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대통령이 세계 각지를 순방하게 되었다. 순방의 주요목적은 두 사람의 대통령 경선을 도우려는 것이다. 하나는 러시아의 옐친을 위한 것으로, 옐친을 한껏 칭찬하며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다른 하나는 클린턴 자신을 위한 것으로. 세계의 영도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대통령선거 때 Tv의 선거홍보용으로 쓰이게될 것이다, 심지어는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중동으로 파견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의 이슬람계 정당 간에 휴전을 촉구하게 한 것도 역시 이스라엘의 페레스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레바논과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페레스는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다. 동기는 어디까지나 동기일 뿐이고 대외정책에서 최후의 입김으로 작용하는 것은 역시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이다. 클린턴의 대외정책에 대해 가장 심한 비평을 하는 사람도 이번 세계 순방에서 클린턴은 커다란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클린턴은 동경에서. 평화시에도 일본은 미군에 군수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초보적 동의를 받아 내었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미국과의 군사협력 가능성에 대한 모색도 하였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활동이 평범하고 사사로운 외교적 활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일본은 끝내 태평양지역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군사행동을 취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뉴스이다. 우리는 일본의 완벽한 음향기기를 사다 쓰기 위해 일본을 정복하고 우리 생각에 따라 일본을 재건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은 일본이 2차대전중이나 대전 전에도 모종의 능력 우리는 이것을 군사적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런 일본의 능력을 통제하고 이용하며 그들을 우리 편에 두었던 것이다. 30년 이래 그들은 확실히 우리 편에 서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통제를 받았다. 맥아더 장군은 일본의 평화유지를 위한 조항을 헌법에 써넣었다.하지만 50년 뒤인 지금은 단순한 평화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일본은 강력하다. 중국은 이제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비록 최강국이지만 이미 지쳤다. 특히 단독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우리 미국은 혈혈단신으로 뛰어 다녔다. 우리는 확실히 일부 작은 동맹국과 함께 전쟁을 한 적은 있으나 일본과 함께 한 적은 없다. 다시 이래서는 안 된다. 냉전에서 승리함에 따라 미국인들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의 어떤 침략자에 대해서도. 군사력으로는 단독으로 대항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심리적으로는 능력이 없다. 아시아에서 어떤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해 일본이 방관적 태도를 취한다면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난관을 뛰어넘는 데 필요한 국내의 지지를얻지 못할 것이다. 4월 18일의 '도쿄합동선언'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선언은 당연히 중국에도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미 . 일의 새로운 동맹은 중국을 겨냥한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이에 중국은 즉각 항의하였다. 일본과 미국이 적극적인 군사협력 단계로 접어드는 역사적 전환은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실제로 몇 차례에 걸친 중국의 강력한 항의가 이의 중요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클린턴의 변신은 일본의 변신과 같은 역사적 의의를 지니지는 않지만 환영을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3년 동안 정부는 계속해서 일본을 경제침탈자이자 실질적인 적으로 대해 왔으나 지금은 모든 것을 분명히 해 놓 았다. 일본은 이미 친구이다. 만일 이 지역에 잠재적인 적이 남아 있다면 그는 바로 중국일 뿐이다. 정부가 중국이 잠재적인 적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국이 고도의 민족주의 독재체제 아래서 두 자리 수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중국은 1994년 남중국해에서 다섯 나라가 주권을 주장하는 도서를 겅섬하는 행동을 감행하였지만 우리 정부에 그다지 큰 부담을 주지는 않 았다. 중국이 또 파키스탄과 이란에 핵무기와 화학무기 기술을 판매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정부가 비로소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지난 달 대만에 대해 대담한 군사위협을 가할 때였을 것이다. 실탄 군사훈련과 유도탄 발사, 그리고 일부 지역의 해상봉쇄는 미국으로 하여금 더이상 좌시할 수 없게끔 하였다. 정부는 뒷통수를 한 방 먹은 후에야 중국과의 소극적인 교류 및 일본과의 대립정책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캐달았다. 그래서 지금 클린턴은 이와 같은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과 일본의 우호관계는 단순히 대선을 겨냥한 선거전술의 하나에 불과하다. 일본과 마찰없는 우호적인 장면들을 매스컴에 보낼 좋은 기회인 것이다, 외교정책이 경제로부터 지연전략(地緣戰略)으로 바뀐 것이 단지 선거용에 불과한 것인지는 클린턴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클린턴이 연임하게 된 후에도 이 변화는 지속될 것인지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의 연임 후에도 이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클린턴의 모스크바 재3차 정상회담이나 크리스토퍼의 제21차 다마스크 방문 같은 것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겠지만 클링턴의 이번 동경행은 역사에 기록될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새로운 대일본정책은 아군과 적군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이 정책으로 일본은 미국과 함께 태평양 지역을 감시하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비록 그다지 큰 힘이 되지는 않지만 동북아의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닥쳐 올 중대한 도전-중국을 제재하기 위한 기초를 세웠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