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그 부인의 말을 믿지 않은 그녀의 아들이 꾀를 생각해내었다. 그 부인의 금 가락지를 몰래 빼다가 강에 던져버리고 돌아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어머니, 금 가락지를 어디 두셨습니까?"
그 부인은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며칠 후 그 부인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목건련, 아나율 그리고 대가섭을 초청하여 공양을 하고자 했다. 때는 물고기가 제 맛일 계절이라 그 부인은 사람을 장에 보내 물고기를 사오도록 했다. 사온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아들이 몰래 강에 버린 금 가락지가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뿜고 있지 않은가! 그 부인은 금 가락지를 집어들고 아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아들은 너무나도 신기해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물었다.
"부처님, 제어머니는 무슨 인연으로 절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복을 타고난 것입니까?"
"옛날에 어떤 산의 북쪽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겨울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산의 남쪽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 노부인은 집도 가난하고 몸 또한 허약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이사갈 수없었다. 홀로 산의 북쪽에 남은 노부인은 사람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간 물건들을 모아 잘 간수해 두었다. 봄이 와서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자 그 노부인은 챙겨두었던 물건들을 원래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물건들을 돌려받은 사람들은 무척 기뻐하며 노부인의 착한 마음씨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때의 노부인이 바로 지금의 네 어머니이니라. 다른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보고도 탐심을 일으키지 않은 인연으로, 네 어머니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복을 타고 난 것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아들은 어머니를 공경하며 더욱 정성껏 모시게 되었다.
<구잡비유경>
여든두번째 이야기 - 용시녀의 출가기
옛날에 수복이라는 장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용시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용시는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유복한 가정 환경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라났다. 용시가 십사 세가 되던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집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향을 바른 다음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녀가 막 옷을 다 입었을 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녀의 집 대문 밖에 오셨다. 그때 부처님의 양미간에서는 눈부신 불광이 뿜어져 수복 장자의 온 집안을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용시 역시 햇빛보다 강한 빛을 보고는 보통 빛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흥분하고 긴장된 나머지 그 빛을 좀더 확실히 보기 위해 칠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사방을 둘러본 용시는 부처님이 자기집 앞에서 계시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녀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해서 보살행을 닦아 마침내 성불하고 말리라."
이때 용시가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본 마왕은 심기가 불편해져 어떻게 해서든 저지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녀가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할 작정으로 마왕은 수복 장자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용시에게 말했다.
"용시야, 내가 보건대 네 생각은 정말로 천진난만하구나. 네가 세운 서원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란다. 부처님의 경지는 실로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그저 오늘 부처님을 본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아라한의 경지만 이루어도 충분할 것이다. 부처와 아라한의 최후 목적은 모두 열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단다."
그러나 도리어 용시는 더욱 굳게 말했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광대무변하며 그 자비심 역시 무한한 것입니다. 부처님과 비교해볼 때 아라한의 지혜는 태산의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지혜를 구하지 않고 소지혜에 만족해서 즐기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용시의 굳은 결심에 마왕은 속이 뜨끔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여자가 군주가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찌 성불을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일이다. 일찌감치 아라한의 경지를 구해 열반 경계에 들어가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용시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도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선을 닦고 악을 끊으면 수행과정을 통해 여인의 몸이 남자의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듣건대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영원히 게으르지 않고 수행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단 하루만에라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으니 반드시 열심히 수행해서 성불하려고 합니다."
마왕은 용시의 마음을 돌려놓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자 이번에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했다.
"네가 진정 보살행을 하고자 하면 세속에 관한 일체의 탐심을 끊어야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그렇다면 여기 칠층에서 뛰어내려보아라. 그러면 네가 한 결심이 그저 말 뿐이 아닌 진심이라고 생각하마. 그리고 그럴정도로 결심이 대단하면 아마도 성불할 수 있겠지."
이에 용시는 생각했다. '오늘 다행스럽게도 부처님을 만나 보살행을 하고자 하는 결심을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또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구나. 몸을 버려 성불할 수 있다면 이까짓 목숨을 무엇 때문에 아까워하리요?' 생각을 마친 용시는 난간 위로 올라서서 부처님을 향해 외쳤다.
"저는 기꺼이 목숨을 버려 보살행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 부처님께 이 몸을 바치리니, 마치 천녀가 뿌리는 꽃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려고 합니다."
용시는 말을 마치자마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녀는 이상하게도 곧바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있는 동안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사뿐하게 땅바닥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땅바닥에 내려선 용시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한 자기 몸을 보고 기쁨에 가득 찼다. 이에 부처님이 미소 지으니, 입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색광이 뿜어나왔다. 그 오색광은 대천세계를 환하게 비춘 후 부처님의 몸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의 정수리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부처님이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용시는 전세에 이미 수많은 부처님들을 모셔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느니라. 앞으로 칠억 육천만 겁이 지나면 용시는 명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님이 될 것이다. 명상 부처님의 수명은 일겁이며 그가 열반에 든 후에도 그 세상엔 일겁동안 명상 부처님의 가르침이 성행할 것이다."
용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에 용시는 부모님에게 달려가 간절하게 말했다.
"저는 출가수도하고자 불문에 귀의하렵니다. 원컨대 부모님께서는 제가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수복 장자 부부는 용시의 간청을 허락해주었다. 나중에 용시의 가족은 모두 부처님께 귀의한 후 수행을 계속해 깨달음을 얻었다.