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 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는 장면 묘사가 미국 작가의 작품에서 빌려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미국 작가는 윌리암 스트레이치로서 1609년에 배를 타고 버지니아까지 항해하다 만난 폭풍에 대해서 쓴 절묘한 작품을 남겼다.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윌리암 모텔이 쓴 시 "노바 앵들리아"는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씌어졌다!
미국의 최초의 시인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검둥이 노예 소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필리스 위틀리였다. 이 흑인 소녀의 시를 조지 워싱턴이 좋아해서 매일 아침에 읽었다고 한다.
미국 문학사에서 한 문장으로서 가장 긴 것은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의 첫 취임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장은 700단어로 되어 있는데 보통 간행물의 크기로 세 장에 달한다.
1793년까지 보스턴에서 연극 상연은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윤리 강연'이라는 변장 아래 때때로 연극이 상연되었다.
초기의 미국에서 발간된 책에는 가끔 괴상한 제목이 붙은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아버지", "엘비라, 사계절 공기의 요정", "미라니아 대학의 일반적인 개념" 등이다. 이 제목들이 너무 길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 출판된 책들의 이상한 이름들과 비교해 봄직하다. "죄를 위하여 일곱 번 흐느끼는 한 서러운 영혼", "꿀 빨아먹는 새 한 줌과 여러 개의 함축된 작은 시들, 그리고 지금 새롭게 임명이 되었다", "시온의 죄인들을 위한 슬픈 한숨, 세속의 배에 뚫린 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사무엘 휘쉬의 이름으로 사람들 가운데 알려지다", "사랑의 물로 삶은 지선의 달걀", "열정으로 인해 영혼이 재채기를 하게 만드는 정신적 겨자 단지".
미국 원주민들을 소재로 한 책 "모하칸 족의 최후"의 저자인 제임스 훼니모어 쿠퍼는 단 한 번의 장담으로 작가가 되었다. 그는 퇴역한 해군 장교로서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영국 소설을 읽던 그는 너무나 시시한 이야기에 그 책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나라도 이것보다는 더 잘 쓸 수 있다고 장담하겠다!" 이 소리를 들은 그의 친구 하나가 허세 부리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쿠퍼는 소설가가 되었다.
롱 펠로우는 시인이 되기 전에 소설가가 되려고 했다. 그는 산문체로 된 사랑 이야기를 세 권 썼다. 그러나 세 권 모두 실패작으로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실패하는 소설가보다는 성공적인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월트 휘트먼은 성공적이었던 소설 쓰기를 집어치우고 시인이 되어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의 첫번째 소설은 금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는데 20,000권이 팔렸고 그는 성공을 자축하기 위하여 모든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잔치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