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3장
꽃
3. 무궁화
3) 꽃으로서의 무궁화
(1) 인생과 역사를 상징하는 꽃
무궁화는 이른 새벽에 꽃이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서 오므라들기 시작하여 해질 무렵에는 꽃이 떨어진다.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은 그의 시구에서 “무궁화는 하루 동안 스스로의 영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처럼 무궁화는 날마다 새로 피고 반드시 그 날로 지고 만다. 그러나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어,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백여일 동일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것이 무궁화의 특징이다. 무궁화의 화기가 짧다거나, 위에서 말한 백낙천의 시구절 등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지 나무의 화기를 말한 것은 아니다. 화기를 두고 볼 때에 가장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것이 무궁화이다. 하루에 보통 작은 나무는 20여 송이, 큰 나무는 50여 송이의 꽃이 피므로 100여 일 동안 피운 꽃을 합하면 한 해에 2천에서 5천여 송이의 꽃을 피우는 셈이니, 다른 화목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특유한 개화습성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른 새벽 태양과 함께 피어나 태양과 함께 지는 무궁화. 그날의 태양은 졌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매일 새롭게 꽃을 피우는 무궁화. 무궁화는 태양과 일맥상통하는, 태양과 운명을 같이 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궁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과 역사를 상징하는 철학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람의 일생은 짧기가 그지없다. 오늘의 꽃이 최선을 다하여 피고 지면 다음날, 또 다음날을 연이어 새로운 꽃들이 대를 잇는다. 마치 한 인간의 삶은 짧지만 민족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되듯이... 또한 무궁화는 질 때에 뒤가 어지럽지 않고 조촐한 끝맺음을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질 때는 색이 바래면서 꽃잎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져 지저분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봉오리처럼 곱게 도로 오므라져 송이채 꼭지가 빠지면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활짝 꽃을 피운 뒤 깨끗하게 끝맺음을 할 수 있는 삶. 우리는 무궁화를 통해 인생의 철학, 역사의 진리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다. 정인보의 시조 「근화사삼첩」은 무궁화를 노래한 3수의 시조이다.
신시로 내린 우로 꽃 점진들 없을쏘냐? 왕검성 첫 봄빛에 피라시니 무궁화를 지금도 너 돋 대하면 그제런 듯하여라.
저 뫼는 높고 높고 저 가람은 예고 예고 피고 또 피오시니 번으로써 세오리까? 천만년 무궁화 빛을 길이 뵐까 하노라.
담우숙 유한코나 모여 핀 양 의초롭다. 태평연월이 둥두렷이 돌아올 제 옛 향기 일시에 피니 강산 화려하여라.
이 시조에서는 단군이 나라를 세울 때 겨레의 영원한 표상으로 나라꽃 무궁화를 점지하셨으며, 우리나라의 태고적 자연과 함께 변함없이 피고 지는 무궁화의 정신을 찬양하고, 무궁화의 그윽한 자태와 향기 속에 영광스럽고 평화로운 겨레의 미래의 노래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라져 갈지라도 새로 살아나고 자라나서 길이 무궁한 빛으로 역사를 이어 가는 우리 겨레, 이 모든 겨레의 힘으로 또한 무궁히 뻗어나갈 우리나라. 무궁화는 유구한 역사와 관계를 그대로 표출시킨 꽃이다.
(2) 순결과 정열의 꽃
무궁화는 화려하거나 요염하지 않고 짙은 향기도 없다. 여성적이기보다는 중성적인 꽃이다.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이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흰색의 꽃잎에 화심 깊숙이 붉은색이 자리잡은 단심 무궁화가 손꼽히고 있다. 그 깨끗한 흰 꽃잎과 깊숙이 또렷하게 자리잡은 붉은색 심문은, 가슴 속에 열정을 간진한 순결한 영혼을 연상하게 한다. 마치 먼 옛날 심신유곡을 찾아다니며 영혼을 맑게 하고 가슴의 뜻을 가지던 화랑도의 무리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달빛 아래서 손에 손을 잡고 긴 댕기를 휘날리며 끝없이 강강수월래를 하던 이 땅의 순결한 처녀들인 듯... 조지훈은, “희디흰 바탕은 이 나라 사람들의 깨끗한 마음씨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연연히 붉게 물들어, 마침내 그 한복판에서 자주빛으로 활짝 불타는 이 꽃은 이 나라 사람이 그러워하는 삶”이라 하였다. 이러한 무궁화의 순결한 일편단심을 잘 나타낸 설화가 있다.
