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개(1453-1519)의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개지, 호는 이요정 또는 송계이며, 신숙주의 손자이다. 성종 14년(1483)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5년 뒤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연산군 때에 영광으로 귀양갔다가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형조 참판으로 불려 왔고, 대제학에 올랐다. 신용개는 타고난 자질과 인품이 너그러웠으나 언뜻 바라보면 범할 수 없는 의젓한 위엄을 지녔다. 이시애의 난리에 그의 아버지 신면이 함길도 관찰사로 갑자기 닥친 변고에 대응하지 못하여 대청 위의 후미진 다락 틈에 숨어 있었다. 적도들이 그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막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느 아전이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어 마침내 살해되고 말았다. 신용개가 장성하자 그 원수를 기어이 갚고야 말겠다고 하여 홍유손과 교유하면서 여러 차례 함길도에 가서 그 아전의 얼굴 생김새와 성명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전이 서울에 왔는데 신용개는 당시 의정부 사인이었다. 그래서 홍유손과 함께 어둠을 틈타 도끼를 끼고 그 아전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는 홍유손을 시켜 마치 관청의 일로 서로 알려야 할 사안이 있는 것처럼 하여 불러내게 하고는 뒤에서 도끼로 찍어 죽였다.
신용개는 술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가끔 늙은 여종을 불러 서로 큰 술잔을 기울이며 취하도록 마셨다. 국화 여덟 분을 길렀는데, 마침 가을철이어서 국화가 활짝 피었으므로 마루에 들여놓았더니 높이가 대들보에 닿을 듯하였다. 신용개가 그 향기를 사랑하고 완상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집안 사람들에게 일렀다.
"오늘은 여덟 분의 훌륭한 손님이 찾아올 터이니 술과 안주를 장만해 두고 기다리라"
그러나 해가 지려고 하는데도 조용하기만 하고 손님은 오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자 신용개가 말하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러는 사이 달이 떠서 빛이 방안으로 들어오니 꽃빛은 난만하고 달빛은 희고 깨끗하였다. 신용개가 그제야 술을 내오라 하였다.
"이것이 나의 아름다운 손님이다"
그가 여덟 개의 국화 화분을 가리키며, 각각 앞에다 좋은 안주를 놓았다.
"내가 마땅히 술을 권하리라"
그가 국화 앞에 은도배로 각기 두 잔씩 따라 주고 자신도 취하였다. 중종 11년에 정승으로 임명되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57세에 죽었다. 시호는 문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