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눈 - 호미고메 요조
제1장. 역사란 위기시에 나타나는 자각의 한 형태
앞으로 12개의 장에 걸쳐서 '역사를 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만 먼저 역사에 대한 관심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를 보는 눈'이라고 했지만 이에 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어쩌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자체가 또 너무 까다로운 것이어서 이 문제 하나만을 풀어 나가자고 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문제는 '역사를 보는 눈'이라는 이 책의 전체를 통해서 하나씩 풀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러기 위한 최초의 실마리로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란 문제를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역사란 무엇인가, 즉 역사의 정체를 향해 접근해 보자는 것이 이 주제를 먼저 꺼낸 이유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엔 최근 들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제법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최근 들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기에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저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높아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의 수년 동안에 그러한 경향이 특히 두드려졌습니다. 가까운 예로 제가 일하고 있는 동경대학의 사학과를 놓고 생각해보면 전후에 들어서면서 사학과 학생의 수가 놀라울 만큼 증가했습니다. 특히 제가 관계하고 있는 서양사학과의 지난 2년간을 보면 예전 같으면 두 해 동안에나 들어올 만큼의 학생들이 한 해 동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해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가 배로 늘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러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다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다 해도 학생들이 그렇게 배로 증가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들도 아주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대규모의 일본사나 세계사를 기획하고 있고 또 그것들이 서점에서 예상 외로 잘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 반영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영화나 소설 같은 것들을 보더라도 역사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과 같지 않게 아주 높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일종의 리바이벌 무드라고 정리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로서 제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일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언제였던가, 가이온지 조고로(海音寺潮五限)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라는소설이 신문에 연재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가이온지 조고로의 작품은 상당히 치밀한 고증을 거친 소설로서, 역사소설치고는 노력이 제법 많이 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가이온지 조고로는 만일 이것이 소설이라면 그때 다카모리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투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소설이 아니었구나 하고 그제서야 깜짝 놀랐습니다만 가이온지 조고로는 그 후로도 열두번이나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가이온지 조고로는 아무래도 [사이고 다카모리]란 작품을 역사소설로서가 아니라 역사로서 쓴 것 같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것을 역사소설로만 알고 읽었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이 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 작품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는 현재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하나의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가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신문소설 속에서 논문에 버금가는 역사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통상적인 신문편집의 상식으로 볼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소설도 논문도 아닌 역사소설이 일간신문의 소설란에 날마다 실리는 현상 앞에서 우리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2년에 걸쳐 [아사히저널]에 연재된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씨의 [파리는 불타고 있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코뮌을 다룬 이 방대한 역사소설은, 문학엔 문외한인 역사가의 평가도 허락된다면, 소설로서보다는 역사서술로서 더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해 이 이상은 다룰 여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예를 들어가며 지적한 역사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전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주 커다란 전환을 이루었고 또 지금도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선 첫째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에는 전쟁 전의 역사교육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새삼스레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서로 앞을 다투어 역사에 의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전후에 전개된 여러 가지 상황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전후에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태들이 속속 일어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판단도 제대로 서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이제까지 역사가 어떠했는가를 알지 못하고는 정확히 내려질 수 없다는 생각이 싹텄는데, 바로 이런 생각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날로 고조되고 있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역사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요인도 있겠습니다만, 그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하여 우리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로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역시 긴 안목으로 전망할 때 그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사용되던 에너지의 변화가 각 사회의 발전, 나아가서는 역사 그 자체의 발전을 규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에너지의 발달이 역사의 발전단계를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옛날의 일은 제쳐두더라도 증기 에너지 없이는 산업혁명도, 19세기의 자본주의 사회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그 후로 일어난 전기와 내연기관의 발달 없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역사의 발전은 도저히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원자 에너지가 탄생됨으로써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위대한 에너지가 세상에 알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일 에너지의 발달이 역사의 발전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원자 에너지에 의해 열리게 될 미래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라고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자 에너지 그 자체가 도대체 어떤 사태를 초래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역사의 미래를 놓고 지금의 시점에서 쉽사리 상상할 수 없다고 하는 까닭은 계속되는 에너지의 발달과 그에 기초하는 기술의 진보로 인해 역사의 진전이 무서운 속도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약간의 무리를 무릅쓰고 비교를 하자면, 아마도 19세기의 10년은 20세기 후반의 1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 세계가 19세기의 시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좁아지고 있는 현실, 또 종래에는 원시문명의 단계에나 속하지 않을까 싶던 지역들이 급속히 근대 기계문명 속으로 편입되고 있는 사정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20세기도 저물어가는 현재의 시점에 서서 장래를 내다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헤매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압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는 것이 또한 세상의 이치인 까닭에 어떻게든 장래에 대해 전망해 보고 우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단순히 현재만을 응시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현재가 생겨난 모태로서의 과거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가 아무리 급속하게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단절된 현재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아무리 무서운 기세로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그 사회는 결코 몇 단계를 한꺼번에 건너뛰며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대에 살고 있을망정,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과거를,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고조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급격한 변혁의 시대에, 바꾸어 말하면 일정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역사에 쏠리는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제가 전공하고 있는 서양사 분야에서 두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 역사라는 학문이 태동한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의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가 출현한 것은 비교적 빠르다고 하는 서양의 경우에도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 고전기(기원전 4~5세기경)의 일이었습니다. 