몇 백년 고생하는 것이고, 백년 고생할 생각하고 착한 일을 하고 수련을 쌓게 되면 사후세계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연히 알면 사람들이 그렇게도 탐하는 부귀, 명예 등은 돈을 주며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 돈, 명예를 찾게 되는 것이죠." "부부가 사후에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다른 이성과 결혼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 세계에서는 다른 영과의 관계 등이 자유롭게 되어 있습니다. 동양적인 관념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동양적인 말 그대로의 관념일 뿐입니다. 다른 이성과 결혼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영들은 모두가 절친한 친구로 지내려고 하지 어떠한 관계로 매어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관계, 서로가 서로를 갈망하는 경우는 결혼도 가능합니다. 또한 그것은 등급이 높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사나 성묘 때 실제로 조상신이 내려와 대접을 받고 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음식 대접을 받고 갑니다. 흔히 제사가 형식적인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정성도 없이 형식적으로 제사를 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마음의 정성이 없게되면 영들이 굉장히 슬퍼하게 됩니다. 영들은 정성으로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정성이 없는 제사는 조상을 욕먹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사후세계에서도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지요?" "이승에서는 먹고 살아가기 위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저승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즉, 도를 이루기 위한 사회 봉사차원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목적 자체가 틀립니다." "사람이 영계에서 죄를 탕감하고 내려와도 전생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영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윤회에 의해 영이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할까요?" "전생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게 아닙니다. 기억이 하나도 없다면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굵은 기억들은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들이 부분적으로 남아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도공부를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윤회를 거듭한다 해도 수도하지 않으면 영이 발전되지 않습니다. 윤회를 벗어나려면 도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옥과 천국은 어떤 기준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까?" "착한 일을 하면 천국 가고, 나쁜 일을 하면 지옥 간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들어오셨을 테니, 여기서는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자격기준은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도법을 공부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태어난 목적이 도를 닦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게 되면 직무유기가 됩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도를 수도하였느냐, 아니냐가 그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도를 안 닦았다고 해서 지옥에 가고 도를 닦았다고 천국 가고...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를 수도하게 되면 그만큼 나쁜 짓을 안하게 됩니다. 죄를 탕감하게 되고, 원죄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도를 닦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많이 막히게 됩니다. 그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죠. 참된 인생의 가치를 모르니 돈과 명예를 탐하느라 무리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도둑질도 하게 되고, 살인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도를 닦았다, 닦지 않았다는 식의 단편적 기준이 아니라 도를 닦음으로 인해, 그리고 도를 모르는 것으로 인해 인생의 가치 자체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생활로 인해 지옥이나 천국이 자리 매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볼 때는 거짓말을 가장 큰 죄로 칩니다. 모든 악의 근본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도를 닦지 않으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짓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죄를 쌓아가게 되는 것이죠. 심심한 장난으로 한 거짓말이 몇 년 후 큰 우환으로 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큰 거짓말, 작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말은 도적인 차원에서 깊게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이 사후세계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 도를 닦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 같은데, 수도를 한 사람도 도를 이루지 못하면 도인이 아닙니다. 도를 이루어야 도인입니다. 도를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도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선비 '사(士)'자를 써서 도사(道士)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이처럼 도닦는 사람을 도사라 부르는데, 도를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보통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상에 올라가서 심판을 받게됩니다. 그러나, 그나마 수련을 했기 때문에 도를 닦지 않은 것보다는 좋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천국에 가도 그 자격이 다 틀립니다.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영이 있는가하면, 제한구역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영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를 이루지 못하면 무조건 일천영계로 가게 됩니다. 도통을 하게 되면 쾌락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해 봉사를 다하고, 자신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를 이룰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참도인이고 도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간혹 가정도 버리고 혼자 도통하겠다고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참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 도를 이루겠다고, 가정이고 뭐고 다 버리고 주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을 하늘에서 받아 주겠습니까? 참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후세계에서도 도가 행하여지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일천도계에서 이천도계로, 이천에서 다시 삼천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죽으면 자기가 잘못했던 것, 잘했던 것에 대한 깨달음은 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일 뿐입니다. 불가에서 이야기한 각(覺), 즉 깨달음이라는 것과 도를 이룬다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보고 채널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깨달음이라면, 텔레비전이 고장이 나도 고칠 수 있는 경지가 도통입니다. 영계에서는 깨달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도통은 육신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영계에서도 도통할 수가 있다면 굳이 육신을 가지고 내려올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육신이 있어야 도를 이룰 수 있기에 육신을 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의 세계에서는 각은 있으나 도는 없습니다. 일천계에서 이천계로 올라가려면 사람으로 내려와 수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태초의 무극의 자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답변할 문자나 말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표현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직접 도통해서 아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일단은 그냥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기가 그냥 있듯이 무극도 그냥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한다고는 이야기해도 지상에서처럼 그냥 존재한다는 개념과는 틀립니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수련이 어느 정도 높아져야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설명해드려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수련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보고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수련하지 않은 사람도 사후세계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가사상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 수련을 안 해도 일천영계를 넘나든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후세계는 벌집처럼 너무나도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후세계는 어떻다 라고 전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저승체험은 자신이 죽으면 갈곳을 미리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저승체험은 자신이 죽으면 갈곳을 미리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저승체험마다, 종교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게 아니지요. 다 맞는 말입니다. 단지, 모든 이에게 공통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어서 갈 곳을 보고 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그 동안 궁금했던 모든 의문들이 쉽고도 간결한 설명에 근원부터 풀려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선도라는 것이 종교를 떠난, 종교와 무관한 개념이란 것도 이날 얻은 수확중의 하나였다. 그 강연회를 계기로 나는 추호의 의심 없이 순수한 열망만으로 도통을 위한 선도수련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안일이지만, 그날 강연하는 계획에 잡혀 있지 않은 것이었다. 지방회원 수련 때에 그렇게 질의 문답시간을 갖는 것도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 일이었다니, 나로서는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보다 확실하게 공부를 하고자 실무진으로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일사 가는 모습을 보니까, 가게 되면 한참 동안 다시 안 오고 방황을 하겠더군. 그래서 계획에 없던 강연회를 만들어서 일사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주로 이야기했지."
그 말씀이 맞는 이야기다. 의심할 수가 없는 말이다. 내림굿과는 상관없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동자가 도장 기운에 눌려 견디지 못하고 내 귀에다 대고 계속 속삭였던 것이다.
"삼촌, 여긴 삼촌 있을 데가 못돼. 얼른 나가자..."
만약, 그때 선생님이 속깊은 안배로 강의시간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다음 주 월요일이 되었을 때 귀찮아서, 아니면 어떤 약속이 생겨서 도장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도장을 못 가게 하려고 동자와 선녀가 어떤 일이든지 만들어 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안 나가다 보면 나중엔 미안해서라도 도장을 안 나갔을 것이고, 결국 지금의 평온함은 영영 내 팔자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잘 것 없는 신입회원을 위해 없던 강연회까지 만들어 주신 그 정성에 지금까지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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