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것은 그의 자서전을 소재로 한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 덕분이다. 그래서 귀뚜라미와 놀던 어린아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1908년, 큰아버지인 광서제가 죽자 부의는 세 살의 어린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아버지 순친왕의 섭정을 받으며 3년간을 황제로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그 이듬해에 제위헤서 물러나야만 했다. 부의가 퇴위함으로서 268년에 걸친 만주국의 중국지배와 2000년간에 걸친 황제 지배체제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는 인민공화국으로부터 북경에 있는 궁전에서 살도록 허용이 되었으나 1924년, 몰래 빠져나와 천진으로 갔다. 거기서 일본인 조계로 거주지를 옮기고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만주국의 집정관이 되고 28세 되던 1934년에는 만주국의 황제로 추대된다. 그는 일본 천조대신을 신봉하도록 강요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울분을 삼키며 굴욕적인 황제 자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계략임을 처음부터 그는 알지 못했다. 부의는 실권없는 허수아비 왕이 되어 불우한 11년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1945년 일본이 망하자 그는 통화로 도망치는 길에서 제3차 퇴위조서 를 반포하게 되며 그 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적탑과 백리라는 곳에 억류되었다. 부의 그는 5년 뒤 중국으로 송환되어 전범재판을 받게 된다. 1950년부터 시작하여 특사로 풀려 나오기까지 10년간을 그는 중국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중국의 황제이던 그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쉰세 살이 되어서였다. 그것도 평민으로서였다. 이른바 교육개조를 거쳐 정부의 특사를 받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이 된 것은 1959년 12월 4일이었다. 그립던 북경으로 그가 돌아온 것은 자금성을 떠난 지 꼭 34년 만의 일이었다. 북경에 돌아온 부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말대로 옴짝달싹 못하던 왕위 그 어의를 벗어 버리고 평민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1962년, 56세 되던 해에 부의는 아내를 새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식물원의 기계수리 상점에서 일을 하면서 나머지 후반생을 조용히 마쳤다. 부의에게는 황후와 비, 그리고 2명의 귀인이 있었는데, 모두 비극적인 관계로 끝났다. 나중에 만난 간호사 이숙현과 비로소 참다운 부부애를 느끼며 범부로서의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명나라 마지막 황제가 목매어 죽은 현장을 찾아보았는데 그때 동행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데 숭정은 포위 당해 도망갈 길이 막혔다. 황후와 후궁들이 잇달아 자결하자 그는 이 나무에 목을 맨 것이다. 자칫 세상이 잘못 풀렸던들 나도 이 나무에 목을 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62년 피섞인 오줌을 누기 시작하던 부위는 그것이 신장암의 징조인지 몰랐다. 인민병원과 협화병원에 아홉 번이나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병세는 날로 심해져 병원에 다니는 일마저 어렵게 되었다. 시내 버스를 타자니 사람이 많아서 오를 수 없고, 세 바퀴차를 불러타고 싶었으나 홍위병들이 남을 압박한다 고 할 것 같아 그만 두었으며, 정협의 협조를 받자고 하여도 문을 닫아걸고 업무를 담당한 사람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매일 부의를 부축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특히 혼자 있기를 싫어해서 항상 병원침대 머리맡에는 그의 아내가 지키고 있었는데 세상을 떠날 때도 그의 곁에는 나 혼자밖에 없는 외로운 처지였습니다.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죽음의 병상에서 부의는 아내 이숙현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말했다. 내병은 고칠 수 없소, 나는 한 평생 황제 노릇도 했고, 평민도 되었으며, 늘그막엔 당신 곁에서 인간생활의 단맛을 보았소. 당신과 생활하는 이 몇 해 동안 나는 진정한 생의 즐거움과 사람을 알게 되었소. 당시 수상이던 주은래는 그들의 뒤를 잘 돌보아 주었다. 부의가 위독할 때도 수상이 특별대우 라는 네 글자를 써 주었기에 입원이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며칠간을 병원에서 지낼 수 있었다. 1967년 10월 17일 새벽 2시 30분. 소매여! 숨이 막힐 것 같다 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황제 부의는 숨을 거두었다. 목숨이란 것은 목에 숨이 붙어 있는 것 이라고 한다. 나를 외롭게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그 분은 한쪽 눈을 뜨고 있었고, 입도 벌리고 있었다. 안심하세요. 내 걱정 말고 고이 잠드세요. 그의 눈을 감겨주던 지금 이 손에는 그때의 슬품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고 이숙현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의 아내는 5원을 들여 산 값싼 관에 시신을 넣어 지게 송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가 황제 복권으로 청나라 황제들의 능이 있는 하북성, 서릉에 다시 안장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다. 부의는 세 살에 황제가 되고, 39세에 포로가 되었다. 광해군은 49세에 폐위되어 죄인이 되었다. 부의는 14년간을 제위에 있었고 15년간을 포로로 지냈다. 광해군은 15년간을 왕위에 있었고 18년간을 죄인으로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61세와 67세의 나이로 자연사할 때까지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진행되던 시대적인 상황, 그래서 때를 만나든지 못 만나든지 하는 우, 불우는 하늘의 탓이라고 했던가. 역사에는 명에 사로잡혀 자신의 명을 가볍게 버린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기를 쓰고 살고 싶어하는 쪽이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랄수도 있다. 무릇 생명이란 살려고 하는 의지이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목숨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