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는 네 번에 걸쳐 큰 박해를 받았다. 이때 1만명의 선량한 신도들이 목이 잘리었다. 신의 이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 순교행위를 카톨릭에서는 치명 이라고 명명하는데 최상으로 축복된 순간 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앙적 죽음을 통해서만이 가장 영예로운 신앙의 증거가 즉각에 이루어지고, 신의 무한한 축복과 영원불멸한 낙토천국이 현실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순교자들이 의연하게 그리고 기쁘게 죽어갔던 것이다.
1846년 9월 16일. 3개월의 옥중 생활을 마친 김대건 신부의 순교장면을 보자. 한강 새남터(노량진 시장) 형장에 끌려나온 김대건 신부에게 마지막 군령이 내려졌다. 사학악인 김대건의 목을 베어 달아, 모두 이를 경계할 것을 명하노라. 군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관습에 따라 두 귀에 화살을 꿰고, 얼굴에는 물을 뿜고 흰 회를 발랐다. 그리고 두 명의 군졸이 김대건 신부의 양쪽 겨드랑 밑에 두 개의 몽둥이를 끼워 앞뒤로 걸머메고 군졸의 둥근 진의 바깥쪽을 세 차례나 돌린 후, 신부를 꿇어앉히고 한 가닥의 밧줄로써 김대건 신부의 머리칼을 동여매어 그 한 끝을 사형대의 말뚝 구명에 끼워 잡아당기니 신부의 얼굴은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래도 신부는 태연하게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으면서 말했다. 한 번 나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이 면하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제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이 도리어 나의 소원이니 오늘 묻고, 내일 물어도 이 같을 뿐이요, 때리고 죽여도 이 같을 뿐이니 빨리 죽여 달라. 그리고 군졸들에게 몸가짐이 이러하면 좋으냐? 쉽게 자르겠느냐? 좀 더 똑바로 하여라. 아 그만하면 됐다. 자 나의 목을 잘라라. 준비는 다 되었다. 이리하여 12명의 희자수가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자르는 흉내를 내면서 신부의 주위를 빙빙 돌아 달리다가 각각 한 칼씩 내려치니 여덟 번째의 칼날에 신부의 머리는 앞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형리는 곧 그 목을 주워서 목판에 얹어 관장 앞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관장은 검사를 마친 후, 궁중으로 돌아가서 사형집행을 끝마쳤음을 보고하였다. 이리하여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은 그의 영광된 치명으로 말미암아 1857년 9월 2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가경자의 칭호를 받았고, 1925년 7월 5일에는 복자의 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