헤로도투스, 투키디데스 그리고 폴리비오스가 그들입니다. 이 세 역사가는 각기 유명한 역사를 쓰고 있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떤 시대를 산 인물들이었을까요? 흔히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아테네가 동방의 대국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대에 살던 인물로서 그가 남긴 [역사]는 바로 페르시아와 아테네의 전쟁, 그러니까 성격을 달리하는 동-서 두 문명 간의 결전이라 할 소위 페르시아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책입니다. 아테네와 아테네가 주도하는 그리스는 이 대결전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헤로도투스는 바로 그 극적인 긴장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 페르시아 전쟁을 거치면서 아테네가 전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후 다른 도시국가들, 가령 테베나 스파트나 등이 아테네의 헤네모니에 도전해옴으로써 빚어진 전쟁, 이른바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몸소 종군하면서 그 역사를 서술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가 전성기를 지나 그리스의 패권을 바야흐로 다른 도시국가에게 막 넘겨주려고 하던 일종의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폴리비오스인데, 이 사람은 그리스가 로마에 의해 최종적으로 독립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나서 그리스 최후의 반(反)로마 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던 인물입니다.
이렇게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세 역사가들은 어느 사람이고를 막론하고 모두 얼마간의 의미에서 하나의 전환기 내지는 위기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제각기 위대한 역사를 쓰게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예는 고대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든 예보다 한층 커다란 전환기를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고백록]이라는 책을 서술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람이 고대 말기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고대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중세라는 세계가 막 도래하려고 하는 바로 그 전환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에는 바로 위에서 든 [고백록] 말고도 [신국론(神國論)]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신국론]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서양의 수많은 역사론 중에서도 역사의식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책을 쓰게 되었던 것일까요? 우선 떠오르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원후 410년의 일로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알라리크족이 이끄는 서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하여 로마를 철저하게 유린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로마의 시민 가운데 일부가, 이 야만족의 점령과 만행을 두고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신봉한 결과 로마의 옛 신들이 분노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선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 교회를 대표하는 입장에 서서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력히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 교회야말로 보이지 않는 천상의 나라, 곧 신의 나라가 지상에 표현된 것으로 이 교회가 수많은 고절을 겪는 가운데 마침내 인류 전체를 뒤덮게 될 때 비로소 지상의 교회는 천상의 신의 나라와 일체가 되며, 그때에는 역사의 종말이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교회의 발전에서 로마인들이 할 역할은 없다는 것을 강력히 역설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속에는 이교도 신들의 시대인 고대가 끝나고 그리스도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확고한 의식이 스며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의식의 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와 중세의 전환기에 서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야만족인 게르만인들에 의해 로마가 정복당하는 그 위기 국면에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인류의 시작으로부터 그 종말에 이르는 역사에 나름대로의 전망을 제시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신국론] 역시 위기에 선 인간이 역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고 하는, 역사가 태어나는 근본적인 계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을 보여주는 예는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서양의 실례는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제 일본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고대 시대의 역사서로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이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일본의 고대국가가 확립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쓰여진 것이며, 그리고 일본이 고대국가를 건설했음을 내외에 천명할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줄 압니다. 이들 역사서들이 쓰여진 배경은 이런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와는 반대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는 정반대로 일본의 고대국가가 확립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러한 정황에서 쓰여진 역사서란 말입니다. 그러나 고대국가의 확립이란 사건 역시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런 점에서는 일본의 역사서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이나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란 것이 시대의 커다란 전환이라는 위기사태에 직면하여 고조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봅니다. 오늘의 시점에서 고조되고 있는 역사적 관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는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이라는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은 그것이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난 전쟁이었다는 의미에서 말할 것도 없이 대전(大戰)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그러나 유럽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유럽의 운명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학문적으로나 공상으로밖에 생각한 적이 없던 사회주의가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그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이라는 유럽 이외의 나라가 제1차 세계대전의 과정을 통해 유럽에 대해 강력한 발언권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그간 유럽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중심적인 위치가 급격히 허물어지는 사태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한편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소련이 성립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강화됨으로써 유럽의 중심적인 위치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태에는 선견지명이 있는 철학자라면 누구나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슈펭글러가 남들보다 좀 더 민감하게 느꼈기에 [서양의 몰락]이라는 역사서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서양의 운명에 대해 일종의 비관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 슈펭글러의 운명관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다시금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토인비의 저서인 [역사의 연구]가 있고, 그 외에 니버나 베르쟈에프, 혹은 야스퍼스 등과 같은 철학자 내지는 신학적인 경향을 가지 학자들의 역사철학적 저서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저서들이 단순히 역사가들에 의해 책으로 저술되는데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졌다는 사실, 이런 사실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가일층 심화되고 있던 유럽의 위기의 산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야기해온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역사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이 하나의 위기적인 시점에 서서 이 세계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 변화해가는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결단의 순간을 앞에 두고 자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그 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신이 옳다는 