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 신선 이야기 - 민경환
5. 천서와의 만남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교관 따로, 조교 따로, 예비군 따로 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요즘은 강화가 되어 훈련도 제대로 받는다고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이었던 그 당시만 해도 예비군 훈련은 시간만 적당히 때우다 나오면 되는 그저 시간 죽이기 행사에 불과했었다. 그날도 듣기 싫은 교관 이야기를 안 들으려고 라즈니쉬의 책을 한가롭게 읽고 있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그 당시 읽었던 것이 라즈니쉬의 서적이었다. 현상이 아닌 본질의 숨은 면을 놀라울 정도로 해석해내는 라즈니쉬의 통찰력에 감탄한 지는 오래였지만,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써 라즈니쉬의 책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간간이 들려오는 동대장의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특유의 비트 강한 목소리에 억센 억양, 그러면서도 친근미와 인간미가 넘쳐나는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화제가 북의 도발이 어떻고 전쟁위협이 어떻고 하는 뻔한 소리가 아닌, 양신이 어떻고 단전이 어떻고 하는 소위 말하는 도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내가 왜 여러분들을 놓고 거짓말을 해? 나는, ##선원에서 한달 만에 전 신주천까지 다 끝내고 기공사자격증, 명예법사까지 하라고 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더 배울 게 없더라구. 그래서 나왔지. 그리고 나서 도화제를 알게 됐는데, 지금까지 배웠던 거 다 헛거야. 수련이 진기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생기로만 수련을 했으니 진척이 있나? 그래서 도로 누워서 시작했다구. 단순히 건강차원이 아니야. 나중엔 양신을 뽑아서(양신출신을 말하는 것이지만 동대장님의 입담이 워낙에 걸쭉해서 표현을 이렇게 하셨다) 도계에 가면 신선이 되는 거예요. 잘하면 신선이고, 못 되어도 건강은 남는 거지."
다른 이야기는 그냥 그랬지만 양신, 도계, 신선이라는 세 단어가 잊혀지질 않았다. 내 나름대로는 기독교에서 불교, 증산도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도계에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선도 쪽으로는 기본 상식 외에는 아는 게 없었던지라, 한 번 제대로 알아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서점에 가면 <천서>라는 책이 있어요. 관심이 있으면 읽어 봐요. 대단한 책이에요. 보통 그런 책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책보고 베낀 것들이 많은데, <천서>는 저자이신 한당 선생님이 직접 체험을 하고 쓴 책이라 전혀 틀리다구. 누구나 똑같이 수련하면 신선되는 거야."
예비군들의 거의 대다수는 별 희한한 소리를 다하네? 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의 손은 어느새 라즈니쉬의 얼굴 위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천서. 한당지음... 도통... 신선...양신?' 훈련이 끝나자마자 동네의 영지서적에 가서 <천서>를 찾아보았다. 작은 서점에는 없을 수도 있다는 동대장의 말과는 달리 영지서적에는 무려(?) 세 권씩이나 천서라는 이름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내가 읽은 단전호흡 관련서적들은 홍태수의 <단의 실상> 시리즈(하늘을 날아다니는 사진이 인상이 깊었으나 사진의 주인공이 양심선언을 한 후로 문제의 사진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빈의 구도소설 <단>(우학도인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소설형식의 책. 현재 우학도인은 사망하였으나 연정원의 이름으로 수련법을 펼치고 있다) 정도의 수준이었다. 선도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할 수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는데도, <천서>라는 책의 차별성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철저하게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구성이라서 재미도 재미였지만 <천서>를 읽고 감동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스케일 때문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선도서적이 그러하지만, 생체 에너지니 민족의 우월성이니 해서 과학으로 검증되기엔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과학적인 해석에 매달려 지루한 흐름이 계속되거나, 지나친 민족 우월주의적인 시각 때문에 인류를 통틀어 소화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천서>라는 책은 그 스케일이 인류의 차원마저도 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우주가 어떠니 저떠니 라고 구차하게 설명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자연스레 느껴지는 그 광활한 크기의 공간에 붕 떠서 황홀경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랄까? 