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은 바닷가의 여러 고을들을 순찰하느라 도성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사마(大司馬) 왕자 성부(成父)가 그를 수행하고 있었다. 여러 신하들이 제환공에게 간했다.
"지금 중부께서 지방 순시중이고 대사마 역시 도성을 떠나 있습니다. 군사를 일으키심은 당분간 뒤로 미루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환공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중부(仲父)가 이 곳에 있어도 송(宋)과 연합하여 노(魯)를 치는 일이라면 적극 찬성할 것이 틀림없소. 그러니 모두들 다른 말들은 마시오."
다른 사람들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한편 송나라 송민공은 예전부터 늘 제나라와 협력해 왔기 때문에 제나라 사신의 청을 듣자 즉시 승낙했다. 이리하여 제 . 송 두 나라는 6월 초순에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낭성(郞城) 땅에서 만나 연합하기로 했다. 어느덧 5월 말이 되었다.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南宮長萬)이 장수가 되고, 맹획(猛獲)이 부장(副長)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했다. 제나라에서는 포숙아가 장수가 되고 중손추가 부장이 되어 출발했다. 이에 제군은 낭성 땅 동북쪽에 영채를 세우고, 송군은 동남쪽에 영채를 세웠다. 포숙아가 중손추에게 말했다.
"이번에 또 다시 패하면 어찌 얼굴을 들고 주공을 뵈오리오. 그러니 매사에 조심하고 군율을 엄히하여 군심(軍心)이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오."
중손추는 스스로 몸을 바르게 하고 조심하니 제군의 영채는 정연하고 기세가 크게 올랐다. 한편 남궁장만은 자신의 용력(勇力)을 크게 믿는지라 별 방비없이 진을 치고 있었다. 노장공은 제 . 송 두 나라 군사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낭성 땅에 도착해서 진을 치고 곧 공격해 올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모든 신하들과 대책을 상의했다.
"포숙아가 장작 땅의 패전에 이를 갈고, 송나라 군사까지 데리고 왔으니 이를 어떡하면 좋겠소? 더구나 송나라 남궁장만은 촉산(觸山)에 있는 가마솥을 들어올렸다는 천하 장사인데 좋은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공자 언(偃)이 아뢰었다.
"신이 가서 그들의 동정을 한 번 살펴본 후에 대책을 세워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노장공은 이를 허락했다. 공자 언이 야밤을 이용하여 제 . 송 양 진영을 은밀히 살펴 보고 돌아와서 보고했다.
"포숙아는 매사에 심히 조심하여 제나라 진세가 매우 정연하고, 보초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살피고 있더이다. 그런데 송나라 남궁장만은 기고만장하여 행오가 어지럽고 군진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더이다. 그러니 우리가 일지군을 남쪽 성문으로 몰래 내보내서 방비 없는 송군을 기습하면 가히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대군으로 덮치면 남궁장만의 송군은 크게 패하여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송군이 패하면 제군 혼자서 우리와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자기 본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노장공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남궁장만의 괴력(怪力)을 어찌 당할 것인가?"
공자 언이 간청했다.
"신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의 용력이 뛰어나다 해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그제서야 노장공이 허락했다.
"그대가 기습 공격을 한다면 과인이 그대 뒤를 따라 대군(大軍)으로 접응하리라."
이에 공자 언은 기습 준비를 하는데, 호랑이 가죽을 백여 장 가져다가 말에다 둘러 씌우고, 기(旗)를 눕히고, 말발굽에다 천을 감싸 소리가 안 나게 했다. 그러고는 남문을 열고 은밀히 나갔다. 그들은 조용조용 발소리를 숨기고 송군 영채로 가까이 갔다. 송군의 진지는 그야말로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공자 언은 군사들에게 명해서 일제히 횃불을 들게 했다. 시뻘건 불길이 사방을 대낮처럼 밝혔다. 이번에는 일제히 금고(金鼓) 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그 때 송나라 군사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요란한 금고 소리에 질겁을 하고 일어났다. 사방에는 시뻘건 불길이 오르고, 울리는 북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요란한데 불빛 사이로 보니 수십 마리의 호랑이 떼가 맹렬하게 덮쳐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크게 놀란 말들은 미친 듯이 고삐를 끊고 달아나고, 병사들은 질겁하여 모두 제 살길을 찾아 이리 몰리고 저리 뛰었다. 남궁장만이 고래고래 소리치고 외쳐도 이미 흐트러진 군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남궁장만은 겨우 병차 한 대를 찾아 타고 도망쳤다.
