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나 금산에서 수장 이하 전원이 고스란히 순국한 7백의사총의 주인공 중봉 조헌에 관해 이런 얘기가 있다.
오랜 전란 끝에 일본을 평정한 평수길이가 국교를 청해 오자 우선 그 본 뜻이나 알아보자 하여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그 사신을 대하는 태도가 수수께끼에 차있다. 50일 만에서야 우리 사신을 대했는데 술잔으로 술을 권하고는 문득 깨뜨리고 새 잔을 썼으며, 어린 것을 안고 나와 서서 다니며 응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들은 조정 안에서는 의논이 분분했는데 중봉은 이렇게 해석하였다.
"술잔을 깨쳤다는 건 애태까지의 맹약을 깨뜨린다는 것이요, 어린 것을 안고 나온 것은 우리는 너희를 어린애 같이 본다 하는 뜻이다"
일본 사신을 참할 것을 상소하니 조정에서는 일부 찬동도 있으나 실성한 사람으로들 돌린다. 그러나 그는 집안 식구와 제자들을 총독하여 전란에 대비하였다. 본시 두드러진 벼슬도 한 적이 없는 분이건만 의병을 일으켜 끝까지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뒤에 예조판서를 증직하고 문묘에 배향이 되었으나 그의 뜻을 생전에 펴 주지 못한 이상 모두가 헛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