증거를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떻든지 간에 우리들 인간 경험의 집적에 다름 아닌 까닭에 어떤 인간의 입장에 대해서건 얼마간은 그 사람의 결단을 뒷받침해줄 만한 사례를 제시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을 그 일이 선한 일이냐 악한 일이냐를 따지는 것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 이것이 오히려 선악에 대한 판단 이상으로 우리의 장래에 대한 결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왜냐하면 장래에 대한 결단은 우리들 각자가 혼자서만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혹은 함께 공동으로 하는 것이므로, 자기자신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서 확신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입장을 확신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경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처음부터 일치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서로 다른 경우가 보통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나 타인이 모두 확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입장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떤 사안의 선악이 아니라 그것의 객관적 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은 현재를 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아니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항상 과거의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으며 또 과거가 누적된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재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현재가 그 축적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거를 향해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 현재 가능하고 무엇이 현재 가능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 과거를 향한 물음은 역사상의 개별적인 사건이나 혹은 개별적인 인물, 또는 그 인물들의 사적인 행적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의 동향에 대한물음의 형태를 띠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역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으니 앞으로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하는 판단이 서면 앞으로 무엇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좀 더 쉽게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말입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은 대략 이상과 같은 양태를 띤다고 생각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에 대해 아주 중요한 예를 드는 것으로 이 장의 결론으로 삼을까 합니다. 뭉뚱그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했지만 그 구체적인 표현은 사람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가지각색이게 마련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마친 서양사를 전공하고 있는 관계로 우리가 왜 서양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하나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서양사에 대한 관심은 일본사에 대한 관심에 비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게 솔직한 평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양사에 대한 관심을 분석하는 작업은 역사에 대한 관심 그 자체를 좀 더 분명하게 밝히는 작업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서양사에 대한 관심은 일단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일본 역시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세계 속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 그러니까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이 중요한 나라들과 일본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들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확실히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너무나 막연해서 그저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다고 답하는 어린아이들의 선문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제까지 세계 속에서 차지해온 서양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따라서 그 역사에 등장하는 정치가나 군인 혹은 예술가들의 행적에 우리가 관심을 쏟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역사상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관심일 뿐 역사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역사 그 자체와 관련된 차원으로서 일본과 유럽 사이에 어떤 역사발전상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보면 어떨까요? 이것은 우리가 서양사를 연구하는 이류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들먹이는 것입니다. 예컨대 봉건제도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봉건제도란 결코 무엇이든지 낡고 나쁜 것으로서의 봉건제도가 아니라 중세시대의 정치나 그 밑바탕을 규정하고 있던 제도로서의 봉건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봉건제도에 관한 한 서양과 일본 사이에는 서로간의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유사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학자들도 크게 주목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역사적 발전을 규정하는 요소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 그 자체에 뭔가 거로 공통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서양사에 대한 연구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식의 견해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서양인들에게 왜 우리가 서양사를 연구하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에 아주 편리한 구실이 될 수 있고, 또 상대방도 이러한 답변에 쉽사리 납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견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이유 또한 우리가 서양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도대체 왜 우리가 서양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하는 그 이유로서 저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요컨대 서양사는 우리와 무관한 역사가 아니며, 서양사 자체가 우리의 역사 속에 살아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런 말은 너무 대담하고 심지어 듣기에 따라서는 당돌하기까지 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치유신 이래 우리는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대거 수입해 돌여옴으로써 오늘날의 근대국가를 이룩해냈다고 해도 과히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명치 이래의 일본이 서양의 근대국가와 아무리 다르다고 주장한다 해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본에는 일본 나름의 학문적 전통이 있었음은 물론 제도의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치유신을 고비로 하여 그와 같은 전통은 일단 중지되었고, 그 대신 서양의 전통이 그 자리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과거 역사에는 이 점에서 커다란 단절이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역사가 거기에서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거기에 세계의 역사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단절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급속한 템포로 근대 문명을 건설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 속에 서양이 들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비유라고 할망정 결코 허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서양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러한 서양의 전통을 진정 우리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형태를 위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전통의 근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서양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근대 일본 혹은 일본의 근대 문화를 창조할 수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서양사를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가 서양사를 공부한다지만 실은 그러는 가운데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점을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는 애초의 문제와 관련지어 말하면, 우리가 어떤 나라의 역사 혹은 어떤 시대의 역사를 공부한다든지 그것은 사실 우리 자신이 서 있는 현재의 장을 밝히려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로부터 미래에 대한 결단,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그 어떤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결국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항상 현재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천적 과제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는 것, 바로 이 점이 이 장에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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