다소 생경하고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에 '이거였구나...'라는 감격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책을 읽은 시간이 새벽이 아니었다면 이미 택시를 타고 한당 선생님의 석문 호흡 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안 남은 아침이 그렇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천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일년 전의 일이다. 돌아가신 할아버님이 공부할 책을 소개해주겠다며 오후 두 시에 서점에 가면 눈에 띄는 책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서점에 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천서'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표지에 써 있는 '하늘이 인간세계에 보내는 글'이라는 이야기에 '이거 또 이상한 사람이 혹세무민하려고 책을 냈구나'하고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점을 두 바퀴를 돌아도 도무지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할아버님이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는데...' 서점 안을 세 번째 돌고 있을 때 무언가 붉은 표지가 옆에 보이기에 제목을 보니 <업보>라는 책이었다. 이거겠거니 하고는 내용도 보지 않고 계산대를 통과했다. 집에 와서 반쯤 읽어보고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영적인 능력을 자랑하고자 나열한 유치한 수준의 단어들에 실망해서 책을 그냥 덮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내가 연결이 잘 안되었나 보다... 라는 생각에 의아해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을 정도다. 할아버님 말씀대로 처음에 눈에 띈 <천서>를 의심 없이 읽어 보았다면, 일년이란 세월을 헤맬 필요 없이 이미 석문호흡 수련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러한 후회와 아쉬움이 겹쳐 그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계획과는 달리 잠을 설쳐 늦잠을 잔 탓에 삼성동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경이었다. 길 자체가 번듯하게 뚫려 있는 동네라서 도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당 선생님이 계실까? 계시면 만나볼 수는 있을까? 아니, 나 같은 사람을 만나 주시기나 하시겠어?' 마음은 오로지 한당 선생님을 뵐 수 있을까 라는 희망에 젖어 있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스승이란 말인가. 얼마나 찾아 헤매던 법이란 말인가? 이미 마음 속에는 그렇게 가슴 졸이게 했던 내림굿에 대한 집착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토요일 오전이라서 그럴까? 혹시 쉬는 날이 아닐까? 아니지. 어제 전화했을 때는 언제든지 사람이 있으니 찾아와 상담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찾아 왔는데, 아무도 없어 못 만나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역시 아무 대답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그마한 거실 사이로 좌측에 사범실, 우측에 원장실이 있었고, 정면에 수련실이라는 푯말과 함께 '선수심 후운기'라고 씌어진 코팅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원장실 문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아... 저게 <천서>에도 나와 있는 도계 글씨인 모양이구나.' '들어가? 말아? 그냥 들어갔다가 혹시 도둑으로 몰리면 어떡하지?' 멍청하게도 그 당시에는 정말 그런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수련실에서 안경을 쓰고 얼굴이 새하얀 젊은 사범이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 저, 전화 드리고 왔는데요..." "예. 무척(사실은 녹차를 즐기지 않았지만, 아니라고 했다가는 인연줄이 끊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는지...)." "<천서>를 읽어 보고 오셨다고요?" "예." "뭐, 읽으시면서 궁금하신 것 있었습니까?" "..."
무언가 질문을 했으면 좋겠는데, 정말이지 궁금한 게 없었다. 어서 하루 빨리 석문 호흡 수련을 해서 도통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수련법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하..." "흐흐..."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멀쩡히 마주보고 앉아서 아무 얘기도 할 게 없으니 나는 그렇다 치고 상담하는 사범 입장에서 얼마나 어색했을까?
"저는 청월이라고 합니다." "도장에 사람이 없나 보죠?" "네, 오늘이 토요일이라 지방회원 수련이 있는 날이거든요. 저녁부터 사람이 다시 많아지지요." "지방회원 수련이요?" "네. 아직 도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방에는 광양하고 부산 외에는 도장이 없거든요. 그래서 도장이 없는 지방 사람들은 매달 한 번씩 주말에 모여서 같이 수련하고 점검을 받고 내려가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네에..."
