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중부 유럽의 여러 국가의 왕실에서는 카펠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직분의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이 직위는 궁중 악장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교회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의 역할은 우선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예배를 위한 음악을 준비하거나 때로는 작곡까지 하여야 했다. 세속적인 순서도 맡아야 했는데 그 왕실이 어떤 나라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어떤 교회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연주회가 되기도 했고 제례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루하지 왕자의 궁중악장이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와 함께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콜로레도에게 고용되었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도 몇 군데의 그런 왕실에서 일을 하였었다.
그 당시의 소공자들은 음악가들을 시종으로 거느렸는데 그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음악적 기호에 따라 거느리는 사람의 수는 마음대로였다. 이런 음악하는 시종들의 우두머리가 카펠마이스터이다. 그의 임무는 필요한 때에 맞추어 적절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다. 훌륭한 카펠마이스터는 음악을 연주하고 지휘할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주인의 기호에 따른 여러 종류의 음악을 작곡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곡가는 수준작을 만들기 위해서 일상 생활고 격리되어 1년이라든가, 혹은 그 어떤 여가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작가가 잘 묘사하였듯이 "이 카펠마이스터들은 새벽에 일어나 새 곡을 작곡하고 낮 동안에 연습하였다가 저녁에 공연을 했다." 카펠마이스터를 포함하여 이 음악가들의 위치는 하인의 신분이었다. 하인의 복장을 하고 하인방에서 자고 하인의 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의 시간은 엄하게 감시를 받았다. 헝가리 소공자와 하이든 사이에 맺어진 구두 계약에 따르면 그 소공자는 하이든의 음악인으로서의 임무보다는 의식을 치르는 일과 규율에 엄격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모차르트는 그런 하인의 지위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던 표시를 분명히 나타냈으며, 실제로 그는 주교에게 반항함으로써 돌아오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층계 아래로 발길질을 당했다.
만일 이 음악가들이 어떤 의미에서 철창에 갇힌 죄수와 같다고 해도 하이든과 같은 천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창을 부수고 나올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마이클 브레넷의 말을 빌리자면, 베토벤은 "많은 독일의 음악가들이 주인에게 완전히 얽매여 그들을 물질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또 다른 노예임을 확인시켜주는 그 명예를 단연코 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