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의 임금이 바뀌었습니다. 동생 웅운이 형 웅간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원이 문부인의 환심을 사려고 병차 6백 승을 일으켜 정나라로 쳐들어 갔습니다."
"자원이 문 부인을 품으려다가 실패하고 죽었습니다. 투곡어도가 새 영윤이 되었습니다."
관중은 부중에 앉아서 초나라에 밀파한 세작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제나라의 경우처럼 이름 대신에 자(字)로 투곡어도를 자문(子女)이라 부르도록 초성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보고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관중은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관중의 안색이 크게 변하는 보고가 들어왔다.
"자문이 영윤이 된 후 첫 번째로 문무 백관에게 선포하기를 모든 대소 신하들은 녹(祿)으로 받은 토지의 절반을 국가에 환납(還納)토록 하라고 한 후 먼저 투씨 집안부터 모든 식읍의 절반을 바치는 등 모범을 보이고, 이어서 도읍을 단양(丹陽) 땅에서 영도로 옮겼습니다."
마침 곁에 있던 영척이 물었다.
"상군께서는 어찌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몸이 불편하시기라도 하십니까?"
관중이 우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지금 우리 제나라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대국은 초나라 뿐입니다. 요즘 초나라에서 어진 이를 영윤 벼슬에 세우고 그 동안 신하들에게 내렸던 땅의 절반씩을 환납하게 하더니, 도읍마저 단양에서 영도로 옮겼다 합니다. 남방이 신경이 쓰이면 북방을 정벌하는 데 큰 지장이 올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서 그럽니다."
영척이 물었다.
"초나라의 어진이라면 굴완(屈完)이 있습니다. 그가 영윤이 되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들리는 바로 투곡어도라는 이름인데 자는 자문(子文)이라고 합니다. 매우 뛰어난 인물인 듯싶소이다."
한편 자문은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나서 곧바로 병사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동족인 투장(鬪章)에게 군사를 맡기고, 투반을 신공 (申公)으로 삼고, 굴완에게 상대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그러고는 초성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원래 태공망이 주왕의 은총을 받아 영구에 봉해졌을 때 제나라 땅은 염분이 많은 습지인데다가 백성들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태공이 부녀자의 일을 권장하여 제조 기술을 극도로 습득하게 하고 또 생선과 소금을 유통시켜 크게 번성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 13대를 거치는 동안 제나라는 동쪽 바닷가의 천승지국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관중이라는 뛰어난 인재를 정승으로 삼아 이제는 천하를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관중은 물가를 조절하는 구부를 설치하여 물가를 안정시키고, 나라간의 교역을 장려하여 매우 번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 제나라의 국력은 이제 어느 나라도 따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환공은 벌써 중원의 패자가 되었고 언제 병사를 일으켜 우리 초나라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어진 이를 발굴하여 벼슬을 시키고 유능한 인재에게는 소신껏 할 수 있게 기회를 베푸십시오. 특히 제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병사를 위해 세금을 탕감해 주고, 가벼운 죄를 지은 자에게는 활이나 화살을 대신 받아 벌을 사해 주도록 하십시오. 또한 금과 주석, 단사 등의 개발을 위해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병역의 부담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초성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한 시책들은 모두 영윤께서 관장하시고, 짐에게는 차후 보고해 주시도록 하오."
이렇게 하여 초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한편 제환공은 초나라가 날로 강성해지고 있다는 걸 소문으로 듣고, 혹 훗날에 중원 땅을 두고서 다투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걱정하였다. 그래서 제환공은 모든 제후들을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로 작정하고, 관중에게 상의했다. 관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문에게 정사를 맡긴 후 더욱 강성해졌습니다. 초나라는 결코 위세와 외교적 명분으로 다스릴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초나라를 다스려야 진정한 천하 패권을 쥐게 됩니다. 주공께서 이제 방백의 지위와 함께 열국 제후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마땅히 위덕(威德)을 넓히시어, 시기를 기다리며 앞날을 위해 준비해 두셔야 합니다."
제환공은 아무래도 초나라가 마음에 걸렸다.
"중부께서는 언제쯤 초나라를 칠 계획이시오?"
관중이 아뢰었다.
"우리가 초나라를 치려면 반드시 북쪽을 평정해야 합니다. 북쪽 오랑캐(山戎)를 쳐서 후환을 제거해야만 오로지 남방 초나라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입맛만 다시다가 다시 물었다.
"9대째의 원수인 기(杞)나라를 우리 선군은 쳐서 그 땅을 거뒀소. 그런데 장은 기나라의 땅이었건만, 아직도 과인에 게 복종치 않으니, 그들을 쳐 없애면 어떻겠소?"
관중이 역시 머리를 흔들었다.
"장은 비록 소국(小國)이긴 하나 그 조상을 살펴보면 강태공(姜太公)의 후손입니다. 그러하니 주공과 같은 동성인데 동성을 친다는 건 의리가 아닙니다. 주공께서 정 그러하시다면 왕자 성부(成父)에게 명하시어 대군을 거느리고 기성(杞城)을 순시하되 장을 정벌할 것처럼 보이면 장은 반드시 겁이 나서 곧 주공께 항복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동성을 쳤다는 말도 듣지 않고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말대로 군대를 보내어 시위토록 하니 장의 임금은 겁이나 항복해 왔다.
"중부(仲父)의 계책은 하나도 실수가 없도다."
제환공은 관중을 칭찬했다. 한편 군신(君臣)이 자리를 같이해 국사를 논하는데 신하 하나가 들어와 아뢰었다.
"연(燕)나라가 산융(山戎)에게 침범을 당해 사자가 와서 주공께 구원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이제야 기다리던 때가 되었습니다. 연나라를 구원한다는 명분을 걸고 이번 기회에 산융을 무찔러 없애는 것입니다. 그리하시면 주공의 뜻하심이 이루어집니다."
마침내 제환공은 관중의 말대로 산융 토벌을 결심하고 병사를 집결시켰다. 과연 어떻게 북쪽 토벌에 나설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