옛날 어느 나라에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곱고 글과 노래를 잘하여 많은 남자들이 사랑을 구애하여 왔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앞을 못 보는 남편이 있었고 그녀는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였으므로, 아무리 재산이 많고 권세가 높은 사람이 유혹을 해도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인을 탐내 오던 고을의 성주는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그녀의 마음이 조금도 동요되지 않음을 보고 강제로 여인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끝까지 명령에 굴하지 않자 성급한 성주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여인의 목을 자르고 말았다. 여인은 죽으면서 자신의 시체를 집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여, 소경 남편이 있는 집 뜰에 묻어 주었다. 묻은 자리에서 싹이 돋고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은 삽시간에 그 집 뜰 안을 둘러싸고 말았다. 마치 남편을 보호하여 품안에 감싸안은 울타리처럼. 그 뒤 동네 사람들은 이 꽃을 ‘번리화(무궁화의 별칭)’, 즉 ‘울타리꽃’이라 불렀다. 한편, 중국의 「시경」에는, ‘안여순화’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마치 무궁화와 같다는 뜻이다. 이어 시선 이백은, "함초롬히 피어난 섬돌 옆의 무궁화 온 동산 다 살펴도 이 꽃에 견줄 것이 없구려." 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서는 무궁화를 이상향인 샤론의 장미, ‘ROSE OF SHARON’이라 하여 꽃 중의 꽃이라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궁화의 고아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으나, 정작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화려하고 눈에 띄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취하여 무궁화의 참된 아름다움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3) 나라꽃으로 부적합한 이유에 대한 변
앞에서 무궁화가 국화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측의 이유를 살펴본 바 있다. 첫째, 자생지가 전국적이지 않고 주로 남쪽에 분포한다는 점이다. 이 주장은 1950-1960년대의 식물학자들 사이에서 보고된 것으로, 그 뒤 오랜 연구를 거쳐 잘못된 것임이 밝혀진 바 있다. 유달영 박사는 함경도 등에 무궁화가 없는 것은 단지 심어 가꾸지 않은 까닭이며, 무궁화는 어느 땅에서도 잘 자라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번식이 되는 강인한 꽃이라 하였다. 임채욱 선생은 이 점과 관련하여 무궁화를 보지 못한 북한사람들에게는 ‘무궁화 삼천리’가 넌센스가 된다는 의견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로 오늘의 북한에서도 무궁화가 잘 알려져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1983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음악제 ‘아시아음악연단’에서「무궁화 3형제」라는 노래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또한「무궁화 꽃수건」이라는 가극도 있으며, 의식행사 때 단상을 장식하던 꽃도 무궁화였고 소련인이 무궁화를 대한민국의 국화로 보기보다는 분단 이전의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있는 꽃으로 인식하고, 그 상징성을 자기들도 유하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까지 분단상황을 떠나 겨레의 상징성으로 공유되고 있는 무궁화임을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원산지가 인도이므로 외래식물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역시 역사적 기록과 고증을 통하여 잘못된 것임을 밝혀진 바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문헌에서 살펴보았듯이,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토양에 맞아 2천여 년 이상의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자생하여온 꽃이다. 식물학계에서는, 무궁화의 원산지가 학명으로 미루어 시리아라고 해석되어 왔으나, 이에 대해 점차 의문이 제기되고 최근에는 인도, 중국, 한국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셋째, 진딧물이 많이 붙고 꽃이 단명허세하다는 점이다. 무궁화에는 진딧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된 육종으로 최근 진딧물 없는 무궁화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사실 난이나 장미 같은 꽃은 까다롭다 하여 어린아이 돌보듯 온갖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지만, 무궁화는 세인의 관심은커녕 화단에서도 밀려나 관공서, 학교의 담곁에 묵묵히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단명허세하다는 평은 같은 현상을 놓고 나쁜 쪽으로만 본 극단론이다. 그것이 오히려 무궁화를 무궁화답게 하는, 우리 민족의 꽃으로서의 특성 중 하나임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
넷째, 휴면기가 너무 길고 봄에 싹이 늦게 돋는다는 점이다. 무궁화가 늦게 꽃이 핀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늦게 꽃이 핀다고 하여 그것이 어찌 흠이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묵묵히 때를 기다려 다른 꽃들이 하나 둘 지고 난 다음,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줄기차게 피어나는 무궁화야말로 우리 민족성의 강인함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무궁화는 계절상 늦게 피지만 가장 부지런한 꽃이기도 하다. 흔히들 새벽 5시경에 피어나는 나팔꽃을 부지런하다고 하지만, 무궁화는 이보다 훨씬 일찍 꽃을 피운다.
(4) 나라꽃 무궁화
이제까지의 글에서 혹 편파적이라는 느낌을 갖거나, 다른 적합한 꽃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일가견을 가진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화로서의 무궁화에 관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가장 적합한 말이 있다. “무궁화는 육안으로 보기보다는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윤극영 선생의 말이다. 꽃만을 보기보다는 그 속에 담겨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정신과 역사,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배달겨레의 맥락을 보아야 된다는 뜻의 이말은 오늘 우리가 새롭게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처럼 우리 민족의 깊은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온 무궁화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해 왔고 자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민족의 꽃이 무궁화와 우리나라만큼 깊은 유대관계로 맺어져 있겠는가. 멕시코의 선인장, 그리스의 올리브, 캐나다의 단풍 등은 화려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나라의 상징으로 그 국민이나 외국인이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다. 스코틀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애국주의적인 전설 하나 때문에 엉겅퀴 같은 독특한 꽃을 국화로 사랑하고 있다. 즉 중세기 덴마크 군대가 침략했을 때 스코틀랜드의 엉겅퀴 숲에 매복하였다가 그 가시에 찔려 패퇴한 유래 하나만으로도 지역과 민족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웃 일본도 어떠한가. 일본은 그들이 아시아를 재패할 때 발길이 닿는 곳마다 제일 먼저 벚꽃을 심었다. 일본은 그네들의 국화인 벚꽃을 일본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다닌다. 벚꽃의 특성과 일본인의 기질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면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는 무엇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임을 말할 수 있는지, 여기에 대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될까? 오히려 일제 때 왜곡된 무궁화에 대한 인식이 무의식 중에 전해 내려와, 무궁화를 하찮게 취급한 적도 없지 않으리라.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꽃이다. 오랜 역사를 두고 그러한 위치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끊임없이 꽃을 피워 온 무궁화. 우리가 잠시 그 존재와 의미를 망각했다 하더라도, 무궁화는 늘 그대로의 의미와 상징성을 간직한 채 우리의 곁에서 오늘도 묵묵히 꽃을 피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