의외로 말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녹차 향에도 어느새 코가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원장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와서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아... 저분이 한당 선생님이시구나.' 천서 앞쪽의 컬러 화보엔 한당 선생님의 수련자세를 담은 사진 몇 장이 있었다. 나는 밤새워 그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선생님의 모습을 각인했기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음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뻔히 알고 있음에도 한 번 확인을 했다.
"저분이 누구시죠?" "예. 한당 선생님입니다."
어느새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셨는지,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앞에 앉으셨다.
"수련하러 오신 모양이죠?" "예..."
가슴이 떨려서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이분이 한당 선생님이라니... 밤새워 만나 뵙길 열망했던, 스승으로 모시면 한이 없을 바로 그 사람이라니...
"<천서> 보시고 오셨습니까?" "네..." "뭐, 궁금한 건 없으시고요?"
궁금할 게 뭐 있겠는가?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 가만히 살펴보니 사진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사진에서는 아주 동안이었는데 실제로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게다가 사진의 모습은 말끔하게 단장된 정갈한 모습이었는데, 잠을 자다 금방 깨어났는지 머리는 부시시하였고 오른쪽 눈에는 무언가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누가 전직 방송 작가가 아니랄까봐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으음... 사진촬영을 위해 화장도 좀 하시고, 세수도 말끔히 하셨겠지? 역시 분장이 있어야 사진을 잘 받아.' 분장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오히려 정리되지 않은 한당 선생님의 모습이 더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장을 한 것이 아니었다. 유난히 사진을 잘 받으시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아참, 무언가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다시는 없을 텐데, 무엇을 질문하지?' 궁금한 게 없냐 라고 물어보신 지 아마 10초 정도 지났을까? 쓸데없는 생각하느라 나는 질문도 못 하고 있었다. '가만있자. 무얼 물어보지? 더 시간을 끌면 궁금한 게 없나보다 하고는 그냥 들어가실텐데, 무엇이든 질문을 해야할텐데... 뭐라고 하지?(이 생각하는데 0.3초) <천서>중에서 궁금한 게 없을까?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 있나?(이 생각하는데 0.1초) 아, 맞다!'
"수련하려면 회비가 얼마나 되죠?" "..." "...청월, 니가 상담해드려라." "네..."
그것이 선생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선생님을 만나 뵙고 한 질문이 고작 회비가 얼마냐는 질문이라니, 선생님도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무표정한 얼굴로 선생님은 원장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나는 속으로 땅을 치며 청월 사범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씀 드릴 때가 제일 죄송합니다만, 도장 운영을 위해서 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엔 좀 돈이 들어가거든요. 입회비가 2만원, 도복비 3만원, 월회비가 7만원입니다. 다음달부터는 매달 7만원씩 월회비만 내시면 되고요, 추가부담은 일체 없습니다."
회비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청월은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지갑 속에 미리 준비했던 돈을 꺼내 회원으로 입회를 하고 돌아서는데, 청월이 한마디 던진다.
"시간 있으시면 오늘 저녁에 나오시죠. 지방회원 수련에 참가하셔서 직접 수련을 해보시면 좋을 겁니다." "전 지방회원도 아닌데 참가해도 될까요?"
원래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수련을 시작하려 했는데, 얼떨결에 약속을 해버리고 나니 시간이 애매했다. 회비를 내느라 돈은 다 떨어졌고, 마땅히 불러낼 친구도 없고 해서 일단 집에 갔다가 다시 오기로 하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선생님께 회비 물어본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창피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가지 소중한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도인의 모습이다. 애초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을 때만 해도, 한복을 입고 의젓하게 앉아 있는 수염 난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모습은 구겨진 평상복 차림에 부시시한 머리, 게다가 눈곱까지... 생각해 보자. 만약, 도인이 이생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완성된 존재라면 흰 한복에 지팡이 짚고 수염 난 모습이 차라리 어색할 것이다. 다 이룬 자가 무엇을 보여줄 게 있겠는가? 무엇을 폼잡을 게 있을 것인가? 도를 이룬 것만으로도 온 우주가 다 자기의 집이요, 마당인데 무엇을 신경 쓸 게 있겠는가? 회원을 의식한 세련되고 단정한 차림,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도를 통한 자만이 가질 수 잇는 자신감과 자연스러움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도법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