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는 북송때 사람으로, 왕안석과 불합하고 그의 신법에 반대한 탓으로 여러차례의 귀향을 가게 되었다. 십여 년에 걸친 그의 유배생활이 겨우 죽기 두 달 전에야 해금된다. 1100년, 철종이 죽고 신종황후가 섭정을 하면서 그해 4월 원우대신들의 사면이 있었다. 동파에게 마음대로 거주해도 좋다는 허가가 내려졌다. 그는 1101년 1월에 대유령을 넘었다. 태후가 서거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 한 차례의 정풍이 예상되었다.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 동파는 아들들과 함께 호반지역의 농장에 가서 살 참이었다. 의진에서 아들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파는 강위의 배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여름이 닥쳤고 그의 몸은 극도로 쇠잔해갔다. 아메바성 이질에 걸린 것이다. 근 한 달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7월 15일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고열이 심하고 잇몸에서는 피가 났다. 자신의 증상을 분석해 본 결과 열독으로 발병된 것, 즉 전염병으로 진단되었다. 내버려두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기면서 동파는 전세웅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장자에 의할 것 같으면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는 별 도리가 따로 없고, 그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상책이라 했습니다. 보내 주신 인삼, 맥문동과 복령을 함께 달여 목을 축이고 있는데 만약 이것을 복용하고도 별 효염을 못보면, 이는 하늘의 뜻이지 내 탓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파는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었다. 7월 18일 세 아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 유언을 한다.
악한 짓을 하지 않았으니 지옥으로 가지 않을 게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묘지명은 아우인 자유가 쓰도록 하고 웅산 기슭에 아내와 합장하라. 항주의 옛친구 유림장로가 줄곧 그의 곁에 있었다. 26일, 그는 마지막 시 한 수를 짓고 장로와 더불어 이승과 저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불가의 염불을 좀 외워보라고 권했다. 동파는 빙긋이 웃더니 <고승전>을 읽어 보았는데 그들도 최후에는 모두 죽었다 고 말했다. 7월 28일, 그는 급격하고 몸이 쇠잔해졌고 호흡도 차츰 가빠졌다. 관습대로 가족들은 코 끝에 솜을 올려놔 그의 호흡을 살폈다. 온 가족이 방안에 모여 있었다. 장로는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순간 내세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동파도 천천히 속삭였다. 서천이 있다 하더라도 애써 그곳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장로가 다시 말했다. 특히 이 순간엔 시도해 봐야 합니다. 억지로 애쓰는 것은 오히려 잘못입니다. 그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도달해 보아야 별 것 아닐세 여산은 여전히 안개로 덥이고 절강은 여전히 파도가 치네. 그의 오도시대로 도달해 보아야 달라진 것은 없고 여산은 여산, 절강은 절강일 뿐, 세계는 여전히 현상계 그대로였다. <고승전>을 읽었는데 그들도 결국엔 다들 죽었다는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