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창(1466-1536)의 본관은 황주이고, 자는 여신, 호는 송석이다. 성종 20년(148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10년(150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사간원의 관직과 홍문관의 전한을 역임하고 지방의 수령을 여러 번 지냈는데, 이삿짐 보따리가 늘 단출하였다. 황해감사를 지냈고 청백리에 뽑혔다. 그는 집이 없어 항상 남의 집을 빌려 살았고, 만년에 지은 쌍계의 집 또한 겨우 비바람을 가리울 정도로 초라했다. 벼슬에서 파면된 뒤로부터는 해마다 양주 창고에 있는 관곡을 꾸어다 먹으니, 사람들이 '관곡 꾸어 먹는 재상'이란 뜻으로 '적창재상'이라 불렀다. 71세에 '기묘당인'으로 몰려 죽었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