도망치는 남궁장만
그 때 노장공이 이끄는 본대가 공자 언과 합세하여 송군을 시살하고 들어오니 송나라 군대는 열의 아홉이 죽거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나머지 송군과 남궁장만은 밤새 도망쳤다. 마침내 국경 지대인 승구(乘邱) 땅까지 왔다. 남궁장만이 뒤를 돌아보니 노나라의 추격병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 남궁장만이 병차를 멈추고 부장 맹획을 돌아보면서 탄식했다.
"이기든 지든 노나라 놈들과 양단간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도다."
맹획은 즉시 찬성하고 말고삐를 돌려 추격해 오는 노나라 군대 쪽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맹획과 공자 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남궁장만은 분기 탱천해서 죽을 힘을 다해 장창을 높이 들고 바로 노장공의 본대에 달려들었다. 남궁장만은 닥치는 대로 창을 휘둘러 노군을 쳐죽였다. 노군은 남궁장만의 용맹에 질겁을 하고 놀라서 감히 근접 하지를 못했다. 노장공이 전손생에게 말했다.
"그대는 원래 천하 장사로 이름을 날렸으니 능히 남궁장만과 승부를 겨룰 수 있겠느냐?"
이에 전손생은 즉시 달려나가서 남궁장만과 싸웠다. 노장공은 높은 대(臺)에 올라가서 그들의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전손생은 힘이 남궁장만에 미치지 못했다. 노장공이 좌우 사람에게 분부했다.
"과인의 금복고(金僕姑)를 가지고 오너라!"
좌우에서 화살을 바치자, 노장공은 화살을 시위에 먹여 남궁장만을 겨누고서 쏘았다. 화살은 번개처럼 날아가 남궁장만의 오른편 어깨를 뚫었다. 남궁장만은 손으로 화살을 뽑아 버렸다. 이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손생은 창으로 남궁장만의 왼편 허벅지를 찔렀다. 남궁장만이라해도 어찌 견딜 것인가? 고목나무 쓰러지듯 병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 때 노나라의 전손생이 달려와 얼른 남궁장만의 손을 묶었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한들 그대로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맹획은 싸우다가 남궁장만이 적에게 사로잡히는 걸 보고는 병차까지 버린 채 달아났다. 장수를 잃은 송나라 군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었다. 노나라 군사들은 크게 이긴 후 돌아갔다.
제 . 노 . 송 삼국의 화해
포숙아는 송나라 군대가 참패하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곧 군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는 관중이 해안가 순시를 마치고 도성에 귀환해 있었다. 관중이 소식을 듣고, 집안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않는 포숙아를 찾아가 위로했다.
"싸움터에서 한번 이기고 한번 지는 일은 비일비재한 것, 더욱이 충분한 군비 지원없이 원정군을 이끌었으니 어려움이 많았을 걸세. 이번 일에 너무 자책하지 말게나."
포숙아는 고개를 저었다.
"자책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네. 내 어찌 그런 시정 잡배만도 못한 자들과 함께 대사를 도모했는지 그게 참으로 딱할 따름일세."
관중이 은근히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시정 잡배란 누구를 말함인가?"
"송나라의 남궁장만이란 놈 말일세."
관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환공에게로 가서 앞으로의 대책을 함께 상의하자고 일렀다.
"공(功)이 없음이라 당분간 자숙하고 싶네. 그대가 알아서 해주게."
포숙아는 사양했다. 이에 관중은 제환공에게 송 . 노 양국과 화평하기를 건의하고, 그 우선으로 습붕을 주왕실에 보내어 제환공이 즉위했음을 보고한 후 제환공과 왕진(王珍)의 결혼을 추진토록 했다. 주장왕은 이 혼사를 노장공에게 주관토록 하여 마침내 제환공과 왕진의 혼사를 성립시켰다. 자연히 노나라와 제나라는 화합하고, 싸웠던 감정을 버리고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 해 가을이었다. 송나라에 큰 홍수가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위로하고 구제 물품을 보냈다. 노장공도 이 소문을 듣고서 사자를 보내 위문했다.
"우리는 이미 제나라와 우호를 맺었거늘 어찌 송나라만을 미워할 수 있으리오."
송나라는 이에 감격하여 다시 노나라로 사자를 보내 고마움을 표하고 더불어 남궁장만을 살려 보내 주시면 더욱 고맙겠다고 청했다. 노장공은 쾌히 승낙하고 그를 송나라로 돌려 보냈다. 이후 제·노·송 세 나라는 서로 화친하여 평화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