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국왕이 주방장에게 명하여 맛있는 탕을 끓이게 했다. 주방장은 물, 고기, 파, 생강, 콩 그리고 찹쌀 등의 재료를 솥에 넣고 정성들여 탕을 끓였다. 탕이 다 끓었는데 왕이 주방장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네가 끓인 탕에 재료를 넣은 순서대로 먼저 물맛을 보고 다음에는 고기, 그리고 파, 생강, 콩 마지막으로 찹쌀의 맛을 각기 따로 맛보고 싶다."
그러자 주방장이 국왕에게 말했다.
"탕은 이미 다 끓어서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는데, 어떻게 그 각각의 맛을 대왕께서 음미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그제서야 국왕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여러 가지 맛이 탕 속에서 섞이면 일일이 구별할 수 없는 법이로구나!"
<나선비구경>
백여섯번째 이야기 - 불씨
옛날에 한 바라문이 산속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시동에게 말했다.
"볼일이 있어 며칠 동안 마을에 다녀오려고 한다. 너는 집 안에 있는 불을 잘 단속해서 꺼지지않게 해라. 만일 불이 꺼지면 나무를 문질러 다시 불을 피워놓도록 해라."
바라문은 이렇게 지시한 후일을 보러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이 시동은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바라문이 있을 때에는 야단맞을까봐 두려워서 억지로 참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문이 하산하자 그 아이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아이는 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그만 불을 지키라는 바라문의 지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놀다가 지쳐서 집에 돌아와보니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아이는 얼른 땅에 엎드려 타다 남은 재를 힘껏 불어보았지만 한 점의 불씨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불이 다시 일어날 리 없었다. 아이는 도끼로 장작을 패면 불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장작을 잘게 썰어 절구통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기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불씨는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바라문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동에게 물었다.
"집을 나설 때 불을 잘 단속하라고 일렀는데 불씨는 꺼뜨리지 않았겠지?"
"주인님이 나가신 후 제가 밖에 나가서 노는 바람에 그만 불을 꺼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불을 다시 피울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저는 불이 나무 끝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예전에 보았기에 도끼로 나무 끝을 패보았지만 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잘게 썰어 절구통에 넣고 찧어도 보았지만 역시 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동의 이야기를 들은 바라문은 송곳을 꺼내 나무 끝 부분에 구멍을 뚫은 후 작은 나뭇가지를 넣고 힘차게 비빈 다음 연기가 일어나자 그 위에 건초를 쌓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시동에게 말했다.
"불을 피우려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는 법이지, 그저 장작을 두들겨 패고 찧는다고 해서 불씨가 생기지는 않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